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섬 이상국 편집의눈] '오징어게임'에는 매혹적인 악마의 편집이 숨어있다

2021-12-01 10:20
신이 세상을 편집한 7개 면처럼, 7개의 게임으로 편집한 '456억짜리 탐욕의 잔혹동화'




 

[영화 '오징어게임' 로고.]

[한국 신문편집의 전설로 불리는, 함정훈 전 서울신문-국민일보 편집국장.]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는 성경 구절을, ‘태초에 편집이 있었다’라고 재해석해낸 사람은, 편집기자 함정훈(전 서울신문, 국민일보 편집국장)이었다. 신이 천지창조를 하는 과정은 7일간의 ‘편집’이었고, 인쇄물의 관점에서 보자면 7개의 지면을 편집한 것이었다. 하느님은 천지라는 백지에서 7개의 면을 기획해 ‘세상’을 짜냈다. 물론 하루를 쉰 일요일은, ‘전면광고’였다. 

딱지치기, 따귀치기

넷플릭스 최고 흥행의 드라마가 된, 한국영화 ‘오징어게임’은 들여다볼수록 천재적인 에디톨로지의 보고(寶庫)임을 느끼게 된다. 저 함정훈기자의 관점에 따른다면, ‘오징어게임’은 몇 개의 면으로 짠 지면일까. 놀랍게도 천지창조와 같은 7개면이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달고나,줄다리기, 구슬치기, 징검다리, 오징어게임 등 6개만 기억하는 사람이 있다면, 맨앞에 지하철 정류장에서 벌이는 ‘딱지치기’를 간과한 것이다. 
 
호객꾼으로 등장하는 까메오 배우 공유는, 전전긍긍하는 빈털터리 성기훈(이정재)에게 접근해 딱지치기 게임을 제안한다. 70년대 유행한 딱지는 일본에서 들어온 멘코(面子)의 일종으로 인쇄된 그림이 있는 둥근 모양의 한겹 딱지였다. 그러나 오징어게임에 등장하는 딱지는, 종이를 접어서 두툼하게 만든 전통딱지다. 
 
멘코의 경우는, 딱지치기를 할 때 땅에 놓인 딱지 옆에다 내려치면서 바람을 일으켜 딱지를 넘긴다. 그런데, 전통딱지는 두께가 있어서 바람만으로는 넘어가지 않기에, 딱지의 한 귀퉁이를 세게 쳐야 한다. 딱지의 귀를 때리면서 탄력을 만들어 뒤집히도록 하는 것이다.
 

[영화 '오징어게임'의 한 장면.]


 
딱지의 귀를 온힘을 다해 때려 넘기기. 이 게임에서 승자는 딱지가 아니라 패자의 뺨(속어로 '귀싸대기'라고 표현하는데, 여기엔 이 말만큼 적절한 게 있을 수 없다)을, 거의 사람이 넘어질만큼 세게 때린다. 게임에서 벌이는 행위를 그대로 사람에게 적용한 것이다. 기훈은 공유에게 여러 차례 뺨을 맞으면서, 사이사이에 몇 번의 승리를 거둬 푼돈을 챙긴다. 맞아서 시뻘개진 뺨을 한손으로 움켜쥐고 다른 손으로는 만원 짜리 몇 잎을 들고 생일을 맞은 딸에게로 간다. 딱지게임은, 영화의 ‘속내’를 리얼하고도 감각적으로 내보이는 1면 편집이다. 

신문 1면편집은, 주요한 기사를 모아 독자에게 우선적으로 보여주는 서비스라고 생각해왔다면, 당신은 오징어게임 편집자에게 이미 진 '패자 편집자'이다. 이 영화의 게임 룰로 보자면, 이미 죽은 사람이다. 오징어게임 1면편집은, 그 첫페이지가 독자(혹은 관객)와 내면적으로 딜링하는 유혹의 시간이며 앞으로 보여줄 것에 대한 ‘백화점 쇼윈도’와 같은 것임을 증언하고 있다. 
 
