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코로나도 견뎌냈지만 침체된 상권에 월세 부담 '막막'"··· 이태원 사장님의 '눈물'

2022-11-21 06:00
코로나19 공실 늘어난 이태원 상가...권리금 없앤 고월세 계약 '부메랑'
2030 청년들 주점 창업 많았는데 곳곳 폐업...상인들 "앞날 안 보인다"

이태원역 1번출구에서 세계음식거리로 들어가는 골목 초입에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포스트잇과 꽃을 가져다 놓아 추모공간이 조성됐다. [사진=김민영·백소희 수습기자]

"평일 매출 300만~400만원, 주말에는 700만원까지 나왔는데 이번 주말은 겨우 70만원이에요. 코로나 때보다 더 힘드네요."

20일 찾은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해밀톤 호텔 인근 상가 분위기는 을씨년스러웠다. 평소라면 나들이를 나온 2030세대들로 골목마다 활기가 넘쳤을 터지만 이날은 텅 빈 거리와 묵직한 공기만 감돌았다.

이태원역 1번 출구부터 세계음식거리까지 이어진 길에는 추모객들의 꽃다발이 즐비했다. 애도의 포스트잇이 빼곡한 골목 초입을 지나면 저녁 장사를 준비하고 있는 상점들이 간간이 눈에 띄었다. 주말이지만 간판에 불이 들어오고 노랫소리가 흘러나오는 가게는 손에 꼽았다.

취재진이 만난 상인들 얼굴에는 '그날'에 대한 죄책감과 앞날에 대한 걱정이 동시에 내비쳤다. 특히 대부분의 상인들은 코로나19로 침체됐던 상권이 서서히 정상화되던 시기에 찾아온 또 한 번의 참사로 '아예 이곳을 떠나야 하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을 호소했다.  

◆코로나 극복 중 터진 이태원 참사..."앞길이 안 보입니다"

세계음식거리 인근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A씨는 "4개월 전에 지인들에게 돈을 빌려 확장 이전한 가게"라며 "매출은 급감했지만 일단 월드컵이나 연말까지는 분위기를 보고 버텨볼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자카야를 운영하는 B씨는 지난해 8월에 권리금 없는 점포를 얻어 장사를 시작했다. B씨는 "코로나 시기에 침체된 이태원 상권을 기회로 보고 초기 투자 비용을 아끼기 위해 권리금 없이 1년마다 월세를 올리는 조건으로 이 점포를 얻었다"면서 "개업 첫 달에 2000만원 손실을 본 뒤 상권이 점점 회복되면서 적자폭을 줄이고 있던 시기에 사고가 터졌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하다"고 토로했다.

8년째 이태원에서 한식집을 운영하는 C씨도 코로나 소상공인 대출을 비롯해 여러 곳에서 자금을 끌어와 불과 한 달 전에 점포를 확장한 터라 마음이 더욱 쓰라리다. C씨는 "아들, 딸들이 점포 위·아래로 들어와 막 장사를 시작하려는 참에 이렇게 됐다"며 "자식들 앞에서는 괜찮다고 했지만 혼자 있을 때는 억장이 무너진다"고 울먹였다. 그는 현재 보증금에서 월세를 까고 있는 상태다. 

용산구의 한 공인중개사 E씨는 "인테리어 공사 중이던 50평 규모의 한 클럽 주인이 영업을 포기한다고 연락해 왔다"며 "계약금 외에 철거 비용 4000만원의 손해도 감수하겠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이어 "코로나로 인한 상권 침체, 공실로 손해가 쌓이다 보니 임대인도 쉽게 비용을 조정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임대인과 임차인 간에 타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고 현 상황을 전했다.
 

이태원 세계음식거리에 위치한 상점들이 비어있는 모습 [사진=김민영·백소희 수습기자]

◆일회성 대출 지원은 'NO'...이태원으로서의 지속 가능성 고민해야 

이태원 상인들을 대상으로 식당을 하는 D씨도 상권 침체를 체감했다. 클럽이나 술집들이 문을 닫으면서 종업원이 출근하지 않아, 덩달아 손님이 끊긴 것이다. D씨는 "참사 3주가 다 되어 가는데도 상인들의 생존권에 대한 얘기는 없다"면서 이태원 상인들을 위한 대책 마련도 촉구했다.

정부가 지원하겠다고 밝힌 소상공인 저리 대출과 관련해선 냉담한 분위기다. 이태원에서 수년째 장사를 하고 있다고 밝힌 D씨는 "어차피 갚아야 할 빚"이라며 "내부적으론 대출 말고 보상금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크다"고 토로했다.  

공인중개사 E씨도 "상권이 회복할 때까지 최소 1년 정도는 월세 걱정을 하지 않도록 임대차 지원금이 필요하다"고 했다. 또다른 중개업소 F씨도 "가장 중요한 건 현재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없애고 소비자들을 다시 불러 모을 수 있는 방안"이라고 덧붙였다. 

이태원 문화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는 '세계음식거리'에 걸맞은 콘텐츠의 다양화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언제부턴가 수익성이 높은 주점이 우후죽순 생기면서 이태원 고유의 문화가 사라지는 '술트리피케이션(술+젠트리피케이션)'이 일어났다는 설명이다. 

이태원에서 요리주점을 운영하는 김모씨는 "이태원의 개성이었던 다양한 세계 음식 문화는 술집들이 들어서면서 이미 사라진 지 오래"라며 "(이번 일을 계기로) 빈 상가에 유인책을 제공해 다시 다양한 음식점이 들어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