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이의 사람들] 29세 '짱구 엄마'가 세상 모든 스물 아홉들에게

2022-05-10 10:45

 

만화 ‘짱구는 못 말려’의 짱구 엄마 봉미선은 스물 아홉이다.
어렸을 때 짱구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나도 저런 어른이 되겠지 라는 생각을 했지만 막상 현실은 그렇지 않다.
아직 부족함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은 20대다.
20대는 어리지만 성숙한 나이, 꿈은 많지만 뜻대로 잘 안 되는 나이이기도 하다.
과거 유튜브에서 짱구 엄마가 실제 29살과 이야기를 나눈 영상이 화제가 됐다.
29살이라는 나이에 아이 둘 엄마가 된 짱구 엄마는 “안 건강해”라는 말에 뭉클함을 주기도 했다.
영상을 본 후 강희선 성우에게 인터뷰 요청을 했고, 성사가 돼 20년 넘게 짱구 엄마 봉미선 역할을 맡고 있는 강희선 성우와 이야기를 나눴다.

 

[사진= 유튜브 Pixid/짱구 엄마와 대화하는 93년생]


Q. '짱구는 못 말려'에서 29살 봉미선을 보면 완벽해 보이는데 현실의 20대는 그렇지 않거든요. 그래서 만화 속 봉미선의 모습과 더욱 비교를 하게 되고, 조급해 하는 것 같아요.
A. 만화 자체가 현실적이지는 않잖아요. 그 또래의 엄마 일상을 재밌게 그려내고 있는데, 실제 육아를 책임지는 엄마들의 정신없는 일상의 한 부분이죠.
지금의 20대들이 조급해 하는 것도 이해해요. 요즘 비혼주의도 많고 결혼 연령대도 많이 늦어졌잖아요. 꼭 아이를 낳아야 된다는 생각이 없는 분들도 꽤 있어요. 그리고 코로나19 때문에 20대가 정말 힘들어요. 아직은 본인 뜻대로 안 되는 20대 친구들도 많으니까, 점점 더 조급해지는 것 같아요. 근데 뉴스에서 20대 창업자가 전년도에 비해서 160% 높아졌다는 걸 봤거든요.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창업을 하는 거예요.

Q. 주변의 압박은 심한데 열심히 해도 안 될 때는 어떻게 해야 될까요?
A. 그게 제일 힘든 거예요. 사실 압박한다고 되는 건 하나도 없거든요.
일이 안 되다가도 어느 때 보면 풀려져 있고 풀어지는 듯 하는데 또 안 되는 것의 연속이에요.
그러다 보면 잘 되고요. 그러니까 열심히 해도 안 될 때가 될 때보다 훨씬 더 많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도 결과적으로는 지치지 않는 사람이 이기는 것 같아요. 끝까지 최선을 다하다 보면 기회도 오고 돌파구도 생길 거예요. 주변에 압박에 대해서 스트레스를 받지 말아야죠.
 
Q, 봉미선은 24살에 결혼해서 29살에 짱구가 5살이잖아요. 성우님도 24살에 결혼하셨다고 들었어요. 성우님의 삶을 돌아봤을 때 봉미선과 가장 닮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뭔가요?
A. 제가 24살에 결혼을 했으니까, 29살 때도 계속 주부잖아요.
아이들 아플 때 걱정하는 거, 짱구가 집에서 안 보일 때 노심초사 하고 애를 잃어버리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과 짱구 아빠가 회사 일로 힘들어 할 때 많이 안쓰러워하는 거, 그리고 가계부 쓸 때 맨날 쪼들리잖아요. 금전적인 부분에 있어서 힘들어 하는 게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죠.
 
Q. 성우님의 29살은 어땠나요?
A. 주부였고, 아들을 낳고 정신 없이 밤을 새워 가면서 지금은 없어졌지만 남산에 영화진흥공사라고 있었는데 거기서 한국 영화 후시녹음을 하면서 거의 매일 밤을 새웠던 것 같아요.
 
Q. 결혼 전과 후 가장 크게 달라진 건 뭔가요?
A. 저는 다시 태어나면 성우 하면서 결혼은 안 할 것 같아요. 힘들어요.
결혼이라는 게 둘만 함께 하는 게 아니라 시댁도 있고 친정도 있고 주위 친지들을 다 챙겨야 되잖아요. 큰 일들과 해야 될 일들이 많은데 그런 게 너무 버거웠어요.
결혼 하기 전에는 내 일만 하면 되는데 한 가정을 꾸리게 되니까, 완전히 생활 패턴이 달라진 거죠. 너무 바쁘고. 저 강희선은 없었던 것 같아요.

