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준의 함께 꿈] '여자 무솔리니' 총리까지 … 유럽에 부는 극우 돌풍

2022-10-27 06:00

[안상준 교수]


무솔리니 집권 이래 100년 만에 이탈리아 정국 주도권이 극우 정당 수중에 들어갔다. 극우 정당 후보가 연거푸 결선투표에 오른 최근 두 차례 프랑스 대선은 프랑스 국민에게 극우 정권을 허용할 것인지 물었다. 게다가 복지국가 스웨덴에서 네오나치 세력에 뿌리를 둔 극우 정당이 원내 2당에 오르는 이변이 연출되었다. 이 밖에도 스페인의 ‘폭스’, 네덜란드의 ‘자유당’, 독일의 ‘독일을 위한 대안’, 영국의 ‘영국국민당’ 등 유럽 내 극우 정당들의 지지세 확대는 예사롭지 않다. 민주주의 체제를 심각하게 위협하는 수준으로 극우 세력의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극우 세력이 기성 정치의 대안으로서 우리 미래를 지켜줄까? 우리는 히틀러와 무솔리니 같은 희대의 극우 지도자들을 다시 맞이할 수도 있을까? 이탈리아, 프랑스, 스웨덴의 상황을 진단하고 극우 세력의 확산이 초래할 미래를 예측해본다.

지난 22일 이탈리아 역사상 최초의 여성 총리가 탄생했다. 그의 이름은 조르자 멜로니, 그에게는 ‘여자 무솔리니’라는 별명이 따라붙는다. 전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은 그의 총리 취임 선서는 베니토 무솔리니가 로마 진군으로 권력을 쟁취한 지 정확히 100년 만에 다시 파시스트 정당이 집권에 성공했음을 알리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이탈리아의 운명이 극우파 수중으로 넘어갔다는 사실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이탈리아에서 신자유주의 확산에 협조한 중도 정당들의 몰락은 오래된 현상이다. 그들의 정치적 빈 공간은 ‘오성운동’ 같은 포퓰리즘 정당이나 ‘동맹’이나 ‘이탈리아 형제들’ 같이 민족주의와 인종주의를 기반으로 이민자와 외국인 노동자 수용을 거부하는 극우 정당들에 의해서 채워졌다.

2021년 2월 거국내각은 이탈리아 민주주의를 회복하기 위한 하나의 이정표로 삼을 만하다. 그해 1월 오성운동이 주도한 연립정부가 붕괴하자 코로나19 팬데믹의 확산과 사회경제적 위기에 대처할 정부의 구성이 강력하게 요청되었다. 정파적 색채가 엷은 마리오 드라기가 총리로 지명되었고 의회 내 최대 정파인 오성운동을 비롯하여 좌우 정파들을 아우르는 거국내각이 구성되었다.

유럽중앙은행 총재를 지낸 온건한 경제학자인 드라기는 코로나 정국에서 무난하게 비교적 안정적으로 국정을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팬데믹과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야기된 경제적 위기를 타개하려는 드라기의 대규모 민생 지원 방안이 오성운동 등 다수 정파의 동의를 얻지 못하면서 거국내각의 균열과 드라기의 사임으로 이어졌다.

거국내각 분열의 결정적인 원인은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푸틴에 대한 유럽연합의 제재를 둘러싼 정당 간 이견이었다. 드라기는 유럽연합이나 나토가 주도하는 푸틴 제제에 동조하고 러시아 가스 수입 금지 조치에 적극적으로 호응하는 반면 포퓰리스트와 우파 정치인들은 수입 금지 조치에 따른 에너지 가격 인상을 우려하고 러시아와 외교적 단절에 대한 거부감을 드러내며 드라기와 마찰을 빚었다. 거국내각 붕괴 이후 이탈리아 여론조사는 우파연합의 승리를 예상케 했다. 역대 최저 투표율이 보여주듯이 이탈리아에서 정치는 극도의 혐오 대상으로 전락했고 의회민주주의에 대한 불신은 더욱 깊어졌다.

멜로니의 집권은 매우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그는 주요 정당 가운데 홀로 드라기의 거국내각에 참여하기를 거부했다. 이 선택으로 멜로니는 정파적 지분에 따라 이합집산하는 정치인이 아니라는 선명한 정치적 인상을 이탈리아 국민에게 강렬하게 심어주었다. 15세부터 파시스트 정당의 계보를 잇는 ‘이탈리아 사회운동’ 청년부에서 활동하기 시작한 멜로니는 공공연히 무솔리니를 찬양하며 극우 정치인으로 성장했다. 미혼모로서 홀로 딸을 키우며 2008년 31세에 베를루스코니 4번째 내각의 최연소 청소년 장관으로 발탁된 입지전적 이력은 인상적이다. 기성 중도 정당의 가치를 대체하는 멜로니의 행보가 자못 궁금하다.
 
