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식 칼럼] 지역대학이 살아야 국가균형발전도 가능하다

2021-10-29 16:44

[임병식 위원]



정기국회가 시작된 9월 초. 국립대학 총장 다섯 명(김동원 전북대학교, 홍원화 경북대학교, 차정인 부산대학교, 김헌영 강원대학교, 송석언 제주대학교)과 국회에서 하루를 보냈다. 예결특위와 교육 상임위원을 찾아다니며 현안을 설명하기 위해서였다. 이들 대학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 강원부터 제주까지 지역에 거점을 둔 국립대학이다. 대학은 9월이면 가을학기 개강으로 분주하다. 국립대학 총장 다섯 명이 바쁜 와중에 국회를 방문한 이유는 다름 아니었다. 지역혁신사업(RIS)의 불합리한 공모 구조를 설명하고 합리적인 조정을 당부하기 위해서였다. RIS사업은 애초 취지를 상실한 채 정치적으로 힘 있는 지역끼리 나눠먹는 사업으로 전락했다. 해당 사업이 지역균형발전이나 낙후지역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주장에 의원들도 크게 공감했다.

최근 ‘위기의 지역 국립대’라는 언론보도를 접하곤 당시를 떠올렸다. 보도는 올해 1차 지망에서 합격한 경북대학 신입생 5000여명 가운데 86%에 해당하는 4300명이 다른 학교로 갔다는 내용이었다. 믿기 어려운 수치였지만 팩트였다. 언론보도는 부산대와 전남대, 충남대 등 다른 지역 거점 국립대학교도 사정은 마찬가지라고 덧붙였다. 지역 거점 국립대학 등록 포기율은 매년 가파르게 증가해 왔다. 사례로 제시된 경북대학의 경우 1차 합격자 등록 포기율은 2016년 58.1%에서 지난 5년 동안 무려 30% 가까이 급증했는데 지난해에만 10% 상승했다. 거점 국립대학 형편이 이럴진대 지방 사립대학은 더 말할 나위가 없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역대학이 직면한 위기는 복합적이다. 우선 수도권 집중화로 인한 지역 일자리 부족과, 정부 정책 부실을 들 수 있다. 여기에 출산율 하락에 따른 학령인구 감소는 결정적이다. 노무현 정부에서 지역균형발전을 일시적으로 꾀한 게 전부일 뿐 역대 정부마다 국가균형발전은 구호로만 작동해 왔다. 세종행정도시 건설과 정부부처, 공공기관 강제 배분에도 불구하고 수도권 집중은 문재인 정부에서도 계속되고 있다. 여전히 사람과 돈은 수도권으로 몰리고 있다. 지난해는 드디어 서울 경기 인천 수도권 인구가 지역 인구를 추월했다. 수도권은 공급과잉, 지역은 공동화라는 덫에 빠졌다. 학령인구 감소는 지역대학에 실질적인 위협이 됐다.

정원을 못 채우고 새 학기를 맞는 지역대학 얘기는 새삼스런 뉴스가 아니다. 올해도 입학정원(55만 명)에 비해 신입생은 4만 명이 모자랐다. 2040년 학령인구는 28만 명까지 떨어질 것으로 예측된다. 이 같은 추세라면 10여년 뒤 전국 대학 가운데 절반 이상은 문을 닫아야 할 형편이다. 지역 소재 대학에 합격한 1차 지망자 가운데 등록을 포기한 학생들이 선택한 다른 학교는 다름 아닌 수도권 소재 대학이다. 지역대학의 위기는 지방의 위기로 연결된다. 지역에서 싱크탱크로 기능하는 지역대학이 제 역할을 못할 경우 지역은 존립기반을 위협받게 된다. 지속적인 인구유출도 지역대학 위기와 밀접하게 맞물려 있다. 지역에서 지역대학 위상이 의심받게 되면서 지역인구 유출로 이어졌다는 분석은 꽤 설득력 있다.

