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영화만 하던 김지운 감독, '닥터 브레인'으로 마음 고쳐먹은 이유
2021-11-17 08:31
애플TV플러스 '닥터 브레인'은 타인의 뇌에 접속해 기억을 읽는 뇌동기화 기술에 강박적으로 집착하는 천재 뇌과학자의 이야기로 홍작가의 동명 웹툰을 원작으로 한 SF 스릴러 장르. 애플TV플러스가 처음으로 한국어로 제작한 오리지널 시리즈이자 김지운 감독의 첫 드라마 연출작이다.
"영화의 반대가 드라마라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어요. 어릴 때였죠. 영화의 고유성이라는 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영화는) 공간, 인물을 큰 화면에서 다루면서 영화적인 규모감, 감정의 스펙터클 등을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OTT(인터넷동영상서비스)가 나오기 전에는 드라마에서 소재, 표현 수위 등이 제한적이었기 때문에 영화만이 가지는 자유로움, 감성이 있다고 생각했었거든요. 그래서 영화와 드라마가 반대라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는데, 어느 순간 상황이 바뀌었고 경계가 모호해졌어요. 코로나19 범유행이 세상을 빨리 당겨온 거죠. 위축된 영화 산업은 점점 안정적이고 보수적인 느낌으로 가고, OTT 플랫폼이 오히려 영화가 가졌던 독자성과 범위를 가져갔어요. 큰 사이즈만 포기하면, OTT에서 더욱더 모험적이고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게 된 거죠. 세상이 바뀌면서 창작자로선 또 하나의 문이 생긴 거예요. '내가 과연 드라마를 찍게 될까?'라는 생각이 사라지게 된 이유예요."
처음 '닥터 브레인'의 연출을 제안받았을 때는 '영화 욕심'이 났다. 영화감독이다 보니, '닥터 브레인'의 구성 요소를 영화적으로 풀어가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제의받았을 때는 '영화로 만들어도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코로나19 시국 전이었죠. 하지만 코로나19 이후 OTT 시장이 커졌고 조금 더 풍요롭게 작품을 만들 수 있게 됐어요. 원작 이야기를 더 깊고, 풍성하게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드라마로 만들자'라고 결정 내렸죠."
편당 런닝타임 50분인 '닥터 브레인'은 총 6편으로 구성되어있다. 처음으로 드라마 연출을 경험한 김 감독은 분량, 시간의 압박에 시달렸다며 고충을 털어놓기도 했다.
"'닥터 브레인'은 영화 만드는 시간, 과정을 똑같이 거치되 6시간짜리 작품을 완성해야 했어요. 단순히 계산해서 영화 만드는 똑같은 시간 동안 3배 분량을 만들어내야 하니 어려움이 많았죠. 분량, 시간에 관한 큰 압박과 부담이 있었어요. 또 시리즈물이다 보니 한 편의 이야기를 완성하면서 다음 편을 기대하게 만들어야 했죠. 그걸 '떡밥'이라고 부를 수도 있고, 엔딩의 '감각'이라고 할 수도 있을 텐데 그런 점들을 끌어낼 수 있도록 노력했어요."
"영화는 창작자 개인 고유의 인상이나 분위기 등이 중요했다면 드라마는 이야기의 구성, 이야기 완결성이 더 중요하겠더라고요. 환경의 차이가 작업에 임하는 태도나 작품의 톤을 바꾼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긍정적인 측면도 있겠지만, 더 해보고 싶은 걸 절제해야 하는 면도 있어서 아쉽기도 하고요."
앞서 '닥터 브레인'은 '장화, 홍련' '달콤한 인생'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등을 통해 뛰어난 영상미, 화면 구성, 깊이 있는 표현력과 영화적 문법으로 사랑받았던 김지운 감독과 세련된 디자인과 디바이스로 팬덤을 보유한 애플의 TV 플랫폼의 만남으로 큰 기대를 모았던바. "힙하고 섹시한 디지털 회사인 애플과 협업한 만큼, 근사하고 멋진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라는 김 감독은 자신의 장기인 화면 구성(미장센)과 영상 언어로 '힙'하고 '섹시'한 SF 스릴러 드라마를 완성해냈다.
