[주영섭 칼럼] CES에서 자율주행 트랙턱가 주목받은 까닭

2023-01-30 06:00
사람 중심의 미래 사회 혁신을 대한민국이 주도하자

[주영섭 교수]

2023년 새해 벽두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세계 최대 기술 전시회인 CES가 열렸다. CES는 매년 4월 독일에서 열리는 하노버 산업박람회와 함께 세계 양대 기술전시회로 꼽힌다. CES는 매년 초 세계 기술 혁신의 방향을 제시한다는 면에서 많은 기업인은 물론 학계, 연구계, 정부 인사들 이목이 집중되는 행사다. 코로나 팬데믹 직전 CES 2020에는 4500개 기업이 전시업체로 참여하고 18만명이 참관하여 역대 최고 성황을 이루었다. 팬데믹에 따라 2021년은 전면 온라인으로 열리고 온·오프 혼합으로 열린 2022년은 2300개 전시업체, 4만명 참관으로 축소되었으나 이번 CES 2023에는 3200여 개 기업이 전시업체로 참여하고 10만여 명이 참관하여 CES 2020 대비 70% 수준으로 회복되었다. 2020년 1400개 참여한 중국 기업이 미·중 갈등 여파로 올해 불과 500여 개 기업이 참여했고 전 세계적으로 경제 불황이 진전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CES 규모나 위상이 사실상 팬데믹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고 봐도 무방할 것으로 보인다.
 
전반적 전시 성향 측면에서는 대부분 기업들이 경제 불황기를 감안하여 미래지향적 새로운 혁신 기술보다는 단기적 시장 대응형 혁신 기술 중심으로 출품한 것으로 보인다. 많은 참관자들이 예년에 비해 눈에 띄는 특별한 혁신 기술이 많지 않았다는 인상을 받은 이유다. 실제로 CES 2022가 팬데믹 여파로 제한적인 온·오프 혼합으로 열렸음에도 불구하고 우주 기술, 디지털 헬스, NFT 등 새로운 기술 혁신 분야가 눈에 띄었으나 올해는 특기할 만한 새로운 분야가 상대적으로 적었다는 평이다. 다만 보이는 제품 혁신보다는 새로운 기업 비전, 비즈니스 모델 및 전략, 키워드 선점 등 보이지 않는 혁신이 두드러졌다고 볼 수 있다.
 
CES 2023은 핵심 슬로건으로 '모두를 위한 휴먼 시큐리티(Human Security for All·HS4A)'를 제시하였다. '휴먼 시큐리티'란 1994년 유엔이 최초로 도입한 개념으로 식량 안보, 의료 접근성, 경제 안보, 환경 보호, 개인 안전 및 이동성, 공동체 보안, 정치적 자유 등 인류가 직면하고 있는 심각한 위협을 해소하는 데 있어 기술 혁신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즉, 기술 혁신을 통해 인류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고 인류가 지향하고 있는 비전을 실현하고자 한다는 뜻이다. 게리 샤피로 CTA 회장은 개막 연설에서 CES 2023에서 제시하는 혁신 기술이 인류 삶을 풍요롭게 하고 다음 세대에 더 나은 미래를 열어줄 것이라고 역설했다. 코로나 팬데믹에 이어 미·중 갈등, 우크라이나 전쟁 등 신냉전 시대의 전개로 세계인이 현실에 대한 불안으로 세계 평화와 인류 공영, 미래의 지속 가능성을 염원하고 있는 상황에서 시의적절한 방향 제시라 하겠다.
 