Q. 짱구를 보면 봉미선이라는 이름보다 짱구 엄마라고 불리니까, 마음이 아프더라고요.
A. 결혼하면서 이름을 잃어버리죠. 아이가 태어나면 아이의 이름이 불리잖아요.
 
Q. 강희선을 움직이는 삶의 원동력은 뭔가요? 봉미선은 짱구 짱아가 원동력이잖아요.
A. 봉미선은 가족이 그 사람의 전부죠. 저는 성우가 원동력이에요. 아무리 아프고 피곤해도 마이크 앞에만 서면 행복하고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제 자신도 깜짝 놀라요.
마이크 앞에 서서 연기할 때가 가장 행복하고 그게 제가 사는 이유예요.
 
Q. 지하철 목소리도 하셨는데요. 만약 새로운 역이 생길 때는 각각 하나씩 녹음을 하시는 건가요?
A. 그렇죠. 처음부터 끝까지 안하고 새로운 것들만 해요. 그 대신 녹음실은 한 곳에서만 해야 돼요. 같은 목소리라도 기계에 따라서 음정이 달라져요. 지하철공사 같은 곳은 늘 간부들이 바뀌니까, 그런 시스템을 잘 모르세요. 그래서 제가 설명을 드리고 한 곳에서 녹음을 해요. 그렇지 않으면 소리가 튀어요. 그걸 모르는 사람은 모르는데 귀신 같이 잡아내는 사람도 있어요.
 
Q. 지하철을 탈 때 본인의 목소리를 들으면 어떠세요?
A. 처음에 녹음했을 때 사람들이 기계음인 줄 알았대요.
너무 사무적으로 해서. 근데 그쪽에 원했던 거거든요. 원래 1년에 한번씩 바뀌었는데 컴플레인이 너무 많으니까, 무색무취로 해달라고 했어요. 그러다 보니까 어떤 사람은 이북 방송 같다는 얘기가 있었어요. 제가 들어도 너무 딱딱했거든요. 근데 그렇게 한 다음에는 그런 불만사항이 접수된 게 한 건도 없었어요. 그래서 그게 지금까지 해올 수 있었던 이유예요. 그 다음부터는 살짝 살짝 부드럽게 바꿨어요. 손님의 입장에서 내 소리를 들었을 때 기분이 어떨까 하는 생각으로요. 아침에 나올 때 기분이 제각각 다르잖아요. 여러 가지 유형의 사람들이 지하철을 타거든요. 그들 생각의 눈높이에서 목소리가 들려요. 너무 오버되지 않게 적당한 선에서 조금씩 바꿔요.
 
Q. 지금의 20대와 성우님의 20대를 돌아봤을 때 가장 다르게 느껴지는 점은 뭔가요?
A. 지금의 20대와 과거 저의 20대는 엄청난 세대 차이잖아요.
지금 제 나이에서 20대를 너무 어리게만 생각했거든요. 밝고 예쁘잖아요.
근데 학생들과 대화를 해보면 생각보다 미래에 대해서 걱정도 많고 생각도 많고 상당히 성숙해 있더라고요. 그리고 본인의 미래를 많이 걱정해요.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철이 많이 들어 있는 20대죠. 저희 20대는 그러지 않았어요. 그냥 주어진 일만 하면서 그냥 살았어요.
 
Q. 만약 짱구와 짱아, 봉미선, 신형만처럼 나이를 먹지 않는다면 몇 살로 계속 살고 싶나요?
A. 40대? 40대가 가장 좋았던 것 같아요. 40대가 불혹의 나이라고 하잖아요. 어떤 유혹에도 넘어가지 않는 나이라고 하는데, 사실 그렇지도 않아요. 근데 40대가 어느 정도 인생을 살았고
사람 보는 눈도 생기고 내가 해야 할 일, 하지 않아야 될 일들을 내가 판단 할 수 있는 그런 나이인 것 같아요.
 
Q. 짱구의 아빠 이름이 신영식, 신형만 두 개이던데 어떻게 된건가요?
A. 둘 다 쓰더라고요. 짱구가 일본 거라서 작가가 번역한 대로 읽거든요. 그러고 보니까 그 당시에 신영식인데 신형만으로 바뀐 이유에 대해 못 물어봤네요.
 
