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연장 확충 공약 어디로...건물주·지자체 무관심에 거리로 내몰린 흡연자들

2022-07-04 13:38
흡연구역 부족으로 비금연구역 길거리 흡연 多
금연 장려 기조·여론으로 흡연구역 확충 어려워

지난달 29일 오후 4시께 서울 종로구 중학동 광화문시민열린마당 인근 인도에서 비가 오는 와중에도 직장인 수십 명이 모여 흡연을 하고 있다. [사진=최태원 기자]

# 1. 광화문 인근으로 출퇴근하는 직장인 A씨(37)는 흡연으로 인해 매일같이 행인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고 있다. A씨 회사 근처에 흡연구역이나 흡연장이 따로 마련돼 있지 않아 회사 인근 인도에서 흡연을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A씨는 “알아보니 해당 장소는 금연구역으로 지정돼 있지 않았다. 그래서 인근 직장인 수십 명이 매일 이곳에서 담배를 피운다”며 “행인들이 불편해하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지만 다른 선택지가 없다. 근무 중에 왕복 30분 거리인 흡연장을 다녀올 수도 없는 노릇”이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 2. 종로구에 직장을 둔 직장인 B씨(29)는 점심시간마다 인상을 찌푸리게 된다. 그가 주로 이용하는 회사 인근 식당으로 가는 길에 흡연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흡연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B씨는 “상식적으로 사람들이 다니는 인도에서 수십 명이 모여 담배를 피우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다”며 “담배 냄새를 맡지 않기 위해 멀리 돌아가거나 차도 쪽으로 숨을 참으며 빠르게 지나친다. 제발 단속이라도 해줬으면 하는 심정”이라고 말했다.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 조치와 함께 외부 활동이 많아지며 흡연구역 확충 필요성이 다시 대두되고 있다. 하지만 건물 내 흡연실 설치에 건물주들이 부정적인 데다 지방자치단체들도 혐오시설로 여기면서 흡연자들은 거리로 내몰리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대선 과정에서 흡연부스 설치 등을 공약으로 내건 바 있어 흡연구역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과 불만 문제에 대한 실마리를 풀 수 있을지 주목된다.

4일 아주경제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 3대 오피스 권역 중 한 곳인 종로구 광화문 일대는 부족한 흡연구역으로 인해 흡연자들이 길거리로 내몰리며 흡연자와 비흡연자 모두 불편을 겪고 있다. 최근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와 함께 재택근무가 감소하면서 오피스 권역 길거리 흡연도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종로구가 지난달 담배꽁초 무단투기 과태료를 부과한 건수는 1952건에 달했다. 이는 전월 1746건보다 11%가량 증가한 수치다.

주변 행인들 원성은 커져 가지만 흡연자들은 인구 밀집도에 비해 드문 흡연구역으로 인해 길거리 흡연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실제 A씨가 근무하는 광화문역 7번 출구 인근 한 빌딩 사무실에서 가장 가까운 흡연장까지 거리는 약 600m로 도보로만 왕복 20여 분 걸린다. 엘리베이터를 오르내리는 시간까지 고려했을 때 이동 시간만 30분에 육박하는 셈이다. A씨는 “흡연하는 직원들은 사실상 건물 인근에서 행인들 눈치를 보며 담배를 피울 수밖에 없는 환경”이라고 설명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기존에 있던 흡연장들도 감소 추세다. 지난해 하반기 서울 종로구 새문안로2길 인근 S타워와 오피시아빌딩이 운영하던 흡연장이 폐쇄됐다. 종로구청 인근 KT광화문빌딩 흡연장도 건물 리모델링과 함께 폐쇄됐다.
 
이에 종로구는 빌딩들에 흡연장 설치를 여러 차례 권고하고 있지만 강제성이 없어 여의치 않다고 전한다. ‘국민건강증진법’ 제9조 4항에 따르면 금연구역으로 지정되는 공중 이용 시설 소유자·점유자 또는 관리자 등은 흡연실을 자율적으로 설치할 수 있는데, 폐쇄 역시 자율적으로 가능하다.
 
종로구청 관계자는 “우리는 무조건 흡연실을 만들라고 한다. 다만 관리자들은 흡연자들이 모여들어 민원이 발생하고 미관 훼손이 우려된다는 이유 등으로 흡연실 설치에 호의적이지 않다”며 “LG광화문 빌딩만 인근에 유일하게 흡연장을 만들어 운영 중이다. 다른 곳들은 만들어 달라고 해도 잘 들어주지 않는다”고 전했다

금연을 유도하는 방향으로 설계된 정부 부처 기조와 관련법 때문에 적극적으로 흡연구역을 늘릴 수 없다는 게 지자체 전반적인 분위기다. 국민건강증진법에 따르면 '국가 및 지자체는 국민에게 담배의 직접 흡연 또는 간접 흡연이 국민 건강에 해롭다는 것을 교육·홍보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서울시 역시 보건복지부와 세계보건기구(WHO) 금연정책과 상반되는 흡연구역 설치는 원칙적으로 지양하고 있다. 

종로구청 관계자는 “보건복지부 등 상급기관에서 금연 정책에 따라 흡연부스나 흡연구역 설치를 지양하고 있다”며 “더불어 시민들도 흡연구역을 혐오시설처럼 여겨 민원을 제기하는 등 지자체에서 흡연구역을 설치하기 부담스러운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실제 종로구에 따르면 종로구가 직접 설치한 흡연장은 관내에 전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상황에 피해는 오롯이 시민들이 입고 있다. 광화문 일대에서 흡연자들이 가장 많이 찾는 장소 중 한 곳인 종로구 중학동 광화문시민열린마당 인근 인도와 청진동 삼공빌딩 인근 인도 등에서는 흡연자 수십 명이 담배를 피우고 행인들은 코를 막고 지나가는 모습이 연출된다.
 
서울 도심 흡연을 둘러싼 이 같은 풍경은 미국·일본 등이 공공장소를 금연구역으로 지정하되 곳곳에 흡연 공간을 설치하는 ‘분리형 금연정책’을 시행하는 것과 대비된다. ‘분리형 금연정책’은 공공장소에 흡연구역을 만드는 것이 간접 흡연을 막는 데 효과적이라는 분석에 따른 것이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국민 건강 증진 취지는 이해하지만 문제 해결을 위해 현실적으로 이해관계를 절충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김준모 건국대 행정학과 교수는 “흡연은 사실상 기호품이기 때문에 건강에 좋지 않은 것은 알지만 금연을 강제할 수는 없다. 그렇기에 정부 부처가 추구하는 국민 건강 증진 취지는 이해하지만 현실적으로 절충하는 것이 맞는다”며 “흡연자를 완전히 규제하는 것은 배기가스 기준에 따라 차량을 퇴출하는 것과는 완전히 논리가 다르다. 대도시엔 인구가 밀집해 생활하기 때문에 이해관계를 절충해 공간을 조닝(구분)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원래 확충해 나갔어야 했고, 윤 대통령 대선 공약으로도 이미 언급됐기 때문에 복지부가 다소 양보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앞서 윤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 흡연부스 설치 등을 공약으로 내걸며 흡연자와 비흡연자 간 마찰 해결 필요성을 역설한 바 있다. 지난 1월 '석열씨의 심쿵약속' 23번째 공약으로 ‘비흡연자와 흡연자 간 근본적 공간 분리를 통해 담배 연기로 인한 사회 갈등을 줄이겠다’고 밝힌 것이다. 공약은 담뱃세 일부를 활용해 흡연부스 등 구역을 추가하고, 국민건강진흥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흡연구역에 대한 기준을 정립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