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품의 못(潭), 문예의 볕(陽), 담양의 축복
2022-04-02 21:07
서평 겸 독후감 《문향 예향 의향 대나무 숲 담양을 거닐다》
담양이라고 하면 두 가지를 기억하고 있다.
내 친구 이종범 교수(조선대 사학과)가 16세기 선비들의 정신세계를 추적한 사림(士林) 열전, ‘소쇄원의 바람 소리’를 보내준 것이 그 첫째다. 소쇄(瀟灑)의 뜻을 몰랐던 나는 사전을 뒤져서 비로소 맑고 깨끗하다는 의미를 알게 되었다. 담양에 소쇄원을 만들기 시작한 양산보(梁山甫)의 호가 소쇄였다.
어린 시절의 우리 집 뒤로 대나무밭이 펼쳐져 있었다. 그래서 대나무숲의 바람결 수런거림이 바로 ‘소~쇄~’처럼 들렸던 것만 같다. 사시사철, 서걱이는 댓잎의 마찰음, 비바람이라도 스치면 더욱 요란해지던 그 ‘소쇄’가 나의 유년시절 밤잠을 깨우곤 했다. 아하, 담양 대나무 고을, 선비들은 그 소리에 정신을 가다듬고 커갔던 모양인가.
두 번째는 고재호 전 대법관과의 인연이다.
담양 창평에서 나고 자란, 그분이 ‘법조 반세기’(박영사)라는 회고록을 남기셨는데, 우연히도 내가 법조기자 시절 ‘고스트 라이터’로서 집필을 도왔다. 그는 기품있는 원로였다. 어느 날, 대통령이 재벌가에 두 번째로 결혼시키는 기사를 보면서, “현직에 있으면서, 이건 왕조사에도 없는 염치없는 짓이야. 종국에는 불행한 얘기 들을 거야.”라고 독백처럼 탄식했다. 훗날 대통령 집안의 겹친 재산 다툼, 이혼 송사를 보면서 그분의 통찰에 새삼 놀라곤 했다.
두 저자 황호택 이광표, 스토리텔러로 변신
황호택 이광표의 저서 ‘문향 예향 의향 대나무 숲 담양을 거닐다’를 읽었다.
이미지로만 간직해 오던 추억의 거리를 답사할 수 있었다. 가보고 싶었지만 꿈을 이루지 못한 소쇄원을, 그리고 창평 마을을, 두 필객(筆客)의 ‘글 사위’에 얹혀 흥겹게 거닐 수 있었다. 황호택은 기자로서, 1982년경 그 난삽한 재판소 기록 가운데서 유시민의 항소이유서를 발굴해냈다. 그 방대 요란한 유시민 특유의 ‘썰’을 800자로 온축해, 동아일보에 실어 장안의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어쩌면 황호택의 눈썰미와 필력이 아니었다면, 유시민은 그저 그런 열혈청년이거나, 평범한 정치 건달로 조락(凋落)했을지도 모른다. 황호택은 1987년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운 기자이기도 하다. 그의 저서 《박종철 탐사보도와 6월항쟁》은 저널리스트 지망생들의 필독서가 되었다.
송강 정철과 면앙정 송순은 가사(歌辭) 문학의 최고봉으로 꼽힌다.
이 책을 읽으면서, 새삼 그들이 조선의 싱어송라이터였다고 생각한다. 가(歌)는 노래이고 사(辭)는 말과 글이니, 노래하는 음유시인을 싱어송라이터라고밖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지 아니한가? 그들에게 통기타만 없었을 뿐이다. 그렇게 느끼게 한 까닭이 책에 있다. ‘하얀 나비’를 부르고 33살 나이에 요절한 싱어송라이터 김정호의 뿌리가 담양이다. 담양 출신의 전설적인 명창 박동실이 그의 외할아버지, 국악인으로 영화 ‘서편제’의 실제 모델인 박숙자가 김정호의 어머니다.
싱어송라이터 김정호는 ‘하얀 나비’에서 노래한다.
꽃잎은 시들어요 슬퍼하지 말아요
때가 되면 다시 필걸, 서러워 말아요
450여 년 전, 송순은 상춘가(賞春歌)에서 노래했다.
꽃이 진다 하고 새들아, 슬퍼 마라
바람에 흩날리니 꽃의 탓이 아니로다
이쯤 되면 뮤즈의 신(음악혼)이 450년 세월 건너 담양 핏줄 김정호에 빙의한 것을 공감하지 않으랴. 김정호는 자기 노래만 작사 작곡한 게 아니고, 어니언스의 ‘작은 새’ ‘편지’ 같은 주옥같은 곡들을 만들고 작사했다. 21살에 데뷔하고 33살에 이승을 떠났으니, 12년여 불꽃처럼 타올랐던 그의 통기타로 읊조린 가사(歌辭) 인생이 덧없고 아쉽기만 하다.
그러나 송강 정철은 송순이나 김정호와는 결이 다른, 정치중독자였다.
그의 사미인곡(思美人曲)은 임금에게 쏟아낸 짝사랑의 문자폭탄이다. ‘내 병은 임금의 탓이로다, 차라리 죽어 호랑나비 되리라, 꽃나무 가지마다 앉았다가, 향기 묻힌 날개로 임의 옷에 옮아가리, 임이야 그 호랑나비가 나인 줄 모르셔도, 나는 끝내 임을 따르려니!’ 저자 이광표는 이 권력 스토커를 연민한다. “정철은 문제적 인물이다. 이토록 아름다운 문학을 창작한 인물이 이렇게 처절한 권력투쟁의 한복판에 있었다니. 권력의 봉우리가 높았기에 그 골짜기도 깊었다.”라고 정치와 문학의 비극적 만남, 한많은 ‘관직(官職)주의자’의 부침을 안쓰럽게 바라본다.
