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석의 경제 읽어주는 남자] 금융서비스의 새로운 판, '비욘드 디지털(Beyond Digital)'

2023-01-17 20:21

 

[김광석 한국경제산업연구원 경제연구실장]

지난 한 달 동안 은행을 몇 번 다녀왔는가? 필자는 은행 지점을 다녀온 적이 없다. 아니, 지난 1년을 두고 생각해 보아도 은행 지점 방문 횟수는 손가락으로 꼽히는 수준이다. 소비자들이 은행을 방문하는 횟수만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은행 지점도 점차 사라지고 있다. 어디 은행뿐이던가? 비디오 가게도, 음반 가게도, 사진 현상소도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많은 것들이 사라져도 그것을 이용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은행 지점에 가지 않을 뿐이지 하루에도 여러 번 은행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 비디오 가게에 가지 않고 음반 가게에 가지 않을 뿐이지 우리는 영화와 음악을 감상하고 있다. 사진 현상소에 가지 않고 앨범에 간직하지 않을 뿐이지 어쩌면 더 많은 사진을 찍고 SNS 공간에 간직하고 있는지 모른다. 과거에 이용하던 많은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이용하는 방법이 바뀌었을 뿐이다. 흔히 이러한 변화를 디지털 전환 혹은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igital Transformation)이라고 칭한다. 입출금 거래 시 대면 거래 이용 비중은 2005년 26.3%에서 2022년 5.0%로 줄어든 반면 인터넷뱅킹은 18.6%에서 77.4%로 급격히 늘어 은행 서비스의 모습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입출금 거래의 채널별 업무 처리 비중

[자료=한국은행, 지급결제(전자금융통계) (2022년은 3분기기준)]


금융서비스, 제2의 진화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전환, 즉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 제1의 진화였다. 디지털을 넘어 그 이상의 서비스로 진화하는 것, 즉 ‘비욘드 디지털(Digital Beyond)’은 제2의 진화다. 웹3.0, AI, 블록체인, 메타버스, 빅데이터 등과 같은 혁신 기술들이 금융산업 전반에 적용되면서 차원이 다른 금융서비스가 등장하고 있다.
 
첫째로 주목할 만한 진화는 ‘가상은행(Virtual Bank)’이다. 금융 메타버스 제작 전문 스타트업인 핏펀즈(fitfuns)는 CES 2023에서 신한은행의 메타버스 플랫폼 ‘시나몬(Shinamon)’을 선보였다. 세계 최초의 은행 메타버스 플랫폼이다. 소비자는 메타버스 공간에서 게임하듯 재미있게 금융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금융서비스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을 넘어 가상공간으로 또 한 번 전환이 시작된 것이다. KB국민은행이 가상공간에 만든 KB광야점, 독도에 가상 지점을 낸 NH농협은행, 기업은행의 금융서비스와 상품 체험이 가능한 IBK도토리은행 등 메타버스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둘째, 인슈어테크(InsureTech)가 부상하고 있다. 보험산업에 혁신 기술이 도입되는 현상을 특히 인슈어테크(InsureTech)로 정의할 수 있다. 보험산업에도 디지털 기술의 접목이 기하급수로 늘고 있다. 미국 자동차 보험회사 프로그레시브(Progressive)는 스냅샷(Snapshopt)이라는 자동차의 주행거리뿐만 아니라 급가속이나 급제동 등 운전습관 정보를 수집하고 맞춤 보험료를 책정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종전까지만 해도 스냅샷(Snapshopt)이라는 사물인터넷에 기반한 데이터수집장치(좌측)를 이용해 데이터를 수집하는 방식을 취했으나 최근에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우측)으로 전환했다.

 
프로그레시브(Progressive)의 스냅샷(Snapshopt)

[자료=Progressive]


마이크로프로텍트 자회사인 마이크로프로텍트 인슈코어는 최근 3년간 의료비 데이터와 건강검진 데이터 등을 활용해 실손의료비를 자동으로 청구해 주는 서비스 ‘리턴즈’를 출시했다. 실시간으로 축적하는 빅데이터는 소비자에게는 맞춤형 보험 상품을 추천해 주고, 보험회사에는 개인별 위험율 등을 분석해 솔루션을 제공해 준다.

 
마이크로프로텍트의 리턴즈 실손의료비 자동청구 서비스

[자료=마이크로프로텍트]


셋째, 지급결제 서비스에 혁신이 일어나고 있다. 아날로그 환경에서는 현금을 주고받는 방식에서 신용카드, 간편결제, 키오스크, 디지털 화폐와 같은 새로운 방식이 등장하고 있다. 미국 Quantic Bank는 손가락에 낀 반지를 통해 결제하는 ‘Pay Ring’ 서비스를 시작했고, 중국 알리페이는 안면인식기술을 활용해 결제하는 ‘스마일 투 페이(Smile to Pay)’ 서비스를 개시했다.

