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곡물 가격, 변동성 시달릴 것...중국 수요·러시아 공격 등 우려 계속
2021-12-28 14:42
내년 곡물 시장 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7일(이하 현지시간) 미국 농부들의 곡물 재배가 늘며 내년 미국 곡물 가격은 올해에 비해 안정되겠지만, 높은 비료 가격과 기후 변화, 중국의 곡물 수입량 감소 가능성 등이 가격을 흔드는 변수가 될 수가 있다고 지적했다.
올해 미국 농산물 가격은 폭염으로 인한 흉년으로 인한 공급량 저하와 중국의 수입량 증가로 인해 수요 증가에 힘입어 수년래 고점으로 급등했다. 최근 수년간 계속해서 미국 곡창지대가 풍년을 맞으며 공급량이 늘자 미국 곡물 가격은 하락했다. 지난 2018년부터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행정부 하에서 심화된 무역 분쟁 역시 미국 곡물 가격을 압박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무역 적자를 줄이겠다는 목표 하에 중국과 멕시코 등 주요 곡물 수입국들에 관세를 부과했다. 이들 국가들이 미국 농산물을 겨냥한 보복 관세로 응답하며 미국 곡물에 대한 수요는 급격히 하락했다. 러시아와 브라질 등 주요 곡물 생산국들과의 경쟁 역시 미국 농가들을 힘들게 했다. 다만 올해 들어 기후 문제와 중국에서의 강력한 수입 수요로 그간 쌓여 왔던 미국의 비축량이 고갈되면서 곡물 가격은 극적으로 반등하기 시작했다.
미국 내 주요 곡창지대인 노스다코타, 사우스다코타, 미네소타 등은 올해 여름 극심한 가뭄에 시달리며 미국 농무부가 올해 곡물 생산 전망을 축소하게 하기도 했다. 미국뿐 아니라 주요 곡물 생산지역 중 하나인 브라질, 러시아, 남아메리카 등에서도 건조한 날씨가 나타나며 곡물 생산을 어렵게 해 공급 우려를 촉발하며 가격을 밀어올렸다. 한편 중국에서 2019년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번진 뒤 다시 돼지 생산을 늘리기 위해 먹이로 쓰이는 미국산 대두의 수입을 늘린 것 역시 대두 가격 상승을 부추겼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글로벌은 27일 올해 미국 옥수수 가격이 지난해 대비 45% 상승했다며, 내년에도 이러한 추세가 이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같은 날 로이터는 시카고상품거래소에서 거래되는 대두 선물 가격이 부셸당 13.67달러를 기록했으며, 오전장에서는 지난 8월 17일 이후 최고치를 경신했다고 밝혔다.
WSJ는 곡물 가격이 5월 최고치를 기록한 이후 완화되고 있지만, 여전히 8년래 최고 수준에 머물고 있다고 지적했다. 시카고상품거래소에 따르면 옥수수 선물 가격은 27%, 밀 선물 가격은 25% 상승했으며, 대두 선물 가격은 약 5% 상승했다. 또한 WSJ는 대두 선물은 올해 초 2014년 이후 최고 수준의 가격으로 거래를 시작했다고 덧붙였다.
높은 곡물 가격에 힘입어 미국 농부들은 더 많은 옥수수·대두·밀을 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27일 WSJ은 리서치업체 IHS마킷을 인용해 이달 농부들이 2022년에 약 2억300만 에이커의 옥수수·대두·밀을 심을 것으로 예측했다. 지난해보다 200만 에이커가 증가한 것이다. 지난 2021년 미국 농무부는 미국 농부들이 지난해보다 약 800만 에이커를 늘려 약 1억8200만 에이커에 옥수수와 대두를 심을 것으로 전망했다.
계속해서 곡물 재배가 늘어나고 있는 상황은 내년 곡물 가격 상승을 제한할 것으로 보인다. 제이크 핸리 테크리움트레이딩LLC 선임 포트폴리오 전략가는 "올해 곡물 재고가 다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라며 "가격 상승이 막혀있다는 뜻"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농부들이 옥수수·대두·밀 등 올해 가격이 치솟은 곡물들을 추가적으로 재배하겠다는 계획을 세우며 공급이 수요를 따라잡아 2022년 곡물 가격은 하락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그러나 WSJ는 지정학적 긴장감과 높은 비료 가격, 기후 변화, 중국의 곡물 수입량 감소 가능성 등이 내년 농작물 가격 변동성을 높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핸리 전략가는 지정학적 요인이 곡물 가격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세계 최대 밀 수출국 중 하나인 러시아가 2014년 우크라이나령 크림반도를 강제 병합했던 것처럼 우크라이나를 다시 공격할 경우 세계 밀 가격이 급등할 수 있다고 밝혔다. 2014년 당시 밀 가격은 2월에서 3월까지 75% 상승했다.
또한 공급망 차질로 인해 대형 농기구 및 비료의 가격이 오르고 있는 것과, 적도 부근 동태평양의 수온이 평소보다 낮아지며 미국 남부의 가뭄을 부를 수 있는 라니냐 현상이 내년에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것 역시 곡물 가격의 향방을 바꿀 수 있다고 WSJ는 지적했다.
핸리 전략가는 또한 중국의 곡물 수입량이 유지될지에 대한 의문도 남아있다고 지적했다.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의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중국 부동산 시장이 위기에 처한 가운데 내년 중국 성장률이 둔화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기 때문이다.
마이클 주졸로 글로벌상품분석컨설팅 사장은 "중국의 상품 수요는 GDP와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한다"라며 "경제가 충격을 받는다면 성장하는 중국 중산층의 수요에 타격을 줄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자급자족을 강조하며 식량을 수입하는 대신 중국 내에서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 역시 문제가 될 수 있다. 지난 27일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에 따르면 시 주석은 지난 25∼26일 개최된 중앙농촌공작회의에 앞서 열린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 회의에서 '삼농'(농업·농민·농촌) 문제를 최우선 과제로 제시하며 식량 안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