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마트 의무휴업' 폐지에 57만표 몰렸지만··· 또다시 '안갯속'

2022-08-01 19:00

지난 10년간 대형마트 성장에 제동을 건 '월 2회 의무휴업' 규제 폐지 기대감이 온탕과 냉탕을 오가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국정에 반영할 국민제안 투표 결과, 대형마트 의무휴업 폐지가 국민 지지를 가장 많이 받은 것으로 나타나면서 폐지 가능성에 이목이 집중됐지만, 국민제안 투표에 어뷰징(중복 전송)이 발견돼 우수 제안 3건을 선정하지 않겠다고 밝히면서 분위기가 반전됐다. 그간 편의점과 온라인에 치이던 대형마트는 의무휴업 폐지 논의가 공론화되면서 10년 족쇄를 풀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없던 일'이 된 데 대해 낙담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그래픽=아주경제]

대형마트 의무휴업 '온라인 국민투표 1위' 57만명이 힘 실어줬지만...
1일 대통령실에 따르면 국민이 제안한 우수 안건 10건 가운데 '대형마트 의무휴업 폐지'가 총 57만7415개의 '좋아요'를 얻어 최종 1위를 기록했다. 대통령실은 당초 우수 국민제안 10건의 안건 중 최종 상위 3위에 오른 안건을 향후 국정에 반영한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이번 우수제안 투표 결과 10건에 대한 '좋아요' 수가 56만~57만여개로 비슷한 분포를 보인 데 대해 1일 대통령실은 투표에 어뷰징이 나타났다며 우수 국민제안 상위 3건을 발표하기 않기로 했다. 이로써 온라인 투표에서 1위를 차지한 대형마트 의무휴업 폐지 논의도 무효화된 셈이다. 

최근 대형마트 업계의 최대 관심사는 최근 수면 위로 떠오른 의무휴업 폐지였다. 특히 정부 부처가 최근 대형마트 규제 완화에 초점을 맞추는 흐름도 기대감을 더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달에 대형마트의 새벽배송을 막는 영업 제한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로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산업부)에 권고안을 전달한 상태다. 윤 대통령의 친(親)기업 행보에 보조를 맞추는 것이란 의견이 나온다. 

대형마트 의무휴업 폐지는 지난 10년간 업계의 숙원 과제로 꼽힌다. 2012년 시행된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에 '월 2회 의무휴업' 조항이 포함되면서 대형마트 업체들은 역성장세로 돌아서며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휴일 영업제한이 큰 타격을 줬다. 현재 대형마트들은 월 2회 문을 닫고 자정부터 오전 10시까지 영업을 할 수 없다. 영업제한 시간에는 온라인으로 주문받은 상품의 배송도 불가능하다. 

규제를 적용받은 이후 대형마트의 매출 그래프는 하향 곡선을 그렸다. 2011년 9% 성장률을 보였던 대형마트 매출은 2013년에 마이너스(-) 5%까지 떨어졌다. 지난해까지도 줄곧 역성장 흐름을 보였다. 

실적 부진이 이어지자 업체들은 오프라인 점포 규모를 줄이는 식으로 대응해 왔다. 매장 관리를 위해선 고정비가 필요한데, 이익이 나지 않자 점포 구조조정을 단행한 것이다. 장사가 안 되는 부실 매장을 폐점하거나, 매장 리뉴얼이나 온라인 대응을 위한 물류센터 건립을 목표로 실탄 마련에 따른 자산을 유동화하는 방식을 취했다. 

이에 따라 대형마트와 기업형슈퍼마켓(SSM) 점포 수는 급감했다. 산업부에 따르면 2018년 6월 410개였던 대형마트는 올해 6월까지 381개점만 운영 중이다. 4년 만에 29개 점포가 문을 닫는 것이다. 

SSM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SSM 점포 수는 2018년 6월 1225개점에서 올해 6월 1095점으로 줄어들었다. 폐점 규모는 130개 점포다. 전체의 10.6%에 해당된다. 

