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주택의 미래] 사라지는 충정아파트…고밀도 개발 기다리는 세운상가

2022-06-24 15:00
보존·재생에서 개발·공급 기조로 변화…사라지는 낡은 아파트들

 

철거가 결정된 '충정아파트' 전경. [사진=연합뉴스]

낡은 아파트들의 미래가 최근 몇 년 사이 결정되고 있다. 보존과 재생을 중시했던 서울시의 기조가 개발과 공급 위주로 바뀌면서 낡은 아파트들은 역사 속으로 사라질 전망이다.
 
충정아파트 이젠 '안녕'…안전문제로 철거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아파트인 서울 서대문구 '충정아파트'의 철거가 최근 결정됐다. 녹색으로 칠해진 이 아파트는 1937년생으로 올해 나이 85세다. 15년만 더 있었으면 한국 최초 100년 아파트로도 기록될 수 있었다.
 
서대문구 충정로 3가에 있는 충정아파트는 1937년(서울시 건축물대장 기준, 1932년에 지어졌다는 기록도 있음)에 준공된 우리나라 최초 아파트다. 일제강점기에 주택난을 해소하기 위해 일본 건축가 도요타 다네오가 설계했고 이전엔 풍전아파트, 유림아파트로도 불렸다. 한국전쟁 당시에는 UN군의 임시숙소로 쓰이다가, 이후 일반인이 호텔로 운영하기도 했다.
 
앞서 인기를 끌었던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스위트홈'의 낡고 오래된 아파트 '그린홈'의 모티브가 되기도 한 아파트다.
 
이 아파트는 고(故) 박원순 전 시장 재임 시절 지역 유산으로 보호 가치가 있다는 판단에 따라 보존하기로 했었다. 다만 몇 년 전부터 생활하수가 건물 내벽 사이로 스며들어 붕괴 위험이 있다는 전문가의 진단과 주민들의 민원이 커지자 결국 철거하기로 했다.
 
정비사업 추진 대상이 되기도 했다. 2008년 충정아파트는 도시환경정비구역으로 지정돼 재개발이 계획됐다. 다만 복잡한 재산권에 발목이 잡혔다. 아파트가 존재하는 수십 년의 기간 동안 불법 증축이 이뤄져 4층에서 5층으로 가구 수가 늘었으며 공용공간이 무단 점유되기도 해 재산권 분쟁이 불거졌다.
 
이렇게 낡은 아파트는 정비사업 기대감 등에 힘입어 지난해까지 거래가 됐다. 충정아파트 전용면적 90.91㎡(1층)는 지난해 9월 6억원에 거래됐다. 철거가 결정된 현재 매매나 전세매물은 없고 전용 28㎡(3층)에서 보증금 500만원에 30만원으로 세입자를 찾고 있다.
 
충정아파트 자리에는 아파트의 역사성을 담은 공개공지가 조성될 전망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주변 지역과 함께 낙후된 도시경관을 실질적으로 개선하면서, 충정로·서소문로 간의 연계를 통해 원활한 차량 통행 및 보행 연속성을 확보했다"며 "지역 활성화에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세훈 울린 낡은 세운상가…결국 개발된다

세운상가 전경 [사진=신동근 기자 sdk6425@ajunews.com]

세운상가는 이름은 '상가'지만 가장 오래된 주상복합이다. 세운상가는 1967년부터 1972년까지 세운·현대·청계·대림·삼풍·풍전(호텔)·신성·진양상가가 차례로 건립된 총길이 약 1km에 달하는 상가의 집합체로 건물 위층에는 주거지로 구성됐다.
 
준공 이후 1970~1980년대에는 가전제품 전문으로, 1980~1990년대에는 컴퓨터, 전자부품 등에 특화된 상가로 이름을 날렸다. 2000년대 이후로는 인터넷과 디지털, 모바일 기술 등의 발달로 유통구조가 변화해 세운상가를 찾는 사람은 점차 줄었다. 이에 오세훈 시장은 재개발을 추진했고 박원순 전 시장은 공중보행로 추진 등으로 대표되는 보존과 재생사업을 진행했다.
 
