㉖메타세쿼이아 가로수 길과 메타프로방스
2022-02-23 08:22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
1970년대 초반 담양군 담양읍~전북 순창군 금과면을 달리는 국도 24호선 약 8㎞ 구간에 메타세쿼이아 2000여 그루를 심어 가로수길이 조성됐다. 그로부터 50년이 지나면서 이국풍의 키 큰 나무들이 하늘을 찌르고 도열한 모습은 로봇 병정들의 사열식 같다. 전국에서 가장 이름이 높은 이 가로수길이 2000년 5월 국도 확장공사의 불도저에 밀려 사라질 뻔한 위기에 처했으나 담양 군민단체들을 중심으로 군민들이 힘을 합쳐 막아내 지금은 관광명소로 자리 잡았다.
2002년에는 산림청으로부터 ‘가장 아름다운 거리 숲’으로 선정됐고 건설교통부가 주는 ‘한국의 아름다운 길’ 최우수상도 수상했다. 1980년 5월 광주민주화 운동을 다룬 ‘화려한 휴가’는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로부터 시작한다. 이 영화에 관객이 많이 들면서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 관광객이 두 배로 늘었다.
메타세쿼이아 길은 사계절 관광지다. 봄에는 연녹색 새싹이 돋아나고 여름에는 울창한 녹색 터널을 만든다. 메타세쿼이아는 낙엽이 지는 침엽수다. 가을에는 붉은 빛에 가까운 갈색이 되었다가 바늘잎이 다 지고 나면 하얀 눈옷으로 갈아입는다.
그런데 2차대전이 한창이던 1941년 양쯔강 상류인 쓰촨성(泗川省)의 마타오치(磨刀溪)강에서 산림공무원이 35m 높이의 거대한 나무를 발견하였다. 그는 처음 보는 신기한 나무의 표본을 난징대학에 보냈다. 그다음 해 베이징대학 부설 생물학연구소가 화석으로만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진 메타세쿼이아임을 밝혀냈다. 마타오치 강 유역을 정밀조사한 결과 약 4000 그루가 강 연안에 자라고 있었다. 양쯔강 상류에서 발견된 이 나무는 그 후 중국 미국 일본을 거쳐 한국에 들어와 담양의 가로수길에 심어졌다.
메타세쿼이아는 포항지역에서도 화석으로 발견돼 한국에서도 석탄기 이전에 자생(自生)했음이 확인됐다. 메타세쿼이아는 낙우송(落羽松)과다. 공원에 가면 메타세쿼이아와 낙우송을 함께 심어 놓은 곳이 더러 있다. 두 나무의 외양이 거의 같아 구분이 어렵다. 메타세쿼이아는 잎이 마주 나고, 낙우송은 어긋난다. 낙우송은 밑동 주변에 기근(氣根‧공기뿌리)이 혹처럼 솟는다. 깃털 우(羽)자가 들어간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낙우송과 같은 과(科)인 메타세쿼이아는 깃털 같은 잎가지가 통째로 떨어지지만 낙엽송(일본 잎갈나무)은 침엽(針葉)이 하나씩 떨어진다.
담양 메타세쿼이아 길 입구 안내판에는 현신규 박사가 메타세쿼이아를 한국에 들여와 가로수와 조경수로 심었다는 내용이 간략하게 적혀 있다. 그러나 이와 다르게 전남대학교 치과병원 입구에는 수령 70년의 메타세쿼이아 옆에 ‘담양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의 모수(母樹)’라는 안내판이 서 있다. 담양 메타세쿼이아 길의 어미는 과연 어느 쪽인가.
전남대 치과병원의 메타세쿼이아는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광주에서 양묘장을 경영하던 정하도씨가 일본에서 묘목 10여 그루를 최초로 들여와 그중 한 그루를 전남대에 연구용으로 기증해 치과병원 입구에 심었다. 전남대는 이 어미나무의 번식 방법을 체계적으로 연구해 1960년대 학술림 양묘장(지금의 용봉동 전남대 수목원)에 식재해 100여 그루의 울창한 숲을 이루게 되었다. 담양의 유명한 메타세쿼이아 가로수는 이 나무를 재증식해 조성된 것이라는 게 전남대 치과병원 안내판의 설명이다. 자료 출처를 ‘전남대 학술림 사료집’이라고 밝혀놓았다.
김정호는 담양 외가를 통해 내려온 판소리의 가락과 서정을 대중가요로 표현했다. 이경엽 목포대 국문과 교수는 노래비에서 ‘김정호의 음악은 담양 광주 소리의 대중음악 버전’이라고 풀이했다.
