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재우의 프리즘] 선진 외교력 갖춘 '글로벌 중추국가'

2022-05-03 06:00

 
 
새 정부 출범이 앞으로 일주일 남은 가운데 세계의 주요 관심사는 세계 10위권 국력을 자랑하는 대한민국이 펼칠 새로운 외교 정책 구상일 것이다. 특히 윤석열 당선인이 대통령 후보 시절 내세운 '글로벌 중추국가(Global Pivotal State)’로서 대한민국 구상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궁금해할 것이다.  

지난 1월 24일 당시 윤 후보는 자신의 외교·안보 비전을 직접 밝히는 자리에서 “우리 헌법정신의 근간인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고, 당당한 외교와 튼튼한 안보로 진정한 한반도 평화 시대를 열어가겠다”며 “과감하게 혁신하여 활력을 되찾고 미래 성장동력을 키우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국민 여러분과 함께 만들 글로벌 비전은 과거가 아닌 미래, 공허한 이념이 아닌 실질적 국익, 고립이 아닌 상생”이라며 “자유, 평화, 번영에 기여하는 글로벌 중추국가 대한민국을 국민 여러분과 함께 윤석열이 반드시 만들겠다”고 덧붙였다. 이어서 진정한 한반도 평화의 시대를 열기 위해 “예측 가능한 비핵화 로드맵과 상호주의 원칙, 한·미 공조하에 북한과 비핵화 협상 재개”를 위해 노력하고 “원활한 협상을 위해 판문점이나 미국 워싱턴DC에 남·북·미 연락사무소를 설치해 3자 간 대화 채널을 상설화”하는 방안도 부연했다.

우리나라가 '글로벌 중추국가'가 되어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세계 10위권 국력을 갖췄다는 대한민국은 외교 영역에서는 지난 5년 동안 세계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특히 2030세대는 선진화된 대한민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세대이기에 문재인 정부의 저자세 외교 행태를 보고 낙담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강대국은 물론 우리보다 국력이 한참 뒤처진 북한의 눈치도 보는 행위는 이들이 납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윤 당선인이 밝힌 외교·안보 비전은 가히 시대적 요구에 부합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제는 향후 도전 과제를 잘 관철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외교를 잘한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가 않다. 외교를 아무리 잘해도 상대국 반응이 비우호적이고 적대적이면 고통과 손실이 따른다. 국익의 손실 또한 자명한 결과다. 외교전에서 매사에 좋은 결과만 마냥 기대할 수 없는 본질적 속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상대국의 적대적 반응을 미리 두려워해서도 안 된다. 외교의 목표가 이런 난관을 극복하는 것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외교에 지략이 필요한 이유이다. 최선의 결과를 국익의 극대화라고 할 수 있지만 차선의 것을 국익 손실의 최소화라고 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따라서 외교를 잘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전제를 숙지할 필요가 있다. 우선 외교는 상대가 있다. 따라서 상대방이 무엇을 원하는지 간파해야 한다. 역지사지하고 지피지기해야 한다. 상대방의 목적을 파악한 후 우리가 상대방에게서 무엇을 얻고자 하는지 우리 스스로가 잘 알아야 한다. 상대방의 요구만 파악하고 우리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면 협상이 성사될 수 없다. 이 모두를 우리가 알아야만 협상력을 갖출 수 있고 협상 전략을 세울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일방적으로 상대방에 끌려 다니게 될 것이다.

강대국들이 외교를 잘하는 이유에 강한 협상력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강한 국력을 바탕으로 고압적으로 협상에 임하는 것도 이유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이 그런 강한 국력을 어떻게 이용하는지를 면밀하게 분석할 필요가 있다. 이들은 상대방이 무엇을 원하는지 사전에 모두 파악한다. 그러면서 이들은 이른바 ‘맞춤형 제안(tailor-made offering)’을 함으로써 상대방이 거절하지 못하게 만든다. 상대방이 거부하지 못할 정도의 제안을 할 수 있는 바탕에는 역시 국력이 존재한다. 강대국은 국력과 상대방의 기대감을 조화롭고 적절하게 혼합하여 협상에 레버리지로 활용한다. 그러면서 이들은 최선의 결과를 손실의 최소화로 상정하고 협상을 통해 최고의 결과, 즉 국익의 극대화를 도출해 내려고 최선을 다한다. 여기서 이들은 가히 최상의 설득력으로 상대방을 압도한다. 상대방이 무엇을 원하는지 간파했기 때문이다.

외교력은 따라서 지력, 통찰력, 사고력, 판단력과 설득력을 모두 구비해야 한다. 앞의 네 가지 힘은 다양한 분석과 의견 취합을 통해서만 이뤄질 수 있다. 모든 경우의 수에 대비하기 위함이다. 외교가 초당적인 접근과 합의를 요구하는 이유다. 모든 변수를 염두에 둔 전략 방안은 그야말로 상대방에게 ‘맞춤형 제안’이 될 수 있다. 무엇보다 외교의 관건은 상대방을 설득하는 데 있다. 말 그대로 상대방이 거부하지 못할 정도의 제안을 우리는 협상장에 들고 나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무엇을 원하는지, 그리고 상대방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토대로 우리가 절충할 수 있는 방안을 준비해야 한다. 아니면 협상은 경색 국면으로 쉽게 빠질 수밖에 없다. 이런 결과를 우리는 지난 5년 동안 목도했다.