담양의 역사와 문화는 이 책에 넓고 깊게 펼쳐진다.
대나무와 가사(歌辭) 문학과 누정(樓亭) 원림(園林)이 빚어낸 구국 애족의 투혼, 교육 열정의 담양 인걸들이 등장한다. 임진왜란에 목숨을 바친 고경명과 아들 종후 인후 3부자의 충절, 그들의 창평 핏줄을 이은 한말 의병장 고광순의 대쪽 같은 순절(殉節)이 조명된다. 또 고경명의 11대손 고정주는 고광순과는 달리 근대 교육을 통한 구국에 매진한다.
고정주는 1906년 영학숙(英學塾)을 세우고 영어와 신학문을 가르쳤다. 서울에서 이표라는 선생을 데려다 영어 일어 수학 역사 지리 등을 가르쳤는데, 그 제자가 김성수 송진우 현준호(은행 설립자) 등이다. 2년 뒤 배움터는 창흥의숙(昌興義塾)으로 확대 개편되었다. 서세동점의 도도한 근대화 물결을 이 남도의 깊은 담양 고을에서, 가슴 열고 받아들이고자 한 개화의 정신! 그 시절의 척박한 환경과 민의 역량에 비추어 볼 때 참으로 눈물겨운 몸부림 아닌가.
구국 충의와 개화 교육의 발원지, 담양만이 아니다.
옛것만 있는 게 아니라 근대의 흔적도 풍부하고, 엄숙한 문학만이 아니라 서편제 같은 풍류도 있다. 옛날 판소리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세련된 대나무파이프오르간도 있고 미디어아트도 있다. 슬로시티 창평마을의 고택만 있는 것이 아니라 싱그러운 카페도 많다. 대나무만 있는 줄 알았는데 이국적인 메타세쿼이아도 즐비하다. 그저 오래되어 익숙한 것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다양하고 새로운 것들과 어울려 은근히 역동적인 문화를 형성하고 있었다.
고경명 장군의 후손들 구국 의병과 근대교육 나서다
‘천년 담양’이란 문구와 문장(紋章․심볼마크) 소개도 인상적이다.
담양이란 지명이 생긴 지 1000년이 되던 2018년, 담양군은 그 천년을 기억하고 앞으로의 1000년을 설계하기 위해 ‘천년 담양’을 선포했다. 그러곤 문장을 만들었다. 이 땅에서 1000년을 넘지 않은 곳이 없지만, 담양의 1000년은 무언가 다르다. 담양의 문장은 ‘천년 담양’ 문장과 12개 읍․면 문장 등 모두 13개다. 문장들의 디자인을 해독해보면 담양의 역사와 내력, 문화와 풍속이 한눈에 쏙 들어온다. 담양군 전체를 상징하는 천년 담양 문장은 담양의 못(潭)과 볕(陽)을 상징하는 태양, 죽녹원을 상징하는 대나무, 누정 문화를 상징하는 정자와 연못과 초목과 건물의 창, 산수정원을 상징하는 구름과 초목과 폭포, 가사 문학을 상징하는 책 등을 아이콘처럼 디자인해 넣었다.
그러곤 화룡점정으로 ‘SINCE 1018’이라는 문구를 넣었다. 편안하고 재미있다. 숨은그림찾기 하듯 저게 무얼까 하며 계속 들여다보게 만든다. 다른 고을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담양의 특징이었고, 그건 결국 담양 사람들의 자부심에서 나온 것이었다.
담빛예술창고의 대나무파이프오르간 연주도 명소가 될 것이다.
담빛예술창고는 옛 양곡창고를 리노베이션해 조성한 문화예술 공간이다. 이곳에 담양의 이미지를 살려 대나무 파이프오르간을 제작해 설치했고 매주 주말 연주회를 갖는다. 주말이 되면 연주회가 열리는 담빛예술창고 카페에는 사람들이 몰린다. 담양에서 파이프오르간 연주를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은 신선한 충격이다.
저자들은 이러한 담양의 매력을 시심(詩心) 가득한 필치로 담아냈다.
전체적인 컨셉을 문향(文鄕), 예향(藝鄕), 의향(義鄕)으로 잡았고 1부 ‘느림의 미학’, 2부 ‘영산강에 유유히 흐르는 역사’, 3부 ‘가사 문학과 원림’, 4부 ‘왕대밭의 미래 유산’, 5부 ‘담양의 뉴트로와 음식 문화’로 구성했다. 남양주 편과 달리 이 책에선 담양의 다양한 음식도 함께 소개했다. 요즘의 여행은 무릇 식도락이 함께 해야 팔리기 때문이리라.
황호택 이광표 두 저자는 공히 나와 함께 사회부와 문화부에서 몸을 부대끼며 일해본 기자들이다. 양인은 동아일보를 대표하는 기자로 컸고 논설위원으로 필명을 날렸다. 하지만, 이들 두 문사(文士)의 잠재된 끼를 한껏 발산시키기엔, 사실 보도와 공론(公論)에 충실해야 하는 대신문의 지면은 너무 비좁았다. 이제야 기자를 벗어나서, 분방하게 역사와 문화를 기름지고 유장하게 소개하는 ‘스토리텔러’가 되었다. 그런 두 저자는 기품의 못(潭), 문예의 볕(陽), 담양의 축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