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식 칼럼] 백신은 과학, 접종은 연대
2022-01-10 14:44
현재 방역패스 효력 정지집행 신청은 총 4건이다. 전국학부모단체연합과 백신패스반대국민소송연합은 6일 “기본권을 침해하는 방역 패스를 즉각 철회하라”며 서울행정법원에 행정소송과 집행정지를 신청했다. 고등학교 3학년 양대림군을 비롯한 시민 1,700명도 7일 헌법재판소에 가처분을 냈다. 조두형 영남대 의대 교수와 현직 의사 1,023명 또한 같은 이유로 집행정지를 신청했다. 서울행정법원은 이번 주 결정을 앞두고 있다. 앞서 법원은 학부모들이 학원과 독서실에 대한 방역패스 집행을 정지해달라는 신청을 받아들였다. 정부는 법원 결정에 즉각 항고하는 등 방역패스를 둘러싼 논란은 뜨거운 감자로 부상했다.
국민들이 백신 접종을 꺼리는 가장 큰 이유는 불안과 불신 때문이다. 백신 접종 후 부작용을 주장하는 사례는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주에는 고등학생 아들이 백신을 맞고 숨졌다며 청와대 앞에서 시위하는 사연이 보도됐다. A씨는 “건강한 아들이 백신 접종 후 등교했다가 혼수상태에서 숨졌다”며 백신 부작용을 주장했다. 6일에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3차 부스터샷으로 가족을 잃었습니다’는 글이 올라왔다. 숨진 B씨가 형수라는 C씨는 “국가를 믿고 접종했는데 10살 아이는 엄마를 잃었고, 형은 46세에 홀아비가 됐다. 그런데도 국가는 백신 부작용이 아닌 뇌출혈이라고 한다”며 정부를 성토했다.
이 때문인지 부스터샷 접종률은 급감했다. 6일 0시 기준 38.3%에 머물렀다. 60세 이상은 79.5%로 높은 반면, 18세 이상은 44.4%에 그쳤다. 3차 접종은 지난달 많을 때는 하루 80만 명에 달했으나 최근 30만 명대로 떨어졌다. 방역 당국은 2차 접종 후 60일이 지나면 부스터샷을 권하고 있다. 해외에서도 부스터샷을 둘러싼 공방은 치열하다. 싱가포르 정부는 부스터샷을 맞아야 접종 완료로 인정한다고 발표했다. 백신 접종률이 낮은 프랑스도 최근 백신패스 법안이 의회를 통과했다. 백신패스 소지자만 식당과 영화관·헬스장·박물관과 고속열차를 이용할 수 있는 법안인데 다른 사람 백신패스를 제시하면 1,500유로(200만원) 벌금, 위조 백신패스를 소지하면 징역 5년에 벌금 7만5,000유로(1억 원)를 부과하는 내용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나의 자유가 타인의 자유를 위협하는 건 무책임하다. 미 접종자 활동을 최대한 제한하겠다”며 백신 접종을 압박했다.
백신은 과학이다. 일부 부작용을 감안하더라도 여러 데이터를 통해 효과는 충분히 입증됐다. 인류 최초 백신은 천연두 백신이다. 1798년 영국 의사 에드워드 제너가 발명한 백신으로 천연두는 종식됐다. 홍역 백신 또한 마찬가지다. 홍역은 전염성이 강하지만 95%가 두 차례에 걸쳐 백신을 맞으면 집단면역에 도달한다. 이렇게 인류는 천연두, 홍역, 소아마비까지 차례로 정복해 나갔다. 반면 백신 음모론은 끊이지 않는다. 2019년 세계를 휩쓴 홍역 이면에도 백신 음모론이 자리하고 있다. 그해 홍역 사망자는 20만7,500명, 대부분 5세 이하 아동이었다. 원인은 홍역 백신과 자폐증 간 연관성을 주장한 논문에서 시작됐다. 1998년, 앤드루 웨이크필드 교수가 발표한 논문은 거짓으로 판명됐지만 음모론은 좀비처럼 되살아나고 있다. 이 때문에 10년 전 홍역 퇴치를 공식 선언한 선진국 미국에서 멀쩡한 아이들이 숨졌다.
백신 반대론자들은 효과보다 부작용이 훨씬 크고, 거대 제약회사들이 결탁돼 있다며 음모론을 부추기고 있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은 가짜뉴스와 음모론에 쉽게 넘어간다. 스위스에 거주하는 김인경씨는 <오래된 유럽>에서 이를 ‘망각효과’로 설명했다. 백신 접종으로 환자가 사라지면서 위험성을 망각한 결과라는 것이다. 그는 소아마비를 사례로 들어 백신은 연대라고 주장한다. 소아마비는 감염돼도 다수는 증상 없이 바이러스를 보유하고 있다가 다른 사람에게 전파한다. 김씨는 “내가 다리를 절 확률이 낮은데도 소아마비 백신을 맞는 건 나를 위한 게 아니라 다리를 절지도 모르는 남을 위한 것”이라며 백신을 통한 연대를 주장했다.
최근 스위스는 ‘백신패스 법’을 국민투표에 부쳤는데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개인 권리를 신성불가침으로 여기는 스위스의 투표 결과에 따라 EU국가들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스위스는 백신 접종을 강제하지 않는 탓에 백신 접종률도 유럽에서 가장 낮다. 지난해 11월 28일 ‘백신패스 법’ 국민투표 결과 스위스 국민 62%는 찬성했다. 이 법은 코로나19 특별 인증을 받은 사람만 공공 행사와 집회에 참석할 수 있도록 강제하고 있다. 앞서 영업금지와 통행을 제한하는 ‘코로나 법’도 60% 이상 찬성했다. 개인 권리를 중요시하는 스위스 국민들조차 기본권보다 공동체 유지 필요성을 인정한 셈이다.
김인경씨는 “다수결 원리로 작동하는 국민투표와 포풀리즘 차이는 무엇일까”라고 반문한 뒤 “자기 이익이나 정치적 입장에 충실한 개인 투표 결과가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당연시돼선 안 된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부스터샷 의무 접종이 달갑지 않고 일상생활에서 불편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백신은 과학이고, 접종은 연대라는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정부와 전문가 역할은 절대적이다. 불안과 불신을 해소시킬 책무가 있다. 전문가라면 이해관계나 정치적 입장을 떠나 백신 효과를 과학적으로 알려야 한다. 정부 또한 신뢰 형성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지금처럼 독려만할 뿐 부작용을 개인 문제로 돌린다면 음모론은 언제든 피어날 수 있다. 무엇보다 백신 접종은 연대다.
임병식 필자 주요 이력
▷국회의장실 부대변인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위원 ▷한양대학교 갈등연구소 전문위원 ▷서울시립대학 초빙교수 ▷전북대 특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