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영웅' 윤제균 감독과 콜럼버스의 달걀
2022-12-26 00:00
윤제균 감독은 언제나 '진정성'을 무기로 써왔다. 누군가는 '신파'라고 격하시키기도 했지만, 대부분 관객이 그의 진심을 알아보았다. 영화 '해운대' '국제시장'은 무려 천만 관객의 선택을 받았고 그는 '대중영화의 아이콘'으로 불리게 됐다.
영화 '국제시장' 이후 8년 만에 내놓은 신작 '영웅'은 윤 감독을 비롯해 출연진 모두가 진심을 쏟아낸 작품이다. 독립유공자에 대한 존경심과 미안함을 담아 신중하게 서사를 쌓아 올렸고, 국내에서 처음 시도되는 뮤지컬 영화의 완성도를 높이고자 기술적인 시도를 거듭해왔다. 그 결과 관객들의 가슴을 울리는 영화 '영웅'이 탄생했다. 이번에도 관객의 마음을 움직인 건, 그의 주무기인 '진정성'이었다.
"정말 긴장되고 떨립니다. 8년 만에 연출작을 내놓았으니 더욱 그렇지요. 제 바람이 있다면 '영웅'이 많은 분의 사랑을 받았으면 하는 거예요. 겸허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있어요."
영화 '영웅'은 1909년 10월,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뒤 일본 법정의 사형 판결을 받고 순국한 '안중근' 의사의 마지막 1년을 그리고 있다. 지난 2009년 초연을 올리고 9번째 무대에 오르는 국내 대표 창작 뮤지컬이다.
"지난 2012년 뮤지컬 '영웅'을 보았어요. 오열하다시피 울었죠. '아, 이 작품을 영화로 만들어야겠다'라고 생각했어요. 제 마음이 움직였기 때문이죠."
윤 감독은 '영웅' 안중근 의사가 아닌 '인간' 안중근에게 집중했다. 그의 곁을 지켰던 동료들과 가족의 이야기를 담으며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풀어내기로 했다.
"제가 '국뽕'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안중근' 의사와 '이토 히로부미'의 대결 구도로 영화를 찍었겠죠. 두 사람의 대결 구도로 이야기가 진행되었다면 (영화의) 절정은 저격 장면이 되었을 거예요. 하지만 그 장면은 우리 영화의 전개 부분입니다. '이토 히로부미' 저격 뒤 30분이나 이야기가 더 진행되는데 그게 제가 진짜 하고 싶었던 이야기였어요. '영웅'에 등장하는 모든 이들이 '영웅'이니까요. '안중근' 의사는 물론 그의 어머니, 아내, 동료들, '설희'까지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이들의 이야기를 담고 싶었어요."
애초 영화 '영웅'은 지난 2020년 8월 개봉을 준비 중이었다. 하지만 코로나19 범유행으로 2년이 지난 뒤에야 극장에서 관객들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개봉 시기가 미뤄지며 윤 감독은 안중근 의사의 '장부가', 조마리아 여사의 '사랑하는 내 아들 도마', 설희의 '내 마음 왜 이럴까' 등 다수의 장면을 재촬영했다. 특히 '설희'의 기차신은 재촬영으로 얻어낸 명장면이었다.
"'이토 히로부미'에게 정체가 발각된 '설희'가 극단적 선택을 앞두고 노래하는 장면이죠. 당초에는 화물칸 안에서 찍었는데 처연함은 사는데, 너무 수동적으로 느껴지는 거예요. 그래서 '설희'를 기차 밖으로 빼냈죠. 정말 공이 많이 든 장면입니다. SF, 액션에서 많이 쓰는 4축 와이어를 드라마 장르에서 처음 썼어요. 운동장 규모의 대형 스튜디오를 빌려서 원 신 원 커트로 찍었는데 그 장면을 다시 찍고 (김)고은씨가 탈진하기도 했어요."
뮤지컬 영화라는 장르부터 촬영 방식까지 영화 '영웅'은 도전 그 자체였다. 윤 감독은 배우들과 제작진에게 공을 돌리며 고마운 마음을 전하기도 했다.