이 1면이 보여준 편집 콘텐츠의 핵심은 뭘까. “게임은 장난이 아냐. 딱지가 따귀를 맞는 것을 넘어 사람이 따귀를 맞는 것이라고. 다만 상과 벌은 분명하다. 상(賞)은 돈이다. 아참, 그러나 게임은 폭력과 달라. 네가 원하는 때만 시작되는 것이니까. 네가 선택하는 것이지. 그러니까 상도 벌도 스스로가 원한 것이지. 다만 특징이 있다면, ‘레알 게임’! 이것 뿐이라고.” 공유는 이 말을 싸늘한 미소 속에 담은 침묵으로 보낸다. 1면은 독자와 눈을 맞추는 게임이다. 그 다음 페이지를 넘기고 싶도록, 파격적인 유혹을 담은 지면이라야 한다. 
 

[영화 '오징어게임'의 한 장면.]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10자룰
 
2면 편집을 보자.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이것은 술래잡기 게임의 한 변종(變種)이다. 초등교 교과서에 단골로 등장하는 영희가 술래다. 여기에도 ‘편집의 달인’이 부린 솜씨가 구석구석에 스며들어 있다. 우선 영희는, 어리고 작은 소녀이겠지만 영화 속에서는 ‘거인’이다. 술래는 거인이고 접근자들은 왜소하고 겁에 질려있다. 

편집의 기술 중에서, ‘작은 것을 크게 편집하라’는 말이 있다. 아주 작은 물건들을 크게 확대된 이미지로 배치해놓으면, 지면에 긴장감과 생동감이 생긴다. 인물사진을 쓸 때도 전신과 배경을 모두 쓰지 않고, 파격적으로 뚝 잘라 핵심 부위를 부각시킨다. 이것을 클로즈업 기법이라고도 한다. 이렇게 사진을 쓰면, 몰입효과가 나타난다. 헐리우드 영화들이 전경(全景)을 보여주지 않고, 사람의 얼굴이나 부분부분의 사물과 풍경들을 바싹 들이댄 화면들을 보여줌으로써 긴장감을 극대화하는 테크닉과 비슷하다. 영희는 큰 몸으로 클로즈업되고, 특히, 인형의 눈은 확대되어 접근자들을 스캔한다. 
 
동심(童心)을 표상하는 인형의 눈에는 초첨단 CCTV의 ‘워치’기능이 탑재되어 접근행동을 들킨 사람을 순식간에 포착하여 ‘제거’한다. 여기서 대량 살육이 발생한다. 2면은 1면의 이면(裏面)이며, 1면이 전경(前景)으로 보여준 세상의 속내를 드러내는 장(場)이기도 하다. 게임의 실패자를 서슴없이 총살하는 장면은, 독자에게 경악과 충격을 안기며 긴장감을 일거에 극대화한다. 게임은 결코 장난이 아니다. 한껏 자극했던 동심을 뒤엎는 이 반전이 영화 전체를 스릴러물로 이끌어간다. 
 
1953년 한국전쟁 중에 태어난 잡지 ‘사상계’는, 동서고금의 사상을 밝히고 바른 세계관과 인생관을 수립하겠다는 의욕을 드러냈다. 전쟁으로 피폐한 세상에 생각과 삶과 문화의 꽃을 피우겠다는 선언이었다. 1959년 4.19혁명 직전 ‘민심의 고압선’이 지나가는 4월에 나온 이 잡지의 이면(裏面)인 권두언에는 내용이 한 글자도 담기지 않은 백지사설을 실었다. 다만 이런 제목 하나만 달렸다. “할 말이 없다” 타락하고 부패한 이승만 권력을 향해 내던진 침묵의 항의. 이 언론이 던진 충격은 당시 세상을 긴장시키고 숨은 분노를 끌어올렸다. 영희의 눈이 번쩍이고 운동장에 피의 시신들이 쓰러지는 순간의 충격과도 같은 ‘편집’이었다.
 

