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릉뷰 아파트에 외벽 붕괴 사고까지...입주민 피해 막으려면 "후분양이 답?"
2022-01-16 18:00
건설업계, 전문가 진단
16일 부동산 업계에서는 아파트 안전, 품질 하자 논란이 확산되면서 실수요자들을 중심으로 선분양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최근 왕릉뷰 아파트로 논란이 된 인천 검단신도시 D아파트 비대위 A씨는 "문화재 문제로 입주가 밀린다는 건 분양을 받을 때는 상상조차 하지 못한 일"이라면서 "아파트 선분양 제도의 폐해"라고 지적했다.
입주민들에게 사전 고지 없이 구조변경이 이뤄져 논란이 된 P아파트 입주민 B씨도 "내년 5월이 입주인데 사전 상의 없이 건설사가 아파트 외벽을 옹벽으로 대체해 안전이 염려된다"면서 "분양 전에 이 사실을 알았으면 분양받지 않았을 것이다. 명백한 기망행위"라고 밝혔다. 공사 중 아파트 외벽이 붕괴된 광주의 H아파트 입주예정자들도 광주시와 시공사에 "시간이 얼마가 걸리더라도 처음부터 다시 지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따라 실수요자 사이에서 후분양 확대를 통해 부실시공을 막아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후분양은 주택공정률이 60% 이상 진행된 후 수요자가 직접 주택 실물을 확인하고 분양받는 방식을 말한다.
현재 주택공급 부족에 대한 우려가 적은 지역과 LH, SH 등 자금조달능력이 충분한 공공기업에서 이 제도를 활용하고 있다. 실수요자들이 주택을 직접 보고 구매할 수 있기 때문에 건설 과정에서 생기는 예기치 못한 사고를 방지하고, 건설사들의 책임감을 더 높일 수 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전문가들도 후분양제는 부실시공을 방지하고 건설사의 책임감을 높일 수 있다는 데 대체적으로 동의한다. 김성달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부동산건설개혁본부 국장은 "선분양 제도의 가장 큰 폐해는 투기과열과 부실시공"이라면서 "이번 사고를 계기로 아파트 선분양을 폐지하고 후분양을 도입하는 제도의 대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팔 수 있는 물건을 팔아야 하는 게 소비자를 대하는 기업의 당연한 의무인데도 건설사들은 십수억 하는 집을 물건 실체도 없이 팔아왔다"면서 "분양한 뒤 관리감독이 소홀한 틈을 타서 소비자들에게 여러 가지 피해를 전가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보니 소비자들은 비싼 가격을 지불하고도 부실시공에 대한 불안감을 느껴야 되고, 이 불안감을 가격상승이라는 심리로 상쇄하기 위해 또 다른 투기를 부추기는 악순환이 반복된다"고 지적했다.
주택금융연구원 관계자도 "선분양제도는 과거 주택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시절 대량공급이라는 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추진된 제도로 정부는 정책적 목표 달성, 건설사는 사업리스크 해소, 실수요자는 자본수익을 극대화한다는 장점이 있었다"면서 "지금은 주택부족 문제가 서울을 제외하고는 상당부분 해소됐고, 이제 공급보다는 투기과열, 부동산 거래질서 훼손, 분양계약자의 위험부담과 경제적 피해가 커지는 상황에 직면한 만큼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후분양이 건설사의 재무부담을 증가시키면 분양가 상승의 원인이 되고, 이는 소비자들에게 오히려 불리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건설사 관계자는 "지금처럼 집값이 올라가는 구조에서 후분양제도를 도입하면 실수요자들의 자금마련기간이 짧아지고, 오히려 자본가들만 주택을 구입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수 있다"고 말했다.
서진형 대한부동산학회장은 "후분양제도가 소비자의 선택권과 권리를 보호하고 분양 과정에 있어 다양한 사고를 막는 데 이상적인 제도임은 맞지만 이로 인한 금융비용 인상 등 분양가 상승에 대한 부담도 크다"면서 "결국 비용의 문제인데, 어떤 식으로든 비용은 전가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분양보증 범위의 확대나 제도 보완에 대한 의견도 나왔다. 김덕례 주택산업연구원 박사는 "최근 주택문제가 공급과 가격에만 관심이 쏠리다보니 안전이라는 주택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부분들이 간과된 것 같다"면서 "우리나라 주택법은 공급 관점에만 치우쳐 있는데 이제 사람들이 원하는 집을 만들기 위해서 안전한 제도와 환경이 되어있는지를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가령 "주택법이 주택기본법이나 주택산업으로 바뀌고, 그 안에 주택을 지을 때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안전, 시설 등의 문제를 담을 수 있도록 제도를 손질해야 한다"면서 "그 과정에 노동자, 노무자의 안전을 포괄할 수 있는 기본계획을 수립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 연구원은 "후분양이 소비자 피해를 막기 위한 제도이긴 하지만 후분양은커녕 선분양에 앞선 사전분양조차 제대로 시행되고 있지 않은게 지금의 현실"이라면서 "분양보증의 보상범위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