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 칼럼] 美 돈줄 죄기, 숨막히는 서민경제

2022-01-10 07:00

홍준표 현대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산업연구실장)

 

 
 
미국이 돈줄을 조이기 시작했다. 코로나19 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돈을 풀어 경기 부양을 했던 것과 반대되는 정책이 실행되는 것이다. 언젠가는 이런 날이 올 것으로 생각했던 날이 온 것이다. 생각보다 그날이 빨리 오는 것 같다.

연준의 12월 FOMC 회의록을 보면 긴축 시점이 구체적으로 제시되었고, 그 시점은 금융시장의 예상보다 빠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금융시장에서는 2024년이나 되어야 양적 긴축이 시작될 것으로 예상했다. 2015년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2015년 12월에 금리를 인상한 이후 2017년 9월에 대차대조표 축소 정책을 실행하며 금리 인상과 양적 긴축 간 2년의 시차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좀 다를 것 같다. 연준은 매우 구체적으로 시점을 언급했다. 의사록에는 "거의 모든 참석자가 첫 기준금리 인상 후 일정 시점에 대차대조표 축소를 시작하는 것이 적절할 것 같다는 데 동의했다"고 나와 있다. 연준이 지난해 12월 FOMC 정례회의 결과로 내놓은 점도표를 보면 올해 세 차례 금리 인상이 있을 것임을 시사한 바 있다. 인플레이션이 진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금융시장이 바라보는 금리 인상 시점은 3월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연준이 '첫 금리 인상 후 일정 시점'이라고 언급한 것은 이르면 상반기 내 양적 긴축이 시작될 것임을 예고한 것으로 판단할 수 있겠다.

이 배경에는 물가 상승 속도가 상당한 점이 영향을 미쳤다. 높아진 인플레이션이 이전에 예상했던 것보다 더 오래 지속됐기 때문에 인플레이션에 영향을 미치는 '일시적' 요인에 대한 언급이 지워졌다. 수요와 공급 간 불균형이 계속 발생하여 인플레이션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연준 위원은 공급 병목 현상이 2022년에도 지속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연준이 2020년 9월 FOMC 회의에서 제시했던 금리 인상의 조건은 2% 이상의 물가상승률과 완전고용에 근접한 고용 상황이었다. 미국의 소비자물가상승률은 이미 2021년 3월 전년 동월 대비 2%를 상회한 이후 11월 6.8%까지 상승률을 높여가고 있으며, 최소한 2022년 상반기까지는 2% 이상의 인플레이션율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밖에도 미국 고용시장의 개선도 영향을 주고 있다. 실업률은 1년 전보다 크게 하락했고 노동시장 참가율이 높아지는 등 많은 부문에서 노동시장의 개선이 확연해지고 있는 것이다.

미국이 돈줄을 조이면 선진국보다는 신흥국이 영향을 더 많이 받는다. 코로나19 위기로 영향을 받는 정도는 선진국과 신흥국이 동일하지 않았다. 경기 회복도 신흥국이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이런 와중에 미국의 통화정책 정상화는 외환 건전성이 취약한 신흥국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만약 신흥국 경기가 회복되지 않은 침체 국면에 있을 경우 미국이나 선진국 경제의 통화정책 정상화에 발맞출 여력이 부족하게 된다. 기축통화국과의 금리 격차 축소로 인한 글로벌 유동성의 이탈 현상이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과거 여러 차례 글로벌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통화정책이 정상화되는 과정에서 신흥국에서 유동성이 급격하게 유출된 사례는 많지 않았다. 그러나 일정 부분 국제 금리 차이에 따른 자본 이동이 있었고 신흥국의 금융시장 불안정성이 발생했던 경험은 있었다.

신흥국 중에서 주요국으로 꼽히는 브라질과 인도의 재정건전성이 그리 밝아 보이지는 않는다. IMF 전망치를 기준으로 할 때 브라질의 올해 GDP 대비 경상수지 비율 전망치는 –1.7%며, GDP 대비 재정수지 비율 전망치는 –0.8%다. 인도는 브라질보다 조금 더 심각하다. 올해 인도의 GDP 대비 경상수지 비율 전망치는 –1.4%며, GDP 대비 재정수지 비율 전망치는 –4.2%로 예상된다. 너무 걱정할 정도로 유동성 유출 위기가 진행될 것 같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안심하는 것도 안 되겠다.

미국의 통화정책 정상화는 한국은행의 금리 인상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사실, 한국은행은 이미 2021년에 선제적으로 기준금리를 인상하며 출구전략을 실행하기 시작했다. 그럴 경우 가장 우려되는 부분은 가계부채다. 지금 가계부채 규모가 걱정스러울 정도로 크기 때문이다. 명목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2020년 3분기에 100%를 넘어섰고, 그로부터 1년 후인 2021년 3분기에는 107%까지 확대되었다. 최근 정부가 부동산 관련 가계대출 억제 정책을 펼치면서 가계부채 증가세가 좀 진정되기는 했다. 그러나, 올해 경기 회복세가 강해진다는 보장이 없다. 실물 경제 회복세가 미약하면 부채가 많은 취약 계층은 어려움이 가중될 것이다. 시중금리가 인상되면 원리금 상환 부담이 더 커지면서 서민 경제의 활력은 좀처럼 살아나기가 힘들 수 있다.

그렇지 않아도 서민 경제는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서민들이 체감하는 물가로 평가받고 있는 생활물가상승률은 2021년 3.2%로 2011년의 4.4% 이후 10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고용도 얼핏 보기에는 개선되고는 있으나 질 좋은 일자리는 부족하고 자영업 부문의 고용 창출력이 약해서 실제 체감 고용시장은 어려운 상황이다.

태평양 건너 미국의 통화정책 정상화는 바다 건너 일이라고 안심할 것이 안 된다. 체감 경기가 얼어붙은 서민 경제, 자영업자 경제에 빚 부담으로 가중될 것이다.
 
 
홍준표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농경제학과 ▷미국 루이지애나주립대 농경제학 박사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동향분석팀장 ▷고용노동부 고령화정책TF ▷한국장학재단 리스크관리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