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균 칼럼] 경제=안보 시대, 우리의 대응 전략은?
2021-12-07 06:00
국제경제의 패러다임이 미·중갈등과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미국의 주도 하에 안전(안정)을 축으로 급속하게 전환되고 있다. 경제적 효율성(수익성)의 추구가 국가의 안전보장이나 국가와 기업의 공급망을 위협해서는 안 된다는 당연한 논리가 새삼 주목을 받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우선주의’가 중국에 대해 무역불균형의 시정을 요구하는 모양새였다면 바이든 행정부 들어서는 노골적으로 중국봉쇄를 겨냥하고 있다. 여기에 더하여 코로나 팬데믹이 장기화하면서 방역을 목적으로 국경 봉쇄와 개방이 반복되면서 ‘글로벌 소싱’ 개념마저 실종되고 있다. 또 ‘오프쇼어링’이 ‘리쇼어링’으로 대체되고 있다. 건강과 생명의 안전은 물론 공급망의 안정을 뒷받침해주는 방역역량 자체가 국가의 경쟁우위로 부상하고 있다. 국제경제질서를 규정하는 가치로서 안전(안정)이 효율을 밀어내고 있다.
결과는 ‘공급망 재편’으로 불리는 세계화의 후퇴이다. 이미 트럼프 행정부시절부터 미국은 글로벌 기업들에게 미국 내 생산을 강제했고 화웨이의 5G에 대해서는 안보를 이유로 미국뿐만 아니라 동맹국에 대해서조차 사용금지를 관철시켰다. 유럽이 앞장서 자유무역의 후퇴를 비판했지만 ‘미국우선주의’를 돌이킬 수는 없었다.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 포위전략을 강화함과 동시에 미국의 내부공급망을 강화하는 전략으로 동맹국들을 줄 세우면서 중국과의 전선을 더욱 명확하게 그었다. 미국은 중국판 4차산업혁명으로 불리는 ‘제조업 2025’의 핵심에 자리하고 있는 ‘반도체 굴기’를 좌초시키려 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미국내 반도체 공급망을 강화하기 위해 한국과 대만의 반도체기업의 미국 내 생산을 강제하는 한편, ‘반도체지원법(Chips for America)’을 제정하여 미국기업에 대한 천문학적 재정지원을 예고했다. ‘경향적 자유무역’이 ‘패권적 관리무역’으로 대체되고 있다. 중국의 입장에서는 경제안보를 강화하려는 미국의 행태가 자국의 경제안보를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패권주의적 발상에 더하여 코로나19 팬데믹이 지난해 2월부터 ‘세계의 공장’을 자임하는 중국의 주요 도시들에서 봉쇄를 초래하면서 글로벌 공급망에 큰 타격을 가했다. 중국에 의존하던 주요 부품 조달이 막히면서 세계 주요 자동차 기업들은 일시적으로 생산을 중단해야 했다. 팬데믹이 주요국의 경제안보에 심각한 위협을 가하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의 요소수 사태는 ‘대만 문제’에까지 억지로 끌려들어간 한국에 중국이 ‘쨉’ 정도로 ‘경제안보’를 상기시켜준 계산된 사고였다. 사드 보복과 달리 주민의 경제활동에 즉각적이고 전국적인 지장을 초래하면서 ‘경제안보’가 흔들렸다. 사드 보복에도 불구하고 한국이 집착했던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편안한 정경분리는 갈수록 유효성을 잃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요소수 사태’가 벌어진 직후인 11월 9일 국무회의 머리발언에서 “공급망 불안은 언제나 찾아올 수 있는 위험 요인이 되었다”며 “글로벌 공급망 변화에 따른 원자재 수급 문제를 보다 광범위하게 점검할 것”을 지시했다. 이후 산업통상자원부는 11월 11일 ‘공급망 안전 점검회의’를, 기재부는 11월 26일 ‘제1차 경제안보 핵심품목 태스크포스(TF) 회의’를 개최했다. 이 TF의 주된 관심은 특정국 의존도가 50% 이상인 4000여개 품목을 대상으로 조기경보시스템을 가동하는 것이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올해 1~9월 1만2586개 수입 품목 중 특정 국가 의존도가 80% 이상인 품목은 31.3%(3941개)이며, 이 중에 절반인 1850개는 중국 의존도가 80%를 넘고 있다. “경제안보의 첨병역할”을 자임한 기재부 TF는 다시 100~200개 품목을 ‘경제안보 핵심품목’으로 지정하고 비축확대, 국내생산 기반확충, 수입선 다변화 등 맞춤형 수급안정화 방안을 마련할 방침이다. 이 회의에서 정부는 효율성 이상으로 안정성이 중요하다는 사실도 인식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경제안보에 관한 이해가 기재부의 관점에서는 ‘경제 = 안보’가 아니라 ‘경제 + 안보’로서 절충적이다. 그리고 ‘공급망’의 안정은 유사시 활용할 수 있는 ‘비상연락망’을 구축하는 데 그치고 있다.
한국은 최근 글로벌 공급망 재편에서 핵심을 이루고 있는 반도체 생산에서 ‘갑’의 지위를 누리고 있지만 결코 방심할 수 없다. 1980년대 반도체 1위 생산국에서 밀려난 일본이 반면교사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미·소 냉전의 산물인 공산권수출통제위원회(COCOM) 리스트를 도시바가 1980년대 초에 위반하여 소련 잠수함의 소음을 제거해준 ‘도시바-콩스버그 스캔들’과 함께 일본 전자제품 및 반도체산업의 몰락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현재 한국의 반도체산업은 중국시장에 기득권을 가지고 있지만 미·중 갈등이 첨예해진다면 자칫 미중 모두로부터 압박받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
경제안보와 관련해서는 일본의 대응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일본은 2010년 중국이 희토류 수출을 차단하면서 심각한 경제안보의 위협을 경험한 바 있다. 그리고 2019년 7월에는 한국을 상대로 스스로 ‘소재부품전쟁’을 도발했다. 미·중갈등이 고조되고 코로나 팬데믹이 장기화되자 경제안보에 대한 관심이 더욱 높아졌다. 최근에는 기시다 총리가 주재하는 ‘경제안보회의’가 소집되고 경제안보담당상도 신설, 임명했으며, 내년에는 ‘경제안보법’을 제정할 예정이다. 대응전략에서도 반도체, 대용량 전지, 희토류 등의 국내생산기반을 확충하고, 미국과 5G 통신의 공동 개발을 포함하는 디지털경제, 환경, 탈탄소 등에서의 협의체를 구성하며, 5000억엔 기금으로 경제안보 관련 첨단기술 연구개발을 지원하기로 결정하는 등 자국 경제안보의 핵심을 짚고 있다.
세계주요국이 공급망 안정을 최우선시하는 방향으로 국제분업이 재편된다면 자유무역에 기반한 한국의 수출주도 성장전략 자체가 압박을 받을 것이다. 경제안보를 일본과 중국의 ‘선의’에 맡기는 방책은 경제주권을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경제정책이론에서도 안전은 경제정책이 지향해야 하는 최종목표로서 자유, 정의 등과 함께 국민의 행복을 담보해주는 기본가치에 포함되지만 비용절감 등 효율은 그렇지 않다. 효율은 최종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다. 안전이 저해될 우려가 있다면 효율은 일부 유보될 수 있다. 장기적으로 본다면 생태계와 인간의 공생을 결정하는 ESG의 보강도 경제안보의 틀에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경제학과 ▷독일 브레멘대 경제학박사 ▷명지대 경영정보학과 교수 ▷경실련 경제정의연구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