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쉽고 바르게-2]⑫ "자동제세동기 대신 자동 심장충격기...언어는 생명·인권이죠"
2022-11-21 06:00
안전용어, 찰나에 벌어지는 사고에 빠른 대응 가능하도록 변해야
지하철 5~8호선 스크린 도어, 안전문으로 용어 바꿔...역사 내 AED도 순차적 순화
동사무소가 주민센터로 바뀌면서 공공기관 외국어 병기 당연시
공공언어 쉬운 우리말로 바꾸면 연간 3375억 상당 절감...알권리 보장 위해 중요
지하철 5~8호선 스크린 도어, 안전문으로 용어 바꿔...역사 내 AED도 순차적 순화
동사무소가 주민센터로 바뀌면서 공공기관 외국어 병기 당연시
공공언어 쉬운 우리말로 바꾸면 연간 3375억 상당 절감...알권리 보장 위해 중요
“안전 관련 용어는 정말 중요합니다. 자동제세동기라는 말은 의학 드라마 등에서 많이 언급되면서 사회에 퍼지게 된 것 같아요. 이해하기 어려운 말입니다. 자동 심장충격기를 알리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자동 심장충격기처럼 순간적으로 봤을 때 바로 이해할 수 있는 쉬운 우리말은 중요하다. 찰나에 벌어지는 사고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언어는 생명이다.
아주경제는 최근 서울 마포구 한글문화연대 사무실에서 쉬운 우리말 쓰기를 위해 수십 년간 노력해온 이건범 한글문화연대 대표와 김슬옹 세종국어문화원 원장의 좌담회를 마련했다.
◆ 우리말을 사랑한 이들이 연 ‘안전문’
“안전문이 열립니다.”
잠이 완전히 깨지 않아 몽롱한 상태에서 오른 출근길. 소리가 발걸음을 무의식적으로 옮기게 한다.
스크린 도어가 안전문으로 바뀐 것은 누군가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건범 대표는 “한글문화연대에서 안전문으로 바꾸기 위해 계속 노력 중”이라며 “서울 지하철 5호선부터 8호선까지는 중앙 통제 장치를 통해 안내문을 바꿀 수 있었다. 하지만 1호선부터 4호선까지는 역마다 시설을 교체해야 했다. 현재 40개 정도 역을 안전문으로 바꿨다”고 말했다.
평생 세종대왕과 한글 연구에 매진한 전문가인 김슬옹 원장은 “한 지하철 역에 자동제세동기(AED)라고 돼 있는 걸 보고 서울교통공사와 역, 보건소에 전화로 문의를 했다”며 “현장 관리와 관리 주체를 놓고 서로 다른 곳에 연락을 하라고 했다. 서울교통공사가 11월부터 새로 설치하는 자동 심장충격기는 맡아서 하기로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설명했다.
한글문화연대는 ‘언어는 인권이다’를 구호로 내걸고 있다. 이건범 대표는 2017년 '언어는 인권이다'라는 책도 펴냈다.
이 대표는 “인권의 핵심적인 의미는 알 권리다. 알 권리를 보장해주는 것이 중요하다”며 “공공언어는 생명·안전·보건·복지 등을 다루는 말이다. 안전과 생명에 관한 말은 알아들을 수 있게 보장해 줘야 한다”고 짚었다.
김 원장은 “안전 용어를 다듬으면서 ‘언어는 생명이다’라는 생각을 했다”고 강조했다.
◆ 발코니보다는 덧마루가 어떤가요
안전 등 일상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언어와 더불어 전문 용어를 다듬는 작업도 중요하다.
한글 단체뿐만 아니라 전문 기관과 협업이 필요한 부분이다. 이 대표는 “전문 용어는 개념이 어렵고 일제강점기 때부터 일본식 용어를 그대로 받아들여 쓴 한자어가 많다”고 말했다.
이어 이 대표는 “학문이 성립됐고 학제가 널리 퍼져 있기 때문에 고치기가 쉽지 않다. 굉장히 많은 학자들이 체계적으로 연구하지 않으면 고칠 수 없다”고 강조했다.