Q. 현실의 벽으로 인해 많은 걸 놓고 사는데요. 이것 만은 놓지 않았으면 한다는 게 있나요?
A. 후배들한테 편견을 버리라고 말해요. 자신의 눈높이로 판단하고 보고 기억해요. 그게 사실이던 아니던 간에. 그래서 본인의 언행의 결과를 놓고도 해석이 달라질 수밖에 없어요.
그러니까 항상 솔직하고 당당했으면 좋겠어요. 부끄러움 없이.
모르면 모른다고 하고 알면 안다고 얘기하고 없으면 없다고 얘기하고 있으면 있다고 얘기하고. 솔직하면 걱정이 조금 덜할 것 같아요. 그리고 덕을 베풀었으면 좋겠어요. 인생은 조금 손해 보면서 사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조금 살아보니까.
 

[사진= 유튜브 Pixid/ 스물아홉살 출연자를 안아주는 강희선 성우]

Q. 부모님들이 짱구가 비교육적이라고 못 보게 하는데요, 성우님께서도 그랬나요?
A. 저는 그렇지는 않았어요. 짱구가 일본 만화잖아요. 일본 만화가 성인틱한 게 있어요.
짱구를 수입해도 방송을 다 못해요. 심의를 거친 게 그 상태예요. 그것보다 수위가 강해요.
 
Q. 어쩌다가 봉미선 역까지 이어졌나요?
A. 캐스팅이 됐어요. 신봉철 PD님께서 맹구랑 같이 1인 2역을 하라고 했는데 요구사항이 많아서 힘들었어요. 너무 튀지 말고, 너무 부드럽게도 하지 말라고 했어요. 봉미선 얼굴이 변하는데, 그것에 따라서 목소리도 바뀔 수밖에 없어요.
 
Q. 엄마로서 강희선 성우는 어떤 사람인가요?
A. 저도 자식밖에 몰라요. 지금까지 제 개인 시간을 가진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집-방송국-집 루틴으로 살았어요. 저는 한 번도 산에서 캠핑을 해본 적도 없고요. 스키장을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어요. 엄마로서는 0점이죠.
 
Q. 짱구 엄마를 하면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A. 매회 기억에 남아요. 맨날 소리 지르니까, 연기를 하면서도 힘이 나는 것 같아요. 맨날 애 데려다 주고 깨우고 화장실 가서 안 나오면 난리치고, 세일하면 애들 데리고 백화점 가고 까먹고 오는 게 다예요.
 
Q. 짱구 엄마 역할에 대해 애착이 있을 것 같아요.
A. 당연히 있죠. 오랫동안 했으니까. 방송국이 아니라 밖에서 친구들을 만나면 저한테 ‘짱구 엄마’라고 해요. 이름 안부르고. 자식 이름 안 부르고 짱구 엄마라고 불러요.
 
Q. 실제로 짱구 같은 아들이 있다면 어떨 것 같으세요?
A. 정신없겠죠. 그렇지만 엄청 사랑스러울 것 같아요. 귀엽잖아요. 말은 안 듣지만 착하잖아요.
 
Q. 지금의 강희선이 29살 봉미선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요?
A. 봉미선이 힘들어 하니까. 힘내 짱구 엄마 봉미선. 지치지 말고 짱아, 짱구, 남편 신형만 씨 잘 보살피면서 항상 행복했으면 좋겠어. 파이팅!
 
Q. 이 세상에 모든 짱구들한테 한 말씀해주세요.
A. 엄마 말은 잘 듣는 게 우선이야. 사고 치지 말고 하지 말라는 건 하지 말고 다치지 말고.
제일 중요한 건 건강해야 돼. 길 건널 때 신호등 잘 지켜가면서 앞에 보고 다녀. 휴대폰 보면서 게임하지 말고. 엄마 말 잘 들어.
 
Q. 마지막으로 29살 짱구 엄마가 이 시대의 29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요?
A. 마지막 달력 한 장 넘기면 30대가 되잖아요. 이 시대의 스물 아홉 살 친구들 힘냈으면 좋겠고요. 코로나 19로 여러 가지 걸림돌이 많겠지만 그래도 사람은 죽으라는 법은 없다고 우리 할머니가 그러셨어요. 그러니까 위축 되지 말고 용기 내고, 조금 힘들더라도 매일매일 많이 웃고, 행복하지 않아도 행복한 척 하면서 잘 살았으면 좋겠어요. 사랑해 파이팅!

[사진= 강희선 성우 제공/강희선 성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