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분담' 요구하는 전력당국...발전업계 자금조달 '경고등'

2022-11-07 18:34

전력당국이 전력도매가격(SMP) 상한제 시행을 추진하면서 민간발전사들의 재무 건전성이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한국전력 회사채도 유찰되는 상황에서 SMP 상한제로 민간발전사의 이익 규모가 크게 줄면 이 기업들의 신규 채권이나 차환 발행 등 자금조달에 경고등이 켜질 전망이다.

7일 발전업계에 따르면 SMP 상한제가 시행되면 매 분기 10조원대에 달하는 전력구입비용이 발전업계에 전가될 것으로 추산된다. 전력당국은 SMP를 kWh(킬로와트시)당 160원으로 제한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SMP는 한전이 전력도매시장에서 전력을 구입할 때 적용되는 단가로, 발전사에는 매출과 직결되는 전력 판매가격이다.

지난달 평균 SMP가 kWh당 253.22원이었던 점과 액화천연가스(LNG) 가격이 상승세라는 점을 고려하면 전력당국이 발전사에 kWh당 최소 93원에 달하는 ‘고통분담’을 요구하게 되는 셈이다.

한전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1분기 한전이 구입한 전력량은 14만7275GWh(기가와트시)다. 올해 1분기 비슷한 양의 전력을 구입한다고 가정했을 때 총 13조6966억원 규모의 전력구입비가 발전업계에 전가되는 셈이다. 이 규모는 향후 SMP 추이에 따라 큰 폭으로 달라질 수 있다. 에너지 업계에서 겨울철 SMP가 300원 중반까지 오를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점을 고려하면 매분기 손실액이 20조원에 달할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민간발전업계, 집단에너지업계, 재생에너지업계는 이와 같은 SMP 상한제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가장 시급한 문제는 재무건전성 악화다. 발전업계는 SMP 상한제가 관련 업계에 매출액 급감 등 재무 상황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한다. SK E&S, GS EPS, 포스코에너지 등 이른바 ‘빅3’ 발전사의 경우 매 분기 수천억원대의 수익 급감이 불가피하다. 최근 채권시장이 얼어붙어 한국전력 회사채도 유찰되는 가운데 관련 업계가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란 설명이다.

실제로 한국기업평가는 지난 5월 SMP 상한제가 처음 예고됐을 당시 민간발전업계와 집단에너지업계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상징후가 발견되는 경우 지체없이 신용등급을 조정하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발전업계 관계자는 “겨울철 에너지 수요가 높아지는 상황에서 혹시라도 일부 발전사가 도산해 전력공급이 어려워지는 경우 전력망 전체가 영향을 받을 수 있다”며 “이 경우 전력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상황이 장기 국면으로 접어들면 LNG를 직수입해 발전하는 기업들이 국제 시장에서 연료를 저렴하게 들여올 유인 동기가 떨어진다는 문제점도 제기된다. LNG를 싸게 들여오더라도 SMP 상한제로 인해 이익 폭이 크게 줄어드는 탓에 노력 대비 결과물이 만족스럽지 못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SMP 상한제를 도입하더라도 그 시기와 범위를 최소화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전기요금 현실화 단계에서 불가피한 조치라는 인식이 전제돼야 한다는 것이다. 추후 LNG 가격 하락 국면이 도래하면 발전업계의 고통을 전력당국이 분담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달라는 제안도 힘을 얻고 있다.

박종배 건국대 교수는 “규제는 짧으면 짧을수록 좋다. (SMP 상한제가 도입되더라도) LNG 가격이 하락하거나 전기요금이 정상화되면 바로 없어져야 할 것”이라며 “또 언젠가 연료비가 하락하는 시기가 도래하면 발전업계가 최소한의 투자비는 회수할 수 있을 장치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진=SK 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