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초대석]석정훈 대한건축사협회장 "건축은 공공재, 건축사는 공인...사회적 소명감 가져야"

2022-02-14 18:00
석 회장, 대한건축사협회 의무가입 법제화 성공
건축사의 사회적 위상 강화되면 건축물 안전, 공간의 품격 올라가

석정훈 대한건축사협회장[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좋은 건물은 세상을 풍요롭게 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는 사회에 해악을 끼친다. 건축사가 공인으로서 스스로 더 엄격해져야 하는 이유이자 사회도 그에 걸맞은 존중과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의미다."
 
석정훈 대한건축사협회 회장은 최근 아주경제신문과 인터뷰하면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건축물은 과거와 현재, 미래가 소통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라면서 "건축사는 우리의 건축문화 유산을 후대에 물려줄 공인으로서 역할을 수행하는 만큼 사회적 책임감과 문화적 사명감을 갖고 일해야 한다"고 말했다.

석 회장의 건축사로서 소명은 '사람은 건물을 만들고, 그 건물은 다시 사람을 만든다'는 윈스턴처칠의 건축론과 맞닿아 있다. 건축사의 사회적 역할이 강화되면 최근 빈번하게 발생하는 안전사고 문제도, 공공에 피해를 입히는 무책임한 건축물들의 난립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석 회장은 "건축물이 한번 지어지면 그 건축물은 건축주 소유지만 그 주변을 지나다니는 행인, 지역사회, 후손들까지 다양한 사람이 직간접으로 건축공간 환경에 영향을 받는다"면서 "건축사가 필요로 하는 시간에 대한 사회적 합의, 노동의 정당한 대가를 치를 때 안전한 건물, 공간의 품격을 높이는 건축물이 탄생하고 그 혜택은 다수의 사람들이 누릴 것"이라고 말했다. 
 
◇"건축사는 국민 안전담당관··· '안전=비용' 논리 종식돼야"

대한건축사협회는 새해 첫 달부터 경사를 맞았다. 지난달 건축사의 대한건축사협회 의무 가입을 골자로 한 건축사법 개정안이 국회본회의를 통과했기 때문이다. 단일 협회에 건축사들이 의무 가입토록 한 조치는 22년 만이며 변호사, 변리사, 감정평가사협회 등에 이어 네 번째다. 눈부신 성과의 중심에는 석 회장이 있다. 그는 대한건축사협회 가입 의무화는 업계 자정작용을 강화해 건축의 공공성을 더욱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석 회장은 "의사는 인간의 생명을, 변호사는 인권을, 건축사는 건축물을 통해 국민의 안전과 삶의 질을 높이는 일을 담당한다"면서 "협회가 건축사들 스스로 공인 의식과 선비 정신을 갖출 수 있도록 다양한 교육 및 지원에 앞장서고, 이를 바탕으로 국가 건축정책 동반자 역할도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건축물 안전을 강화하기 위해선 건축사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석 회장은 "건축사는 건축의 탄생부터 소멸까지 생애주기 전 과정에 관여하며 오케스트라 지휘자와 같은 총괄 조정자 역할을 한다"면서 "국가 건축정책의 핵심은 건축물의 안전인데, 이런 안전을 책임질 총괄 조정자로서 건축사 권위는 건축주, 시공자, 시행사보다 못한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최근 광주 공사장 붕괴 사태 등 잇따르고 있는 안전사고는 건축사에게 부여된 막대한 책임에 걸맞은 권한을 부여하지 않았던 게 주요 원인"이라며 "건축 환경에서 건축사는 대게 책임을 지지 못하는 자리에 있다가 지진, 건설현장 붕괴 등 안전사고가 발생하면 갑자기 관리 부실, 책임 부재의 원인으로 지목된다"고 꼬집었다.
 
석 회장은 "현재 건축시장은 '안전=불필요한 비용'이라는 논리가 지배하고, 특히 시행사가 시공사일 때는 건축사, 감리자들이 비용 논리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면서 "건축사가 안전상의 이유로 공사 중단을 명령하면 시공사가 도리어 건축사에게 근거 없는 위험으로 손해를 봤다며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인데 이런 환경에서는 건축사나 감리자가 독립적으로 자기 역할을 하기 어렵다"고 했다.
 
