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대한항공-아시아나 '조건부 승인'...10년 간 슬롯·운수권 이전 조건

2022-02-22 12:00
미국·EU·일본·중국 등 6개국 결론이 관건

[사진=연합뉴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합병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가 '조건부 승인' 결정을 내렸다. 두 회사가 기업결합 신고를 접수한 지 1년 만이다. 그러나 실제 거대 통합 항공사가 출범하기까지는 미국, 영국, 호주, 유럽연합(EU), 일본, 중국 등 6개국의 심사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공정위는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의 주식 63.88%를 취득하는 기업결합을 조건부 승인하기로 했다고 22일 밝혔다. 공정위는 향후 10년간 국내 공항 슬롯(시간당 가능한 비행기 이착륙 횟수)과 운수권(정부가 항공사에 배분한 운항 권리) 이전 등을 조건부로 내걸었다. 경쟁 제한성이 있는 국내외 여객 노선에 대해 경쟁항공사의 신규진입 등을 촉진하기 위해서다.

심사 결과 공정위는 두 회사 국제선 중복노선 65개 중 26개, 국내선 중복노선 22개 중 14개에서 경쟁을 제한할 우려가 크다고 판단했다. 다만 국내외 화물 노선과 그 외 항공 정비시장 등에 대해서는 경쟁 제한성이 없다고 봤다.

우선 경쟁 제한성이 있는 26개 국제노선과 8개 국내노선 대상 신규 항공사의 진입과 기존 항공사 증편 시 두 회사가 보유한 국내 공항 슬롯 반납을 의무화하도록 했다. 이들이 반납해야 할 슬롯 개수 상한선은 노선별로 결정된다. 슬롯 반납 및 이전 절차, 실제 이전될 슬롯의 개수와 시간대, 이전 대상 항공사 등 슬롯 이전의 구체적인 내용은 실제 신규 항공사의 진입 신청 시점에 공정위가 국토교통부와 협의해 결정하기로 했다.

아울러 조치대상 26개 국제노선 중 운항에 운수권이 필요한 총 11개 노선에 대해 신규항공사 진입, 기존항공사 증편 시 당사회사의 사용중인 운수권 반납 의무화하기로 했다. 운수권 반납과 이전 조치 역시 실제 신규 항공사의 진입 신청 시점에 공정위가 국토부와 협의해 결정할 방침이다.

다만 공정위는 구조적 조치가 이행될 때까지 발생할 수 있는 소비자 피해를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운임 인상 제한, 공급 좌석 수 축소 금지 등의 조치를 함께 부과하기로 했다.  

우선 노선별·분기별·좌석 등급별 평균 운임을 2019년 운임 대비 물가 상승률 이상으로 인상을 금지한다. 공급 좌석 수 축소도 금지된다. 공정위는 노선별 공급 좌석 수를 코로나 사태 이전인 2019년 수준의 일정 비율 미만으로 축소를 막겠다고 밝혔다. 

마일리지의 경우 대한항공과 아시아나의 마일리지 제도를 두 회사가 2019년 말 시행한 제도보다 불리하게 변경하지 못하도록 했다. 또한 기업결합일로부터 6개월 이내에 양사의 마일리지 통합방안을 제출하고, 향후 통합방안은 공정위 승인을 얻어 시행하도록 했다.

시정조치는 구조적 조치가 완료되는 날까지 이행해야 한다. 공정위는 "노선별 구조적 조치가 모두 이행돼 신규 항공사의 진입이 완료되면 노선별로 행태적 조치의 이행 의무는 종료된다"고 밝혔다.

조성욱 공정위원장은 "이번 공정위 조치는 항공업계의 경영 불확실성을 조기에 해소하고 양사 통합에 따른 소비자 피해 가능성을 차단하면서 향후 우리나라 항공운송시장의 경쟁시스템이 유지·강화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항공운송 서비스 소비자와 국민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큰 점을 고려해 최대한 신속하고 면밀하게 심사를 진행했고, 실질 심사국 중 가장 선제적으로 결론을 도출했다"고 말했다.

다만 공정위가 내린 '조건부 승인'으로 두 회사의 결합이 바로 완료되는 건 아니다. 해외 경쟁 당국에서 불허하면 두 회사의 결합은 무산될 수 있다. 해외 경쟁 당국의 심사가 점차 까다로워지고 있어 심사 결과를 예측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고병희 공정위 시장구조개선정책관은 "외국 경쟁 당국은 자기네 노선 한두 개에 대한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이라며 "민감한 내용이라 해외 당국의 결론을 예단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앞서 터키, 대만, 베트남, 말레이시아는 두 회사의 결합을 승인했고 태국과 필리핀은 두 회사 결합이 사전 심사 대상이 아니거나 신고 대상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현재 두 회사 결합 심사를 진행 중인 국가는 미국, 영국, 호주, EU, 일본, 중국 등 6개국이다.

이 중 미국, EU, 일본, 중국은 기업 결합을 반드시 신고하고 승인을 받아야 하는 필수신고국가다. 영국과 호주는 신고가 필수는 아니지만 향후 당국 조사 가능성을 고려해 대한항공이 자발적으로 신고한 임의신고국가다.

공정위는 외국 경쟁당국의 심사상황을 지속해서 모니터링하고, 필요하다면 전원 회의를 다시 개최할 계획이다. 공정위는 "추후 전원 회의 의결을 통해 외국 경쟁 당국의 심사 결과를 반영한 시정조치 내용을 최종적으로 확정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