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재원의 Now&Future] '식은경제 달구고 막힌 경제 뚫기" 尹당선인 묘수 있나

2022-04-21 06:00



 

대불국가산업단지 방문한 윤석열 당선인 (서울=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20일 '약속과 민생의 행보' 일환으로 전남 영암 대불국가산업단지를 방문,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오는 5월 10일 출범하는 윤석열 새 정부는 급속히 식어가는 경제를 달구고, 막힌 경제를 뚫어야 하는 게 급선무다. 역대 가장 어려운 경제적 과제를 안고 출발점에 선 것이다.
 
우선 급감속할 염려가 강해지고 있는 세계경제를 주목해야 한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 19일 수정한 세계경제 전망에서 2022년 실질 성장률을 3.6%로 전회 1월 예측에서 0.8%포인트 내렸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자원고(高)에 따른 인플레이션을 가속화하고 이를 억제하기 위한 각국의 금리 인상이 경제를 식힌다고 분석했다. 전쟁이 길어지면 마이너스 연쇄가 계속되어 경제는 한층 정체될 우려가 있다고 강조했다. 세계 경제성장률은 코로나19 재앙으로 2020년 -3.1%에 빠졌지만 2021년 6.1%로 급회복했다. 그러나 올해는 코로나 피해를 회복하는 국면에서 다시 수급 긴축에 빠졌고, 전쟁에 의한 자원 공급 불안이 더해진다. 결과적으로 가속화하는 인플레이션에 대응하기 위한 중앙은행의 금리 인상이 큰 리스크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번 IMF 보고서를 살펴보자. 전쟁의 영향은 유럽 각국에서 크게 나타난다. 독일에서는 우크라이나에서 들여오는 부품 공급이 막혀 폭스바겐 등 자동차 공장이 멈춰 섰다. IMF의 2022년 성장률 전망치는 2.1%로 1월에 비해 1.7%포인트 하향 조정됐다. 유로권 전체에서도 2.8%로 1.1%포인트 내렸다. 우크라이나 경제성장률은 2022년 -35.0%, 러시아도 -8.5%로 전망됐다. 일본 전망치는 2.4%로 0.9%포인트 낮아졌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은 자원과 식료품 가격 상승을 통해 전 세계에 인플레이션 압력을 가져온다. IMF는 선진국들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5.7%, 신흥국들은 8.7%로 상향 조정했다.
 
미국은 3월 소비자물가가 40여 년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을 보였다. 버지니아주에서 축산 정육업을 하는 여성은 베이컨 가격 상승에 대해 어려움을 토로한다. 미국은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인플레이션 제어가 큰 초점이 된다. IMF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금리 인상 가속화를 반영해 미국의 성장률 전망치를 3.7%로 1월보다 0.3%포인트 낮췄다. 미국이 금리 인상 페이스를 빠르게 하면 개도국은 통화 하락에 대한 대응으로 금리 인상을 재촉당해 경제에 하강 압력이 걸린다. 미국보다 앞서 금리를 올리는 브라질의 2022년 성장률은 0.8%. 자원국이어서 1월보다 0.5%포인트 상향 조정이지만 성장률은 낮다. 사우디아라비아가 7.6%로 2.8%포인트 오르는 등 일부 산유국이 호조를 보이고 있지만 개도국 전체로는 3.8%로 1.0%포인트 하락했다.
 
중국은 제로 코로나 정책에 따른 도시 봉쇄(록다운)가 경제 침체를 부르고 있다. 2021년 8.1%였던 성장률은 2022년 4.4%로 둔화될 전망이다. 중국의 개인소비가 위축되면 아시아 국가들의 1차 상품 수출에도 영향이 확대된다.
 
IMF는 이번 전망이 하향세의 여지가 크다고 본다. 우려되는 것이 전쟁의 장기화다. 만일 향후의 제재 확대에 의해서 러시아의 석유·가스 수출이 한층 더 줄어든다고 가정하면 세계 전체의 GDP가 2023년에 2%, 2027년에는 1%까지 떨어진다는 전망이다.
 