[영화 '오징어게임'의 한 장면.]


2면에서 술래인형이 죽일 자를 스캔하는 동안 읊는 구호는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이다. 이 게임의 제목이기도 하다. 이 문장을 읽으면 자연스럽게 세 군데를 띄워 ‘무궁화/꽃이/피었습니다’로 읽게 된다. 
 
한국신문들은 오래전부터 ‘제목 10자룰’이란 것을 노하우로 다듬었다. 제목을 길게 달면 독자들이 산만해진다는 전제 위에서, 제목을 10자 이내로 짧게 달아야 한다는 원칙이다. 이 근거로, 한글명사는 대개 2~3자가 대부분이고, 그뒤에 붙은 조사는 생략할 수 있으며, 대개 세 개의 어절(주어+목적어+술어)로 문장이 구성된다는 점을 든다. 예를 들면 ‘영희(는) 철수(를) 사랑(한다)’라는 제목을 만들 때 딱 10자가 나온다. 조사와 보어를 빼면, ‘영희, 철수 사랑’이 되어 6자로 압축된다. 명사가 3글자씩일 경우인 ‘이영희, 김철수 짝사랑’의 경우 9자가 된다. 한글의 어절과 문장 구성의 특징을 감안해, 세상 대부분의 사실과 진술들을 10자로 압축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는, ‘무궁화의/꽃이/ 개화했다(피었습니다)’로, 10자룰의 규칙을 따르고 있다. 첫 말인 ‘무궁화’는, 기(起)이고 ‘꽃이’는 승(承)이며 ‘피었’은 전(轉)이며 ‘습니다’는 ‘결(結)’의 형식을 띠면서 긴장감을 돋운다. ‘피었’의 상태가 생사가 결정되는 긴박한 순간이다. 
 
1993년 발표된 김진명 소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는 박정희정부의 핵개발을 다루고 있으며, 무궁화꽃은 ‘핵무기’의 암호였다. 무궁화는 이 땅의 국화(國花)이기도 하지만, 히로시마에서 실현된 버섯구름이 암시되면서 음산한 기분을 돋우는 ‘제목’이 되었다. 핵은 대량살육 공포의 상징이기도 하다. ‘오징어게임’에서 이 말은 엉뚱한 방식으로 살풍경을 만들어냈다. 천진한 소녀의 목소리로, 잊지 못할 공포를 만들어낸 ‘10자’의 솜씨. 이것만은 잊기 어렵다. 
 

[영화 '오징어게임'의 한 장면.]



 달고나 먹방과 '도려내기 편집'
 
3면은 ‘달고나’다. 배고픈 시절 불량음식의 ‘추억 돋는’ 기억을 소환하는 장면이다. ‘달고나 게임’을 핵심지면에 배치한 까닭은 긴장을 어이없이 풀어버리는 우스꽝스러움이 오히려 깊은 인상을 남기기 때문이 아닐까. 
 
달고나 속에 찍혀있는 도형을 온전한 형태로 추려내는 일은 현실 속에서는 작고 사소한 일이지만, 여기선 생사가 걸린 게임이다. 스스로 선택한 도형에 따라 난이도가 결정되는 상황이라, 출제(出題)를 미리 파악하는 부정이 저질러지고 정상적인 방법이 아닌 편법들이 횡행한다. 
 
편집자에게 이 게임은, ‘쉬운 것이 이긴다’ ‘먹방은 실패하지 않는다’라는 이 두 명제를 떠오르게 한다. 달고나 속의 도형을 뽑아내는 일은, 도형이 복잡하지 않은 것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편집의 제목은 쉬운 게 강력하고, 편집의 디자인은 쉬운 데서 매력이 발생한다.

특히, 편집의 기법인 '도려내기(크롭-트리밍, 일본어로 누끼라고도 부른다)'는, 이정재가 우산 도형을 게걸스럽게 혓바닥으로 핥아내는 '한땀 한땀 녹이기' 공력만큼 정교하고 피말리는 작업을 수반한다. 
 