"배우들이 정말 힘들었을 거예요. 뮤지컬 영화가 처음이다 보니 시행착오가 많았거든요. 특히 고은씨가 고생을 많이 했죠. 아직도 미안하고 고마워요. 고은씨가 가장 처음 (라이브 녹음)했는데 인이어 때문에 어려움이 많았거든요. 그때까지만 해도 일일이 (인이어를) 지우겠다는 생각이 없어서 수소문 끝에 작고 보정이 필요 없는 인이어를 썼어요. 그런데 문제는 그 인이어는 반주가 잘 안 들리는 거예요. 고은씨도 혼란스러워했지만, 꾸역꾸역해냈어요. '아, 할 수 있구나'라고 생각하고 정성화씨 촬영을 진행했는데 단박에 '이런 (인이어) 상태로는 라이브할 수 없다'라고 하더라고요. 음정 박자가 명확해야 하는데 해당 인이어로는 녹음할 수가 없다고요. 큰 문제라고 생각했고 인이어를 다 교체했어요. 예산이 많이 들더라도 CG로 다 지우기로 한 거죠. 고은씨가 열악한 환경에서도 그렇게 좋은 연기를 펼쳐주어서 고맙고 미안할 따름이에요."
영화 '영웅'은 동명 뮤지컬을 원작으로 하지만 많은 부분 각색되었다. 초연 당시 논란이 되었던 '이토 히로부미의 영웅화' '일본 미화' 중국인 '링링'의 설정 등이다.
"'설희', '링링'의 설정이 각색되었어요. '설희'의 경우 제가 뮤지컬을 보며 의문을 품었던 부분을 수정한 건데요. 그가 24시간 '이토 히로부미'와 붙어있으면서 그를 처단하지 않고 고민하고 갈등하는 게 이해가 가지 않더라고요. '설희'의 개연성을 놓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고 그에게 '첩보원'이라는 설정과, '하얼빈에서 러시아 재무부 장관과 어떤 이야기를 나눌 건지 알아내라'는 임무를 주었어요. 캐릭터에게 개연성을 부여한 거예요. 또 만둣가게를 운영하며 '안중근'을 돕는 중국인 남매 '왕웨이' '링링'을 한국인인 '마두식' '마진주'로 바꾸었어요. 이미 일본인이 일본어로 노래하는데, 중국어까지 등장한다면 관객들이 혼란스러울 거로 생각했어요. 가장 많이 바뀐 건 '진주'죠. 원작에서 '안중근'을 짝사랑하는 인물인데, 그보다 젊은 '동하'와 풋풋한 첫사랑을 그리는 게 어울릴 거라고 판단했어요."
'영웅'은 사전녹음·현장 녹음·후시녹음 3단계를 거쳐 가장 자연스러운 소리를 뽑아냈고 한국 뮤지컬 영화의 역사를 다시 썼다. 스튜디오 녹음이 불가피한 분량을 제외한 전체의 70%가량이 현장에서 직접 녹음한 라이브 버전을 내놓았다. 좋은 시도였지만 제작진에게는 하루하루가 도전이었다고.
"'해운대' 때와 비슷했어요. 한국에서 처음 시도되는 거라 어려움이 많았거든요. 배우면서 찍었어요. ('해운대'를 찍을 당시) 도심에서 파도가 들이치고 사람들이 휩쓸려 가는 걸 찍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더라고요. 미국 특수촬영장을 가보니 별 게 아니라 드럼통을 반으로 쪼개서 미끄럼틀을 만들고 물을 들이부어 파도가 들이치는 효과를 내는 거였어요. 간단한 일이었죠. '콜럼버스의 달걀'과 같았어요. '영웅'도 같은 일을 겪었고 (작업하면서) 사운드 컨트롤에 노하우가 쌓였죠. 앞으로 '뮤지컬 영화'를 찍겠다는 사람이 나타난다면 제가 제작하지 않더라도 도움을 주고 싶어요. JK필름과 관계가 없더라도 도움을 요청한다면 노하우를 다 내줄 마음입니다."
영화 '영웅'은 4분기 최대 기대작인 '아바타'와 맞붙게 되었다. 그는 조심스레 "'아바타'가 시각적 즐거움을 준다면 우리 영화는 가슴에 뜨거움을 주는 작품이 될 것"이라며 많은 관객이 극장을 찾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가장 좋았던 감상평은 '아이들과 함께 보고 싶다'라는 말이었어요. 저도 아이들이 있는데요. 가만히 보니 (아이들이) 한국사를 중요히 생각지 않더라고요. 국·영·수는 인생의 모든 것처럼 굴면서요. '안중근' 의사의 직업은 무엇이었는지, 그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기 전에 어떤 일을 겪었는지 알지 못해요. 우리의 역사를 잘 알고, 잊지 않았으면 했어요. 아이들과 함께 이 영화를 봐주면 좋겠어요."