해당 기관과 협업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올해 한글날을 맞아 진행한 ‘우리 집 이곳저곳 우리말로 바꿔주세요’ 공모전이 대표적이다.
발코니, 팬트리, 알파룸, 키즈 스테이션, 게스트하우스 등 공공주택에서 자주 사용되는 외국어를 우리말로 바꾸기 위해 시행됐다.
공모는 발코니, 팬트리, 알파룸, 키즈 스테이션, 게스트하우스 등 5개 단어를 대상으로 진행됐으며 977명이 공모전에 참여했다.
공모 결과 발코니는 덧마루로, 팬트리는 더누리방, 알파룸은 쌈지방, 키즈스테이션은 새싹 정류장, 게스트하우스는 공동 사랑채가 단어별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수상작은 우리말 관련 전문가들의 검토를 거쳐 공공주택에서 사용되는 외국어 순화 작업에 사용될 예정이다.
이 대표는 “과거 우리 주택 문화에서 외국어를 사용하면 뭔가 앞서간다는 느낌을 줬던 것 같다”며 “이제는 다소 질리는 느낌이다. 차분하게 다시 우리 정서로 돌아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또한 LH는 지난 8월부터 한글문화연대와 ‘공공주택에서 사용되는 외국어 우리말 순화 용역’을 진행하고 있다. 이번 용역은 주택 건축 도면, 안내 책자 등에 나오는 외국어 사용 현황을 조사하고 외국어를 우리말로 바꾸기 위해 추진됐다. 현재까지 외국어 총 500여개를 조사하고 전문가 회의를 거쳐 순화 적합성 등을 평가했다.
◆ 아쉬운 주민센터와 복합커뮤니티센터
두 사람은 수십 년간 쉬운 우리말 쓰기 운동을 하면서 가장 아쉬운 단어로 동사무소에서 바뀐 주민센터를 꼽았다.
이 대표는 “2007년 9월부터 동사무소에서 주민센터로 바뀌는 작업이 진행됐다. 한글문화연대는 이 사실을 10월 초에 알고 반대 운동을 시작했는데 결국 막지 못했다”고 회상했다.
김 원장은 “그 뒤로 센터를 많이 쓰게 되고 지금은 감당할 수 없는 말이 됐다”며 “센터가 공공기관 이름에 들어가는 순간 물꼬가 돼서 앞뒤로 외국어를 하나 더 붙이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은 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이 대표는 “세종시는 현재 주민센터에서 그치지 않고 복합커뮤니티센터라는 말을 쓴다. 세종대왕의 뜻을 이어받는 세종시에서 너무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며 “세종시에 작년에 공문을 보내 고치자고 이야기했지만 위원회에서도 결국 결론을 못 내렸다”며 안타까워했다.
이어 이 대표는 “세계화 시대에 외국어를 쓰는 것은 어느 부분에서는 이해가 된다. 이는 상황에 따라, 맥락에 따라 달라질 것”이라며 “공공언어에서는 외국어를 쓰지 말아야 한다. 정책명을 만드는 사람들이 영어를 많이 쓰는 쪽으로 치우치는 경향이 있다. 울산시와 전주시처럼 우리말로 다양하고 생산적인 말을 많이 쓰는 지자체도 있다”고 소개했다.
우리말을 사용했을 때 얻는 경제적 효과는 크다. 국어문화원연합회는 지난해 10월 현대경제연구원에 의뢰해 어려운 공공언어 개선에 따른 ‘공익적 가치‘를 화폐 단위로 추정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공공언어를 쉬운 우리말로 바꾸면 연간 3375억원에 달하는 시간과 비용을 절감하는 공익적 효과가 나타난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어려운 공공언어 개선에 따른 분야별 연간 경제가치 효과는 민원 서식 1952억원, 정책용어 753억원, 약관·계약서류 791억원 등으로 나타났다. 귀책사유, 봉입, 불비, 익일과 같은 어려운 행정용어 때문에 드는 시간 비용은 170억원으로 분석됐다.
