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호의 그게 이렇지요] '방탄' 민주 정당 …표류하는 한국 민주주의

2023-01-06 06:00

[이재호 교수 ]


더불어민주당 노웅래 의원 체포동의안이 국회에서 부결되는 걸 보면서 책 한 권을 다시 꺼내들었다. 정치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대개는 읽었을 책이다. <민주주의는 어떻게 무너지는가>(How Democracies Die, 브로드웨이 북스, 2018년). 하버드대학의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 교수의 공저인 이 책은 민주주의 위기의 원인을 분석하고 해법을 제시한다. 그중 인상적인 대목이 정당에 관한 언급이다.
 
저자들은 민주주의를 지키는 것은 ‘국민’이 아니라 ‘정당’이라고 말한다. 흔히 국민의 의지가 중요하다고 하지만 과도한 기대라는 거다. 민주주의가 유지되려면 어느 나라에나 있기 마련인 대중선동가, 잠재적 독재자들에게 휘둘리지 않을 튼튼한 정당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정당이 없거나, 있더라도 제 역할을 못하면, 악마와 거래라도 하듯이 선동가, 또는 포퓰리스트 아웃사이더들(populist outsiders)을 영입하게 되고, 결국 그들에 의해 민주주의는 죽는다는 것이다. 히틀러, 무솔리니, 차베스의 집권이 그런 경우였다는 것.
 
1920년대 독일과 이탈리아에서 나치와 파시스트가 집권에 성공했을 때 그들의 당원 수는 전체인구의 2%에도 미치지 못했다. 유권자의 압도적 다수도 히틀러와 무솔리니의 집권에 반대했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정권을 잡았다. 기성 정치세력 내의 내부자들(insiders)의 방조와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히틀러를 영입하려는 자신들의 야망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에 대해선 눈을 감았고, 히틀러를 충분히 제어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이보다 치명적인 착각은 없었다고 저자들은 말한다.
 
“포퓰리스트 아웃사이더 제어해야”
 
두 차례의 쿠데타 실패로 수감 중이던 차베스(1954~2013년)를 불러낸 건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두 번이나 지낸 원로정치인 라파엘 칼데라(Rafael Caldera 1916~2009)였다. 차베스는 칼데라와의 연합 덕분에 1998년 12월 대선에서 승리했고, 14년간 장기 집권할 수 있었다. 차베스는 독재와 포퓰리즘의 대명사가 되었고 베네수엘라의 민주주의는 붕괴됐다. 훗날 칼데라는 차베스를 영입한 자신의 실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가 대통령이 될 거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이들 포퓰리스트 아웃사이더들이 권력의 중심부로 진출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저자들은 말한다. 당의 주류가 협력해 이들을 당에서 고립시키거나, 경선에서 패배시켜야 한다는 거다. 저자들은 이를 당의 존립과 발전에 필수적인 게이트키퍼(gatekeeper‧문지기) 기능으로 보았다. 게이트키핑이 잘 되는 정당은 차베스 같은 인물들이 정권을 잡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는 얘기다.
 
당이 성공한 민주주의 게이트키퍼가 되려면 행태주의 정치학자 낸시 버메오(Nancy Bermeo)가 말한 ‘거리두기’(distancing)도 잘 해야 한다. 선동가나 극단주의자(전제주의자)들은 대중의 심금을 울리는 데 능하다. 그들은 지금의 민주주의는 엘리트집단에 의해 부패한 가짜 민주주의이므로, 정권을 잡으면 권력을 국민에게 돌려주겠다고 한다. 이런 식의 선동을 차단하려면 이들과 일정한 거리를 둬야 한다. 보다 구체적으로 당내 경선에서 배제하거나 제명, 또는 고립시켜야 한다. 그들과의 연대를 거부하고, 그들에게 대항하는 민주세력끼리 공동전선을 구축해야 한다. 역사적으로 영국, 코스타리카, 핀란드 등은 선동가들이 권력을 잡지 못하도록 잘 막아냈지만 베네수엘라 등 다수의 남미 국가들은 그렇지 못했다고 저자들은 지적한다.
 
민주정당의 게이트키핑과 거리두기
 
그들은 물론 민주주의 위기에 대한 일종의 담론 차원에서의 해법도 제시한다. '상호관용’(mutual tolerance)과 ‘제도적 절제‘(institutional forbearance)’가 그것이다. 민주주의, 특히 미국의 민주주의가 제대로 굴러가고 있을 때는 이 두 개의 가드 레일(guard‧rail)이 튼튼하게 버티고 있었다는 것이다. 적어도 트럼프가 출마했던 2016년 대선 전까지는. 저자들은 이 가드 레일을 다시 세워야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그런 원론적인 얘기보다 ‘게이트키핑’과 ‘거리두기’를 콕 집어서 제시한 데 주목했다. 포퓰리스트 아웃사이더들을 식별해서 격리시키고(isolate), 경선에서 패배토록(defeat) 해야 한다는 직설적이고 구체적인 제안에 더 끌렸던 것이다. 거기에서 정당정치의 엄중함, 단호함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일까. 정당은 느슨하고 허술한 조직체가 아니라, 민주주의 완성을 위한 ‘보루’라는 생각이 새삼 들었던 것이다.
 
노웅래 의원 얘기로 다시 돌아가자. 민주당이 그에 대한 체포동의안을 부결시키자 여권에선 즉각 “이재명 대표를 위한 방탄 때문”이라는 말이 나왔다. 노 의원 건을 부결시켜야, 곧 국회로 넘어올 이 대표 체포동의안도 부결시킬 수 있어서 그랬다는 거다. 민주당이 임시국회 종료(1월 8일) 직후 새 임시국회를 소집할 걸로 알려졌을 때도 1년 내내 이 대표 방탄 국회를 열어두겠다는 거라고들 했다.
 
