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수교 30주년 박승찬 스페셜 칼럼] 개방형 공급만 혁신으로 한중 경제협력 새로운 장 펼치자
2022-08-23 19:01
중국이라면 무조건 'No'가 아니라 'know 차이나'가 되어야 한다
한·중 수교 30주년이 지나가며 양국 관계는 미·중 갈등이라는 외생변수와 한·중 관계 악화라는 내생변수로 인해 더욱 소용돌이치며 한국의 국익을 위협하고 있다. 한국이 세계경제 10위와 세계무역 8위인 중견 선진 국가로 성장할 수 있었던 여러 요인 중 중국이라는 세계시장이 바로 우리 옆에 있었던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한·중 교역은 1992년 수교 당시 64억 달러 규모에서 2021년 3015억 달러를 넘어서며 약 47배 증가했고, 한국의 대중국 투자도 1992년 약 1억4000만 달러에서 2021년 66억7000만 달러로 약 48배 증가했다. 그러나 미·중 양국의 국익이 충돌하면서 우리 국익의 방향성이 흔들리고 있다. 특히 한·중 간 경제협력 구조와 시스템이 미·중 갈등의 외부 압력과 중국 산업의 급격한 고도화로 인해 한국 경제에 새로운 리스크로 부각되고 있다. 우리의 대중국 무역수지 흑자가 2018년을 기점으로 점차 하락하는 추세였지만 반도체 수출에 힘입어 애써 그 진실을 숨기고 있었다. 우리의 대표적인 수출 품목인 디스플레이도 2017년을 기점으로 글로벌 시장점유율은 중국이 34%로 한국(29%)을 추월해 세계 1위를 차지했고, 2021년에는 63%에 이르고 있다. 최근 들어 대중 무역적자가 몇 개월 지속되면서 이를 두고 일시적인 현상이냐 아니면 향후 이런 추세가 고착화될 것이냐에 대한 논쟁이 뜨겁다. 비록 지난 몇 개월 대중국 무역적자는 상반기 상하이 등 도시 봉쇄와 경제 하방에 따른 일시적인 현상일 수 있다. 그러나 향후 대중국 무역 규모는 반도체를 제외하고 지속적으로 하락하면서 이런 추세가 고착화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것이다. 이는 크게 2가지 관점에서 설명할 수 있다.
첫째, 글로벌 밸류체인(GVC) 구조 변화에 따른 중국 가공무역 비중이 점차 하락하면서 과거 노동집약형 제조업의 탈중국이 본격화된 것이다. 중국은 2013년을 기점으로 제조업에서 3차 서비스 산업 및 첨단 내재화 산업 방향으로 급격히 전환되고 있다. 게다가 미·중 무역전쟁으로 인한 관세 회피 목적으로 베트남 등 기타 동남아 지역으로 공장 이전이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자동차, 노트북 및 PC 등 전자, 패션의류 등 외자 기업의 탈중국뿐만 아니라 타이어, 휴대폰, 컴퓨터 등 중국 내자 기업들의 동남아 이전도 가속화되는 추세다. 중국은 코로나19와 미국의 대중국 공급망 차단에 대응해 과거 GVC에서 한국, 일본, 대만, 동남아시아 등 주변 지역에 공급망을 집중시키는 지역가치사슬(RVC·Regional Value Chain) 전략을 2018년부터 본격화하고 있다. 이는 향후 RCEP를 통해 중국을 중심으로 역내 교역망이 더욱 집중될 가능성이 높다. 중국은 대외적 환경 변화에 따른 위기관리 능력과 복원력을 RVC 공급망 확보 전략으로 전환하면서 중국 경제의 안정성과 고부가가치·친환경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 중심의 공급망 체제를 구축하고자 하는 것이다. 따라서 지난 30년간 한·중 경제협력 패턴과 방식으로는 지속적인 대중 수출 확대는 더욱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최종재 생산과 부품소재 납품 기업 간 관계가 단순히 한·중 양국을 넘어 아시아 주변 지역으로 전이되면서 생산기지의 공유와 공급 생태계가 매우 복잡하고 다양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 미국의 대중국 산업 및 공급망 붕괴를 위한 제재 및 압박이 더욱 고도화되면서 중국은 기술 자립 형태의 ‘차이나 밸류체인(CVC·China Value Chain)’ 구축을 본격화하고 있다. CVC는 이른바 ‘국내가치사슬(DVC·Domestic Value Chain)’을 의미한다. 중국이 모든 산업생태계의 A부터 Z까지를 독자적으로 구축해 자국 산업 및 기업을 육성한다는 전략인 것이다. 중국은 반도체를 제외한 대부분 산업 생산에서 세계 1위를 차지할 정도로 급격히 성장하고 있다. 