CES 2023의 최고 스타는 단연 세계적 농기계업체 존디어(John Deere)였다. 개막식과 함께 첫 기조연설자로 나선 존 메이 존디어 CEO는 농업기술 혁신을 통해 인구 증가와 기후변화로 인류가 직면한 식량 위기를 해결할 수 있다고 강조하였다. 그는 세계 인구가 2050년에 100억명까지 증가할 것으로 전망되나 식량을 생산할 토지와 노동력은 오히려 감소하고 있어 농업기술 혁명으로 농업의 새로운 미래 제시가 필수적임을 피력하였다. 존디어는 농업 기술 혁신 사례로 AI(인공지능) 기반 자율주행 트랙터와 전기 굴착기를 발표하여 큰 호응을 받았다. 존디어 사례는 많은 시사점과 교훈을 제시하고 있다. 기술 측면으로만 보면 존디어의 자율주행 트랙터 기술은 CES 2023에 참여한 BMW, 벤츠 등 자동차 회사의 자율주행차 기술 대비 기본적으로 수준이 낮은 기술이다. 트랙터는 일반 도로보다 장애물이나 돌발 상황이 상대적으로 훨씬 적은 환경에서 작업하기 때문에 자율화도 훨씬 쉽다. 존디어가 각광을 받은 것은 기술 혁신 측면이 아니라 기술 혁신을 통해 인류 사회에 가져다 줄 공헌을 높이 샀기 때문이다. 즉, 세계가 기술 혁신 자체도 중요하나 기술 혁신의 ‘Purpose(목적)’를 더욱 중요시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사람 입장에서 무엇을 위한 기술 혁신인가’라는 사람 중심의 ‘Purpose’가 핵심이 된 것이다. 같은 맥락으로 이번에 BMW가 발표한 e-Ink(전자잉크) 기반의 가변 색상 자동차가 기술적으로는 대단한 혁신임에도 혹평을 받은 것은 기술 혁신의 ‘Purpose’가 약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올해는 과거 화려한 제품 중심의 전시에서 탈피하여 각각 캄테크, 앰비언트 컴퓨팅 등 초연결 및 데이터 기반의 고객경험 혁신으로 스마트홈의 미래를 제시한 것은 추가적 개선의 여지는 있으나 ‘Purpose’ 측면이 한층 강화된 고무적 방향이다.
 
CES 2023이 제시한 핵심 기술 트렌드는 기업기술 혁신, 메타버스 및 웹 3.0, 모빌리티, 헬스케어, 지속 가능성, 서비스 및 게임 등 6개 트렌드다.
 
첫째로 기업기술 혁신이란 소비자기술 혁신과 대별되는 의미로, 경제 불황이 전망되는 2023년에는 가전, 스마트폰, 모바일 등 소비자기술 혁신보다 5G 기반의 산업 IoT(사물인터넷), 데이터, 클라우드, AI 등 기업기술 혁신이 주도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물류·창고 등 자동화·가상화, 사이버 보안 생태계도 확대될 것이다. 둘째로 메타버스는 ‘가상화’와 ‘몰입’이 핵심으로 올해는 VR(가상현실)·MR(혼합현실) 기기 기반으로 전자 상거래, 몰입형 마케팅, 시뮬레이션, 엔터테인먼트, 소셜 등 다양한 메타버스 비즈니스 모델이 소개되었다. 웹 3.0 개념에 대해 제시되었으나 구체적 사례는 많지 않았다. 셋째로 모빌리티에 대한 관심은 여전히 뜨거웠다. 전기차는 대세로 자리 잡으며 배터리, 플랫폼 등 생태계 확장이 두드러졌으나 자율주행 기술은 속도 조절 내지 퇴조가 완연하고 농기계, 광산기계, 셔틀, 보트 등 다양한 기능으로 생존을 모색하고 있음이 나타났다. 자동차 내부 편의, 엔터테인먼트, 전자상거래 등 고객경험 혁신도 주요 경향이다. 넷째로 원격의료, 디지털 치료 등을 통한 가정의 ‘건강 허브화'다. 즉, 헬스케어 기술 혁신으로 ‘병원에서 가정으로’ ‘치료에서 예방으로’를 실천하려는 방향이다. 다섯째로 지속 가능성 기술은 환경, 사회, 지배구조를 의미하는 ESG와 직결된다. 즉, 기술 혁신으로 환경, 사회, 지배구조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 내지 제고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에너지·환경·식량·물·공기·순환경제 기술 혁신은 물론 건강·안전·스마트 기술 혁신이 두루 포함된다. 여섯째로 서비스산업이 디지털 대전환과 팬데믹의 결과로 대폭 성장하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게임, 비디오, 소프트웨어 산업 등이 하드웨어, 디스플레이, 햅틱, 메타버스 산업 등과 동반 발전이 예상된다.
 
CES 2023에서 나타난 기술 트렌드와 교훈을 거울 삼아 글로벌 기술 혁신과 기술이 지향하는 사람 중심의 미래 사회 혁신을 주도하는 대한민국이 되길 기대한다.
 

주영섭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공학전문대학원 특임교수 △전 중소기업청장 △펜실베이니아주립대학 산업공학박사 △현대오토넷 대표이사 사장 △대통령 직속 국민경제자문회의 위원 △한국디지털혁신협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