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입금 한도 2배 늘린 증권사, 유동성 위기 시그널 아닌 선제적 대처에 방점

2023-01-18 18:00

[자료=금융감독원 전자공시]


증권사의 ‘마이너스 통장’으로 불리는 단기차입금 한도 설정액 증가폭이 최근 4년간 2배 이상 늘었다. 일각에서는 유동성 위기 시그널이 아니냐는 우려 또한 제기되고 있다.
 
18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를 보면 증권사들은 지난해 단기차입금 한도를 총 13조5837억원 늘렸다. 3년 전인 2019년 6조6800억원에서 약 2.03배 증가한 수준이다.
 
한도액이 증가한 만큼 단기차입금 증가 결정 공시 건수도 늘었다. 해당 건수는 총 18건으로 집계됐다. 앞서 2019년에는 7건에 불과했지만 3년 만에 2.57배 이상 늘어난 셈이다.
 
단기차입금 한도 증가 금액이 가장 많은 곳은 한국투자증권(4조원)이며, 자기자본 대비 증가 규모가 높은 증권사는 상상인증권이다. 상상인증권의 경우 자기자본 대비 단기차입금 한도 비중이 493%에 달한다.
 
4년간 단기차입금 한도를 가장 자주 높인 곳은 유안타증권으로 나타났다. 매년 1회 이상 단기차입금 한도를 높였으며, 2021년에는 단기차입금 한도를 1000억원, 3100억원, 5000억원 등 3회 증가시켰다.
 
문제는 작년 레고랜드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우려로 인해 단기자금 시장이 경색되는 등 증권사 자금조달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는 점이다. 이에 시장에서는 증권사의 단기차입금 한도 증가 결정이 유동성 위기가 닥쳤다는 실질적인 신호가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단기차입금은 유동성 확보에 난항을 겪을 때 유용한 자금조달 수단이다. 하지만 변제 기한이 1년에 불과하기 때문에 증권사 재무건전성이 악화될 위험도 존재한다.
 
지난해 3분기 기준 자기자본 대비 PF 비중이 40%가 넘는 곳은 △대신증권(50%) △유진투자증권(42%) △다올투자증권(84%) △현대차증권(69%) △BNK투자증권(63%) △IBK투자증권(52%) △SK증권(45%) 등 7곳이다. 작년 단기차입금 한도를 높인 증권사가 14곳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절반 정도가 자기자본 대비 PF 비중이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부동산 PF 사태로 어려움을 겪는 증권사의 경우 실질적인 유동성 위기를 헤쳐나가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반면 증권사 입장에서는 시장의 해석과 달리 변동성이 부각된 시장에 대한 선제적 대처라는 입장이다. 실제 차입액이 아닌 차입한도 설정액을 높였다는 것만으로 유동성 위기 여부를 판단하기는 섣부를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지난해 금융당국의 금리인상 기조와 함께 채권시장이 얼어붙었기 때문에 자금조달 수단 중 하나인 단기차입금 한도에 여유를 줬을 뿐이라는 것이다.
 
또한 단기자금 시장이 경색됐을 때는 오히려 기업어음(CP) 등을 통해 자금조달하기 어려워진다. 이에 신사업 진출을 염두에 두는 등 성장동력을 추가로 확보하기 위해 증권사들도 최후의 수단으로 설정액 한도를 높인다는 것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실제 차입금을 조달하면 유동성 위기로 볼 수 있지만 한도 증가 자체만으로 시장 상황에 따라 자금조달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목적”이라며 “이사회 정관에 따른 결정에 따라 자기자본 규모가 늘면 단기차입금 한도를 높이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유동성 위기보다는 새로운 기회를 모색하는 증권사가 변동성을 줄이고, 자금을 원활하게 조달하기 위한 수단으로 보는 게 합리적이다”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