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은 사우디 가고, 러시아는 제재 회피 골머리…혼돈의 에너지 시장

2022-06-04 05:00
러시아 유조선, 인도·파키스탄·중국으로 돌리나
중국·인도, 러산 원유 구매 폭등
바이든, 사우디 방문해 '발등 불' 유가 급등 끌까

유럽연합(EU)이 러시아산 원유 금수조치에 합의하자, 러시아가 “원유 생산량을 줄이겠다”며 에너지를 무기로 휘두르고 있다. 고인플레이션에 신음하는 세계경제를 벼랑 끝으로 몰고 갈 기세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발등에 불인 에너지 가격을 잡기 위해 이달 말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해 증산을 요청할 전망이다.
 
러시아 유조선, 인도·파키스탄·중국으로 돌리나
 

우크라이나 시위대가 지난 5월 30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우크라이나 관련 유럽정상회의를 앞두고 유럽평의회 앞에서 러시아 석유 보이콧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EPA·연합뉴스] 

CNBC는 러시아가 EU의 러산 원유 금수조치에 맞서 다른 구매자를 찾거나 원유 생산량을 줄여 유가 상승을 부추길 수 있다고 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EU 27개 회원국 정상들은 이번 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6차 제재 패키지의 일환으로 해상을 통한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금지하는 데 동의했다. 이는 EU의 러시아산 원유 수입량의 90%에 달한다.
 
호세인 아스카리 조지워싱턴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유가는 단기간에 하락하지 않을 것”이라며 “러시아 제재의 여파가 몇 년간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이 러시아에 대한 강력한 선제 제재를 가해야 했으며, 석유수출국기구(OPEC)에 증산을 더욱 강력하게 요청해야 했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러시아는 사우디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원유 수출국이다.
 
러시아는 EU가 아닌 다른 구매자를 찾을 것으로 보인다. 미하일 울리야노프 오스트리아 빈 주재 러시아 대사는 최근 트위터를 통해 “러시아는 다른 수입업체를 찾을 것”이라고 밝혔다.
 
로열뱅크오브캐나다(RBC)는 “러시아가 EU에서 거부된 원유를 인도, 중국, 터키에 팔 수 있을 것인지는 미국과 EU가 이란에 가했던 해상보험 관련 제재를 러시아에도 적용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CNBC에 말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EU는 현재 러시아산 석유를 운송하는 유조선들에 해상보험을 제공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안을 검토 중이다. 이렇게 되면 러시아는 다른 나라들로 유조선을 돌리는 게 어려워진다. 석유중개업체들 입장에서는 해상보험에 가입되지 않은 유조선을 통해 석유를 실어 나르는 것은 큰 부담이기 때문이다.
 
중국·인도, 러산 원유 구매 폭등
서방이 러시아에 제재를 가한 뒤 중국과 인도는 러시아산 원유를 대폭 구매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EU의 금수조치를 기점으로 중국과 인도의 러시아산 원유 구매가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본다.
 
인도는 러시아로부터 통상 수입량의 2~5% 정도의 원유를 사들였지만, 최근 몇 달간 구매량이 큰 폭으로 늘었다.

상품 데이터회사 케플러에 따르면 인도는 러시아로부터 원유를 3월에 1100만 배럴을 구입했으나, 4월과 5월에 각각 2700만 배럴, 2100만 배럴을 사들였다. 이는 2021년 한 해 동안 러시아에서 구매한 1200만 배럴을 크게 웃돈다.
 
중국 역시 3~5월에 러시아에서 1450만 배럴에 달하는 원유를 구매했는데 이는 작년 같은 기간보다 3배 급증한 수치다.
 
CNBC는 러시아가 원유 생산과 수출을 줄일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러시아 석유회사인 루크오일의 부사장 레오니드 패둔은 유가를 높이기 위해서는 석유 생산량을 최대 30%까지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RBC 캐피털마켓의 글로벌상품전략책임자인 헬리마 크로프트는 “놀라울 정도로 낮은” 재고와 정제 능력 부족을 감안할 때 러시아의 생산량 감축은 세계경제에 직격탄을 날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캐피털이코노믹스의 이코노미스트인 에드워드 가드너는 “러시아는 올해 수출 물량 감소를 가격 상승으로 상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가드너에 따르면 러시아가 수출하는 우랄산 원유는 다른 원유보다 싼 가격에 팔리고 있지만 현재 배럴당 95달러 수준에서 거래되고 있다. 이는 1년 전보다 훨씬 높은 가격이다.
 
러시아는 제재를 피하고자 꼼수도 부리고 있다. 해운 분석기관인 윈드워드에 따르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된 이래로 지난 3개월간 180개에 달하는 선박의 소유권이 러시아 법인에서 비러시아 법인으로 변경됐다. 이는 2021년 전체 러시아 선박의 소유권 변경 건수의 절반에 달한다. 소유권을 변경한 러시아 선박은 주로 싱가포르, 터키, 아랍에미리트(UAE) 및 노르웨이에 기반을 둔 회사에 팔렸다.
 
바이든, 사우디 방문해 ‘발등 불’ 유가 급등 끌까
유가 향방은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 등 비OPEC 산유국들로 이뤄진 OPEC+에 달려 있다. 그간 서방의 증산 요구에도 끄떡없던 OPEC+는 세계 에너지 시장이 혼란에 빠지자 7월과 8월에 하루 64만8000배럴을 증산키로 했다.
 
미국은 사우디에 더 많은 증산을 요청할 것으로 보인다. NBC 뉴스는 익명을 요구한 소식통들을 인용해 바이든 대통령이 사우디에서 모하메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를 만나 증산에 나서도록 설득할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이에 따라 오는 29~30일 스페인 수도 마드리드에서 열리는 나토 정상회의에 맞춰 독일과 스페인 방문을 계획하고 있던 바이든 정부는 중동도 들를 전망이다.
 
외신들은 이번 방문은 사우디를 “따돌림받는” 국가로 취급하겠다고 공언했던 바이든 대통령의 태도 변화를 나타낸다고 전했다. 미국 거주자이자 워싱턴포스트의 칼럼니스트였던 자말 카슈끄지가 지난 2018년 터키 이스탄불에 있는 사우디 영사관에서 암살된 뒤, 바이든 행정부가 빈 살만 왕세자를 카슈끄지 죽음의 주범으로 지목하면서 양국 관계는 급격히 얼어붙었다.
 
그러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유가가 치솟으며 인플레이션이 급등하자 미국 입장에서는 사우디와의 관계 회복이 급선무가 됐다.
 
사우디 역시 미국이 사우디의 최대 적인 이란과 미국이 핵 합의에 복귀할지를 예의주시하고 있는 상황인 만큼, 미국과 사우디 간 긴장이 완화할 것이란 전망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