한국 경제성장률은 올 초 국내 경제연구소들이 일제히 3.0%로 내다봤으나 이 같은 세계경제의 하향 조정으로 이 역시 2%대로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 차기 대통령은 경제 활력 찾기의 첫 신호탄으로 시장 친화적 경제정책을 천명했다. 내각 인사(후보)는 그 징표다. 한덕수 국무총리-추경호 기획재정부 장관 겸 경제부총리-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으로 이어지는 경제정책 결정의 제1축은 관료 출신이면서 미국 유학파로 철저한 자유시장경제파들로 포진한 것이다. 이들은 거시경제와 미시경제를 모두 경험했다. 국무조정에서도 수완을 발휘했다. 여기에 부가하자면 아시아개발은행 수석이코노미스트와 국제통화기금 아시아태평양국장을 지낸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후보도 한 총리, 이 장관과 같은 하버드대 출신이다. 또 제2축을 이루는 중소기업벤처부 이영 장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이종호 장관은 연구 현장을 지키고 창업 경험이 있는 순수 국내 현장파들이다. 이정식 노동부 장관은 한국노동자총연맹(한노총) 출신으로 노동과 기업의 연대와 공생을 주장해 온 노동 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제3축은 국토교통부로, 4선 의원에 제주지사 등을 지낸 관록파의 원희룡 장관이 담당한다. 제3축은 국민들의 최대 관심사인 부동산 문제를 포함해 제1축과 제2축을 관통하는 수평축이다. 내각 중심 국가 운영을 강조한 윤석열 차기 대통령은 경제팀을 이런 식으로 구성했다.
 
그러면 기업들의 사정을 살펴보자. 기업들은 지난해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최대 실적을 올린 곳이 많다. 그러나 올해는 세계경제의 부진 전망과 맞물려 사정이 녹록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 기후위기에 대응한 탈탄소 경영과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부담 등을 어떻게 기회요인으로 전환해야 할지 신사업 구상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윤석열 정부가 시장친화적인 경제정책을 표방하고 실제로 그에 걸맞은 각료 인사를 함으로써 시장에 주는 안도감과 기대감은 실로 크다. 특히 대기업 모임으로 재계의 총본산이라 불리는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는 새 시대의 도래라며 매우 반기는 분위기다. 본래 정권이 바뀌면 재계는 긴장한다. 권력이 특혜나 이권을 손에 쥐여주는 시대는 지나갔다 하더라도 애를 먹일 수 있는 장치는 무수히 쥐고 있기 때문이다.
 
주요 그룹 총수들이 줄줄이 사법조치되는 사례를 보아왔다. 문재인 정부는 전경련을 적폐 대상 1호로 찍어 해체론까지 거론했다. 삼성, LG, SK, 현대차 등 4대 그룹이 회원사에서 빠져나간 전경련은 대한민국의 재계 대표 자리를 대한상공회의소에 넘기는 수모를 겪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중소기업 중심의 법정 경제단체지만 전경련은 민간 경제인들이 자발적인 의지로 세운 사단법인이다. 한국의 재계 대표는 전경련이 마땅하지만 2016년 하반기 미르·K스포츠재단 사태에 연루된 이후 그 위상이 실추된 것이다. 전경련은 이를 만회하기 위해 허창수 회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혁신위원회를 구성해 정경유착 근절, 투명성 강화, 싱크탱크 기능 강화를 골자로 한 혁신안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국민이 전경련을 바라보는 시선은 아직도 따가운 실정이다.
 
전경련 출신 권오용 한국가이드스타 상임이사는 “전경련이 새 정부 출범을 계기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경련이 가장 공격을 받은 ‘정관 제1조 정신의 상실’을 되살려야 한다는 것이다. 전경련 홈페이지 소개 비전 코너에 실린 전경련 정관 제1조는 ‘자유시장경제의 창달과 건전한 국민경제의 발전을 위하여 올바른 경제정책 구현과 우리 경제의 국제화를 촉진하고자 합니다’라는 내용이다.
 