경공업 제품뿐만 아니라 가전, 자동차, 선박, 각종 기계류, 철강 및 화학산업 등 다방면에 걸쳐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무역협회 자료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세계 수출시장 점유율 1위 품목 개수 순위에서 한국은 77개로 10위인 반면 중국은 1798개로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다. 한·중 간 교역은 과거 산업 간 분업→산업 내 분업→품목 내 분업 및 경쟁구조로 심화되면서 중국 내수시장 및 미국·일본·유럽 등 제3국 시장에서 상호 경쟁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다시 말해 한국의 대중 수출과 수입 품목의 유사성이 매우 심해 무역 거래에 있는 동종 산업에서 치열한 경쟁이 더욱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첫째, 공급사슬(supply chain)이 아니라 가치사슬(value chain) 측면에서 협력을 더욱 강화해 나가야 한다. 공급사슬은 어떻게 공급원가를 절감할 것인가 하는 관점에서 접근하는 협력 방식이다. 제조 공급상에서 소비자까지 제품의 생산 프로세스에 집중되어 협력하는 일종의 기업의 원가를 줄이는 운영·관리 방식이다. 한편 가치사슬은 어떻게 유효한 가치를 창출할 것인가 하는 관점에서 접근한다. 제품의 디자인, R&D, 판매 프로세스를 통해 소비자의 수요를 만족시켜 경쟁우위를 최적화하는 접근 방식이다. 가치사슬은 곧 산업사슬 형성의 기초가 된다. 산업사슬은 기존 산업에서 다른 산업으로 전이되면서 상호 융합이 이루어지는 미래 한·중 산업 공급망 협력의 토대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자동차 부품, 정밀기계, 무선통신기기 등 기존 범용적 전통 산업은 공급사슬 측면에서 양국은 부분적으로 탈동조화되고 파편화되면서 향후 협력보다 경쟁구조가 더욱 심화될 것이다. 한편 메타버스, 푸드테크, 스마트팩토리, 바이오, 헬스케어 등 미래 성장 산업은 가치사슬 측면에서 한·중 간 공급망 협력의 공간이 크고, 나아가 기타 서비스 산업으로 확대될 가능성도 매우 높다고 볼 수 있다.
둘째, 한·중 간 개방형 공급망 혁신을 통한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 향후 중국의 빅데이터,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등 4차 산업혁명 기술에 기반한 제품, 이른바 ‘메이드 인 차이넷’의 진격이 더욱 거세게 몰아칠 것이다. ‘차이넷(Chinet)’은 ‘차이나’와 ‘인터넷’의 합성어로 이제 빅테이터 기반의 인터넷에서 만들어진 중국산 제품이 본격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변화에 대응해 양국 간 개방형 공급망 협력을 통해 기술혁신의 효용성과 부가가치 창출을 최적화·극대화해 나가야 한다. 개방형 공급망은 양국의 소비자와 제조를 직접 연결시켜 주는 구조로 소비자의 니즈를 제조공장에 직접 전달해 상품을 개발하는 방식을 의미한다. 개방형 공급망 협력은 양국의 데이터, 인공지능, 로봇기술을 기반으로 다양한 소비재 품목을 넘어 맞춤형 전방위 제조 분야로 확대될 수 있다.
한국 경제는 단시일에 중국 경제와 탈동조화하기 어렵다. 따라서 중국 경제의 하방은 곧 한국 경제 성장률 하락을 의미한다. 이미 상호 경쟁 구도에 들어선 기존 산업의 패러다임을 넘어서는 양국이 공생할 수 있는 공급망 협력의 터닝 포인트를 모색해야 한다. 따라서 양국 간 개방형 공급망 협력은 혁신기술의 확장성과 사업 다각화 모색, 신성장동력 사업의 새로운 돌파구로서 역할을 할 수 있게 된다. 미래 한·중 경제협력은 기술자원과 데이터가 집중되고, 공동 자금을 기반으로 다양한 주체들이 공급망 플랫폼을 구상→창출→확산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물리적 대결이 아닌 화학적 융합 형태로 한·중 간 기술-자본-생산의 개방형 공급망 구축은 우리 국익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 중국이라면 무조건 ‘No’가 아니라 ‘know 차이나’가 되어야 한다. 지난 한·중 경제 관계 30주년의 경험과 변화를 직시해야 한다.
박승찬 필자 주요 이력
▷중국 칭화대 경영전략박사 ▷주중 한국대사관 경제통상전문관 ▷중소벤처기업지원센터 소장 ▷사단법인 중국경영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