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14주년 기획-2022 리스타트 원년] “경제성장 이끌 중기‧벤처에 ‘혁신의 돛’ 달자”

2021-11-15 08:31
대기업과 양극화 줄이고 디지털 경쟁력 높여줄 정부차원 정책‧지원 필요
‘원칙적 금지’ 규제 방식 4차 산업시대에 역행… 신산업 진입 길 열어줘야
세액공제율 상향 등 민간투자 인센티브 확대로 국내 벤처캐피털 대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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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과 벤처‧스타트업이 대한민국 경제 성장의 중심에 섰다. 우리 경제의 뿌리인 중소기업은 코로나19로 어려운 상황에서도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했고, 벤처‧스타트업은 경제 회복의 마중물 역할을 톡톡히 했다.

실제 중소기업 수출과 벤처투자 실적은 3분기 기준 나란히 역대 최대치를 갈아치웠다. 현 추세라면 올해 중소기업 수출 규모는 1000억달러, 벤처투자는 6조원을 돌파할 것이 유력시된다.

다만 코로나19 이후 산업별로 회복 속도에 차이를 보이며 ‘K자 양극화’가 나타나는 등 대‧중소기업 간 격차는 여전한 리스크로 꼽힌다. 벤처 생태계에서도 2000년대 초반 제1 벤처붐 이후 20년 만에 도래한 제2 벤처붐의 지속가능성이 당면 과제로 지목된다.

아주경제는 창간 14주년을 맞아 중소기업과 벤처‧스타트업의 혁신성장 방안을 전문가 5인을 통해 짚어봤다. 진단에는 노민선 중소벤처기업연구원 미래전략연구단장, 유정희 벤처기업협회 혁신벤처정책연구소 부소장, 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 원장,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 추문갑 중소기업중앙회 경제정책본부장 등이 참여했다.
 
Q. 올해 수출이나 벤처투자 규모를 보면 중소‧벤처기업이 국내 경제의 성장동력이 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중소‧벤처기업의 지속적인 성장과 경쟁력 강화를 위한 방안은?

노민선=제조업 분야 대‧중소기업 간 양극화를 해소해야 한다. 최근 제조업의 생산‧고용 지표가 개선되고 있지만 이는 주로 대기업의 성장세에 기인하며, 중소기업의 상황은 아직 녹록지 않다. 중소 제조업 근로자의 고령화 현상과 열악한 작업환경 구조를 개선하고, 중소기업이 혁신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유정희=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는 규제 혁신이 필요하다. 4차 산업혁명 시대는 기존에 겪어보지 못한 속도로 빠르게 변화할 것이다. 규제 혁신도 빨라야만 글로벌 혁신 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 이를 위해 정부는 신산업 분야의 진입 규제로 작용하고 있는 각종 장애물을 제거해야 한다. 신산업 추진 과정에서 벌어지는 기존 기득권 세력과의 갈등 해소도 중요하다. 정부가 상호 협력과 상생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중재자 역할을 해야 한다. 

유효상=코로나19 이후 스타트업이 더욱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경제‧사회 상황이 바뀌면서 기존 비즈니스 모델은 생존하기 어려워진 반면, 스타트업은 위기에 강하고 혁신하는 비즈니스 모델이기 때문이다. 스타트업이 더 잘 되려면 포지티브 규제(원칙적 금지‧예외적 허용) 방식을 바꿔야 한다. 우리나라는 선행 규제를 하고 있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 나오면 일단 불법으로 간주된다. 규제를 뚫고 나온 기업에게 또 다시 규제를 때리는 ‘겹규제’도 발생하고 있다. 앞으로도 코로나19와 같은 불확실한 상황이 계속될 텐데,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혁신을 이끌어내려면 규제 방식을 바꿔야 한다.

이정희=중소‧벤처기업의 기술력 강화가 핵심이다. 세계적인 기술 경쟁력을 갖춘 히든챔피언(글로벌 강소기업)이 많아져야 한다. 특히 디지털 기술 발전은 유니콘 기업 배출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 정부는 이를 위한 연구개발(R&D) 지원과 규제 개혁에 나서야 한다. 벤처기업도 중소기업의 스마트 네트워크 구축, 디지털 경쟁력 향상을 지원해 상생협력의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야 중소·벤처기업의 전반적인 경쟁력이 높아질 수 있다.

