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수비율 4.5%' 참여재판 위기…"사법신뢰도 회복 위해 제도 개선해야"

2022-02-08 14:49
국민참여재판 기피하는 법조계 분위기
입법조사처, '필수적 대상사건' 도입·법원의 재량권 제한 제시

국민들의 사법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도입한 국민참여재판이 저조한 채택비율로 위기를 맞았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코리아]

2021년 OECD 자료에 따르면, 2020년 각국의 사법제도 및 법원에 대한 신뢰도를 조사한 결과 우리나라는 43개국 중 41위를 차지했다. 법조계는 저조한 사법기관 신뢰도의 원인으로 국민들의 법감정과 실제 선고 양형 사이의 괴리를 지적했다. 사법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국민참여재판을 도입했지만 10여년이 지난 지금 국민참여재판은 저조한 활용률로 위기를 맞았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형사사법 신뢰회복을 위한 국민참여재판의 과제’ 보고서를 발간하고 국민참여재판 채택률을 높일 대책을 제시했다.
 
입법조사처 법제사법팀 김광현 변호사는 “국민참여재판의 순기능은 재판 참여를 통한 재판과 법원에 대한 신뢰 회복에 있다고 생각한다”며 “신뢰의 형성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점진적으로 개선해나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그 방법 중 하나로 국민참여재판의 활성화가 고려될 수 있다”며 “백문이 불여일견, 백견이 불여일행이라는 말은 국민참여재판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 국민참여재판 기피하는 법조계 분위기
국민참여재판은 ‘국민의 형사재판참여에 관한 법률’ 제2조 제22호가 정하고 있는 바와 같이 ‘배심원이 참여하는 형사재판’을 말한다. 법조계에서는 최근 들어 부쩍 줄어든 국민참여재판 진행률과 높아진 배제율, 철회율 등을 들어 국민참여재판 제도를 개선해야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국민참여재판 진행비율이 지속적으로 감소했다. [자료=법원행정처 사법지원실 '2008~2020년 국민참여재판 성과분석']

2020년 국민참여재판의 접수비율은 대상사건의 4.5%에 불과했다. 법원의 배제 비율도 최근 5년간 계속해서 증가 추세에 있으며, 피고인의 철회 비율 또한 높아지고 있다.
 
국민참여재판을 선호하지 않는 법조계 분위기도 직·간접적으로 피고인들의 철회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9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조사에서는 응답 판사 55명 중 52명(94.5%), 검사 52명 중 52명(100%), 변호사 237명 중 203명(85.7%)이 국민참여재판보다 일반공판을 더 선호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국민참여재판은 일반공판에 비해 시각자료 등 준비해야 할 것이 많아 선호하지 않는다”며 “일반 공판이었다면 빨리 끝날 사건도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하면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국민참여재판을 선호하지 않는 이유를 밝혔다.
 
입법조사처는 저조한 국민참여재판 채택비율을 높이기 위해 △필수적 대상사건 도입 △법원의 배제사유 구체화 두 가지 대안을 제시했다.
 
◆ 현행 ‘신청주의’ 기조 바꾼다... ‘필수적 대상사건’ 도입

우선 필수적 대상사건 도입은 국민참여재판 대상 사건의 전부 또는 일부를 반드시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하는 방안을 의미한다. 이는 현재 국민참여재판이 ‘신청주의’로만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을 바꿔보려는 노력이다.
 
국민참여재판법 제3조 제1항은 누구든지 국민참여재판을 받을 권리를 갖는다는 ‘신청주의’를 명시하고 있다. 또 제5조 제2항은 피고인이 국민참여재판을 원하지 아니하는 경우엔 국민참여재판을 하지 않도록 규정했다.
 
입법조사처는 국민참여재판의 소극적 운영에 대한 문제의식 등을 고려하면 일정 범위의 범죄에 대해서는 신청주의를 배제하거나, 법원 등의 판단에 따라 직권으로 국민참여재판에 회부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미국·영국 등 주요 선진국들은 피고인 선택 없이 법정형이 높은 범죄를 대상으로 국민사법참여제도를 실시하고 있고, 특별한 예외만 지정해 국민참여재판의 시행 비율을 높였다.
 
현재 제21대 국회엔 일정 범죄들을 필수적 대상사건으로 하고자 하는 ‘국민의 형사재판 참여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 2건, 법원 직권 및 검사 신청에 따른 국민참여재판 회부가 가능하도록 하는 ‘국민의 형사재판 참여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이 제출돼 있다.
 
김 변호사는 “필수적 대상사건의 도입은 신청주의 체계를 수정하고자 하는 시도”라며 “필수적 대상사건을 도입하는 경우 제한적 범위 내에서 법정형을 기준으로 하는 방안이나 범죄의 중대성을 기준으로 하는 방안을 고려해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 법원의 재량권 제한, 국민참여재판 배제사유 구체화

전체 배제사유 중 법원의 재량권에 의한 배제가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료=법원행정처 사법지원실 '2008~2020년 국민참여재판 성과분석']

국민참여재판에 대한 법원의 재량권은 현행 국민참여재판법 제9조 제1항 제4호 ‘그밖에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하는 것이 적절하지 아니하다고 인정되는 경우’에 근거한다. 입법조사처는 이 조항을 보다 명확히 규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재 법원이 국민참여재판을 배제하는 사유 중 대다수는 국민참여재판 진행이 적절하지 않은 사건으로 판단한 경우다. 법원행정처에 따르면 2020년 국민참여재판 배제사유 중 법원 재량에 의한 배제가 83.62%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구체적으로 현행 대법원 예규에서 정하고 있는 ‘추가 기소가 예상되는 경우’와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할 경우 현저한 절차지연 등으로 피고인의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침해될 것으로 우려되는 경우’를 포함하자는 견해가 있다.
 
◆ 법원 과부하 우려... 순차적·절충적 도입도 고려해야
입법조사처는 국민참여재판의 채택률을 높이기 위해 제시한 두 방안은 현실적인 사항들을 고려한 바탕에서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김 변호사는 “법원의 물적·인적 여건은 참여재판 확대와 관련해 가장 직접적으로 우려되는 부분이고, 항상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배심원들 상당수는 별도의 생업을 갖고 있기 때문에 현재 국민참여재판은 가능한 단기간에 마무리될 수 있는 사건들 위주로 진행한다”며 “필수적 대상사건을 지정함과 동시에 법원의 판단 재량을 좁히게 되면 개별 사건의 특성에 대한 고려가 어렵고, 결과적으로 국민참여재판에 출석하는 배심원들에게도 부담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필수적 대상사건의 도입이나 배제사유 축소를 한꺼번에 도입하기 어렵다면 순차적·절충적 도입방안을 고려해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옵트아웃(Opt-out, 피고인이 배제신청을 해 재판부가 판단하는 제도)을 두거나, 필수적 대상사건 도입 전 배제 결정 구체화부터 검토하는 등 다양한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