특히 "현장 감리자들은 대부분 건설사 출신이기 때문에 감리를 바라보는 관점이 국민의 인식 수준과 완전히 다르다"면서 "건축 과정에서 몇 가지는 빠져도 문제가 없다는 생각, 안전은 선택에 관한 문제라는 생각이 그동안 우리를 지배했다면 앞으로는 '안전'과 '건축물의 질'은 필수 사항이라는 인식의 대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이 북미나 유럽에 비해 건축 예산이 70~80% 저렴한 이유는 대부분 안전에 관한 비용이 제거됐기 때문"이라면서 "그동안 안전 문제에 관해 취해왔던 '징계 강화'는 진통제처럼 효과가 일시적인 만큼 이제 근본적인 처방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이제 한국도 안전에 대한 비용을 부담할 수 있을 만큼 국가경제가 성장했다"면서 "대내외 여건을 냉정하게 판단해 서서히 변화를 모색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덧붙였다. 

석정훈 대한건축사협회장[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주거대책=고층 아파트 수렴··· 건축문화·안전·주거 양극화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아

석 회장은 집값 안정에 대한 해결책이 도심의 고층 아파트 공급으로만 수렴되는 현 상황이 안타깝다고 했다.

그는 "유럽에는 초고층 건축물이 거의 없고, 미국도 1930년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제외하면 최근에는 거의 짓지 않고 있는 추세"라면서 "거의 모든 주택정책이 고층 아파트로 흘러가는 현 상황은 건축물의 안전과 질적인 문제, 주거 양극화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물론 건축사의 책임도 작지 않다. 그는 "그동안 건축사들도 서울 주거 환경이 빈약하다는 이유로 원룸, 다가구, 고시원, 초고층 아파트 설계에만 집중하다보니 소규모 주택의 삶의 질 회복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라면서 "주차장 때문에 1990년대 인기를 끌었던 필로티 구조의 다가구 주택이 20년이 지난 지금 불꺼진 동네, 범죄의 사각지대라는 새로운 사회문제를 야기하는 만큼 건축사들이 앞으로 주택을 지을 때 서민들 삶의 질 회복, 공동체의 가치 등에 더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석 회장은 정부가 건축 전문가들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 틀을 만들어야 한다고도 제언했다. 그는 "건축과가 다른 대학과 달리 5년제인 이유는 정부가 나름 건축문화 발전과 국민의 안전을 위해 건축 전문인력 양성에 힘쓰고 있기 때문"이라며 "하지만 이러한 인력의 활용을 단순히 시장의 경제 논리에만 의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현행법에는 설계자를 건설현장에서 배제하도록 하는 등 모순된 규정이 너무 많다"며 "설계자의 현장 참여와 감리자의 독립성 확보, 공사 중지에 따른 손해 면책 규정, 건축 분야별 책임 강화를 위한 건축사총괄조정제도 등 도입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석 회장의 다음 목표는 건축사의 사회적 위상 강화다. 그는 "1987년 건축사사무소를 개업하고, 처음 건축사로 활동할 때는 일거리가 많았는데 지금 후배들은 대가의 문제, 위상의 문제, 업무량의 문제 등 다양한 측면에서 고통을 받고 있다"면서 "건축사들의 설계 대가는 30년 전보다 퇴행했고, 준공식에 건물을 설계한 건축사의 자리가 없는 게 단적인 예"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런 분위기가 자리 잡은 데에는 시대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건축사들에게도 일부 책임이 있다"면서 "건축사들이 개성과 주장이 강하고, 독자적으로 업무를 하다보니 통일된 목소리를 내기 어려웠고, 그 결과가 지금 나타나고 있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이어 "협회 의무 가입을 시작으로 산적한 업계 과제를 하나씩 풀어가겠다"면서 "건축사들도 비난을 위한 비난이 아닌 무너진 업계의 생태계를 복원하려는 긍정적인 변화의 바람으로 이해해 달라"고 덧붙였다.
 
◇석정훈 대한건축사협회 회장은 누구?

연세대 건축공학과 학사·석사 출신으로, 태건축설계건축사사무소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2015년 서울시건축사회장을 시작으로 대한건축사협회 부회장, 세계건축사연맹(UIA) 2017 서울세계건축사대회 조직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석 회장은 2018년 대한건축사협회 회장에 취임해 지난해 협회 55년 역사상 최초로 연임에 성공했다. 임기는 2024년 2월까지 3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