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칼럼] '법대로'가 아니라 정치가 필요한 때
2022-07-25 06:00
김광중 법무법인 한결 변호사
법과 정치는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치열한 정치의 결과물이 법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법은 그 법을 만든 공동체를 통치하는 수단이 된다. 정치 활동은 그렇게 만들어진 법의 테두리 내에서 움직여야 한다. 사회가 끊임없이 변하므로 법은 어느 순간 한계에 도달한다. 다시 정치가 필요하게 된다. 정치의 끝은 법으로 이어지고, 법의 끝은 정치로 이어진다.
그러나 법이 필요한 순간과 정치가 필요한 순간은 구분되어야 한다. 법이 필요한 순간에 정치가 들어오면 비극으로 이어진다. 법관의 재판에 법이 아니라 정치가 들어오면, 법원의 판결이 정치적인 이유로 좌우된다면 법은 규범력을 상실하게 된다. 법원이 정치를 한 비극적 결말을 우리는 몇 해 전 보았다. 검찰은 정치적으로 수사하고 기소한다는 의심을 받았다. 검찰이 법의 잣대가 아니라 정치의 잣대를 들이댈 때의 비극도 오래전부터 보았다.
정치가 필요한 순간을 법이 지배하는 것도 비극으로 이어진다. 법은 변화하는 세상을 쫓아가기 버겁다. 정치가 필요한 순간에 법의 잣대만 들이대면 세상은 한 치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하지만 정치가 필요한 순간인지, 법의 잣대를 들이댈 순간인지 분간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그래서 법의 순간인지, 정치의 순간인지 깊은 고심이 필요하다. 정치가 필요한 갈등에 섣불리 법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새로운 갈등을 낳을 뿐이다.
임금 인상 등을 요구하며 51일째 이어지던 대우조선해양 하청 노동자 파업이 마무리됐다. 이들의 파업은 윤석열 대통령에게 법의 순간과 정치의 순간을 구분해야 할 첫 시험무대였던 것으로 보인다. 파업으로 인한 대우조선의 피해와 국가경제의 영향을 고려하면 당장이라도 법의 잣대를 들이대어 공권력을 투입하고 단죄해야 할 것처럼 보인다. 이들의 파업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은 익숙한 ‘법대로’를 외쳤다. 불법파업으로 규정하고 공권력 투입 등 강경 대응을 예고했다. 그러나 파업의 계기를 놓고 보면 정부가 불법파업으로 규정하고 공권력을 투입하는 ‘법대로’의 해결이 맞는 답이었는지 의문이 든다. 그 파업의 원인이 우리 조선산업의 구조적인 문제에서 기인하기 때문이다.
조선 하청 노동자들이 받는 임금은 숙련공들조차 최저임금을 간신히 넘긴 수준이었다. 그래서 노동자들의 주된 요구사항은 2016년 이후 삭감된 임금 30%데 대한 ‘회복’이었다. 여기에는 원청이 하청 업체에 지급하는 돈이 실비용 수준에 그치는 구조적인 문제가 깔려 있다. 국가 기간산업임에도 그 산업 생태계가 매우 취약한 상태였음이 이번 일을 계기로 널리 알려졌다. 법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 아니라 정치가 필요한 순간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협상 타결 내용을 보면 문제의 구조적인 원인은 해결되지 않았고 잠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을 뿐이다. 정부가 밝힌 대응은 조선산업을 정상화하기 위한 노력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갈등을 해결하는 정치의 모습보다는 갈등을 숨기는 법집행자의 모습만 보인다. 국민의힘 대변인이 “이번 갈등의 원인이었던 원청·하청 업체 간 문제 등 조선업의 구조적인 과제에 더욱 주목하고 해결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밝힌 것과도 대비된다.
법의 순간과 정치의 순간이 교차하는 갈등은 앞으로도 계속될 수밖에 없다. 법의 순간이 필요한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법대로’가 편하거나 익숙하기 때문이어서는 안 된다. 우리 국민이 윤석열 대통령을 선택한 것은 검찰총장의 모습을 기대했기 때문은 아니었을 것이다. 갈등의 국면마다 ‘법대로’만을 외치면 우리 사회는 5년 동안 한 치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지 모른다. 어느 순간 법은 멈추고 정치에 자리를 내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