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왕휘 칼럼] 한중 수교 30주년, 통상협력의 새 비전이 필요하다
2022-01-19 06:04
2022년은 한국과 중국이 수교한 지 30년이 되는 아주 뜻깊은 해이다. 그동안 무역액이 60배 이상 증가할 정도로 통상협력은 성공적으로 이뤄졌다. 이런 유례없는 성과에도 불구하고 양국 모두에서 30주년을 기념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지 않고 있다. 상대방을 바라보는 인식이 악화되고 있기 때문에, 정치권은 물론 재계에서도 선뜻 나서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한·중 관계의 악화는 외교안보 갈등에서 촉발되었다. 2017년 한국의 사드 배치 결정 이후 중국이 도입한 한한령은 그때까지 계속 증가했던 교역량이 줄어들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중국에 진출해 있는 많은 한국 기업은 특혜를 기대하기는커녕 역차별을 걱정하게 되었다. 무역전쟁 이후 반도체와 정보기술통신 분야에서 미국의 대중 제재는 한국 기업의 대중 무역과 투자를 제한하였다. 코로나19 위기 이후 방역 조치는 인적 교류를 어렵게 만들어 상호간 오해를 해소하는 데 필요한 공공외교가 대폭 중단되었다.
한국과 중국 사이의 기술 격차 축소도 양국 관계를 긴장시키고 있다. 한국 입장에서 중국의 추격은 심각한 위협이다. 첨단산업에서 중국은 약진을 거듭하여 미국과 거의 대등한 100개 이상의 유니콘 기업을 보유하고 있는 반면 한국은 기껏해야 두세 개에 불과하다. 반면, 중국 입장에서는 반도체와 배터리를 제외하고 더 이상 한국을 배워야 할 산업이 없다고 인식하고 있다.
중국 산업구조의 고도화로 교역 구조가 상호보완에서 경쟁으로 변했다는 사실도 협력을 저해하고 있다. 중국의 산업구조가 고도화되면서 세계시장에서 한·중 기업 사이의 경쟁이 격화되고 있다. 화웨이, 샤오미, 오포, 비보 등이 성장하여 LG전자는 휴대폰 사업에서 철수했으며 삼성전자의 세계시장 점유율도 하락하였다. 배터리 산업에서도 CATL이 LG에너지솔루션, SK온, 삼성SDI를 제치고 세계 1위로 부상하였다. 이제 한국이 중국에 확실한 우위를 가지고 있다고 자신할 수 있는 산업은 반도체밖에 없다. 미국의 대중 제재가 없었다면, 여기에서도 한·중 격차가 빠르게 줄어들었을 것이다.
한·중 관계가 이렇게 변화되면서, 중국전문가들조차 탈중국 전략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다. 대중 의존도를 축소하기 위한 교역국을 다변화하는 소극적 방안부터 중국을 견제하는 미국의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에 동참해야 한다는 적극적 방안까지 논의되고 있다.
과연 탈중국 전략은 지속가능한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구하기 위해서는 중국과 탈동조화를 가장 강력하게 추진했던 미국 사례를 참고해볼 필요가 있다. 2017년 취임한 트럼프 행정부는 대중 무역적자를 줄이기 위해 보복관세를 부과하는 동시에 수출통제·수입제한·투자규제·외환통제 등의 제재 조치를 동원하여 2020년 1월 15일 1단계 무역합의를 체결하는 데 성공하였다. 이 합의에 따라 중국은 2년 동안 2000억 달러 규모의 미국산 제품을 구매하기로 약속하였다.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가 집계한 2020년 1월∼2021년 11월 통계에 따르면, 중국은 목표치의 3분의 2(미국 수출 기준 61%, 중국 수입 기준 67%) 정도 수입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중국에 제재는커녕 2단계 협상을 요구하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중국 이외의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2021년 미·중 교역 통계를 보면, 양국 관계는 탈동조화보다는 동조화에 가깝다. 미국의 대중 수출은 전년보다 32.7% 증가한 1795억 달러, 중국의 대미 수출도 전년보다 27.5% 증가한 5761억 달러였다. 전년보다 25.1% 증가한 3966억 달러의 대중 무역적자는 지난 5년 동안의 무역전쟁을 헛수고로 만들어버렸다.
중국보다 훨씬 더 우월한 지위와 능력을 갖춘 미국조차 중국과 탈동조화에 성공하지 못했다는 사실로부터 우리는 세 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첫째, 경제안보에서 중점은 안보가 아니라 경제에 있다. 기본적으로 통상은 국가안보가 아니라 비교우위에 따라 결정된다. 따라서 경제안보는 모든 제품이 아니라 전략적으로 중요한 첨단 산업과 공급망에 필수적인 산업에 대해서만 한정되어야 한다. 국가안보와 직접적 관련이 없는 생필품까지 수입대체하려는 시도는 시간과 비용의 낭비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이유에서 전체 교역액을 바탕으로 하는 무역의존도나 무역수지를 정책의 목표로 삼는 것은 무의미하며 때로는 위험할 수 있다.
둘째, 정냉경열(政冷經熱) 원칙이 잘 작동하고 있다. 외교안보 차원에서 대만은 미국 편에서 우리보다 훨씬 더 중국에 공세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전쟁 가능성에 보도가 끊이지 않고 있지만, 대만의 대중 수출은 1259억 달러로 전년보다 22.9% 증가했다. 세계 최대 반도체 수입국인 중국이 세계 반도체 생산량의 거의 절반 정도를 생산하는 대만을 우회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이 사례는 경제와 안보가 항상 연계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국가안보와 국가이익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 한, 통상협력은 기업에 맡겨 놓는 자세가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자유무역 원칙이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해졌다. 무역의존도가 아주 높은 통상국가이기 때문에, 보호주의는 우리의 국익에 부합하지 않는다. 개방을 확대하는 자유무역협정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것은 물론 보호주의에 대한 반대 입장을 G20을 비롯한 세계무대에서 명확하게 표명해야 한다. 물론 반도체와 같이 미국의 대중 제재로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는 산업도 있다. 그러나 미국이 1980년대 미국 반도체 산업을 살리기 위해 일본 반도체 기업을 무력화시켰던 사실을 고려해 보면, 우리 기업도 미국의 보호주의 위협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다. 미국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게 첨단 반도체 생산시설을 건설하라는 압력을 행사하는 것은 물론 영업 비밀에 속하는 많은 자료를 제출하도록 압박하였다.
이런 교훈을 바탕으로 양국은 올해 향후 30년을 위한 새로운 통상협력의 기초를 정립해야 한다. 우선 산업구조 변화에 따른 자유무역협정(FTA)의 업그레이드가 필요하다. 한·중 FTA 서비스·투자 후속협상이 조속히 마무리되어야 한다. 한국의 신남방·신북방 정책과 중국의 일대일로 구상간 연계 강화도 지속되어야 한다. 중국이 주도하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과 신개발은행 사업에 한국 기업이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이 더 커져야 한다. 요소수 품귀 사태와 같은 문제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 공급망 리스크 관리 가능한 한·중 협의체 신설을 고려해야 한다. 2020년 4월 국무원이 승인한 한·중(창춘)국제협력시범구 사업이 동북아지역의 국제 개방협력플랫폼 조성에 선도적 역할을 담당할 수 있도록 지원되어야 한다. 92년 8월 수교했을 때 초심을 잊지 않고 이 과제들을 차근차근 완수해간다면, 30년 후 통상협력은 지난 30년 동안보다 더 높은 수준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왕휘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외교학과 ▷런던정경대(LSE) 박사 ▷아주대 국제학부 학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