 
'Pay Ring' 서비스

[자료=Quantic Bank]

'Smile to Pay' 서비스

[자료=알리페이]



오프라인 공간에서는 키오스크(kiosk)에서 ‘모바일 오더(Mobile Order)’로 전환되기 시작했다. 2022년까지 오프라인 유통매장, 식당, 커피숍 등에 걸쳐 키오스크가 확산되고, 키오스크는 비대면 무인 결제 시스템의 주역이 되었다. 이제 키오스크마저 점차 대체될 것으로 보인다. 한 스타트업은 모바일에 기반한 주문·결제 서비스인 ‘테이블로(tablero)’를 다양한 프랜차이즈, 백화점, 유통매장 등을 중심으로 확산시켜 나가고 있다. 키오스크 앞에서 길게 줄을 설 필요가 없고, 공간을 확보해 비싼 장비를 놓을 필요도 없어진다. 더욱이 소비자의 실시간 소비 빅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어 놀라운 가치를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장하일 테이블로 대표는 필자와 대담하면서 “포스사 및 밴사와 제휴하고 기술적으로 결합해 테이블로 스티커만 매장에 붙이면 1분 안에 포스기와 연동되어 주문과 결제가 가능하다”며 혁신성·시장성 측면에서 강한 자신감을 밝힌 바 있다.

 
모바일 주문/결제 서비스 '테이블로(tablero)'

[자료=테이블로]

[자료=테이블로]


넷째, ‘사이버 보안(Cyber Security)’이다. 디지털 세상에서 핵심은 데이터다. 금융, 의료, 라이프스타일 등에 관한 소비자의 데이터는 기업에 엄청난 가치를 제공해 주는 만큼 데이터 보안에 실패할 때 엄청난 가치의 손실이 발생하기도 한다. 소비자로서도 민감한 데이터를 철저히 관리하는 능력이 있는지는 기업과 제품의 선택 여부를 결정짓는 요소(Key Buying Factors)가 될 것이다. 2023년 CES에서 삼성전자는 데이터 보안과 관련된 영역에서 최고혁신상을 받았다. 삼성전자는 카드에 탑재하던 하드웨어 보안칩, 지문 센서, 보안 프로세서를 업계 최초로 IC칩 하나에 통합해 지문인증 IC를 개발했다. 위조 지문의 접근을 사전에 방지해 정보가 빠져나가지 않게 하고, 정보를 암호화하여 안전하게 저장할 수 있어 보안 수준이 매우 높다. 지문인증을 통해 본인만 결제할 수 있기 때문에 카드 도난이나 비밀번호 분실 등에 따른 문제를 방지할 수 있다. 학생증, 출입 카드 등에 다양하게 확대 적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미래 가치는 배가될 것으로 판단된다.
 
비욘드 디지털, 새로운 판

금융사들은 ‘비욘드 디지털’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오프라인 영업점포를 줄이고 디지털 금융으로 전환하는 데에만 머무르면 안 된다. 디지털을 넘어 혁신 기술들을 포착하고 차원이 다른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여기서 서비스는 금융서비스에 국한되어서는 안 된다. 비욘드 디지털의 핵심은 경계를 허무는 것이다. 산업의 경계를 없애고 사고를 확장해야 한다. 미래 금융의 모습을 그리고, 유통, 교육, 의료, 운송 등 전 영역에 걸쳐 시너지를 내야 한다.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한 상황이다. 첫째, 비즈니스 리모델링이다. 은행사는 비은행 사업에서 시너지를 확보하는 방향으로 사업영역을 확보하는 시도가 요구된다. 증권, 보험, 자산운용 등 비은행 사업과 시너지를 확보하는 것도 요구되고 유통, 문화서비스, 정보서비스 등 비금융 사업과 연계하는 것도 필요하다. 둘째, 온·오프라인 연계성을 강화해야 한다. 오프라인 영업점포를 줄여나가는 과정에서 그 역할을 재정의하고 온라인 접점과 연계성을 강화하는 노력이 요구된다. 셋째, 디지털 플랫폼을 확보하고 해외 진출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디지털 플랫폼에 기초한 금융은 지역이나 국경 간 격차를 축소하고 있어 포화된 국내 시장에서 벗어나 부상하는 해외 금융 수요를 포착할 기회를 주고 있다.
 
정책적 대응책도 새로운 판을 짜야 한다. 산업은 이미 디지털을 넘어 새로운 판으로 건너가고 있는데 정책적·제도적 기반은 낡은 아날로그에 머무는 경향이 있다. 기업은 디지털 계약(Digital Contract)과 페이퍼리스(Paperless) 방식으로 이미 전환되었는데 정부는 두껍고 낡은 양식의 인쇄문서에 머물고 있는 것은 아닌지부터 돌아봐야 한다. 기업들이 새로운 판에서 비즈니스를 벌이려면 새로운 제도적 환경이 마련되어야 하는데 과거의 낡은 규제가 이를 가로막아서는 안 된다. 정부가 기업보다 더 먼 미래의 금융을 내다보고 선제적으로 미래 금융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정책이 필요한 이유는 막아서기 위함이 아니라 지원하기 위함이다.


김광석 필자 주요 이력

△한양대 겸임교수 △전 삼정KPM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원 △전 현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