음~ 그리워 말아요 떠나갈 임인데
꽃잎은 시들어요 슬퍼하지 말아요
때가 되면 다시 필 걸 서러워 말아요
필자도 김정호의 또래 세대다. 우리 세대는 애조 띤 가락에 실린 '하얀 나비'의 가사를 대개 외우고 있다. 김정호는 스물한 살에 ‘이름 모를 소녀’로 데뷔했다. 어니언스의 ‘작은 새’와 ‘편지’ 등 서정성 짙은 히트곡들을 그가 작곡했다. 김정호는 재능을 다 꽃 피우지 못하고 서른셋의 나이에 폐결핵으로 요절했다. 기타를 치고 있는 그의 동상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애틋한 생각에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왜 천재는 요절하는가. 광주에 '김정호 거리'가 만들어졌으니 김정호 답사는 광주를 거쳐 담양의 노래비까지 와야 완성될 수 있다.
메타세쿼이아 길 주변에 호남기후변화 체험관, 개구리 생태공원, 기후변화 지표식물원, 곤충박물관 등으로 생태교육 코스를 만들어 어린 자녀들을 데리고 오기에 좋게 꾸며 놓았다. 호남기후변화 체험관은 대바구니 모습으로 건축됐다.
체험관 입구에 들어서면 ‘애기사랑’ 느티나무 고사목이 있다. 1998년 수북면 대방리 심방골에 있는 200년 수령의 느티나무 줄기 사이에 씨앗이 떨어져 애기느티가 자라기 시작했다. 2012년 8월 전남 내륙까지 휘몰아친 태풍 볼라벤이 느티나무 거목을 쓰러뜨렸다. 고사목의 둥치를 잘라서 이곳 기후변화체험관으로 옮겨왔는데 고사목이 너무 커서 나무를 먼저 설치한 후 건물을 시공했다. 애기느티는 고사목에 뿌리를 내리고 푸른 잎을 틔우며 건강한 모습으로 자라고 있다.
버트런드 러셀이 ‘행복의 정복’에서 말한 것처럼 인생은 곧 막을 내리는 고립된 개체가 아니라, 최초의 세포로부터 멀고먼 미지의 세계로 이어지는 생명 흐름의 한 부분이다. 태풍에 쓰러져서도 애기느티를 보호해 자신의 DNA를 후세에 전달한 고목 느티에서 우리는 지구와 인류라는 거대한 생명의 나무로 생각을 확장해나갈 수 있다.
메타세쿼이아 길로 둘러싼 삼각형 호수는 원래 논이 있던 자리다. 호수 안에는 작은 섬이 있다. 기후변화로 기온이 올라가면서 삼각형 호수에서도 철새의 텃새화를 관찰할 수 있다. 기후 감각을 잃어버린 여름철새인 물총새나 겨울철새인 흰뺨검둥오리를 아무 때나 목격할 수 있다고 한다. 바로 옆에는 공룡들이 활보하는 ‘어린이 프로방스’가 있다.
메타 프로방스, 담양에서 묵고가세요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 옆에 조성된 메타프로방스는 죽녹원과 메타세쿼이아 길을 찾아온 가족 관광객들이 당일 떠나지 않고 담양에서 하루 더 묵을 수 있도록 기획 조성된 유럽풍의 관광단지. 프로방스는 이탈리아의 경계에 있는 프랑스 남동부 지방. 세계적인 휴양지 니스, 지중해 연안의 가장 큰 항구 마르세유, 고흐가 사랑한 마을 아를 등이 모두 이 지역에 있다. 메타프로방스는 프로방스에 메타세쿼이아의 메타를 빌려다 붙인 관광타운이다. 2013년만 해도 논밭이던 곳이 남유럽풍의 도시로 변신했다.
담양군은 인근에 5만㎡ 규모의 농어촌테마공원을 조성할 계획이다. 이 공원에는 농어촌의 삶을 직접 느껴볼 수 있는 체험학습장과 특산물 판매장 등이 들어선다. 메타프로방스에 숙소를 정하고 담양호와 추월산, 죽녹원, 관방제숲, 삼지내 마을, 정철과 송순의 누정들을 둘러보며 맛집을 찾는 슬로 투어는 담양 관광의 특색이다.
<황호택 논설고문‧카이스트 문술미래전략대학원 겸직교수>
후원=담양군(군수 최형식) 뉴파워프리즈마(회장 최대규)
참고문헌
편집인: 이해섭 장광호 국근섭, 발행인: 담양가로수군민연대 담양군 《담양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 이야기》 2018, 이룸기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