['도려내기' 편집의 내공.]


달고나게임은, 살벌한 가운데 벌어진 초긴장의 ‘먹방’이다. 편집도 가끔 ‘먹방’이 필요하다. ‘다시 끓어오른 냄비 속 전쟁’으로 표현된 라면 한 가닥의 편집은, 백 마디 설명을 아웃시킨다. 국수 한 줄의 도려내기를 보라. '혓바닥 이정재'가 울고갈 노릇일지 모른다.

 

[영화 '오징어게임'의 한 장면.]


 
줄다리기, 지는 척 해주기

4면은 줄다리기다. 줄다리기의 핵심전력은 ‘힘’의 우위다. 힘이 약한 팀이 강한 팀을 이기는 방법은 뭘까. 그 지혜를 찾아내는 것이 승부의 포인트다. 여기에서 보여준 것은, 지는 척 해주기다. 상대편이 거의 이겼다고 방심할 때 역습을 하는 게 핵심이다. 팀이 철저하게 호흡을 맞춰 그 전략을 극대화하는 게 중요하다고 영화는 귀띔한다. 

전 직장에서 쇠락한 스포츠신문을 인수한 뒤, 내게 그 편집사령탑을 맡긴 적이 있다. 인수 당시 판매부수가 급감하여 초비상이었다. 긴급하게 투입된 나는 몇 개의 새로운 원칙을 세웠다. (1)스포츠신문의 익숙한 형식이던 1면 ‘황색컷 제목’을 없앨 것, (2) 신문의 기조 컬러전략을 열정의 ‘레드’로 할 것, (3)과감한 스토리 중심기사를 메인으로 올릴 것 (4) 디자인, 그래픽, 일러스트의 집중활용. 이런 것들이었다. 당시 선정적이고 강력한 요소들을 중시하던 스포츠신문의 흐름을 바꾸려는 시도였다. 
 
0.1초를 훔친 천재, 요즘 우린 박태환 때문에 산다, 지성이 심정 아세요,와 같은 낯설고 부드러운 지면이 잇따라 등장했다. 정확하게 3개월이 지난 뒤, 신문사의 지역 판매장들이 상경해 판매부수가 급증했다고 감사를 표시했던 ‘역전극’이 일어났다. 

이런 승부의 기적은 주말섹션 위크앤을 만들 때도 벌어졌다. 당시 주말판의 경우 경향신문의 ‘매거진X'로 거의 평정됐다. 편집팀장으로 발령난 나는, 10여명의 편집국 기재(奇才)들을 직접 골라 ’양산박‘팀을 만들었고 매주 농담클럽처럼 진행된 브레인스토밍에서 나온 의견을 중심으로 섹션을 만들었다. 6개월만에 주말섹션의 왕좌를 차지했고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냈다. 죽어가던 시장이 벌떡 일어나는 경험. 문제는, 독자와의 줄다리기를 해내는 지략과 통찰과 부드러움이었다. 

구슬치기, 깐부를 죽여라
 
5면은 구슬치기다. 10분 동안 폭력을 쓰지 않고 상대의 구슬 10개를 따내면 이긴다. 구슬 모두를 잃으면 게임에서 탈락한다. 왜 영화는, 게임이 무르익어가는 다섯 번째 판에, 하필 구슬치기를 배치했을까. 달고나와 줄다리기는 어쨌든 살벌한 게임 속에서도 ‘동지’를 발견하는 과정이었다. 구슬치기는 2인1조로 구성되면서 짝을 짓도록 한다. 사람들은 게임의 형식을 알 수 없었기에, 자신과 가장 마음이 잘 맞는 사람을 택한다. 알고보니 자신의 상대를 죽이고 올라가야 하는 게임이었다. 짝은 동반자가 아닌 필사의 경쟁자가 되었다. 이 게임을 통해, 모든 사람들의 인간관계는 완벽하게 파탄이 난다. 짝은, 공포의 살인자로 변했다. 
 
