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식 칼럼] 중대선거구제는 생활정치의 첫걸음

2022-04-11 05:00

임진석 굿닥 대표 [사진=임병식 위원]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74명이 일주일 넘게 농성 중이다. 정의당 원내 수석부대표 이은주 의원도 8일부터 단식농성으로 가세했다. 어쩌다 172석을 가진 거대 집권여당이 농성하는 상황이 벌어졌을까. 또 20대 대선 때만 해도 서로 냉랭했던 민주당과 정의당이 손을 잡은 이유는 왜일까. 두 정당이 한 목소리를 내는 이유는 기초의원 중대선거구제 도입이다. 선거구를 통합해 선거구당 기초의원 3~5명을 뽑는 방향으로 바꾸자는 것이다. 6·1 지방선거에 적용하려면 15일까지는 공직선거법을 개정해야 한다. 한데 국민의힘은 부정적이다. 저마다 속셈은 달라도 기초의원 중대선거구제는 더는 외면하기 어려운 해묵은 과제다.

민주당은 사표 방지와 다당제 구현을 위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민주당은 21대 총선 당시도 연동형 비례제를 도입하면서 같은 이유를 들었다. 이후 비례위성 정당을 설립함으로써 말 뒤집기라는 비판을 받았다. 비록 민망한 전과가 있더라도 중대선거구제는 양당제 폐해를 극복하는 유효한 방안이다. 정의당 또한 중대선거구제에 목을 매고 있다. 1~2명만 선출하는 현행 선거제도 아래에서는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기 때문이다. 반면 3~5명을 선출하게 되면 정의당에도 기회는 있다. 이렇게 되면 거대 양당이 양분한 독점구도를 허물 수도 있다. 나아가 소수 정당이 가진 한계와 설움을 극복함으로써 외연을 넓히는 기회도 된다.

국민의힘은 불리한 정치 지형을 예상하며 반대하고 있다. 윤석열 당선인은 후보 시절 중대선거구제를 포함한 정치개혁 필요성에 공감했다. 그런데 대선 승리 이후 국민의힘은 말을 바꾸고 있다. 중대선거구제로 전환하면 상당수 지역에서 여소야대 의회가 우려된다는 판단에서다. 물론 국민의힘도 호남에서 지방의석을 확보할 가능성은 높다. 관건은 자신들이 호남에서 얻는 의석보다 민주당이 다른 지역에서 획득하게 될 의석이 훨씬 많다는 점이다. 수도권과 충청권은 물론 부산·경남과 대구·경북마저 불리한 상황을 상정하고 있다. 그래서 정권교체에는 성공했지만 사실상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을 걱정하고 있다.

20대 대선 득표율을 감안하면 예측 가능하다. 대선 당시 민주당은 부산 38.2%, 울산 40.8%, 경남 37.4%를 획득했다. 또 대구(21.6%)와 경북(23.8%)에서도 적지 않은 득표율을 기록했다. 또 호남과 수도권, 충청권은 상대적으로 유리하다. 이런 상황에서 정의당과 광역단체장 후보 단일화를 이뤄내면 대부분 지역에서 국민의힘을 압도할 수 있다. 민주당은 정의당이 필요로 하는 중대선거구제를 주도함으로써 단일화를 이끌어낸다는 전략이다. 국민의힘이 경계하는 시나리오도 여기에 있다. 민주당은 절충안을 내놓았지만 국민의힘은 시큰둥하다. 지방선거에서 패하면 국정 운영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판단이다.

하지만 중대선거구제는 지역 구도 타파와 양당 독점 구조를 해체하는 방안이다. 지금과 같은 제도 아래서 양당 독점은 심화될 수밖에 없다. 1명만 뽑다 보니 소수 정당은 배제된다.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지난 30여 년 동안 정당 이름을 바꿔가면서 독점적 지위를 누려왔다. 제3지대나 소수 정당이 성공하지 못한 이유도 여기에 기인하고 있다. 안철수 대통령직인수위원장은 양당 독점 청산을 주장하며 신당을 창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민주당과 국민의힘을 오가며 스스로 양당 한계에 갇혔다. 20대 대선에서도 안 위원장은 국민의힘과 합당함으로써 한계를 인정했다. 누구보다 중대선거구제 도입에 나서야 할 그의 침묵은 불편하다.

중대선거구제 도입과 관련해 국민의힘은 여론전에서 밀리는 형국이다. 민주당은 어떡하든 15일까지 공직선거법을 처리한다는 방침이다. 172석만으로도 충분히 가능하다. 민주당이 정의당과 손잡고 강행하면 국민의힘은 저지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 게다가 여론도 중대선거구제 도입에 긍정적이다. 더는 양당 독점과 이로 인한 지역구도를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데 공감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8일 새 원내대표로 권성동 4선 의원을 선출했다. 중대선거구제 처리를 놓고 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와 일전이 예상된다. 국민의힘은 대선 기간 중 선거제도 개편 필요성에 동의한 바 있기에 전향적으로 협상에 임해야 한다.

정치적 이해득실을 따져 선거제도 개편에 발목을 잡는다면 여론을 거스르는 일이다. 지방의회는 민주주의 뿌리다. 풀뿌리 민의를 수렴하는 지방의회부터 다양한 목소리가 있을 때 건강한 여론 형성이 가능하다. 국민의힘은 언젠가 다시 야당으로 돌아간다. 그때를 대비해서라도 긴 안목에서 정상적인 선거제도 마련에 힘을 모아야 한다. 기초의원 중대선거구제는 그 첫걸음이다. 영남과 호남 지방의회에 민주당과 국민의힘, 정의당 의원이 고루 섞여 다양한 목소리를 낼 때 건강한 생활정치를 기대할 수 있다. 무지개가 아름다운 건 다양한 색깔이 조화를 이루기 때문이다. 경쟁이 없는 독점은 정체와 퇴행을 부를 뿐이다.

국민의힘은 중대선거구제를 반대하는 이유로 “선거구를 통합하면 광역의회와 기초의회 지역구가 동일해져 대표성이 겹친다”고 주장한다. 광역의회와 기초의회가 지역 현안에 대해 한 목소리를 내는 게 오히려 효율적이지 않을까. 반대하는 이유 치곤 궁색하다. 참고로 지난 7회 지방선거 결과 호남 지역 628개 선출직 공무원 가운데 국민의힘 당선자는 0명이다. 언제까지 이런 기형적인 지역 구도를 방치할 것인가. 이제 곧 집권여당이 될 국민의힘에 정상적인 사고가 작동한다면 묵과할 수 없는 문제다. 

 
임병식 필자 주요 이력

▷국회의장실 부대변인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위원 ▷한양대 갈등연구소 전문위원 ▷서울시립대 초빙교수 ▷전북대 특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