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 칼럼] 경제불확실성 해결, 민관 머리 맞대야

2022-08-01 06:00

[홍준표 수석연구위원] 


올해 필자는 기존에 하던 연구와는 조금 다른, 국제개발협력 관련 ODA(공적개발원조) 연구 사업을 하고 있다. 원조 수혜국이었던 한국이 개발도상국에 원조를 제공하는 나라로 전환되어 활동하고 있는데, 필자가 근무하는 현대경제연구원도 다양한 형태의 공적개발원조사업 관련 연구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필자가 참여하는 ODA 연구 사업 주제는 라오스(Lao PDR) 수출 기업 활성화를 위해 한국의 수출 관련 정책을 전수하는 지식공유프로그램(KSP·Knowledge Sharing Program)이다. 지식공유프로그램 중 해당국 공무원의 한국 초청연수 프로그램이 있다. 라오스 상공부 공무원을 한국으로 초청하여 수출 관련 기관을 방문하고 강의와 설명회를 개최하면서 예상하지 못한 반응을 목격했다. 라오스 상공부 공무원들이 가장 관심을 가졌던 한국의 수출 활성화 정책이 1960~1970년대 한국 정부가 추진했던 ‘수출진흥확대회의’였다는 점이다.

수출진흥확대회의는 1960년대 초반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 매월 개최된 정기 회의였다. 어떻게 보면 정부 주도의 수출제일정책이 현실화하는 시작점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 회의는 상공부와 외교부 주관하에 수출과 연관성이 있는 관련 부처 장관들은 물론 민간 부문 관련 협회장까지 모여 수출 동향을 점검하고 현안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이 회의가 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 결정적인 힘을 갖게 된 계기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65년부터 참석하여 회의를 직접 주관하면서였다.

당시 회의 진행은 이랬다고 한다. 먼저 상공부와 외무부가 주관이 되어 지난달 수출 실적을 보고한 후 건의와 토론이 이어졌다고 한다. 가장 먼저 상공부가 수출 실적을 보고하는데 미국, 유럽, 일본 등 지역별로도 보고하고, 섬유, 수산물 등 품목별로도 보고했다. 그러면 그 이전 회의에서 세웠던 수출 계획과 비교하여 목표를 달성한 품목과 목표에 미달한 품목이 가려졌고, 목표 미달 품목에 대해서는 왜 수출 실적이 좋지 않았는지에 대해 논의가 있었다. 이 과정에서 민간에서 제기하는 수출 시장이나 해당 품목과 관련해 업계에서 파악한 현실적인 문제점들이 논의되기도 했다고 한다.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난상토론이 이뤄졌을지는 의문이지만 사전에 회의 내용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민간의 목소리가 반영되는 창구 역할은 하였을 것이다.

예를 들어 수산물 수출 실적이 목표치에 미달했을 때 일본으로 가는 수산물 수출에 문제가 생겼는지, 미국으로 가는 수산물에 문제가 생겼는지 점검하였다. 만약 일본으로 가는 수산물 수출 실적이 나빴다면 해조류 수출이 문제였는지, 조개류 수출에 문제가 생겼는지 점검하였다. 그렇게 정부와 민간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하나하나 세밀하게 점검하다 보니 실제적인 문제점이 발견되었고 해결 방법도 모색할 수 있었다. 그렇게 제시된 해결 방법을 적용하여 수산물 수출을 계획된 목표만큼 달성할 수 있는지 그 회의 자리에서 정하고 마지막으로 대통령의 마무리 발언으로 회의를 마쳤다고 한다. 이런 과정을 매달 개최하다 보니 정책을 담당하는 공무원으로서는 어떻게 해서든지 목표 달성을 위해 노력할 수밖에 없었고, 그 과정에서 현장에 압력을 가했을 수는 있었겠지만 대통령이 참석하는 월례수출진흥회의가 진행되는 오랜 기간 동안 한국의 수출 목표가 미달되었던 적은 1차 오일쇼크가 있었던 1970년대 중반 한 차례에 불과했다.

보고서에서 몇 줄 정도로만 소개된 월례수출진흥회의 내용을 이렇게까지 자세하게 들을 수 있었던 계기는 라오스 공무원이 강사에게 계속해서 질문했기 때문이다. 그 회의 주요 참석자는 누구인가,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었는가, 최고 결정권자는 누구인가(장관인가, 대통령인가), 계획했던 시점에도 목표 달성을 이루지 못했을 때에는 어떤 일이 발생하는가 등 아주 상세한 질문을 했다.

그들이 보기에는 한국의 놀라운 경제성장을 이끌었던 수출 활성화 정책, 그중에서도 공무원이 주도적으로 움직여 바로 실행에 옮길 수 있고, 잘 작동되기만 하면 효과가 금방 나타날 것 같았던 것이 대통령이 주재한 월례수출진흥회의였다. 신선했다. 수출 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정책, 예를 들어 수출정책금융 확대, 조세 지원, 수출지원기관 설립(무역협회, 수출입은행 등), 수출보조금 제도 등과 같은 자금 지원이나 관련 기관 설립에 대해 관심을 보일 것으로 예상했지만 그것이 아니었다. 필자가 생각했던 자금 지원 정책이나 수출 지원 기관 설립보다 모든 정부 부처와 민간이 머리를 맞대고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자리가 모든 정책의 시작점이었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뜬금없이 1970년대 중화학공업 육성이 중심이 되고 온 나라가 수출에 혈안이 되었던 시기를 소환한 이유는 무엇일까. 당시 밀어붙이기식 정책 추진이 시간이 갈수록 부작용을 가져왔다는 점을 부인하지는 않지만 수출 증대를 위한 시작점의 역할은 충실히 수행하였다. 그 회의가 잘 작동했던 이유는 정부 부처 회의에 수출 관련 기관은 물론 민간 부문이 참석하여 목소리를 충분히 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대한무역협회, 대한상공회의소 등부터 시작하여 이후에는 산업별 협회 회장이나 일반 기업체 사장 등까지 참석자 범위가 확대되었다. 그 밖에도 학계나 정치인 등도 회의에 참석하였을 정도로 수출 육성을 위해 다양한 아이디어를 모으기 위해 노력하였다.

한국 경제의 앞날이 불투명하다. 경기 침체 우려가 짙어지는 가운데 전통적으로 강한 중화학공업 부문에서 환경보호를 위해 공장 가동에 제약이 가해지기도 하고, 중국 기술력이 한국을 제압하는 등 한국 경제 앞에 강한 풍랑이 일고 있다. 예전과 같이 국가 지도자의 지침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시대는 아니지만 모두가 같이 한국 경제 앞날에 대해 진지하게 토의하고 그렇게 결정된 미래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힘을 같이 모아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

(위 내용은 현대경제연구원의 공식적인 견해가 아닌 필자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홍준표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농경제학과 ▷미국 루이지애나주립대 농경제학 박사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동향분석팀장 ▷고용노동부 고령화정책TF ▷한국장학재단 리스크관리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