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억원의 가치] 평당 or 한 채당 1억원…'뭐든 괜찮아'

2022-06-17 17:04
정부 1주택자 보유세 완화 움직임…"'똘똘한 한 채' 수요 심화"
공시가 1억원 이하 아파트 거래↑…"실수요자 피해 우려 고조"

 서울 서초구 반포동 아크로리버파크 전경 [사진=연합뉴스]

서울 강남 한쪽에서는 아파트가 3.3㎡(평)당 1억원이 훌쩍 넘는 가격에 팔리고 수도권 외곽에서는 공시가 1억원 미만 아파트가 속속 거래되고 있다. 정부 규제와 정책이 만든 극과 극의 투자 방식이다.
 
똘똘한 한 채 우대에 강남 아파트들 3.3㎡당 1억원대 돌파
강남 아파트가 3.3㎡당 1억원에 팔리는 것은 이제는 흔한 일이 됐다. 17일 KB부동산 자료에 따르면 3.3㎡당 시세가 가장 비싼 단지는 서초구 반포동 아크로리버파크로 3.3㎡당 1억1801만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어 △현대 5차 아파트 △현대(1, 2차) △신반포 2차 등 재건축 단지가 뒤를 이었으며 반포동의 래미안퍼스티지와 반포자이, 대치동 래미안대치 등 단지도 시세가 1억원에 육박했다.
 
해당 자료에 따르면 12개 단지의 3.3㎡당 시세가 1억원을 넘었으며 9500만원 이상으로 1억원에 육박하는 단지도 27개였다. 단지 대부분이 서울 강남에 위치했다.
 
최근 들어 금리 인상과 가격 피로감에 따른 관망세가 이어지고는 있지만 강남 아파트 상당수가 3.3㎡당 1억원이 넘는 가격에 거래되고 있는 상황이다. 신고가도 여전히 나오고 있다. 이달 2일에는 압구정 현대 1, 2차 아파트 전용 131.49㎡가 47억6500만원에 거래되며 신고가 기록했다.
 
3.3㎡당 1억원이 넘는 고가주택이 거래되는 이유는 잇따른 주택 규제로 ‘똘똘한 한 채’가 주목받고 있는 데다, 미래가치가 높은 한정된 물량을 소유하고자 하는 고소득층 수요가 커지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강남지역 단지들에는 재건축에 대한 기대감도 반영된 상태다.
 
업계 관계자는 “강남 등에 위치한 고가 아파트는 수요 대비 공급 물량이 적어 희소성이 높고, 앞서 매매가 상승세도 중저가 아파트보다 높았다”며 “최근 분양 시장에서도 좋은 성적을 기록하고 있고, 특히 올해는 새 정부가 보유세 부담을 2020년 수준으로 낮추기로 했다”고 전했다.
 
실제로 정부는 지난 16일 1가구 1주택자의 보유세 부담을 줄이기 위해 공정시장가액 비율을 대폭 하향 조정했다.
 
정부가 발표한 '새 정부 경제정책방향'에 따르면 기획재정부는 올해 한시적으로 1가구 1주택자 대상 특별공제 3억원을 도입한다. 비과세 기준을 11억원에서 14억원으로 올린 것으로 공시가격 14억원짜리 주택 한 채를 보유한 사람은 올해 종부세 부담이 사라지게 된다. 아울러 정부는 종부세 부과 시 공정시장가액비율을 100%에서 60%로 하향 조정하기로 했다.
 