이 구슬치기는 ‘깐부’라는 말을 유행어로 만들어냈다. 성기훈과 대결한 노인 오일남이, ‘우린 깐부잖아’라고 말을 하면서다. 단짝을 의미하는 이 말은, 관계의 신뢰를 담은 어린 추억이 담긴 말이지만, 실상은 저마다 깐부를 배신하고 서로 속이고 살아남으려 몸부림친 잔혹한 인간관계였다. 5면은 이 유행어 하나로 편집의 진수를 선보였다. 
 
1990년대 초창기 스포츠면을 편집할 때, 나는 한국 신문 처음으로 ‘X세대’라는 말을 썼다. 당시 서태지로 대변되는 괴물같은 신세대를 뭐라고 불러야할지 아리송하던 시절이었다. 미국에서 유행어로 쓰이는 이 말을 찾아내, 스포츠면 톱 제목에 담았다. 당시 부국장 데스크는 낯선 말에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있었다. 그 무렵 미국에서 막 돌아온 특파원이 그 자리를 지나가다가, “오, 엑스세대! 이거 외국에선 벌써 유행하고 있는 말이예요”라고 했다. 이 말이 힘이 실려, 젊은 편집기자의 ‘이상한 제목’이 지면으로 나가게 되었다. 이 말이 6개월도 안되어 시골의 할머니도 알게되는 낱말이 될 거라고는 짐작하지 못했다. 

징검다리, 실력을 보이기 전에 실수를 없애라
 
6면은 징검다리다. 여기엔 허방다리(함정)가 나온다. 정상적인 길처럼 보이는데 구덩이를 파고 나뭇가지로 가려놓아 주로 짐승을 잡는데 쓴 사냥 덫중의 하나다. 두 개의 다리 중에서 하나는 허방이고 하나는 진짜다리다. 복불복의 선택에서 살 확률을 늘리는 것은, 앞에서 상대방이 실수를 해서 확인해주고 죽어주는 것이다. 앞사람을 희생양으로 살아남는 게임이다. 유리표면으로 허방을 가려내는 기술자가 등장하고, 복수를 위해 논개처럼 옥쇄(玉碎)하는 여성도 나온다. 

여기선 편집 금과옥조 하나가 지나간다. 기술을 발휘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실수를 없애는 것이 훌륭한 편집이다. 오래전 ‘바로잡습니다, 19금’이란 칼럼을 쓴 적이 있다. 그날 단군 이래 가장 야한 오자(誤字)를 냈기 때문이다. 교육면 기사의 부제목에서 ‘자치단체’라고 해야할 것을, 후배 편집기자가 점 하나를 빠뜨리는 바람에 ‘자X단체’라고 내보내고 말았다. 판이 막 돌아간 상태였는데, 오자를 발견한 여기자가 얼굴이 벌개져서 담당 편집기자에게 달려갔는데, 말로 표현하지도 못하고 “이거,이거”만 연발하는 사태를 빚었다. 급히 희대의 국민성희롱 오자를 잡아내긴 했으나, 이미 인쇄가 끝난 것들은 엎질러진 물처럼 주워담지 못했다. 이 장면은 허방을 밟고 벼랑 아래로 떨어진 오징어게임자의 최후를 방불케 한다.

오징어 말단, 몸통, 머리 ○□△
 
마지막 승부처인 7면은 오징어게임이다. 영화제목이기도 하다. 이때 지표에 그려진 오징어는 ‘산 오징어’가 아니라, 죽여서 압착한 건(乾)오징어 모양이다. 이미 삶에 짓눌려 죽음과 다름없는 삶을 사는 존재들을 암시한 것일까. 이 영화를 상징하는 도형 ○□△은 오징어게임의 선(線)들에서 나왔다. 

