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차 당대회 D-4] 1921년 中공산당 창당...역대 당대회 변천사 살펴보기
2022-10-12 11:00
11차때 5년마다 당대회·중전회 7회로
14차 이후 10년 집권 권력승계 모델 정착
시진핑 3기 출범 땜 장기집권 시대 유력
14차 이후 10년 집권 권력승계 모델 정착
시진핑 3기 출범 땜 장기집권 시대 유력
중국 공산당은 5년마다 당대회를 열고 임기 5년의 중앙위원을 선출해 중앙위원회를 구성한다. 하지만 사실 중국 공산당 당대회가 이처럼 제도적으로 정착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역대 당 대회를 돌아보면서 중국 지도부의 권력 변천 과정을 살펴본다.
사실 중국 공산당의 시작은 매우 초라했다. 지난 2020년 기준 당원이 9200만명을 넘지만 1921년 7월 23일 상하이 프랑스 조계지에서 1차 당대회를 열어 공산당을 창당할 때만 해도 마오쩌둥(毛澤東)을 비롯해 대표 13명, 당원은 53명에 불과했다. 창당 초기에 안정을 찾지 못하면서 1차에서 1928년 6차까지 7년 동안 6차례나 열렸다.
이후 1945년 7차까지는 홍군대장정, 시안(西安)사변, 항일전쟁, 제2차 국공합작(國共合作·국민당과 공산당의 연합) 등 중대사건 등으로 정치 상황이 불안정하면서 당대회가 17년 동안 아예 없었다. 그 과정에서 1935년 열린 정치국 확대회의인 '쭌이(遵義) 회의'에서 마오쩌둥이 홍군에 대한 지휘권을 장악하면서 이후 장장 41년간 최고 지도자로 군림하게 됐다.
7차 대회에서 1956년 8차 대회를 개최할 때까지는 다시 11년이라는 시간이, 9차 대회는 8차 대회에서 13년 뒤인 1969년에야 소집됐다. 1958년에서 1962년 사이에는 '대약진(大躍進)'과 '대기근(大饑荒)'으로 3000만명이 굶어 죽는 참상을 빚었고 1966년에는 문화대혁명이 시작하면서 중국의 정치 경제가 '10년의 대혼란'에 빠지게 됐다. 문화대혁명이 한창이던 1969년 열린 9차 당대회에서 마오쩌둥의 후계자로 지명된 린뱌오(林彪)는 쿠데타 공모 사실이 밝혀져 1971년 비행기로 소련 망명을 시도하다가 몽골에서 추락사하고 말았다. 이에 충격을 받은 마오쩌둥은 1973년 개최한 10차 대회에서 서둘러 38세의 왕훙원(王洪文)을 후계자로 내세웠다.
마오쩌둥이 1976년 사망한 직후 문화대혁명이 종료되고 이듬해 제11차 당대회가 소집됐다. 11차 당대회에서 화궈펑(華國鋒)이 당 주석, 중앙군사위 주석에 올랐으나 1978년 말 제11차 3중전회에서 그의 최고지도자 지위는 '개혁·개방 총설계사' 덩샤오핑에게 넘어갔다.
이후 지금까지 당대회는 5년에 한 번씩 고정적으로 열리게 됐다. 매번 당 대회 후 소집하는 중앙위원회 전체회의는 1992년 14차 대회부터는 7차례로 고정됐다. 그 사이 덩샤오핑은 1982년 12차 당대회에서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건설'을 천명하고 전면적 개혁·개방을 실시했다. 당 최고지도자가 두 차례 임기에 걸쳐 총 10년 집권하는 권력 승계 모델도 이때 확립했지만 1989년 톈안먼 사태 등 영향으로 권력 승계 과정은 순조롭지 않았다.
이후 1992년 14차 당대회부터 비로소 중국의 권력승계 구도는 자리 잡았다. 덩샤오핑의 설계대로 14차, 16차 당대회에서 장쩌민(江澤民)이, 2002년 16차 당대회에서는 후진타오(胡錦濤)를 총서기로 한 지도부가 수립됐다. 2012년 18차 당대회에서 후진타오의 바통을 이어 시진핑이 총서기직에 오르며 시진핑 체제가 출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