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 지성人] 국제通 강인선 대변인…국제적 감각·도전이 만든 카리스마
2022-05-25 08:00
'[강인선 LIVE] 말로는 거들어도 함께 싸워주진 않는다'
강인선 대통령실 대변인이 기자로서 쓴 마지막 기사 제목이다. 불과 두 달 전까지만 해도 조선일보 편집국 부국장이었던 그는 이제 하루에 수십 수백통의 취재 문의를 받고, 윤석열 대통령의 입을 대신하는 대변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앞서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인수위)에서는 외신 대변인을 맡았다. 윤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 ‘한·미 정책협의 대표단’이란 이름으로 보낸 특사에도 이름을 올렸다.
◆워싱턴 특파원과 이라크 종군기자, 대통령 대변인
과거 한 인터뷰에서 "워싱턴 특파원이었던 5년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새벽 3~4시까지 기사를 썼다"며 "기자는 남에게 정보를 알리는 것을 좋아하고 가치 있게 여기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벌어진 해프닝은 '홍일점 워싱턴 특파원 강인선 기자의 24시'라는 칼럼을 통해 전했다. 어디를 가든 과도한 호기심이 뒤따랐고, 식당 종업원이 '남편은 어느 신문 특파원이냐'고 묻는 등 곳곳에서 반복적인 대답을 요구받은 것으로 보인다.
이라크 전쟁 종군기자로 전장을 누빈 이력도 빼놓을 수 없다. 쉴 새 없이 폭탄이 떨어지고, 많은 사람들의 죽음을 목도하는 힘든 순간에도 취재를 이어갔다. 그 일화는 2003년 발간한 책 '사막의 전쟁터에도 장미꽃은 핀다'에 담았다.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하면서 한때는 풍요를 상징했던 수도 바그다드에는 공포가 덮쳤다. 그렇게 사담 후세인 정권이 전복되기까지 약 40일 동안 전쟁터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생생하게 묘사했다.
그간의 공로들은 최은희 여기자상, 최병우 기자 기념 국제보도상, 돈 오버도퍼 기자상 등을 수상하면서 인정받았다. 윤 정부 초대 대변인으로서 활약하는 것 또한 결과물의 하나다.
강 대변인의 남다른 이력과 국제적 감각을 뒷받침하는 배경에는 서울대 외교학과 졸업 및 동대학원 외교학 석사,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행정대학원 행정학 석사 취득 등이 있다. 특히 하버드 케네디스쿨 석사는 30대 중반에 도전했는데 늘 배움을 가까이 하고,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나가는 강 대변인의 성격 단면을 엿볼 수 있다.
◆"자신만의 삶의 방식 고민해야"…너무 빠른 정치권행 우려도
윤 대통령 역시 강 대변인의 국제적 안목과 도전·끈기 등을 높이 평가한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경제안보'를 필두로 국제사회와의 협력 등을 강조하는 윤 정부에서 외교 정책의 중요성은 어느 때보다 커졌다. 외교 업무 실무진은 아니어도 관련 정책을 전달하고, 대통령의 의중을 알리는 입장에서 강 대변인의 역량이 십분 발휘될 것으로 보인다.
벌써 윤 대통령은 한·미 정상회담이라는 취임 후 첫 외교 시험대를 통과했다. 강 대변인은 용산 대통령실과 평택·오산을 오가며 이번 회담의 의미를 전달했다. 역시 언론인 출신인 이재명 부대변인을 비롯해 대변인실 관계자 전부가 몰두했다.
한편, 일부에서는 강 대변인이 현직 언론인으로서 대변인실에 직행한 데 대해 우려하거나 날을 세우기도 했다. 정치 권력을 감시해야 할 언론인으로서 부적절한 처사였다는 것. 강 대변인은 인수위에 외신 대변인으로 합류하기 3일 전까지 기사를 썼다.
앞서 김의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한겨레신문 선임기자를 그만둔 지 6개월 만에 문재인 대통령 대변인을 맡았다. 윤도한 전 MBC 논설위원은 명예퇴직 8일 만에 문재인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으로 임명됐다. 이들과 비교해도 정치권행이 너무 빨랐다는 지적이 나왔다. 강 대변인이 감당해야 할 몫으로 남았다.
과거 '고대신문' 인터뷰에서 대학생들에게 '상상력'과 '용기'를 가질 것을 조언하며 "자기가 어떻게 살아 나갈지를 머릿속에 그릴 수 있어야 한다. 어떤 직업을 가질지를 떠나서 남과는 다른, 자신만의 삶의 방식에 대해 고민하라"고 말한 것이 강 대변인 스스로에게도 해당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