○은 게임의 시작과 끝을 상징하는 포인트를 표시할 때 쓰는 그림이다. △은 오징어의 머리이며, □은 오징어의 몸체이다. 진행요원 중에서 □는 관리자(몸통)이며 △은 병정(두뇌)다. 그리고 ○은 일꾼(말단)이다. 그들은 모두 오징어의 원래 빛깔인 붉은 옷을 머리끝까지 걸치고 있다. 요원들이 자신의 형체도 없고 이름도 없이 오직 오징어의 부위를 가리키는 도형부호 하나만으로 분류되는 까닭은, 생명성과 인간성이 압착되어 건조되어 오직 기능과 역할로만 움직이기 때문이다. 한치 망설임도 없는 기계적 살육이 일어날 수 있는 까닭은, 그들이 오징어의 한 부위일 뿐이기 때문이다. 편집자들이여. 나날의 도표 속에서 이 그래픽만한 상징과 메시지를 만들어낼 수 있겠는가. 

반면 게임 참가자들이 받아 걸친 녹색 트레이닝복은, 인간의 개성과 존엄이 압수당한 무방비 상태의 피험자(彼驗者)이거나 오직 하나의 빛깔로 통일된 경마용 생명체임을 상징한다. 한편 천장에 매달린 빛나는 돈통은 황금돼지로 상징된 위대한 물신(物神)의 정점이다. 456억은 455명의 목숨으로 채워져 1명의 손에 들어간 혈탑(血塔)이다. 다시, 편집자들이여. 저 색깔과 상징물만큼 각인효과가 있는 각종 양극화 경제의 인포그래픽들을 준비하고 있는가. 
 

[영화 '오징어게임'의 한 장면.]


이 영화는 한국의 상상력을 세계로 끌어낸 흥행대작이다. 영화 오징어게임 편집자는 우리 마음 속에 도래해있는 괴물과 광기의 메타버스를 적출해 보여줬다. 편집은 훌륭했으나, ‘저 돈은 어떤 이들의 죽음값’이란 섬뜩한 메시지는 대수롭지 않게 소비되었다. 누구 하나, 제 마음을 까뒤집어 보며 부끄러움이나 뉘우침을 심각한 통증으로 말하는 이는 없었다. 전세계 ‘오징어게임 신드롬’은 대한민국 자부심과 자괴감의 딱지치기다.

7개면의 디스토피아를 천지창조한 신(神)은 경전의 끝구절에 무슨 말씀을 남겼을까.
“최후에 456억이 있었다.”


▶ '오징어게임' 편집의 요점 정리

핵심은, 혹시 간과했을 수도 있는 이 대목에 있습니다.

1. 딱지의 귀를 때리는 게임과, 귀싸대기는 절묘한 연상법
2. 영희의 눈은 클로즈업 기법
3.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는 왜 10자일까
4. 무궁화꽃은 핵공격 대량살육의 상징
5. 달고나는 먹방의 정석
6. 달고나 도형 따내기는 '도려내기 편집'
7. 줄다리기는 부드러운 편집의 힘
8. 깐부는 '배신자'의 역설을 극대화한 '유행어' 창출 기법
9. 허방다리는 성과증대보다 실수축소가 편집생존법이란 노하우
10. 오징어는 산 오징어가 아닌 말린 오징어 모양(떼죽음의 예고)
11. 삼각, 사각, 원 도형은 오징어의 기능성과 기계성
12. 456억 돈통은, 최고의 양극화 인포그래픽
13. 이정재가 신이었다면 뭐라고 말했을까. "최후엔 456억이 있었다"


                                                                                              이상국 논설실장 



** 이 글은 11월호 한국편집기자협회 협회보 종이신문에 실린 내용을, 협의하여 싣습니다. 종이신문에 미처 담지 못한 내용까지 포함하여 풀텍스트로 실었습니다. 협회보 시리즈는 '빈섬 이상국의 편집강의'라는 타이틀로 나가고 있습니다. 이번회는 <태초에 456억이 있었다 - ‘오징어게임’에 편집경전(經典)있다>라는 제목으로 게재되었습니다.
 

[한국편집기자협회 신문 11월호에 실린, '오징어게임 편집'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