윤제균 감독의 차기작은 영화 'K팝: 로스트 인 아메리카'다. 미국 데뷔를 앞둔 K팝 보이그룹이 뉴욕행 비행기에 오르지만, 돈도 휴대전화도 없이 낯선 텍사스 시골 마을에 표류하면서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다. 내년 상반기 크랭크인을 목표로 시나리오 작업을 진행 중이다.
"'K팝: 로스트 인 아메리카' 시나리오 작업과 함께 다른 프로젝트도 동시에 준비하고 있어요. 어떤 작품이 먼저 공개될지 모르겠지만 저의 목표는 '다작 감독'이 되는 거예요. 8년 만에 '영웅'을 선보였으니 앞으로는 더 자주 관객들과 만나고 싶어요."
영화 '국제시장' 이후 8년 만에 내놓은 신작 '영웅'은 윤 감독을 비롯해 출연진 모두가 진심을 쏟아낸 작품이다. 독립유공자에 대한 존경심과 미안함을 담아 신중하게 서사를 쌓아 올렸고, 국내에서 처음 시도되는 뮤지컬 영화의 완성도를 높이고자 기술적인 시도를 거듭해왔다. 그 결과 관객들의 가슴을 울리는 영화 '영웅'이 탄생했다. 이번에도 관객의 마음을 움직인 건, 그의 주무기인 '진정성'이었다.
"정말 긴장되고 떨립니다. 8년 만에 연출작을 내놓았으니 더욱 그렇지요. 제 바람이 있다면 '영웅'이 많은 분의 사랑을 받았으면 하는 거예요. 겸허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있어요."
영화 '영웅'은 1909년 10월,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뒤 일본 법정의 사형 판결을 받고 순국한 '안중근' 의사의 마지막 1년을 그리고 있다. 지난 2009년 초연을 올리고 9번째 무대에 오르는 국내 대표 창작 뮤지컬이다.
"지난 2012년 뮤지컬 '영웅'을 보았어요. 오열하다시피 울었죠. '아, 이 작품을 영화로 만들어야겠다'라고 생각했어요. 제 마음이 움직였기 때문이죠."
"제가 '국뽕'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안중근' 의사와 '이토 히로부미'의 대결 구도로 영화를 찍었겠죠. 두 사람의 대결 구도로 이야기가 진행되었다면 (영화의) 절정은 저격 장면이 되었을 거예요. 하지만 그 장면은 우리 영화의 전개 부분입니다. '이토 히로부미' 저격 뒤 30분이나 이야기가 더 진행되는데 그게 제가 진짜 하고 싶었던 이야기였어요. '영웅'에 등장하는 모든 이들이 '영웅'이니까요. '안중근' 의사는 물론 그의 어머니, 아내, 동료들, '설희'까지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이들의 이야기를 담고 싶었어요."
"'이토 히로부미'에게 정체가 발각된 '설희'가 극단적 선택을 앞두고 노래하는 장면이죠. 당초에는 화물칸 안에서 찍었는데 처연함은 사는데, 너무 수동적으로 느껴지는 거예요. 그래서 '설희'를 기차 밖으로 빼냈죠. 정말 공이 많이 든 장면입니다. SF, 액션에서 많이 쓰는 4축 와이어를 드라마 장르에서 처음 썼어요. 운동장 규모의 대형 스튜디오를 빌려서 원 신 원 커트로 찍었는데 그 장면을 다시 찍고 (김)고은씨가 탈진하기도 했어요."
