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박형남 고법 부장판사 "시민과 법원의 간극...소통으로 좁혀야"
2021-11-21 08:00
살인·강간 등 형사 사건이나 혹은 여론의 뭇매를 맞는 정치인들의 비리 의혹 관련 재판에서 늘 나오는 말이 있다. 검사가 구형한 형량과 너무 차이가 난다며 판사가 다른 의도로 감경을 해준 게 아니냐고 의심하는 것이다.
박형남 서울고법 부장판사(사법연수원 14기)는 지난 18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법 사무실에서 진행한 아주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형벌은 최후의 수단"이라며 "법이 모든 걸 해결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사법부와 국민의 신뢰는 소통에서 이뤄진다"
-최근 <법정에서 못 다한 이야기>라는 책을 냈다. 서문의 제목이 '판사는 왜 시민과 다르게 생각하는가'다.
"시민들의 법률에 대한 이해 부족, 판사들의 관료법관적인 행태를 들 수 있다. 강력 범죄가 일어나면 시민들은 엄벌을 요구한다. 반면 자신의 지인·가족 등이 가해자가 된다면 입장은 달라진다. 판사는 이런 양쪽 측면을 다 보는 사람이고, 시민의 인권과 사회 질서의 균형을 맞추는 사람이다. 물론 판사들도 이런 재판 결과가 어떻게 나왔는지를 차근차근 판결문에 설명하는 노력도 해야 한다. 단순히 '법률 기술자'가 되지는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판사의 양형 기준에 대한 여론의 논란이 있기도 하다
"형사 재판을 하지 않은 지 10년이 넘어서 현 상황은 정확히 모르지만, 그 전에는 검사들이 판사들이 어떻게 양형할 지를 아는데도 두 배 이상의 구형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사법 불신을 해소하는 차원에서 판사의 양형 기준처럼 검찰의 구형 기준을 공개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 '사안의 실체에 가까이 가고자 하는' 판사
-2013년 12월 산업재해사건에서 '심리적 부검'을 사법부에 처음으로 도입했다.
"대한민국 자살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1위다. 원고인 유족 입장에서는 고인의 자살 이유를 밝힐 방법이 많지 않다. 가족들의 말은 대부분 신빙성이 없다는 이유로 증거로 채택되지 않는다. 그래서 이걸 정신과 전문의 등을 통해 심층면접하는 방법을 생각한 것이다. 사실 '심리적 부검'이 외국에서는 보편화된 방법이다"
-'심리적 부검'이 해외에서 보편화된 방법이라는 건가.
"해외에서는 행정·사법적으로 보편화돼 있는 방법이다. 핀란드는 1986년 국가자살예방프로젝트를 실시했는데 '심리적 부검'으로 자살예방정책을 수립했다. 우리나라는 현재 행정 재판을 떠난 지가 꽤 됐기 때문에 심리적 부검이 어느 정도 보편화돼 있는 지는 모르겠으나, 유족들이 원해서 신청하면 채택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유법불정(유리하면 법대로, 불리하면 정치적으로)'
사법 불신이 극에 달했던 건 2018년 5월 '사법농단 의혹'부터다. 박 부장판사는 "사법농단에 관여되지 않은 판사로서 무엇이 잘못됐고 어디서부터 풀어야 하는지 찬찬히 생각하고 고민했다"며 책 발간 이유를 설명했다.
-지난달 28일 임성근 전 부장판사 탄핵심판 청구 각하를 들 수 있는데, 현직 판사들은 "충분히 예상했던 일"이라고 했다.
"이 사안은 지극히 정치적인 문제라 언급하지 않겠다. 다만 현직 판사들이 예상했다고 하는 점은 인정한다. 그래도 해당 법관 탄핵을 주도한 이들이 잘못된 일을 했다는 것은 동의하지 않는다. 소수의견이 나왔기 때문이다. 법은 하나의 정답이 없다. 사회는 지극히 가치가 다양하고 논쟁이 많다. 이 사건은 선례가 없었기 때문에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받을 필요가 있다는 견해도 틀렸다고 보지 않는다"
-대선을 앞두고 각 당 유력 대선 주자들이 얽힌 의혹이 나온다. 지난해 7월 유력 정치인 공직 후보자 토론회에서 나온 발언에 대한 상고심을 들 수 있다. 토론회에서 나온 발언을 '허위사실공표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내용이다. 이후 재판에 참여한 권순일 전 대법관과 유력 정치인에 대한 의혹이 제기됐다.