김 원장은 “쉬운 공공언어를 사용하면 쓸데없는 비용 낭비를 줄일 수 있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말이 있는데 지금은 ‘말 한마디로 천억 원을 아낄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미국·영국·프랑스·스웨덴·노르웨이·캐나다·호주 등 선진국에서 말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며 “쉬운 우리말을 쓰는 게 민족 감정에 기반을 둔 움직임이라기보다는 알 권리를 보장하는 전 세계 보편적인 운동이라고 봐주셨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자동 심장충격기처럼 순간적으로 봤을 때 바로 이해할 수 있는 쉬운 우리말은 중요하다. 찰나에 벌어지는 사고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언어는 생명이다.
아주경제는 최근 서울 마포구 한글문화연대 사무실에서 쉬운 우리말 쓰기를 위해 수십 년간 노력해온 이건범 한글문화연대 대표와 김슬옹 세종국어문화원 원장의 좌담회를 마련했다.
◆ 우리말을 사랑한 이들이 연 ‘안전문’
“안전문이 열립니다.”
잠이 완전히 깨지 않아 몽롱한 상태에서 오른 출근길. 소리가 발걸음을 무의식적으로 옮기게 한다.
스크린 도어가 안전문으로 바뀐 것은 누군가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건범 대표는 “한글문화연대에서 안전문으로 바꾸기 위해 계속 노력 중”이라며 “서울 지하철 5호선부터 8호선까지는 중앙 통제 장치를 통해 안내문을 바꿀 수 있었다. 하지만 1호선부터 4호선까지는 역마다 시설을 교체해야 했다. 현재 40개 정도 역을 안전문으로 바꿨다”고 말했다.
평생 세종대왕과 한글 연구에 매진한 전문가인 김슬옹 원장은 “한 지하철 역에 자동제세동기(AED)라고 돼 있는 걸 보고 서울교통공사와 역, 보건소에 전화로 문의를 했다”며 “현장 관리와 관리 주체를 놓고 서로 다른 곳에 연락을 하라고 했다. 서울교통공사가 11월부터 새로 설치하는 자동 심장충격기는 맡아서 하기로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설명했다.
한글문화연대는 ‘언어는 인권이다’를 구호로 내걸고 있다. 이건범 대표는 2017년 '언어는 인권이다'라는 책도 펴냈다.
이 대표는 “인권의 핵심적인 의미는 알 권리다. 알 권리를 보장해주는 것이 중요하다”며 “공공언어는 생명·안전·보건·복지 등을 다루는 말이다. 안전과 생명에 관한 말은 알아들을 수 있게 보장해 줘야 한다”고 짚었다.
김 원장은 “안전 용어를 다듬으면서 ‘언어는 생명이다’라는 생각을 했다”고 강조했다.
안전 등 일상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언어와 더불어 전문 용어를 다듬는 작업도 중요하다.
한글 단체뿐만 아니라 전문 기관과 협업이 필요한 부분이다. 이 대표는 “전문 용어는 개념이 어렵고 일제강점기 때부터 일본식 용어를 그대로 받아들여 쓴 한자어가 많다”고 말했다.
이어 이 대표는 “학문이 성립됐고 학제가 널리 퍼져 있기 때문에 고치기가 쉽지 않다. 굉장히 많은 학자들이 체계적으로 연구하지 않으면 고칠 수 없다”고 강조했다.
해당 기관과 협업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올해 한글날을 맞아 진행한 ‘우리 집 이곳저곳 우리말로 바꿔주세요’ 공모전이 대표적이다.
발코니, 팬트리, 알파룸, 키즈 스테이션, 게스트하우스 등 공공주택에서 자주 사용되는 외국어를 우리말로 바꾸기 위해 시행됐다.
공모는 발코니, 팬트리, 알파룸, 키즈 스테이션, 게스트하우스 등 5개 단어를 대상으로 진행됐으며 977명이 공모전에 참여했다.