현재 서울시 계획에 따르면 세운상가는 오랜 기간에 거쳐 결국 재개발될 예정이다. 지난해 11월 오세훈 서울시장은 서울시의회에서 열린 제303회 정례회에서 “세운상가를 보며 분노의 눈물을 흘렸다”며 “반드시 계획을 새로 세울 것”이라고 밝혔다.
 
이 계획은 올해 4월 '녹지생태도심 재창조 전략' 발표를 통해 공개됐다. 앞으로 서울시는 세운지구 일대를 빌딩 숲과 나무숲이 공존하는 지역으로 조성하기 위해 노후 저층 건물 철거 후 공원화를 하고 주변엔 용적률과 높이 제한 규제를 완화해 고밀도 복합 개발을 한다.
 
종묘에서 퇴계로까지 이어지는 44만㎡를 재개발해 마포구 연남동 '연트럴파크(3만4200㎡)'의 4배가 넘는 약 14만㎡의 공원녹지를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이 계획에 포함된 세운지구는 오 시장이 과거 재임 시절인 2006년 재정비촉진지구로 지정했던 곳이다. 오 시장은 2009년에 세운상가를 철거하고 주변 8개 구역을 통합 개발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박 전 시장이 취임한 이후 2014년 세운지구 개발계획을 취소하고, 도시재생 중심으로 재정비촉진계획을 변경했다. 그러면서 세운상가를 연결하는 공중보행로 사업도 진행했다. 공중보행로 건설 사업은 세운상가부터 진양상가까지 상가건물을 보행로로 연결하는 사업으로 사업비 규모만 1000억원에 달했다.
 
앞으로 사업은 최소 10년 이상 장기적으로 추진될 것으로 전망된다. 상가주인들의 반발이 상당할 것으로 예상되고, 해당 상가의 사업성 또한 낮은 편이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세운상가 등 건물은 건설 당시 부지에 꽉 차게 지어져 용적률, 건폐율 등이 현재 법 기준을 상당히 넘은 상태"라며 "보상 등에서도 이견이 발생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오 시장도 이런 점을 언급하며 사업이 최소 10년은 걸릴 것으로 전망했다. 오 시장은 지난 4월 녹지생태도심 재창조 전략 발표 당시 "이 계획을 실현하려면 1000억원 가까이 들어간 공중보행로가 대못이 될 수밖에 없고 대못을 뽑아야 한다"며 "다행인 것은 바로 허물지 않아도 된다. 세운상가를 허물려면 블록별 통째로 매입이 완료돼야 하고, 영업하는 임차인과 소비자들이 퇴거해야 허물 수 있는데 그런 것들이 준비되려면 적어도 10년은 걸릴 것이다. 그러면 10년 정도는 공중보행로를 쓰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네이버부동산에 따르면 세운지구에 있는 낙원상가아파트는 이날 기준 매물이 3건 올라와 있다. 각각 전용 68㎡는 6억2000만원에 73㎡는 6억9000만원에, 110㎡는 7억5000만원이다.
 
연예인 많이 살던 동대문아파트

동대문아파트 전경 [사진=신동근 기자]

동대문아파트는 서울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아파트다. 1965년 준공됐으며 131가구 규모로 단지가 정사각형 모양으로 설계됐다. 단지 가운데에 정원이 있는 '중정형 아파트'로 한때 배우 백일섭, 코미디언 이주일 등 연예인들이 많이 살아 연예인아파트로 불리기도 했다. 지하철 1호선과 6호선을 갈아탈 수 있는 동묘앞역 7번 출구가 가깝다.
 
2013년 서울시 속 미래유산 지정을 검토했으나 결국 등재되지는 않았다. 다만 2015년 보수공사가 진행되며 외관이 깔끔하고 정갈한 모습으로 바뀌었다. 세븐데이즈(2007년), 숨바꼭질(2013년) 등 여러 영화의 촬영장소로 쓰였다.
 
이 아파트는 기부채납될 예정이다. 해당 아파트가 위치한 창신4-1구역은 꾸준히 재개발을 추진하고 있는데, 추진위원회는 동대문아파트는 서울시에 기부채납할 예정으로, 추후엔 문화시설로 탈바꿈될 것으로 보인다.
 
국토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2020년 10월 3층 물건이 4억1300만원에 팔린 이후 거래는 없는 상태다. 현재는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50만원인 월세 매물만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