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철의 100투더퓨처] 행복은 수명연장의 필요조건이다.

2022-08-26 10:57

[박상철 교수]

인간이 단순한 진화적 결과에 의하여 존재하는 단계를 벗어나 자신이 개발한 의학적 또는 공학적 방법을 통하여 역량을 증강한 트랜스휴먼 상태로 변환하고 있다. 인간의 사지, 오장육부, 감각기, 치아 등이 기구 또는 장치로 대체되거나 보완되고 있다. 신화에 나오는 타이탄으로 부활하고, 반인반수(半人半獸)의 전설이 현실화하고 있다. 뇌마저 기계에 의하여 보완·대체되어 버린다면 포스트휴먼 상태로 변환할 것은 자명하다. 포스트휴먼 상태란 인간의 육체와 정신의 모든 기능이 극대화되고, 노화 상태도 수리·복원할 수 있기 때문에 반신반인(半神半人)의 경지에 이르는 단계다. 유발 하라리는 저서 <호모 데우스>에서 인류는 가장 큰 과제였던 기아, 역병, 전쟁을 해결해서 번영·건강·평화를 누리게 되었으며, 그 근간에는 경제적 발전이 토대를 이루었다고 하였다. 또한 인간의 역사는 멈춤이 없기 때문에 다음 단계로 인류가 추구할 것은 불멸과 행복이며 그 결과로 신성을 확보하는 일임을 간파하였다. 과학기술 발전을 통하여 1차적 목표인 생명 보존이라는 꿈을 어느 정도 성취한 인간에게 과학기술 개발의 2차적 목표가 생명 연장이라는 점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은 유전자 나노 로봇 기술로 인류가 특이점을 맞게 되면 기계 지능의 지배를 받아 수명 연장도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제창하고 있다. 그 자신 일상생활을 철저하게 관리하며 매일 수많은 영양보충제를 먹고, 매주 여러 가지 정맥주사를 맞으며 젊음을 유지하고 있다고 하였다. 미세노화제어전략(SENS) 프로그램을 제창한 오브리 드 그레이는 노화 단계마다 적절하게 중재하면 노화를 지연하여 수명 180세 시대에 이를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다양한 수명 한계 극복 노력은 개인 차원을 넘어서서 조직적으로 산업화 단계까지 추진되고 있다. 노화 미스터리가 풀리지 않고 허구성이 강조되었던 시절에는 소규모 벤처들만 이 분야에 뛰어들었지만 지금은 대기업들이 연구개발을 주도하며 수명 연장술의 산업화를 추구할 만큼 놀랄 만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구글 벤처스는 엄청난 재원을 생명 연장 프로젝트에 투입하였으며, 최근 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는 천문학적인 30억 달라를 노화 극복 프로젝트에 투자하여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Life 3.0시대로 접어들면서 인간에게 만능과 영생의 가능성이 기대되고 있다. 그러나 이런 가능성이 진정한 축복으로 남으려면 몇 가지 조건이 갖추어져야 한다. 장수 사회의 가장 중요한 전제조건은 행복한 삶의 연장이다. 행복하지 않은 삶의 연장은 불행만 증폭하기 때문이다. 행복은 장수의 필요조건이 아닐 수 없다. 행복을 위해서는 심리적 기제와 생물학적 기제가 함께 작동해야 한다. 심리적 기제는 상황이 나아질수록 기대가 부풀어지기 마련이며, 생물학적 기제는 유쾌한 감각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불쾌한 감각으로 대체되어 버리는 속성이 있다. 행복에 대한 기대는 점점 커지기 때문에 지속적인 만족이 어려울 수밖에 없으며, 감각은 순간의 기능이기 때문에 오래 유지될 수 없다. 인간의 감각기능은 행복을 느끼는 데 제한이 있을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신경세포는 모든 자극에 대하여 일정한 역치(域値)만 넘으면 동일한 진폭의 반응을 한다. 강도가 강하면 반응 빈도만 증가할 뿐이다. 어떤 자극이 오더라도 일정한 진폭의 반응을 한다는 의미는 인간에게 행복감을 느끼게 하는 기쁨의 자극이 굳이 강할 필요가 없음을 뜻한다. 또한 신경세포는 자극에 대한 반응 후 탈감작기(脫感作期)를 가지기 때문에 일정 기간 추가 자극에 반응하지 못한다. 하루하루 삶에서 소소한 행위와 자극에서 얼마든지 기쁨과 행복을 얻을 수 있음을 예시하고 있으며 자극이 지속적으로 되풀이되기를 요구하고 있다. 따라서 행복한 장수를 누리려면 날마다 생활 패턴과 습관을 적절하게 유지하는 일이 부각되는 이유다.

행복을 위한 기제는 진화하는 과정에서 선택되거나 적응되지 않았다. 진화의 흐름은 오로지 생존과 번식을 위해 선택과 적응을 해 왔을 뿐이며 행복을 위해서는 그러한 기회를 가지지 못했다. 행복이 뇌신경 호르몬과 같은 물질의 작용이며 그중 엔도르핀이 대표적 행복 분자로 규명되어 이와 유사한 기능을 가진 물질을 활용하면 인간의 행복을 증진할 수 있다고 주창되고 있다. 올더스 헉슬리가 저서 <멋진 신세계>에서 행복을 위하여 소마(soma)를 사용한다는 개념과 흡사한 방안이다. 그러나 행복분자 사용은 중독이라는 대가를 요구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모르핀 중독이 있다. 모르핀을 사용하여 고통을 잊을 수 있지만 지속적 사용은 결국 중독이라는 징벌을 초래한다. 중독성 없는 행복 물질을 찾으면 되겠지만 신경 기능은 행복의 감정을 오래 유지하지 못한다는 근원적 한계점 때문에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인류는 그동안 이루어 왔던 문화 발전에 대하여 적응 시간이 충분하여 큰 충격을 받지 않고 보다 더 나은 내일을 기약해왔다. 그러나 작금의 상황은 전연 다르다. 과학기술 발전 속도에 맞추어 인간이 대응하여 조처할 시간적 여유가 없어졌다. 과학기술은 효율과 편리를 극대화하기 위하여 발전하여 왔을 뿐 행복 자체를 목표로 삼은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 결과가 심각하다. 이제 인류는 탈인간사회(脫人間社會)의 나락으로 빠질 위기에 놓여 있다. 이런 상황을 예견한다면 인류가 인성을 포기하고 신성을 얻어야 할 필요가 있는가라는 명제에 갈등하지 않을 수 없다. 괴테는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속아 넘어가 젊음과 지식을 영혼과 맞바꾸려 한 파우스트 박사의 어리석음을 기술하였다. 오늘날 현대인이 직면한 갈등을 일찍이 그대로 표출하고 있다. 인간이 인성을 포기하는 거래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 스스로 결정하여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다.

인류가 불로장생을 추구하여 신과 동격이 되는 상태에 근접하는 일은 생명공학, 사이보그공학, 비유기체 합성 등이 어우러져 가까운 시일 내에 이루어 질 수 있다고 기대된다. 그러나 이에 필수적 조건인 행복 추구는 진화적인 측면이나 과학기술 측면에서 모두 한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심각하다. 인류가 호모 사피엔스적 상태에서 벗어나 호모 데우스적 상태로 변환하는 상황을 맞아서 인간이 지불해야 할 대가와 포기하여야 할 것을 검토하면서 행복을 보장하기 위한 사전 대비를 서둘러야 할 절박함이 있다.
 

박상철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노화고령사회연구소장 ▷국제백신연구소한국후원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