제5공화국 이래 프랑스의 정치는 중도 우파와 좌파의 대결 구도로 치러졌다. 하지만 지난 10여 년간 프랑스 대선에서 드러난 중요한 경향은 중도 정당의 몰락과 극우 정당의 부상으로 요약된다. 이런 경향의 결정판은 2017년 대선이었다. 프랑스 중도 정당의 몰락은 내부자의 반란으로 입증되었다. 집권 사회당의 30대 엘리트 각료 에마뉘엘 마크롱은 사회당의 미래를 포기했다. 그리고 그는 신당(‘전진하는 공화국’)을 창당하며 대선 후보로 나섰다. 마크롱의 포퓰리즘에 기댄 선거 전략은 화려한 조명을 받았다.

그의 결선투표 상대는 전통적인 맞수 중도 우파의 후보가 아니라 극우 정당 ‘국민연합’의 마린 르펜이었다. 1차 투표에서 각기 23%와 21%를 득표하여 1·2위로 결선에 오른 마크롱과 르펜의 대결에서 여론의 관심은 마크롱의 승리보다 극우 정권의 탄생 여부에 쏠렸다. 66% 대 33%, 마크롱의 대승처럼 보이지만 우리는 프랑스 국민의 양심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2022년 마크롱과 르펜은 다시 결선투표에서 맞붙었고 이번에도 마크롱의 승리로 끝났다. 58.3% 대 41.7%. 득표율 차이는 33%에서 17%로 줄어들었다. 이 수치의 중요성은 대선 한 달 만에 치른 프랑스 총선에서 확연하게 드러났다. 집권 여당은 하원 577석 중 과반인 289석에 한참 못 미치는 251석을 확보하는 데 그치고 말았다. 5년 전 350석에 비하면 충격적인 패배라 할 만하다. 국민은 결코 두 번 속지 않는다.

선거 결과를 분석해보면 135석으로 원내 2당 지위를 얻은 좌파연합의 선전이 대단히 고무적이다. 그러나 선거의 진정한 승자는 89석으로 원내 3당에 오른 극우 정당 ‘국민연합’으로 보인다. 이전 총선에서 얻은 의석이 8석에 불과했고 르펜의 대선 패배를 고려하면 국민연합의 약진은 ‘집권을 허용할 순 없었다. 하지만 의회에서 잘해 보라’는 유권자 마음으로 읽힌다. 르펜의 연설은 이에 화답한다. “이제 우리는 전국 정당이 되었다. 우리의 성공으로 마크롱은 과반 의석 확보에 실패했고, 마크롱으로부터 국가를 지켜낼 수 있게 되었다. ··· 프랑스와 프랑스인의 국익이 우리의 유일한 기준이다.” 노란 조끼를 거리로 불러냈던 마크롱의 부자 감세와 연금개혁, 노동개혁 등 주요 정책에 수정이 불가피해 보인다.
 
극우파의 확장은 대표적인 복지국가 스웨덴에서도 심상치 않다. 지난 9월 11일 치른 스웨덴 총선에서 극우 성향의 ‘스웨덴민주당’이 원내 제2당으로 급부상한 것이다. 이 당은 1988년 나치를 추종하는 극우단체와 외국인 수용을 거부하는 포퓰리즘 진보당의 합병으로 탄생했고, 기괴하고 혐오스러운 복장의 네오나치주의자들(일명 ‘스킨헤드’)이 당의 이미지를 대변하면서 오랫동안 스웨덴 국민에게 외면당했다.

스웨덴민주당의 변신은 2005년 26세의 ‘스웨덴 극우 건축가’ 임미 오케손이 당대표로 선출되면서 시작되었다. 오케손은 낡고 부패한 기성 정치 세력에 대한 대안으로서 극우 정당을 제시한 인물이다. 그는 극우 인종주의 성향의 인사들을 퇴출하고 당에서 외국인 혐오와 반유대주의에 대한 언급을 금지함으로써 당의 인종주의적 색채를 희석하고 네오나치의 이미지를 벗겨내는 데 주력했다.