매장 수 감소는 고스란히 전체 시장의 축소로 이어졌다. 2013년 38조3000억원이던 대형마트 시장 규모는 지난해엔 34조6000억원으로 줄어들었다. 2013년에 비해 9.7% 감소한 수준이다.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소비자들이 장을 보고 있다. [사진=김다이 기자]

잃어버린 10년...'매출·영업익 증가' 기대감 高高
'잃어버린 10년'. 수치가 보여주듯, 대형마트들에게 의무휴업이 강화된 지난 10년은 '고난의 시기'였다. 대형마트가 규제에 발목이 잡히면서 지난해 편의점에 처음으로 매출 역전을 당했다. 지난해 오프라인 유통 매출에서 대형마트 3사(이마트·롯데마트·홈플러스)가 차지하는 비중은 15.7%로, 편의점 3사(GS25·CU·세븐일레븐) 비중 15.9%보다 낮았다. 

해당 기간 동안 전자상거래(e-commerce) 업체들도 승승장구했다. 지난해 온라인 시장 성장률은 15.7%로 오프라인 시장(7.5%)과 비교하면 두 배 가까이 됐다. 비대면 장 보기가 보편화되면서 식품군 매출이 23.8%나 늘었고 음식 배달, e-쿠폰 사용 등의 확산으로 서비스와 기타 매출이 37.8%로 급증했다. 같은 기간 대형마트와 SSM의 매출은 각각 2.3%, 9.1% 감소했다.

마트업계는 국민제안 투표 결과에 반색했다. 실적 반등의 계기를 마련할 전환점이 될 수 있다는 판단이다. 마트의 주말 매출은 400억~500억원 수준이다. 매월 휴일에 두 차례 영업을 쉬는 점을 감안하면 최대 연간 9600억원의 매출이 늘어나는 효과를 볼 것으로 전망된다. 

온라인 사업 확장에도 긍정적이다. 온라인 배송이 허용되면 매출 증가 폭은 더 늘어나게 된다. 특히 오프라인 점포를 물류센터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이점으로 꼽힌다. 대규모 물류센터를 건립하게 되면 초기에 막대한 투자비용이 들어가게 된다. 수익성이 좋지 못한 상황에서 대규모 투자는 기업에게 상당히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정소연 교보증권 연구원은 “의무휴업과 영업시간 제한이 폐지된다면 대형마트의 기존 물류창고를 온라인 주문용으로 활용할 수 있어 온라인 매출 확대와 비용절감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악화된 수익성도 개선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주영훈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이마트 할인점의 경우 의무휴업 폐지에 따른 매출 증가 효과는 하루 400억원 수준이며, 연간으로는 총 9600억원 규모"라면서 "영업이익의 경우 1440억원(영업이익률 15% 가정) 증가가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의무휴업 놓고 갈등 재점화 양상...법 개정까지 난항 예상
대형마트 의무휴업 폐지까지는 넘어야 할 산도 많다. 현재 중소상공인과 마트 노동자들이 폐지를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 점도 걸림돌이다.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는 지난 21일 성명에서 “대형마트 영업시간 제한과 의무휴업은 2018년 대형마트 7곳이 낸 헌법소원에서 합헌으로 결정됐다”며 “새 정부는 국민투표로 골목상권 최후의 보호막을 제거하고 재벌 대기업의 숙원을 현실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마트 노조 측도 의무휴업이 폐지될 경우 월 2회 확실한 휴식이 사라지는 등 근로여건이 악화될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만약 이러한 반대 여론이 국민 대다수의 지지를 얻는다면 윤 대통령이 밀어붙일 명분을 잃게 된다. 그렇게 될 경우 논의 자체가 흐지부지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또한 행정부가 강하게 추진한다고 해서 의무휴업이 폐지되는 것은 아니다. 우선 법 개정이 선행돼야 한다. 현재 대형마트 영업 규제는 유통산업발전법을 근거로 하고 있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을 설득하는 것도 윤 정부의 몫이다. 민주당이 현재 다수 당인 만큼 윤 정부는 반드시 야당의 동의를 얻어 법 개정을 추진해야 한다. 다만 여당 시절 민주당이 대형마트 의무휴업을 추진한 만큼 정치적 이득을 따질 때 법 개정에 동의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시각이 우세하다. 

여기에 이번에 국민제안 투표까지 무효화되면서 대형마트의 의무휴업 폐지 논의 자체가 다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지 않을까라는 우려도 나온다. 대형마트업계 관계자는 "대형마트 의무휴업 폐지가 새 정부 들어 공론화되면서 규제 완화에 대한 기대감이 있었던 게 사실"이라며 "대통령실이 투표 결과를 신뢰하지 않는다고 하니 상당히 아쉽다. 현재 공정위가 마트의 새벽배송 규제 완화를 추진 중인데, 이는 없던 일로 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