윤석열 당선인은 미국과 관계를 ‘포괄적인 전략 동맹’의 발전으로 설정했다. 그러나 한·미 관계를 ‘포괄적’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야말로 상당한 과제다. 미국이 기대하는 ‘포괄적’ 전략 동맹의 의미를 파악하는 것보다 우리가 이를 어떻게 개진시켜나가야 할지가 더 큰 고민이 될 것이다. 2021년 5월 한·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에서 미국의 기대감은 이미 표출되었다. 이에 우리가 어떻게 반응하고 대응해야 하는지가 관건이다. 역대 최장의 공동성명에서 나열한 내용이 그야말로 포괄적이기 때문에 우리는 무엇보다 우선순위를 적절히 결정지어야 한다.

우리의 대미 정책의 첫 단추는 윤 당선인이 강조한 대로 자유민주주의의 가치 수호에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부터 홍콩, 신장, 티베트 등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위해하는 사태에 대한 입장부터 정리하는 것이 순서다. 이를 통해 지난 5년간 상실한 미국의 믿음(trust)과 신뢰(confidence)를 회복해 한·미 양국의 포괄적 전략 동맹 기초를 닦을 수 있겠다. 이런 기본적인 조건을 미국 측에서 얻어 내는 것에 주안점을 둬야 할 것이다. 믿음과 신뢰 구축 이후에 경제통상, 과학기술, 기후변화, 팬데믹 등 영역에서 협력의 우선순위를 매겨나갈 수 있겠다.

자유민주주의 가치 수호에 기여하는 중추국가가 되겠다면 중국의 반발이 거세질 것은 자명하다. 그러나 이는 우리가 중국과 타협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또한 중국도 이를 이유로 우리에게 압박을 가해서도 안 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중국은 평소에 주장하는 국가적인 상황에 따라 국민이 선택한 가치와 제도를 존중해야 하는 원칙을 스스로 부정하는 행태가 될 것이다. 중국이 이를 존중할 때 비로소 윤석열 당선인이 주장하는 ‘상호 존중하는 한·중 관계’가 구현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첫 단추가 중요한 이유다.

대중 관계에서 우리가 지향해야 할 것은 소통과 대화다. 사드 사태 이후 단절된 소통과 대화의 복원이 시급하다. 이런 채널이 차단된 상황에서 그 어떤 문제도 해결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중국 측에 소통과 대화의 재개를 강력하게 어필해야만 한다. 소통과 대화의 기회가 열리면 그때서부터 우리의 대중 관계를 발전시킬 수 있는 전략을 본격적으로 가동할 수 있겠다. 다만 이때 우리는 우리만의 의제를 설정하기보다도 중국이 우리한테 무엇을 원하지를 간파하고 우리가 중국에 대해 무엇을 원하는지 파악해야 한다. 이를 토대로 우리가 협상의 의제를 선점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모든 대화의 기회는 또다시 수포로 돌아갈 것이다.

무작정 사드 ‘3불(不)’을 철회하는 식으로 접근하는 것은 삼가야 한다. 비록 이 문제가 소통 단절의 근본적인 원인이라 하지만 어렵게 얻은 기회를 이 문제로 상실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 문제는 계속해서 협상해 나가는 의제로 삼아야 한다. 사드 문제 이외에 한·중 양국 간에는 산적한 문제들이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위 ‘쉬운 문제부터 해결’해 나가는 전략으로 중국과 대화에 임해야 한다. 여기서 우리의 외교 지략이 절대적으로 요구될 것이다. 수많은 경우의 수를 동원해 중국을 설득할 수 있는 만반의 준비가 필요하다.

우리의 대일 관계도 마찬가지다. 역대 최악의 상황에서 윤 당선인이 제시한 ‘포괄적 해결’ 방식을 일본이 수용할 가능성이 낮다는 것이 일본의 한 한국 전문가의 평가였다. 일본이 자국 내 여론을 설득할 있는 여지를 만들어줘야 한다는 것이 그의 의견이었다. 이는 역으로 일본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한국 측이 알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본 국민과 여론은 무시한 채 우리의 일방적인 제안은 설득력이 없다는 뜻이다. 우리 외교의 최대 결점이 일본의 한 전문가에 의해 밝혀진 대목이다. 따라서 새 정부는 역지사지와 지피지기를 바탕으로, 새로운 대일 전략을 수립해야 할 것이다.

외교는 상대가 있다. 설득해야 할 상대가 있다. 일방적인 희망 사항을 제시하는 것으로 성공적인 외교를 기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새 정부가 새 부대에 새 술을 담는 마음으로 우리 국익 중심의 외교를 펼쳐나갈 것을 기대한다. 적대적이고 비우호적인 반응을 앞서 우려하는 데 함몰되지 않기를 바란다. 이는 외교의 당연한 속성이다. 리스크(위험 부담)를 과도하게 의식하면 창의적이고 창조적인 전략을 고안해 낼 수가 없다. 때로는 국익 손실을 최소화한다는 마음과 자세로 차선의 결과를 노리는 여유와 배짱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세계의 안정과 평화, 발전과 번영에 기여하는 선진 외교력을 가진 글로벌 중추국가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주재우 필자 주요 이력 

▷베이징대 국제정치학 박사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중국연구센터장 ▷브루킹스연구소 방문연구원 ▷미국 조지아공과대학 Sam Nunn School of International Affairs Visiting Associate Profess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