그 결과는 지지율 상승으로 돌아왔다. 2006년 총선에서 득표율 2.9%를 획득하여 이미지 변신에 성공하더니 2010년 총선에서는 원내 정당이 되었고 급기야 2018년 총선에서는 62석(17.8%)을 얻어 제2야당이 되는 기염을 토했다. 이런 성장세에 비추어 보면 올해 총선 결과는 어느 정도 예고되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유로존 경제 규모 2위인 프랑스와 3위인 이탈리아, 그리고 대표적인 복지국가 스웨덴에서 일어난 극우 정치 세력의 확산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좁게 보면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대한 저항이고, 넓게 보면 자본주의 경제 체제에 대한 경고다. ‘프랑스와 프랑스인의 국익이 우리의 유일한 기준’ ‘스웨덴을 다시 위대하게’와 같은 자국 우선주의를 내세운 캐치프레이즈가 트럼프의 ‘아메리카 퍼스트’처럼 유권자들에게 큰 호소력을 갖는다는 얘기다. 같은 맥락에서 난민 없는 사회, 외국인 범죄자 추방 등 민족주의와 인종주의가 버무려진 공약들이 유권자의 불안 심리를 깊숙이 파고든다.

그 밑바탕에는 정글 자본주의의 귀환과 사회적 양극화를 동반하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파산에 따른 반동심리가 작용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각국의 경기부양책과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으로 기업의 연쇄 도산은 막았지만 일자리의 질은 나빠지고 다수 노동자의 삶은 불안의 울타리로 내몰렸다. 10년 이상 장기 불황의 늪에서 각자도생의 윤리가 널리 퍼지면서 사회 구성원은 정규직 일자리를 두고 아귀다툼을 벌였다.

시민의 생존이 불안해지고 미래가 불투명해질 때 제도권 기성 정치를 불신하는 포퓰리스트 정치 세력, 특히 극우 정당의 지도자들이 주목을 받는다. 오늘도 여전히 생필품과 에너지 비용 상승, 불평등 증가, 계층이동 감소, 늘어나는 이민자 등 다양한 요인들이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절망을 심어주기 때문이다. 100년 전 경제위기 속에서 무솔리니와 히틀러가 등장했다. 다수 국민은 열광했고, 폭력과 전쟁의 광기에 기꺼이 동참했다. 그 결과 수천만 명이 희생되고, 1945년 전쟁 종식과 함께 광기는 물러갔다.

비극의 역사를 마감하고 유럽은 의회민주주의를 회복하고 경제 건설에 매진하는 ‘황금의 30년’을 보냈다. 한쪽에서는 인민을 위한 정부를 표방하고, 한쪽에서는 ‘요람에서 무덤까지’ 시민의 행복한 삶을 책임지는 정부를 표방했다. 또한 평화와 연대에 기초한 국제연합과 유럽연합 같은 국가 간 연합 체제들이 발전했다.

이제 극우 세력의 약진은 민주주의를 실천하며 우리가 지켜왔던 인권과 자유의 가치를 질식할지도 모르는 지경에 이르렀다. “지난 50~60년간 좌파와 우파는 자유주의적 가치와 개인의 자유, 소수자의 권리를 발전시켜 왔지만 스웨덴민주당의 영향력이 커짐에 따라 이러한 진보가 멈추고 그간 당연히 여겼던 가치들이 퇴보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라는 스웨덴 정치학교수 요나스 힌포스의 우려는 의미심장하다.(중앙일보 2022. 9. 22)

나아가 자국 우선주의 기치 앞에서 연대와 평화는 사치스러운 가치로 전락할 위기에 처했다. 이미 영국이 유럽연합을 탈퇴한 상황에서 독일이나 프랑스의 극우파가 집권한다면 유럽연합의 미래는 낙관할 수 없다. 민족 정서에 기초하여 힘의 우위를 강조하는 극우세력들 간 충돌이 재연되는 날에 인류는 다시 공든 탑을 무너뜨리는 어리석은 전쟁으로 빠져들지도 모른다. 쿠오바디스.


△연세대 사학과 졸업 △독일 보쿰 루르대학(Ruhr Univ. Bochum)에서 서양중세사로 박사 학위 취득 △컬럼비아대 해리먼 연구소 방문교수 △2021년 5월부터 한국 대학체제의 개혁 방안을 모색하는 ‘삼각지연구팀’에 참여, <대학법체제정비>(2021)와 <고등교육 패러다임 대전환을 위한 대학정책> △교수신문 기획연재 '대학법과 대학의 미래'의 책임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