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퇴근길 지하철에 몸을 실은 사람들 시선은 대부분 한 곳에 쏠려 있다. 스마트폰을 이용해 어떤 사람은 게임을 하고 그 옆에 있는 사람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구석구석을 탐색한다. 스마트폰을 든 손은 감각을 잊은 지 오래다.

어릴 적 지하철 1호선을 타면 신발을 벗고 창문 쪽으로 돌아앉았다. 바깥 풍경을 하나라도 더 보기 위해서였다. 30여 년이 지났지만 그 당시 기억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빠르게 뒤로 지나가는 흥미로운 풍경을 담기 위한 감각이 여전히 내 안에 살아 있기 때문이리라. 

예술은 무뎌진 감각을 다시 깨운다. 복합리조트 ‘파라다이스시티(PARADISE CITY)’는 지난달 25일부터 인천 중구에 있는 ‘파라다이스 아트 스페이스(PARADISE ART SPACE)’에서 공간을 주제로 한 전시 ‘스페이스 심포니(Space Symphony)’를 선보이고 있다. 

파라다이스시티는 고객이 머무르고 즐기는 모든 공간에 예술적 품격을 더한 ‘아트테인먼트(Art-tainment)’를 핵심 가치로 사계절 독창적인 경험을 제공한다. 3000여 점의 예술 작업, 세계적 수준의 엔터테인먼트, 최신 한류 경향까지 모두 만나볼 수 있는 곳이다.

이번 ‘스페이스 심포니’ 전시는 실재하는 공간 속에서 예술적 경험을 통해 가상세계와 같은 온라인 콘텐츠의 자극으로 무뎌진 감각을 회복하기 위해 기획됐다.

전시장에서 만난 전동휘 파라다이스시티 아트팀 디렉터는 “우리는 집에 가면 안도감을 느낀다. 거실 소파의 부드러운 감촉 등 공간이 구현하고 있는 감각이 있을 것이다. 이것이 어우러져 평온함과 아늑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전 디렉터는 이어 “코로나를 겪으며 많은 부분이 온라인과 가상현실에 매몰되면서 현실적인 실제 공간을 느끼는 감각이 무뎌지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했다”며 “이를 다시 깨워보자는 희망에서 전시를 시작했다”고 귀띔했다.
감각을 깨우는 공간 예술을 구현하기 위해 세계적인 작가가 ‘한 공간’에 모였다. ‘흩어진 공간’ ‘뒤섞인 공간’ ‘흐르는 공간’ ‘확장된 공간’ 등 4가지 콘셉트로 구성된 공간에서 정정주, 서민정, 양민하, 민예은, 박상희 등 국내 작가 5명을 비롯해 일본의 오마키 신지와 카도 분페이, 벨기에의 쿤 반 덴 브룩, 영국과 일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듀오 A.A.무라카미 등 총 9개 팀 작품이 소개된다.

네 개의 공간은 잠든 오감을 자극해 서서히 깨운다.

‘흩어진 공간’은 정형화된 육면체 테두리를 벗어나 공간을 바라보는 초월적인 시점을 마련해 공간을 관찰하는 전혀 다른 방법을 제안한다.

서민정 작가의 작품은 실제 공간을 본뜬 후 폭발시키듯 해체한 설치 작품으로 안과 밖, 순간과 영원의 시간이 구분 없이 존재함을 표현했다.

전 디렉터는 “서민정 작가에게 파라다이스시티 직원 동선을 포함한 전 공간을 보여줬다. 서 작가는 하역장 앞에 있는 검수사무실을 구현했다”며 “검수사무실은 영속할 수 있는 곳 중 하나다. 실제로는 보이지 않는 곳에 위치해 있지만 작가의 시선을 통해 여러 상상을 담을 수 있는 공간이 됐다”고 설명했다.

평소 기계 생명체에 관심이 많은 양민하 작가의 작품은 전시장 중앙 오브제의 내부에서 발산되는 빛의 변화를 알고리즘으로 변환하여 실시간 영상으로 투사한다. 220개의 인공 생명체들이 군집해 있는 공생체는 영상을 통해 880개의 생명체로 확장한다. 공간의 안과 밖, 물질과 가상의 경계가 흐려진다.