이 발표에 따라서 세액 변동 시뮬레이션을 해보면 KB부동산 3.3㎡ 시세 1위 아크로리버파크 전용 84㎡를 보유한 1주택자의 경우에 보유세가 1240만원 정도 나올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대비 551만원이 감소했다. 근처 래미안퍼스티지 같은 면적대의 올해 보유세도 1249만원으로 나타났는데 1년 전에 비해 632만원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해당 시뮬레이션 자료를 제공한 우병탁 신한은행 WM컨설팅센터 부동산팀장은 “최근 시장이 안정화되고 있기 때문에 시장에 극적인 가격 상승 효과를 미치진 않겠다”면서도 “1주택자의 보유세 부담이 줄며 앞으로도 똘똘한 한 채에 대한 수요가 심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경기 아파트 거래량 1·2위 모두 공도읍
한쪽에서는 3.3㎡당 1억원이 넘는 고가주택이 팔리는 가운데 경기도에서는 공시가격 1억원 이하 아파트 거래가 늘고 있다. 이날 부동산 빅데이터 업체 아실에 따르면, 올해 경기도에서 매매 거래량 상위 5개 아파트 중 1위와 2위가 안성시 공도읍에서 나왔다.
 
공도읍의 주은청설아파트(2295가구)는 올해(1월 1일~6월 17일, 신고일 기준) 162건의 매매거래가 체결됐다. 이 단지의 1월 거래량은 17건에 불과했으나 지난 4월에는 50건 이상 거래되며 거래가 3배 이상 급증했다. 인근 주은풍림(2615가구)이 올해 140건 거래되며 2위를 차지했으며 8위와 11위도 각각 공도읍의 아파트인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단지들은 공시가 1억원 이하 아파트라는 공통점이 있다. 주은청설의 경우 전용 57.02~79.34㎡ 면적대로 구성돼 있는데 공시가가 1억원이 넘는 전용 79.34㎡는 한 건도 거래되지 않았다. 이는 주은풍림도 마찬가지다.
 
앞서 정부는 2020년 '7·10 대책'을 통해 법인과 다주택자의 주택 취득세율을 최고 12%로 높였다. 그러나 서민 주거안정을 위해 공시가격 1억원 이하 주택은 해당 세율이 적용되지 않도록 했고, 공시가 1억원 이하 주택은 보유 주택 수와 관계없이 취득세가 기본세율 1.1%로 적용됐다.
 
이런 상황에서 공시가 1억원 이하 주택에는 다주택자·법인 등의 매수세가 몰리며 가격이 오르는 등 부작용이 생겼다. 우병탁 팀장은 “해당 거래는 외지인 거래일 가능성이 높고 갭투자를 통한 투기 수요일 것으로 보인다”라며 “주변 주거환경의 변화가 없이 단순히 집값만 올라가는 상태가 되면서 주변 실수요자들은 피해를 보게 됐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해 이맘때 8000만원 중·후반대에 거래되던 주은청설 전용 39㎡는 이달 14일 1억5400만원에 거래되며 1년 새 두 배가량 올랐다. 이들 단지는 전셋값과 매매가격의 차이가 크게 나지 않아 이른바 ‘갭 투자’ 방식으로 매매하기 수월하다. 지난 13일 기준 KB부동산 시세에 따르면 주은청설 49㎡의 전세가율은 81~86%이며 주은풍림 39㎡는 84%에 달한다.
 
한 업계 관계자는 “양도세 등 세금을 내야 하지만 공시가 1억원 이하 아파트는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 투자가 가능해 법인이나 다주택자들이 여러 채를 한 번에 사는 경우도 있다”며 “특히 지난해엔 집값이 크게 오르면서 시세 차익을 기대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에 국토교통부는 지난해 11월 법인과 외지인을 대상으로 한 공시가격 1억원 이하 주택 거래 전수조사 방침을 밝히고 조사에 들어간 상황이지만 시장에 미치는 효과는 크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다만 앞으로도 이처럼 시세가 오르고 거래가 될지는 의문부호가 붙는다. 최근엔 집값 상승세가 비교적 주춤한 상황이며 전셋값이 거의 매매가에 육박해 소위 '깡통전세' 우려도 생기고 있다.
 
서진형 경인여대 교수(공정주택포럼 공동대표)는 “규제의 풍선효과로 인해 투자수요가 경기 외곽까지 미친 것”이라며 “(취득세 중과 완화 방침 등) 새로운 정책이 나온다면 거래가 어려워질 가능성도 있어 투자에 유의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