방탄, 방탄, 방탄, 왜 이리 관대한가
 
실제로 대선 이후, 이 대표와 민주당의 관심은 오로지 ‘방탄’에 쏠려있는 것처럼 보였다. 당헌 80조를 고쳐 부정‧부패로 기소된 당직자라도 정치보복일 경우엔 구제할 수 있도록 한 게 단적인 예다. 최근엔 ‘탁란(托卵)’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한 원로 언론인은 “한국 민주화의 적통인 민주당을 종북 좌파세력과 586, 부정·비리 의혹의 당대표가 뻐꾸기가 남의 둥지에 알 낳듯(탁란) 접수했다”고 했다. “어찌해서 169석의 거대 야당이 대표 한 사람의 방탄놀이에 올인해 그의 부정‧비리 사건에 당의 명줄을 건다는 것이냐”고 그는 개탄했다.(조선일보, 김대중 칼럼, 11월 29일)
 
송영길 전 대표는 이 대표가 대선에서 패배하자 자신이 5번이나 당선됐던 지역구(인천 계양을)를 선뜻 내주었다. 이 대표는 이 선거구의 보궐선거(6월 1일)에서 당선됨으로써 확실하게 ‘방탄조끼’를 챙겨 입었다. 대체 민주당은 이 대표에 대해 왜 이렇게 관대할까. 그의 정치적 미래에 대한 어떤 확신이라도 있어서일까. 아니면 드러나지 않은 다른 이유라도 있는 것인가. 민주당은 대장동 비리의혹과 이로 인한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에 대해서도 침묵으로 일관했다.

이 대목은 앞서 소개한 레비츠키와 지블랫 교수의 지적과는 대조적이다. 두 저자는 포퓰리스트 아웃사이더를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으로 보고, 권력 중심부 진출은 막아야 한다고 했다. 이를 위해 게이트키퍼(문지기)의 중요성과 이들 선동세력과의 ‘거리두기’를 강조했다. 그런데 한국의 민주당은 ‘거리두기’는커녕 이 대표 중심의 ‘단일대오’ 유지에 올인했다. 필자 눈에는 ‘포퓰리스트 아웃사이더’라고 하기에 충분한 한 야심가를 끌어들이지 못해 안달하는 것처럼 비쳤다.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는 2019년 한 논문에서 이 대표를 ‘아웃사이더 기질과 카리스마 성향 등을 가진 좌파 포퓰리스트로’ 규정한 바 있다. 월간 신동아 2022년 10월호)
 
“대표직 유지할 수 있겠는가”
 
해가 바뀌면서 상황도 바뀌고 있다. 연초 5선의 이상민 의원과 문희상 상임고문은 ‘이 대표의 유고에 대비해 플랜2, 플랜3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 고문은 ’영리한 토끼는 굴을 3개 판다‘는 교토삼굴(狡免三窟)과 ’잘못하고도 고치지 않는다‘는 과이불개(過而不改)를 거론하기도 했다. 사법 리스크로 당이 어려움에 빠질 수도 있으니 대비하자는 얘기에 다름 아니었다. 야권의 원로인 유인태 전 의원도 “측근 비리가 확인되면 이 대표가 대표직을 유지할 수 있겠느냐”고 했다.
 
동아일보는 4일 당내 핵심 친명(친이재명) 이라는 한 의원의 말을 익명으로 보도했다. 그는 “이 대표가 당은 당이고, 사법 리스크는 내 문제라고 당당히 말하고, … 체포동의안이 넘어오면 결과에 따르겠다, 수사엔 언제든지 응하겠다고 의연하게 (대처)했어야 했다.”는 것이다.(최근엔 이 대표도 그런 쪽으로 마음이 바뀐 듯하다. 그는 4일 기자들에게 “소환조사 받겠다는 것인데 뭘 방탄이냐”고 했다고 한다.)

현실적으로도 다른 길은 없어 보인다. ‘방탄’ 이미지로 내년 총선을 치를 생각이 아니라면 말이다. 이 대표는 ‘방탄’ 뒤에 숨지 말고 당당히 수사에 응함으로써 당을 ‘방탄의 족쇄’에서 풀어줘야 한다. ‘방탄’ 뒤에서 ‘정치보복’이라고 아무리 외쳐도 공감할 국민은 많지 않을 것이다.
 
‘적대적 의존관계’ 해소에 밀알 되어야
 
올 한 해가 우리 정치에 얼마나 중요한지는 이 대표가 더 잘 알 터이다. 승자독식의 한국정치를 바꾸기 위한 제도적 개혁방안들이 논의되기 시작했다. 중대선거구제로의 개편도 그중 하나다. 결과에 따라서는 기존 여야 관계가 허물어지고 정치판이 재편될 거라는 관측도 있다. 이 대표가 지금과 같은 ‘방탄’에, 좌파 포퓰리스트 아웃사이더 이미지로 그 논의와 작업에서 중심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진부하기는 해도 한국정치가 이른바 ‘적대적 의존관계’에 편승하고 있다는 지적은 틀리지 않는다. 여야가 서로 증오하고, 그 증오에 기대어 공존하는 관계 말이다. 그만큼 편 가르기와 증오(악마화)가 일상이 됐다. 문재인 정권에서 유독 심했다. 다수 국민이 ‘친일 토착왜구’로 낙인찍혀도 대통령이 말리는 시늉이라도 하는 걸 보지 못했으니까. 이 대표도 그 책임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이 대표는 큰 틀에서, 한국정치의 적대적 의존관계의 해소를 위해 자신이 뭘 할 수 있을지를 몸을 낮춰 고민해야 한다.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정치학 박사 ▷동아일보 정치부장 ▷동아일보 논설실장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