"저는 미장센이 영상의 언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고, 지금까지 그렇게 만들어왔어요. '닥터 브레인'도 공간을 통해 인물의 내면을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했고 세원이 일하는 공간, 집 등을 차가운 색감으로 표현하고, 세원과 가족들이 함께 살 때는 따뜻한 톤으로 연출했죠. 기억 속에 있을 때는 불균질하고 악몽 같은 느낌이길 바랐어요. 단순히 색감을 아름답게 하려는 게 아니라 (미장센이) 서사의 다른 텍스트로서 언어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한 거죠. 인물이 말하지 않아도 공간의 분위기, 색감을 통해 말하는 방식이 지금껏 제가 해 온 방식입니다."
지난 2018년 7월 개봉한 영화 '인랑'은 1999년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동명 애니메이션을 원작으로 했고, '닥터 브레인'은 홍작가의 동명 한국 웹툰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두 편 연속으로 만화 원작을 영상화시키게 된 그는 원작과의 차별점과 전작의 경험으로 얻게 된 점 등에 관해서도 설명했다.
"'인랑'의 경우, 당시 원작이 가진 아우라를 한국화시키고 영화로 옮기려는 작업을 해왔다면 '닥터 브레인'의 경우는 원작이 가진 독창성, 흥미로운 소재에 한 인간의 성장을 더 녹여내려고 했어요. 저는 타인의 뇌를 들여다본다는 설정이 참 흥미로웠는데, 알게 모르게 관계된 타인의 모습을 통해 나 자신을 알고 또 결핍을 알게 되면서 그걸 보완하거나 회복하는 이야기로 그려가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미스터리한 소재에 한 인간의 성장을 담아내고 싶었죠."
'닥터 브레인'은 김지운 감독과 처음 호흡을 맞추는 배우들로 구성되어있다. 영화 '기생충'으로 전 세계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던 이선균을 주축으로 박희순, 이유영, 서지혜, 이재원 등 스크린과 안방극장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배우들과 함께 호흡을 맞췄다.
"저는 새로운 걸 만들 때 희열을 느끼는 사람이에요. 새로운 배우를 만나는 것도 그렇죠. 함께 호흡을 맞춰가는 시간이 정말 즐겁게 느껴졌어요. 또 이선균 씨부터 서지혜 씨까지 영화, 드라마를 넘나들며 활동해왔기 때문에 저의 더딘 작업 시간을 빠르게 단축해주곤 했죠. 상황에 빠르게 적응하고 판단하며 해석하는 장점을 가진 배우들이에요. 짧은 제작 기간 안에 이렇게 훌륭한 연기를 보여줄 수도 있다고 생각했죠. 배우들 모두 그런 작업이 가능했어요. 시간, 분량 압박을 그들로 인해 해소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김 감독은 특이 이선균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며 고마운 마음을 드러내기도 했다.
"제가 드라마가 처음이다 보니 이선균 씨에게 많은 도움을 받은 것 같아요. 주인공 세원 역을 두고 많은 의견을 주고받았죠.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세원이 주인공인데 이를 드라마로 표현하는 데 어려움이 있더라고요. 서사가 주인공을 따라가야 하는데 표현이 어려우니까 조금씩 설정을 바꾸었고 인물의 온도들을 조금씩 높여가며 캐릭터들을 만들었어요. 그런 의견을 나눌 때 큰 도움을 준 것 같아요."
김지운 감독은 '닥터 브레인'의 각본을 쓰고, 연출과 총괄 프로듀서를 맡았다. 많은 역할을 겸해야 했기에 세 명의 작가와 공동 집필을 했고 임필성 감독이 B팀을 맡아 촬영을 진행해주었다. 어느 순간 공동 작업이 익숙해졌다는 김 감독은 다시 혼자 각본을 쓰고 연출을 맡고 싶다며 '초심'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의지를 드러내기도 했다.
"이제 홀로 글을 쓰고, 연출하는 게 어렵더라고요. 체력적으로도 그렇고요. 회사를 차리면서 환경도 바뀌어서 점점 공동 작업을 선호하게 된 거 같아요. 과거 순수하게 영화를 동경하고 비전을 가졌던 때로 돌아가는 게 어렵기도 해요. 자기변명이기도 하지만요.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나만 가진 재밌고 특별한 걸 홀로 만들어내고 싶다는 생각도 해요. 언젠가는 꼭 해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