권 이사의 회고록을 일부 인용한다. “김영삼 대통령이 취임한 1993년 2월은 마침 전경련도 최종현 선경(현 SK)그룹 회장을 새 수장으로 맞이하게 되어 정·재계 수뇌부가 한꺼번에 바뀌게 됐다. 미국 시카고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한 최종현 회장은 재계에서 알아주는 학구파였다. 그는 전경련의 싱크탱크인 한국경제연구원 원장을 맡으며 체계적인 정·재계 관계를 모색했다. 그의 구상은 정부와 재계가 국가 경영에 합의된 과제가 있으면 역할을 분담해서라도 협력해 달성한다는 것, 쉽게 말해 정치자금을 매개로 한 정경유착이 아니라 국가적 과제를 수행하기 위한 정경 협력을 내세웠다. 그래서 그는 취임과 함께 '경제계가 바라보는 새 정부의 국가 경영'이라는 정책 제언을 경제계의 중지를 모아 전달했다. 그는 특히 재계의 쇄신을 선도했다. 오너들만의 리그로 불리던 전경련 운영에 전문경영인들의 참여를 촉진하기 위해 '기조실장회의'를 신설했다. 그는 이와 함께 정부 실패에 버금가는 시장실패를 방지하기 위해 '자율조정위원회'를 만들어 독과점, 과당경쟁 등 재계에 쏟아지는 비난을 자율적으로 고쳐나가겠다고 했다. 인력과 자금을 중소기업의 애로점으로 파악하고 중소기업연구원과 중소기업연수원, 중기파이낸스 등 체계적 지원책을 마련했다. 그리고 이런 재계의 쇄신을 전제로 국가 경영 과제에 대해 새 정부와 대화를 추진했다.”
 
고 최종현 회장의 장남인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30년이 지난 현재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으로 재계를 대표하고 있으니 보통 아이러니한 일이 아니다.

전경련은 과거 최종현 회장이 그랬듯이 쇄신을 전제로 대표성을 인정받아야 한다. 우선 무엇을 요구하는 단체가 아니라 무엇을 하는 단체라는 인식을 국민들에게 심어 주어야 한다. 부정적인 기업상을 불식시키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둘째, 국가적 차원의 사업을 전개해야 한다. 예컨대 국내적으로는 남북통일 문제에 건설적으로 관여해야 하고 대외적으로는 국가 이미지 제고를 위한 민간 경제외교에 활발히 나서야 한다. 셋째, 미래를 위한 기반 구축을 선도해야 한다. 전경련이 과거에 행한 과학기술입국 전략과 고등교육 지원은 지금은 더욱 절실해진 과제다. 넷째, 정치권과 관료사회에 쓴 건의나 바른 말을 전달하는 담대함도 보여야 한다.
 
전경련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이 지난 3월 말 ‘대통령 집무실의 용산 국방부 청사 이전에 대한 경제적 효과 분석’ 보고서를 내서 수조원의 국내총생산(GDP) 증가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발표한 처사에 대해 말들이 많다. 언론들은 “2016년 국정농단 사태 이후 위상이 추락한 전경련이 새 정부 출범을 부활의 기회로 삼는 건 이해하지만 너무 나가서 오히려 신뢰가 더 떨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경제단체장들과 지난 3월 21일 만나 ‘친기업’ 행보를 보였다. 윤 당선인은 “기업에 방해되는 제도를 제거하겠다”며 대대적인 규제 완화를 약속했다. 전경련이 이 모임의 창구 역할을 하면서 사실상 전격 ‘복권’된 셈이다. 지금부턴 재계가 보여줄 차례다. 주요 대기업들은 최근 대규모 채용 계획을 발표하면서 대형 투자 계획, 중소기업과 상생하는 프로그램도 잇달아 내놓고 있다.
 
과거 정주영 회장은 10년간, 최종현 회장은 5년간 장기 집권하면서 정권과 강온을 조절하며 경제를 일궜다. 허창수 회장은 11년을 넘어 최장수를 기록 중이다. 그의 앞에는 채용, 투자, 수출, 상생, 사회공헌 등 무수한 과제가 놓여 있다. 과거 선배들처럼 당당하고 의연하게 대처할 때 정치가 더 가까워지고 국민들도 더 따뜻한 눈으로 지켜볼 것이다.
 
한국 경제를 살리기 위한 새 정부, 새 시대의 키워드는 ‘새로운 관민 경제협력 파트너십’이란 점을 명심해야 한다.  




곽재원 필자 주요 이력 

▲전 중앙일보 경제부국장, 도쿄특파원 ▲전 서울대 공과대학 초빙교수 ▲전 한양대 기술경영학 석좌교수 ▲전 경기도 경기과학기술진흥원 원장 ▲현 가천대·호서대 초빙교수 ▲현 아주경제 논설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