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서는 리걸테크 '유니콘' 나오는데…국내는 '답보'
2022-02-24 11:11
리걸테크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해외 리걸테크 투자 전문 벤처펀드는 매년 13%가량 결성액이 증가했다. 반면 국내에서는 각종 규제로 신생 리걸테크 기업들의 진입을 막는 장벽이 높아 투자 자체도 적다. 이 때문에 국내 리걸테크 기술 발전도 뒤처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해외에서는 '유니콘' 기업도 탄생···국내는?
24일 법조계에 따르면 해외에서는 기술 발전에 발맞춰 규제 장벽이 낮은 편이다. 영국·독일 등은 변호사와 비변호사가 이익을 공유하는 형태의 모델도 가능하다. 변호사, 회계사, 세무사 등 서로 다른 자격을 가진 전문가 간 동업도 허용된다.
미국에서는 ‘렉시스 넥시스(Lexis Nexis)’가 최초로 법률검색 서비스에 뛰어들었고, ‘웨스트로(westlaw)’가 방대한 법률문서 데이터베이스를 기반으로 검색 서비스 산업에 뛰어들었다.
2016년 미국 대형 로펌 베이커앤드호스테틀러가 스타트업 기업 로스인텔리전스가 개발한 인공지능(AI) 변호사 로스(ROSS)를 사용하는 계약을 체결했다는 소식이 전 세계에 충격을 준 이후 리걸테크 산업은 빠르게 발전했다.
실제로 2017년 미국 위스콘신주 대법원은 스타트업 기업인 노스트포인트가 만든 AI 기기 '컴퍼스'를 활용해 형사 재판 피고인에게 중형을 선고한 지방법원 판결이 '타당하다'고 인정했다.
리걸테크 기업들은 이후에도 꾸준히 성장했고, 기업가치 10억달러(약 1조원) 이상으로 평가받는 클리오(Clio) 등 유니콘도 탄생했다.
해외에서는 기술 발전과 함께 시장 가능성도 높아져 리걸테크 시장에 대한 글로벌 투자 금액도 증가세다. 5년간 투자 규모는 미국 19억6000만 달러(약 2조2171억원), 영국 1억1500만 달러(약 1300억원)에 달한다. 그에 비해 국내 투자는 1200만 달러(약 135억원) 수준으로 크게 차이가 난다.
해외 리걸테크의 발전은 'e디스커버리'와도 관련이 있다. 디스커버리 제도는 영미법계 국가에서는 본안 재판 전 필수 절차로, 재판이 개시되기 전에 당사자 양측이 가진 증거 자료를 각각 수집·개시해 서로 공개하도록 한다.
디스커버리 제도에서 디지털 정보에 대한 취급 기준을 정한 것이 'e디스커버리(e-Discovery)', 즉 전자정보개시다. e디스커버리 프로세스에 대응하며 진화하고 있는 분야가 리걸테크다.
해외에서는 2000년대초 e디스커버리용 소프트웨어 개발이 시작됐고, 2011년 이후 거대 IT 기업이 리걸테크 산업에 뛰어들면서 시장도 급성장하는 계기가 됐다.
이후 리걸테크는 e디스커버리나 디지털 포렌식, 법률정보 데이터베이스 검색, 변호사 검색 등 각 분야에서 활용되기 시작했다. 해외에서는 이른바 'AI 검사' 'AI 변호사' 등도 등장했다. 영미권에서는 이미 2017년 유명 로펌 소속 변호사 100명과 AI 변호사가 판결을 예측하는 대회가 열렸고, AI 변호사가 압도적으로 승리를 거두기도 했다.
이에 비해 국내는 2009년 로스쿨이 도입된 이후 법률 플랫폼에 대한 논의가 시작됐다. 지난해 6월 코리아스타트업포럼이 실시한 설문에 따르면 국민 10명 중 8명은 법률시장에도 IT 기술 도입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법률 플랫폼을 이용하는 이유는 다수 사례를 통한 법률정보 획득, 시간과 비용 절약 순이다.
로톡을 비롯해 온라인 법률 상담 서비스 '헬프미'와 네이버 전문지식 상담 플랫폼 '지식인 엑스퍼트' 등이 변호사 상담을 지원하고 있다. 일부 대형 로펌도 업무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리걸테크를 도입했다.
최근 법무법인 대륙아주는 ‘도큐브레인(DocuBrain)’을 도입해 사용하고 있다. 도큐브레인은 로펌의 노하우인 내부 법률문서를 포함해 관련 법령, 판례들까지도 한번에 검색해주는 프로그램이다. 소송을 진행함에 따라 판례가 쌓인다면 경쟁력이 더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김정동 변호사는 "단순히 업무에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교육 목적에서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법조계에 첫발을 들인 변호사는 일종의 '도제식' 교육을 받아 담당 변호사들의 지식만 흡수할 수 있었다면 리걸테크를 통하면 여러 변호사들의 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는 설명이다.
◆ "기술 발전, '홍역' 거쳐야"
최근 일부 국내 업체는 1분 내 고소장을 자동으로 작성해 주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나름 기술 성과도 나오고 있지만 상당수 전문가들은 국내 리걸테크 기술이 초기 단계라고 평가한다.
업계에선 투자자들이 민간 법률 플랫폼 이슈가 해결된 이후 투자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이면서 리걸테크 업계의 연구개발(R&D)도 사실상 멈춰 섰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해외에서 인정되는 국내 변호사법의 동업 금지 규정 등도 리걸테크 산업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고 업계는 평가한다. 앞서 변호사 단체들은 국내 리걸테크 선두 주자 격으로 평가받는 로톡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이에 대한 제재에 나서기도 했다. 임영익 인텔리콘 대표는 "미국도 리걸테크가 처음 나왔을 때 변호사들의 반발이 컸다"며 "변호사법 위반 고발도 잇따랐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리걸테크가 급성장했다"고 말했다.
국내에서는 법률 공공서비스 시스템이 잘 갖춰진 상태이기 때문에 리걸테크가 당장 발전하기는 어렵다는 전망도 나온다. 여기에 정부 측 무관심도 시장 전망을 어둡게 하는 요소로 분석된다. 지난해 9월 출범한 법무부 리걸테크TF 관계자는 "TF 논의가 리걸테크 산업 전반이 아닌 로톡과 변호사단체 간에 갈등을 촉발한 법률 플랫폼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보니 리걸테크 범위 설정이나 산업 성장을 위한 해법 등에 대한 논의는 사실상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