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기고] 국가계약 제도의 선진화를 위한 제언

2023-01-27 05:00

공공조달은 정부나 공기업 등 공공부문이 필요한 물품이나 서비스 또는 공사를 조달하는 것이다. 공공조달 정책은 재정정책에 비견될 정도로 국가적 중요성이 크다. 2021년 전체 공공조달 시장은 184조원이고 GDP 대비 9% 수준으로 그 규모가 매우 클 뿐 아니라 수많은 국가기관과 공공기관이 50만개가 넘는 입찰참여업체와 거래하는 광범위한 시장이다. 재정정책이 국가재정을 얼마나 많이 쓸 것인지 결정한다면 공공조달을 주관하는 국가계약 제도는 재정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쓸 것인지 결정하는 중요한 정책이다.
 
국가계약에서 기본 원칙은 '가격 대비 가치'를 극대화하는 것이다. 국민의 부담으로 조성된 국고를 가장 가치 있게 쓰는 것이다. 이런 가치는 기술력, 안전성 등을 포괄한다. 가격 대비 가치를 극대화하려면 입찰 과정에서 기술, 안전성 등 비가격 요소와 가격요소 모두에 대한 경쟁이 실효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비가격 요소에 대한 평가의 변별력이 낮아 사실상 가격경쟁으로만 낙찰자가 결정되고 있다. 기술력 등 가치를 높이려면 원가가 상승하기 마련이고 따라서 투찰가격이 오를 수밖에 없어 입찰업체가 가치 제고를 위해 노력할 유인이 적다. 조달품의 품질에 대한 불만과 다수의 안전사고도 기본 원칙이 지켜지지 않기 때문에 나타나는 문제일 것이다.
 
따라서 국가계약 제도를 선진화하기 위해 다음과 같이 제언하고자 한다.

첫째, 기술 경쟁을 획기적으로 강화해야 한다. 기술 평가의 배점을 높이고 평가를 세분화해 변별력을 확대해야 한다. 상대평가의 도입도 기술 경쟁을 촉진하는 데 효과적일 것이다. 대안 제시형 낙찰제 등 기술 중심형 계약제도 확대를 유도하기 위해 발주기관에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것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공공기관은 기술력이 높아도 가격이 낮고 이미 잘 알려진 업체를 선호하는 위험 기피 성향이 있는데, 필자가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수행한 연구에 따르면 (혁신조달 정책과 같이) 기술평가를 특별히 강화하는 공공기관을 우대하는 정책은 이런 위험 기피 성향을 완화하면서 사회 후생을 높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둘째, 안전성을 실효적으로 강화하는 것이다. 안전에 대한 배점과 변별력을 확대해 업체들이 안전에 투자하면 투찰가격이 높아지더라도 보상받는 구조를 만들 필요가 있다. 사전심사에서 가감점으로만 반영되는 안전 항목을 정규배점화하고 중립적 외부 기관이 책정한 안전관리 등급이 평가에 반영되도록 하는 것도 고려할 만하다.
 
셋째, 국가계약을 운영하는 시스템도 개선할 필요가 있다. 비가격 요소는 다양한 측면을 고려해야 하고 각 측면의 경중을 따져야 해 평가가 어렵다. 따라서 보다 많은 정보와 데이터를 확보해 체계적으로 평가해야 한다. 현재 매년 수십만 건 이상의 국가계약이 이뤄지고 있고 건별 참여업체, 품질, 안전사고 등 방대한 정보가 관련 데이터베이스에 축적되고 있다. 이런 빅데이터에 AI 기술을 적용해 기술력이나 안전성과 관련이 깊은 새로운 지표를 발굴하고 지표의 배점을 탄력적으로 조정해 평가점수와 최종가치 사이의 상관관계를 높여야 한다. 또한 비가격 평가는 필연적으로 복잡할 수밖에 없으므로 발주기관과 참여업체 간 원활한 소통이 필수적이다. 따라서 발주기관별 계약심의위원회를 설치해 소통을 확대하고, 입찰서류를 전자조달시스템에 의무적으로 공개해 투명성을 제고할 필요도 있다.
 

황순주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사진=아주경제 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