"권순일 전 대법관과 해당 정치인이 무슨 관계인지는 모른다. 다만 판결에 재심 사유가 있다거나 부당하다는 것은 많이 나간 이야기라고 본다. 다른 많은 대법관들이 찬성했기 때문이다. 해당 사례는 허위사실공표죄의 유죄 범위를 좁혔다. 다른 당파인 오세훈 서울시장의 사례에도 똑같이 적용됐다. 그런 의미에서 이 판결은 정치의 사법화, 사법의 정치화를 줄이는데 도움이 됐다고 생각한다"
◆"판사 개인이 전관예우를 경계해야 한다"
-법원장 출신으로 평생법관제 정착을 몸소 실천하고 있다. 법원 고위직의 퇴임 후 행보는 어때야 한다고 보는가
"정년을 채우는 법관은 일반화돼야 한다. 전관예우라는 말은 판·검사들이 그런 행동을 하지 않더라도 일반 시민들 마음 속에는 자리할 것이다. 가령 재판에서 패소하면 변호사가 전관이니 비전관이니 따지는 것처럼 말이다. 본인도 퇴임을 하면 변호사 개업을 하려고 한다"
-피의자가 검찰수사단계에서 한 진술을 법정에서 부인할 경우 해당 조서를 증거로 쓸 수 없는 '검사 작성 피의자 신문조서(피신조서) 증거 능력 제한' 시행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라는 말처럼 재판 처리 지연으로 실체적 진실 규명이 오래걸릴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실체적 진실 규명이 오래 걸리고 힘들 수도 있다. 그런데 미국 등 다른 나라에서도 이런 고민이 있었다. 실체적 진실 발견은 적법절차와 인권보장을 위해서 일부 양보될 수밖에 없다. 법정에서 다투는 사건이 많아질 거라서 내년에 형사사건을 담당하는 판사 수가 대폭 늘어난다. 서울고등법원에도 몇 개 형사부가 늘어날 것이다. 검사 작성의 피의자신문조서 문제는 영장실질심사처럼 글로벌 스탠더드에 따르는 게 맞다"
박형남 서울고법 부장판사(사법연수원 14기)는 지난 18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법 사무실에서 진행한 아주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형벌은 최후의 수단"이라며 "법이 모든 걸 해결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사법부와 국민의 신뢰는 소통에서 이뤄진다"
-최근 <법정에서 못 다한 이야기>라는 책을 냈다. 서문의 제목이 '판사는 왜 시민과 다르게 생각하는가'다.
"시민들의 법률에 대한 이해 부족, 판사들의 관료법관적인 행태를 들 수 있다. 강력 범죄가 일어나면 시민들은 엄벌을 요구한다. 반면 자신의 지인·가족 등이 가해자가 된다면 입장은 달라진다. 판사는 이런 양쪽 측면을 다 보는 사람이고, 시민의 인권과 사회 질서의 균형을 맞추는 사람이다. 물론 판사들도 이런 재판 결과가 어떻게 나왔는지를 차근차근 판결문에 설명하는 노력도 해야 한다. 단순히 '법률 기술자'가 되지는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판사의 양형 기준에 대한 여론의 논란이 있기도 하다
"형사 재판을 하지 않은 지 10년이 넘어서 현 상황은 정확히 모르지만, 그 전에는 검사들이 판사들이 어떻게 양형할 지를 아는데도 두 배 이상의 구형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사법 불신을 해소하는 차원에서 판사의 양형 기준처럼 검찰의 구형 기준을 공개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 '사안의 실체에 가까이 가고자 하는' 판사
-2013년 12월 산업재해사건에서 '심리적 부검'을 사법부에 처음으로 도입했다.
"대한민국 자살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1위다. 원고인 유족 입장에서는 고인의 자살 이유를 밝힐 방법이 많지 않다. 가족들의 말은 대부분 신빙성이 없다는 이유로 증거로 채택되지 않는다. 그래서 이걸 정신과 전문의 등을 통해 심층면접하는 방법을 생각한 것이다. 사실 '심리적 부검'이 외국에서는 보편화된 방법이다"
-'심리적 부검'이 해외에서 보편화된 방법이라는 건가.
