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이 치솟는 원자재 가격…국내 기업도 '발등의 불'

2022-03-10 06:00
유가 급등에 항공·해운 직격…대한항공, 유류비 지출 전년 동기 2배 이상
시멘트 업계, 러시아산 유연탄 높은 의존도에 가격 인상 단행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에 원자재 값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특히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한 서방 제재에 러시아가 ‘자원 무기화’로 맞불을 놓고 있어 우리 산업계를 둘러싼 공급망 불투명성이 극에 달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9일 업계와 외신 등에 따르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미국의 원유 수입 금지에 맞서 자국 원자재에 대해 수출 금지 명령을 내렸다. 러시아의 주요 수출 원자재는 원유, 천연가스, 알루미늄, 티타늄, 니켈 등으로 대부분 기간산업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유럽의 경우 가스 약 40%, 원유 약 25%를 러시아에서 수입할 만큼 절대적 의존도를 보이는 중이다. 

국내 기업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원유 수입 물량에서 러시아산은 5.6%인 5374만배럴로 작지 않은 비중을 차지한다. 러시아산을 대체하더라도 하루가 다르게 오르고 있는 국제유가를 감당하기 어려운 지경이다.

국제유가 급등은 당장 항공과 해운업계를 강타하고 있다. 항공은 매출 원가에서 최대 30%, 해운은 최대 25%가량을 차지할 정도로 유류비 비중이 절대적이다. 대한항공은 유가 상승이 본격화한 지난해 4분기에만 유류비로 5891억원을 지출해 전년 동기 대비 2배 이상인 128.2% 높아졌다. 국내 최대 컨테이너선사인 HMM은 지난해 3분기 전체 매출원가(4조3941억원)에서 약 16%인 6814억원을 연료비로 지불했다. 4분기에는 연료비 증가세가 가팔라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에 원·달러 환율까지 1200원대를 돌파하면서 연료비를 달러로 결제하는 항공사들과 해운사들이 이중고를 떠안았다. 대한항공은 환율이 10원 오르면 외화평가손실이 약 490억원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철강과 시멘트 업계도 원자재 가격 폭등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철광석 가격은 지난 4일 톤(t)당 145.14달러로 일주일 만에 6% 넘게 올랐다. 현대제철은 철근 가격을 지난달 t당 2만9000원 인상한 데 이어 이달에도 3만1000원 올리는 등 2개월 연속 인상했다. 세아베스틸도 지난 7일 출하분부터 특수강 제품에 대해 t당 최대 15만원을 올려 원가 인상분을 반영했다. 철강제품 가격 인상으로 자동차와 조선, 건설 등 연관 산업은 단가 인상 압박에 처했다. 

지난해 총사용량 중 16%를 러시아에서 수입한 유연탄도 일주일 만에 가격이 무려 22.2% 오르면서 t당 172.10달러를 기록 중이다. 이에 러시아산 유연탄 의존도가 높은 시멘트 업체들은 최근 레미콘업계에 시멘트 가격을 t당 7만8800원에서 9만3000원으로 18% 인상하겠다고 통보했다.

수출 주력 산업인 반도체도 공급망 충격에 고스란히 노출됐다. 글로벌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이번 사태가 반도체 산업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칠 것으로 분석했다. 팔라듐과 네온 가스 등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원자재에서 러시아는 팔라듐 공급량의 44%를, 우크라이나는 네온 가스 공급량의 70%에 이르는 절대적 비중을 차지한다.

특히 무디스는 반도체 공급난이 심각한 완성차 업계가 큰 타격을 받을 것으로 전망했다. 단순히 수급 문제로 끝나는 것이 아닌, 반도체 가격 상승으로 인한 생산 원가 압박까지 더해질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항구 한국자동차연구원 연구위원은 “이번 사태가 장기화하면 차량용 반도체 공급난 해소가 더욱 늦춰질 수 있다”면서 “그동안 가격 인상을 최대한 억제해왔던 완성차 업체들도 가격 인상을 현실화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EPA·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