공모 결과 발코니는 덧마루로, 팬트리는 더누리방, 알파룸은 쌈지방, 키즈스테이션은 새싹 정류장, 게스트하우스는 공동 사랑채가 단어별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수상작은 우리말 관련 전문가들의 검토를 거쳐 공공주택에서 사용되는 외국어 순화 작업에 사용될 예정이다.
이 대표는 “과거 우리 주택 문화에서 외국어를 사용하면 뭔가 앞서간다는 느낌을 줬던 것 같다”며 “이제는 다소 질리는 느낌이다. 차분하게 다시 우리 정서로 돌아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또한 LH는 지난 8월부터 한글문화연대와 ‘공공주택에서 사용되는 외국어 우리말 순화 용역’을 진행하고 있다. 이번 용역은 주택 건축 도면, 안내 책자 등에 나오는 외국어 사용 현황을 조사하고 외국어를 우리말로 바꾸기 위해 추진됐다. 현재까지 외국어 총 500여개를 조사하고 전문가 회의를 거쳐 순화 적합성 등을 평가했다.
◆ 아쉬운 주민센터와 복합커뮤니티센터
두 사람은 수십 년간 쉬운 우리말 쓰기 운동을 하면서 가장 아쉬운 단어로 동사무소에서 바뀐 주민센터를 꼽았다.
이 대표는 “2007년 9월부터 동사무소에서 주민센터로 바뀌는 작업이 진행됐다. 한글문화연대는 이 사실을 10월 초에 알고 반대 운동을 시작했는데 결국 막지 못했다”고 회상했다.
김 원장은 “그 뒤로 센터를 많이 쓰게 되고 지금은 감당할 수 없는 말이 됐다”며 “센터가 공공기관 이름에 들어가는 순간 물꼬가 돼서 앞뒤로 외국어를 하나 더 붙이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은 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이 대표는 “세종시는 현재 주민센터에서 그치지 않고 복합커뮤니티센터라는 말을 쓴다. 세종대왕의 뜻을 이어받는 세종시에서 너무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며 “세종시에 작년에 공문을 보내 고치자고 이야기했지만 위원회에서도 결국 결론을 못 내렸다”며 안타까워했다.
이어 이 대표는 “세계화 시대에 외국어를 쓰는 것은 어느 부분에서는 이해가 된다. 이는 상황에 따라, 맥락에 따라 달라질 것”이라며 “공공언어에서는 외국어를 쓰지 말아야 한다. 정책명을 만드는 사람들이 영어를 많이 쓰는 쪽으로 치우치는 경향이 있다. 울산시와 전주시처럼 우리말로 다양하고 생산적인 말을 많이 쓰는 지자체도 있다”고 소개했다.
우리말을 사용했을 때 얻는 경제적 효과는 크다. 국어문화원연합회는 지난해 10월 현대경제연구원에 의뢰해 어려운 공공언어 개선에 따른 ‘공익적 가치‘를 화폐 단위로 추정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공공언어를 쉬운 우리말로 바꾸면 연간 3375억원에 달하는 시간과 비용을 절감하는 공익적 효과가 나타난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어려운 공공언어 개선에 따른 분야별 연간 경제가치 효과는 민원 서식 1952억원, 정책용어 753억원, 약관·계약서류 791억원 등으로 나타났다. 귀책사유, 봉입, 불비, 익일과 같은 어려운 행정용어 때문에 드는 시간 비용은 170억원으로 분석됐다.
김 원장은 “쉬운 공공언어를 사용하면 쓸데없는 비용 낭비를 줄일 수 있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말이 있는데 지금은 ‘말 한마디로 천억 원을 아낄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미국·영국·프랑스·스웨덴·노르웨이·캐나다·호주 등 선진국에서 말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며 “쉬운 우리말을 쓰는 게 민족 감정에 기반을 둔 움직임이라기보다는 알 권리를 보장하는 전 세계 보편적인 운동이라고 봐주셨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