추문갑=수출입 중소기업이 겪고 있는 물류난 해결을 위해 선복‧컨테이너 지원 등 정부의 관심이 필요하다. 중소기업 수출액은 지난해 11월 플러스 전환 이후 11개월 연속 증가세지만, 대‧중견기업에 비해 중소기업 증가율은 미미하다. 대기업은 연간 계약으로 선복 확보가 용이한 데 반해, 수출 물량이 적은 중소기업은 선복‧컨테이너 확보가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소기업 전용 선복 추가 확보 등 적극적인 지원과 함께 장기적인 해운물류 안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나아가 변화하는 통상 환경에 중소기업이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지원이 필요하다. 수출 중소기업이 탄소중립, ESG(환경‧사회‧지배구조) 등 신(新)비관세 장벽에 대응할 수 있도록 범정부 차원의 조직을 만들고 선제적인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Q. 벤처투자와 벤처펀드 결성실적 등이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고, 유니콘 기업 수도 급증하는 추세다. 더 많은 유니콘을 배출하고 글로벌 혁신 벤처기업을 육성하기 위한 방안은?

유정희=국내에서 유니콘 기업이 탄생할 수 있었던 건 대규모 해외 자금의 투자 덕분이다. 이는 반대로 국내 벤처캐피탈(VC)이 규모화되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물론 최근 대형 VC가 많아지고 내년부터 일반지주회사의 기업형 cCVC도 출범하게 되긴 했지만, 국내 VC가 대형화되기 위해서는 민간투자가 보다 활성화돼야 한다.

우선 민간투자자에 인센티브를 확대해야 한다. 내국법인이 직접 투자 또는 벤처펀드에 출자해 취득한 주식의 양도차익이 발생한 경우 비과세 혜택을 주는 게 바람직하다. 내국법인이 벤처펀드에 출자하는 경우에는 세액 공제율을 현행 5%에서 10%까지 상향 조정해야 한다.

또한 은행 등 금융기관의 자기자본비율(BIS), 지급여력비율(RBC), 영업용순자본비율(NCR) 산출 시 벤처펀드 출자를 위험자산에서 제외해야 한다. 이는 정책자금 위주의 벤처투자 생태계를 넘어 지속 가능한 민간 중심의 시장 형성을 위해 꼭 필요하다.

유효상=정부에서 인위적으로 유니콘을 육성해선 안 된다. 정부는 유니콘을 만들겠다고 특정 기업을 (예비유니콘 등으로) 지정해서 밀어주고 있다. 하지만 유니콘이 되는 건 간단하다. 투자 금액이 크면 된다. 유니콘이 되느냐 마느냐는 기업가치를 평가하는 투자자에게 달려있는 셈이다. 결국 투자자 관점에서 기업가치를 높일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 벤처 생태계가 한 단계 더 발전할 수 있다.
 
Q. 중소기업계에서는 경영 환경이 팍팍해졌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주 52시간제, 최저임금 인상, 중대재해처벌법 등이 주 원인으로 꼽힌다. 대응 방안이 있다면?

유정희=주 52시간제는 벤처기업의 핵심 경쟁력 저하는 물론 자율적 열정과 유연성이 무기인 벤처기업 문화를 훼손할 수 있다. 중소‧벤처기업의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을 현행 6개월에서 최대 1년으로 확대해 근로시간의 유연성을 확보해야 한다. 선택적 근로제의 경우 현행 R&D 업무에 한해 단위 기간을 3개월까지 허용하고 있으나 직종에 관계 없이 3개월까지 허용해야 한다. 벤처기업은 R&D와 관리 업무가 유기적으로 돌아가야 효율적이고, 두 업무를 겸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또한 혁신 벤처기업의 핵심 근로자에 대해서는 당사자간의 근로 계약에 의해 주 52시간제 적용을 받지 않을 수 있도록 자율권을 부여해야 한다.

추문갑=주 52시간제 시행이 임금 감소로 이어지면서 중소기업 취업에 대한 유인책이 더 사라지고 있다. 다행히 이달 말부터 외국인력 도입 제한이 완화되고 특별연장근로 한도가 당초 90일에서 한시적으로 60일 추가 연장됐지만 임시방편이다. 노사 합의 시 현재 주 단위로 규정한 연장근로 한도를 월 단위로 변경할 수 있도록 유연성을 강화하고, 특별 연장근로를 항구적으로 180일까지 확대해야 한다.