"배우들이 정말 힘들었을 거예요. 뮤지컬 영화가 처음이다 보니 시행착오가 많았거든요. 특히 고은씨가 고생을 많이 했죠. 아직도 미안하고 고마워요. 고은씨가 가장 처음 (라이브 녹음)했는데 인이어 때문에 어려움이 많았거든요. 그때까지만 해도 일일이 (인이어를) 지우겠다는 생각이 없어서 수소문 끝에 작고 보정이 필요 없는 인이어를 썼어요. 그런데 문제는 그 인이어는 반주가 잘 안 들리는 거예요. 고은씨도 혼란스러워했지만, 꾸역꾸역해냈어요. '아, 할 수 있구나'라고 생각하고 정성화씨 촬영을 진행했는데 단박에 '이런 (인이어) 상태로는 라이브할 수 없다'라고 하더라고요. 음정 박자가 명확해야 하는데 해당 인이어로는 녹음할 수가 없다고요. 큰 문제라고 생각했고 인이어를 다 교체했어요. 예산이 많이 들더라도 CG로 다 지우기로 한 거죠. 고은씨가 열악한 환경에서도 그렇게 좋은 연기를 펼쳐주어서 고맙고 미안할 따름이에요."
영화 '영웅'은 동명 뮤지컬을 원작으로 하지만 많은 부분 각색되었다. 초연 당시 논란이 되었던 '이토 히로부미의 영웅화' '일본 미화' 중국인 '링링'의 설정 등이다.
"'설희', '링링'의 설정이 각색되었어요. '설희'의 경우 제가 뮤지컬을 보며 의문을 품었던 부분을 수정한 건데요. 그가 24시간 '이토 히로부미'와 붙어있으면서 그를 처단하지 않고 고민하고 갈등하는 게 이해가 가지 않더라고요. '설희'의 개연성을 놓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고 그에게 '첩보원'이라는 설정과, '하얼빈에서 러시아 재무부 장관과 어떤 이야기를 나눌 건지 알아내라'는 임무를 주었어요. 캐릭터에게 개연성을 부여한 거예요. 또 만둣가게를 운영하며 '안중근'을 돕는 중국인 남매 '왕웨이' '링링'을 한국인인 '마두식' '마진주'로 바꾸었어요. 이미 일본인이 일본어로 노래하는데, 중국어까지 등장한다면 관객들이 혼란스러울 거로 생각했어요. 가장 많이 바뀐 건 '진주'죠. 원작에서 '안중근'을 짝사랑하는 인물인데, 그보다 젊은 '동하'와 풋풋한 첫사랑을 그리는 게 어울릴 거라고 판단했어요."
"'해운대' 때와 비슷했어요. 한국에서 처음 시도되는 거라 어려움이 많았거든요. 배우면서 찍었어요. ('해운대'를 찍을 당시) 도심에서 파도가 들이치고 사람들이 휩쓸려 가는 걸 찍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더라고요. 미국 특수촬영장을 가보니 별 게 아니라 드럼통을 반으로 쪼개서 미끄럼틀을 만들고 물을 들이부어 파도가 들이치는 효과를 내는 거였어요. 간단한 일이었죠. '콜럼버스의 달걀'과 같았어요. '영웅'도 같은 일을 겪었고 (작업하면서) 사운드 컨트롤에 노하우가 쌓였죠. 앞으로 '뮤지컬 영화'를 찍겠다는 사람이 나타난다면 제가 제작하지 않더라도 도움을 주고 싶어요. JK필름과 관계가 없더라도 도움을 요청한다면 노하우를 다 내줄 마음입니다."
영화 '영웅'은 4분기 최대 기대작인 '아바타'와 맞붙게 되었다. 그는 조심스레 "'아바타'가 시각적 즐거움을 준다면 우리 영화는 가슴에 뜨거움을 주는 작품이 될 것"이라며 많은 관객이 극장을 찾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가장 좋았던 감상평은 '아이들과 함께 보고 싶다'라는 말이었어요. 저도 아이들이 있는데요. 가만히 보니 (아이들이) 한국사를 중요히 생각지 않더라고요. 국·영·수는 인생의 모든 것처럼 굴면서요. '안중근' 의사의 직업은 무엇이었는지, 그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기 전에 어떤 일을 겪었는지 알지 못해요. 우리의 역사를 잘 알고, 잊지 않았으면 했어요. 아이들과 함께 이 영화를 봐주면 좋겠어요."
"'K팝: 로스트 인 아메리카' 시나리오 작업과 함께 다른 프로젝트도 동시에 준비하고 있어요. 어떤 작품이 먼저 공개될지 모르겠지만 저의 목표는 '다작 감독'이 되는 거예요. 8년 만에 '영웅'을 선보였으니 앞으로는 더 자주 관객들과 만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