"해외에서는 행정·사법적으로 보편화돼 있는 방법이다. 핀란드는 1986년 국가자살예방프로젝트를 실시했는데 '심리적 부검'으로 자살예방정책을 수립했다. 우리나라는 현재 행정 재판을 떠난 지가 꽤 됐기 때문에 심리적 부검이 어느 정도 보편화돼 있는 지는 모르겠으나, 유족들이 원해서 신청하면 채택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유법불정(유리하면 법대로, 불리하면 정치적으로)'
사법 불신이 극에 달했던 건 2018년 5월 '사법농단 의혹'부터다. 박 부장판사는 "사법농단에 관여되지 않은 판사로서 무엇이 잘못됐고 어디서부터 풀어야 하는지 찬찬히 생각하고 고민했다"며 책 발간 이유를 설명했다.
-지난달 28일 임성근 전 부장판사 탄핵심판 청구 각하를 들 수 있는데, 현직 판사들은 "충분히 예상했던 일"이라고 했다.
"이 사안은 지극히 정치적인 문제라 언급하지 않겠다. 다만 현직 판사들이 예상했다고 하는 점은 인정한다. 그래도 해당 법관 탄핵을 주도한 이들이 잘못된 일을 했다는 것은 동의하지 않는다. 소수의견이 나왔기 때문이다. 법은 하나의 정답이 없다. 사회는 지극히 가치가 다양하고 논쟁이 많다. 이 사건은 선례가 없었기 때문에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받을 필요가 있다는 견해도 틀렸다고 보지 않는다"
-대선을 앞두고 각 당 유력 대선 주자들이 얽힌 의혹이 나온다. 지난해 7월 유력 정치인 공직 후보자 토론회에서 나온 발언에 대한 상고심을 들 수 있다. 토론회에서 나온 발언을 '허위사실공표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내용이다. 이후 재판에 참여한 권순일 전 대법관과 유력 정치인에 대한 의혹이 제기됐다.
"권순일 전 대법관과 해당 정치인이 무슨 관계인지는 모른다. 다만 판결에 재심 사유가 있다거나 부당하다는 것은 많이 나간 이야기라고 본다. 다른 많은 대법관들이 찬성했기 때문이다. 해당 사례는 허위사실공표죄의 유죄 범위를 좁혔다. 다른 당파인 오세훈 서울시장의 사례에도 똑같이 적용됐다. 그런 의미에서 이 판결은 정치의 사법화, 사법의 정치화를 줄이는데 도움이 됐다고 생각한다"
◆"판사 개인이 전관예우를 경계해야 한다"
-법원장 출신으로 평생법관제 정착을 몸소 실천하고 있다. 법원 고위직의 퇴임 후 행보는 어때야 한다고 보는가
"정년을 채우는 법관은 일반화돼야 한다. 전관예우라는 말은 판·검사들이 그런 행동을 하지 않더라도 일반 시민들 마음 속에는 자리할 것이다. 가령 재판에서 패소하면 변호사가 전관이니 비전관이니 따지는 것처럼 말이다. 본인도 퇴임을 하면 변호사 개업을 하려고 한다"
-피의자가 검찰수사단계에서 한 진술을 법정에서 부인할 경우 해당 조서를 증거로 쓸 수 없는 '검사 작성 피의자 신문조서(피신조서) 증거 능력 제한' 시행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라는 말처럼 재판 처리 지연으로 실체적 진실 규명이 오래걸릴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실체적 진실 규명이 오래 걸리고 힘들 수도 있다. 그런데 미국 등 다른 나라에서도 이런 고민이 있었다. 실체적 진실 발견은 적법절차와 인권보장을 위해서 일부 양보될 수밖에 없다. 법정에서 다투는 사건이 많아질 거라서 내년에 형사사건을 담당하는 판사 수가 대폭 늘어난다. 서울고등법원에도 몇 개 형사부가 늘어날 것이다. 검사 작성의 피의자신문조서 문제는 영장실질심사처럼 글로벌 스탠더드에 따르는 게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