내년 1월 27일부터는 50인 이상 기업에 중대재해처벌법도 시행된다. 하지만 50~100인 기업 중 시행일 내 준수가 어렵다는 비중이 77.3%에 달한다. 준비 기간 부여가 필요해 보인다. 반기업 정서를 없애고 법의 형평성을 맞추기 위해 입법 보완도 필수적이다. 고의범에 부과하는 징역 하한 규정을 이 법에 규정하는 것은 과도하다. 징역 하한을 상한 규정으로 변경하고 고의‧중과실이 없을 경우엔 면책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
 
Q. 대기업 중심의 경제 구조에서 벗어나 중소‧벤처기업, 소상공인과 균형 있는 성장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동반성장을 위한 바람직한 방향과 당면 과제는?

노민선=기업이 뛰어노는 운동장이 기울어지지 않도록 정부가 중심을 잡아줘야 한다. 최근 원자재 가격이 급격하게 상승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원자재 가격 인상분을 대기업 납품 단가에 반영하는 ‘납품단가 연동제’ 도입을 검토할 수 있다. 또한 중소기업의 역량 강화를 위해 대기업의 긍정적 역할을 독려해야 한다. 예를 들어 대-중소기업 상생 협력에 대한 세액 공제율을 확대하는 식이다. 

이정희=대기업이 먼저 진정한 협력의 자세로 중소기업에 손을 내밀어야 한다. 협력사의 경쟁력이 높아져야 대기업의 경쟁력이 높아지는 것이다. 이미 ESG 경영은 세계적인 화두이며 상생 협력은 피할 수 없는 과제가 됐다. 대기업이 중소기업과의 상생을 일방적인 희생이 아닌 ‘윈윈’으로 인식할 때 비로소 동반성장의 성과를 낼 수 있다.
 
Q. 내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차기 정부에 중소‧벤처기업을 위한 정책 제언을 하자면?

노민선=대‧중소기업 간 임금, 복지, 교육훈련비 등에서 격차 해소가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중소기업의 생산성 향상이 선행돼야 한다. ‘중소기업 생산성 향상 특별법’을 제정하고 특단의 대책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 정부 차원의 중소기업 생산성 향상 대책은 2013년 6월 이후 수립된 적이 없다. 고용을 유지하면서 부가가치를 늘리는 형태로 생산성을 향상해야 한다.

유정희=혁신벤처단체협의회는 ‘기업가 정신이 충만한 혁신강국 실현’을 목표로 자유, 개방, 공정, 상생 등의 4가지 키워드를 제시했다. 차기 정부가 △유연하고 안정적인 노동제도 혁신 △전문직역 등 기득권 세력으로부터 혁신벤처기업 보호 △공공 혁신조달시장 확대 및 진출 활성화 △디지털 경제 활성화를 위한 디지털 혁신 인재양성 △민간투자자의 벤처투자 인센티브 확대 △일자리 창출 연동, 벤처기업 법인세 감면 등의 세부 과제를 수행하길 바란다.

유효상=첫째도 규제, 둘째도 규제다. 차기 정부는 최소한의 규제를 원칙으로 삼고 심판 역할만 하는 게 바람직하다. 다만 스타트업 성장에 걸림돌이 되는 규제가 있다면 공론화를 통해 풀어나갈 방향을 제시하고 법을 일부 조정할 수도 있어야 한다.

이정희=대기업과 중소‧벤처기업의 공정한 성장 기반을 구축하고 임금, 근로 환경, 기술 등에서 이들의 차이를 줄여나가는 정책에 힘을 쏟아야 한다. 기업의 성장을 막는 비합리적인 규제는 개혁해야 한다.

추문갑=중소기업은 전체 기업체 수의 99.9%(688만개), 82.7%(1744만명)을 차지하는 국민경제의 근간이자 일자리 창출의 원천이다. 소수 대기업 중심의 경제구조로는 성장을 지속할 수 없다. 양극화 문제 해결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중소기업이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노동시장 구조개혁을 통해 중소기업 생산성을 높여 기업성장과 근로자 삶의 질 개선을 이끌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