‘뒤섞인 공간’은 관계없어 보이는 것들이 겹치고 섞이며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 냄을 보여준다. 카도 분페이 작가는 판타지 요소를 가미해 사물을 조립함으로써 뒤엉킨 미지의 공간을 예술로 표현했다. 우주로 갈 때 통조림 캔처럼 생긴 통에 자연을 집어넣어서 자연을 느끼고 싶을 때 캔을 이용해 자연을 느낀다는 상상력이 무척 흥미롭다.

정정주 작가의 작품은 건물 안에 있던 우리를 바깥으로 꺼내 현실 속 삶의 공간을 낯설게 제시한다.

민예은 작가의 키네틱(kinetic) 조각들은 한 공간 안에 놓여 있지만 저마다 고유의 중력, 속도, 시간을 가지며 시공간의 충돌을 불러일으키는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시계, 달력, 조명 등은 중고 물건을 파는 온라인 플랫폼에서 구매했다. 물건을 판 사람들 아이디(ID)를 조합해 작품 제목을 만들었다.

전 디렉터는 “거꾸로 걸린 시계와 달력 등은 각각의 조각 안에서 완전히 다른 환경에 놓이게 되고 다시 작동하는 방법을 익힌다”며 “조각들은 새로운 그림자를 만들거나, 중력을 거스르는 등 자신만의 물리적 법칙과 새로운 질서를 갖게 된다”고 설명했다.
‘흐르는 공간’은 형체가 없는 빛과 공기, 바람의 움직임을 통해 초자연적인 공간을 연출했다. A.A.무라카미는 번개를 머금은 구름의 한가운데 들어선 듯한 경험을 선사하는 설치 작품을 선보였다.

이번 신작은 빛이 안개 속에서 천둥 치는 모습을 형상화한 작업으로 전압을 사용해 플라스마 상태를 시각화했다. 플라스마는 고체, 기체, 액체와 같이 물질의 상태 중 하나인데 기체에 열이나 에너지를 가했을 때 플라스마 상태가 된다. 우주의 95% 이상을 이루고 있는 플라스마를 통해 빛이 어떻게 구현되는지를 보여준다. 손으로 잡아도 되는 작품은 초현실적인 감각을 선물한다.

오마키 신지 작가는 어둠 속 부유하는 천의 움직임을 통해 공간 전체가 공기, 바람과 함께 움직이는 듯한 작품을 선보였다.

공중에서 유영하는 천은 일상적인 시간과 공간을 자연스럽게 느끼던 평범한 경험을 뒤흔든다. 중력을 거스르는 듯 독립적인 생명체처럼 움직이는 천은 한 편의 무용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전 디렉터는 “섬유와 바람을 결합해 독특한 율동감을 만들어내는 작가”라며 “작가는 관람객이 한 시간이든 두 시간이든 율동감이 주는 표현을 보며 잠시나마 위안을 얻고 돌아간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는 말을 했다”고 전했다. 겨울을 나는 전시를 위해 공간의 따뜻한 바람까지 확인했을 정도로 꼼꼼함을 보여줬다.

마지막 ‘확장된 공간’은 파라다이스 스파 도고와 파라다이스 호텔 부산으로 이어지는 섹션이다. 박상희 작가의 점, 선, 면으로 표현되는 납작한 공간과 쿤 반 덴 브룩 작가의 기하학적 공간은 인위적으로 편집된 2차원적 공간이 장소성을 잃는 대신 보는 이에 따라 여러 공간으로 읽히며 확장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번 ‘스페이스 심포니’전에서 A.A.무라카미, 서민정, 양민하, 민예은 작가는 해당 전시를 위해 제작한 신작을 선보였다.

최윤정 파라다이스문화재단 이사장은 “이번 ‘스페이스 심포니’전(展)은 가상세계 등 디지털 콘텐츠에 기대지 않고 현실의 감각에 집중하는 전시로, 작가들의 예술적 변주를 통해 고정된 틀을 깨고 실재하는 공간의 가능성을 재발견하는 자리로 마련했다”며 “이번 전시를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 공간 속 경험의 소중함을 돌아보고 감각을 회복하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전시는 2023년 3월 26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