한겨레가 보도한 최근 지방소멸 르포는 적나라하다. 기자가 찾아간 충남 서천의 한 마을에서 만난 71세 이장은 “이 마을에선 내가 청년이다. 이제는 상여도 노인이 메야 한다”며 황폐화된 지방 실상을 전했다. “동네에 애는 없고 노인만 천지” “노인들 죽고 나면 갈수록 빈집만 늘어”라는 르포기사가 신문과 방송을 도배한 지 오래다. 한국고용정보원에 따르면 올해 5월 기준 228개 전국 시·군·구 중 36곳(15.8%), 3553개 읍·면·동 중 1067곳(30%)이 ‘소멸 고위험지역’으로 분류됐다. 또 소멸 위험지역은 시·군·구 106곳(46.5%), 읍·면·동 1777곳(50%)이다. 소멸위험 시·군·구는 지난해 105곳에서 올해 106곳으로 별다른 변화가 없지만, 소멸 고위험지역은 지난해 23곳에서 올해 36곳으로 절반 이상 크게 늘었다.

정부가 ‘소멸 위기’에 처한 지방자치단체를 지원하는 정책을 내놓은 건 이 같은 현실을 반영한다. 행정안전부는 지난 18일 전국 89곳을 인구 감소지역으로 지정해 중점 관리하는 내용을 발표했다. 89곳에는 부산시와 대구시 등 광역시 소재 구(區) 단위 지역도 5곳 포함될 만큼 지방 공동화는 심각하다. 낙인효과를 우려해 지역은 공개하지 않았지만 경북 16곳, 전남 16곳, 강원 12곳, 경남 11곳, 전북 10곳, 충남 9곳, 충북 6곳 순이다. 정부는 ‘인구감소지역’으로 지정된 지자체 스스로 인구감소 원인을 진단하고 계획을 수립하면 재정지원과 특례 부여로 뒷받침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내년에 신설되는 지방소멸대응기금(매년 1조원, 10년간 지원)을 투입해 일자리 창출, 청년인구 유입, 생활인구 확대에 나선다. 또 인구감소 대응과 관련한 국고보조사업(52개, 2조5600억원 규모) 공모시 가점과 우선 할당도 부여한다.

인구감소지역에 대한 지원과 함께 반드시 고려되어야 할 게 거점 국립대학에 대한 지원이다. 같은 국립대학이라도 서울대학과 지역 국립대학 간 교육재정에는 큰 차이가 있다. 지역 국립대학(39개) 학생 1인당 교육비(1670만원)는 서울대학(4860만원)의 3분의 1수준이다. 13년째 대학 등록금이 동결된 상황에서 낮은 교육비는 인재유치에 걸림돌이다. 대학에 대한 국가 재정지원 또한 0.6% 수준으로 OECD 평균 1%에 한참 못 미치는 실정이다. ‘대학균형발전 3법’ 제정에 나선 더불어민주당 유기홍 의원은 “대학도 궁극적으로는 무상교육으로 가야 한다. 그 출발은 국립대이며 평생 직업교육기관 역할을 할 수 있는 전문대가 그 다음이다”면서 무상교육과 함께 강도 높은 규제 개혁을 강조했다.

대학균형발전 3법은 9월 29일 발의한 ‘대학균형발전특별회계법’, ‘조세특례제한법’과 함께 조만간 발의 예정인 ‘국립대학법’이다. 국립대학법은 국공립대라면 서울대에 버금가는 학생 1인당 교육비를 지원하자는 내용이다. 무상교육에 앞서 대학에 대한 재정 지원을 확대해 대학 자체적인 경쟁력을 회복하고 지역 간 격차를 줄이는 게 핵심이다. 대학 스스로 혁신 역량을 갖추는 것도 절실하다. 혁신 아이콘으로 회자되는 미국 애리조나 주립대학은 좋은 모델이다. 베이비붐 시대에는 대학이 학생을 선발했다면 저출산 시대에는 학생이 대학을 선택하는 현실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국립대학 총장 5명이 국회의원을 찾아다니며 하소연하는 씁쓸한 풍경이 사라질 때 대한민국은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다.


임병식 필자 주요 이력

▷국회의장실 부대변인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위원 ▷한양대학교 갈등연구소 전문위원 ▷서울시립대학 초빙교수 ▷전북대 특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