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호의 그게 이렇지요] 이재명에겐 ' 대장동 특검'이 기회다

2021-10-24 19:59

[이재호 논설고문. 극동대교수]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인간승리의 한 표본이라고 할 만하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를 겨우 나온 소년공(少年工)이 집권 여당의 대선후보가 됐으니 이보다 극적인 드라마가 있을까. 공장에서 일하다가 프레스에 손목관절이 으스러지는 바람에 지금도 한쪽 팔이 굽은 장애인이다. 중, 고교과정을 검정고시로 마친 후 대학(중앙대)에 진학해 사법고시에 합격했고 인권변호사를 거쳐 성남시장을 두 차례나 지냈다. 불굴의 그 의지가 정녕 놀랍다.

그런 이 지사의 발목을 ‘대장동 게이트’가 잡고 있다. 지난 8월 경기경제신문 박종명 기자가 이 사건을 처음 보도한 이래 대장동은 거대한 블랙홀처럼 한국사회를 빨아들이고 있다. 그 소용돌이의 한복판에 그가 서있다. 헤치고 나올 수 있을까. 한 사람의 운명, 좁게는 죄와 벌, 진실과 거짓의 문제는 다른 많은 사람들의 삶과 공동체의 운명에도 영향을 미친다. 내년 대선(3월 9일)까지는 이제 130여일 남았다.

그동안 대장동 게이트의 실체에 관해선 많은 논란이 있었기에 여기서는 한두 가지만 덧붙이고자 한다. 대장동은 크게 3개의 축(세력)에 의해 기획되고 실행됐다는 게 지배적인 인식이다. 1축은 구속된 유동규와 그 윗선이 중심이 된 이른바 ‘성남 그룹’, 2축은 김만배의 맨토로 알려진 특검 출신 법조인과 모 법무법인, 3축은 김만배와 같은 학교 출신인 법조인들과 금융인들을 지칭한다. 이 중 핵심은 역시 1축이다. ‘설계’가 이뤄진 곳도, 설계가 시행돼 천문학적인 배당금이 쏟아지고, 배당금을 놓고 자기들끼리 다툼이 벌어진 곳도 1축이다. 그렇다면 1축의 핵심 의문인 ‘왜 화천대유인가?’부터 다시 짚어야 한다.

‘짜고 치는 고스톱’이 사안의 핵심

대장동 개발사업 공모는 2015년 2월 13일 시작됐다. 그 1주일 전 김만배는 화천대유라는 자산관리회사(AMC)를 만든다. 우연의 일치일까. 공모 공고가 났는데, 선정 조건의 하나로 ‘자산관리회사를 포함한 업체(컨소시움)에는 가산점을 준다.’는 항목이 들어있었다. 공모는 3월 26일 오후 마감됐고, 바로 그 다음날 오후 화천대유가 포함된 ‘하나은행컨소시엄’이 메리츠, 산업은행 컨소시엄을 제치고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다. 김만배는 무슨 정보가 있었기에 느닷없이 5천만원짜리 자산관리회사를 만들어 ‘하나은행컨소시엄’에 집어넣었을까.

이를 놓고 “설립 1주일 밖에 안 돼 실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짧은 심사기간을 거쳐 통과되었다는 이유로 절차부터, 심사 단계부터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재명 캠프 측은 “평가기간이 길어지면 로비나 압박이 들어올 수도 있고, 성남시민들에게 얼마나 많은 공공이익을 줄 거냐가 핵심 포인트였기에 신속히 결정한 것”이라는 취지로 해명했다.

그러나 외견상 전형적인 ‘짜고 치는 고스톱’으로 비친다. 특정인(세력)에게 특혜를 주기로 기획, 설계되지 않는 한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그러려고 당시 성남도시개발공사(도공) 기획본부장이던 유동규를 사장대리 자리에 앉힌 것 아닌가. ‘대장동 설계안’이 나오기 직전인 2015년 1월 6일 이재명 지사는 유동규 등과 함께 호주·뉴질랜드 출장을 다녀왔다. 성남 도공 관계자는 “유 전 본부장이 출장을 다녀온 지 얼마 안 돼 사업설계의 초안이 된 연구용역 결과가 나오고 사업추진이 빠르게 진행됐다”고 했다.(조선일보 2021년 10월 22일)

입찰방해, 공무상기밀누설, 배임

그렇다면 유동규 김만배 등을 입찰방해, 업무방해, 공무상기밀누설 혐의로 수사해야 한다. 이를 통해 왜 화천대유가 ‘하나컨소시움’으로 가게 됐는지를 밝히면 배임(背任) 문제도 자연스럽게 풀린다. 이 사건의 최초 보도도 “대장동 사업에 화천대유가 참여하게 된 배경을 두고 그 이면에 민주당 대권후보인 이재명 지사(당시 성남시장)의 비호가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의혹의 입소문이 떠돈다”(경기경제신문 2021년 8월 31일)는 제보에서 시작됐음을 상기해야 한다.

그럼에도 검찰은 그럴 의지도, 역량도 없어 보인다. 법조계에선 “추미애, 박범계 법무장관 체제에서 베테랑 수사 검사들이 모조리 한직으로 밀려나 수사할 사람이 없다”는 말이 나온다. 총사령탑인 서울중앙지검장이나, 담당 부장검사 등도 특수 수사와는 거리가 멀다는 게 중평이다. 그러니까 검찰이 21일 유동규를 뇌물죄로만 기소하고 수천억대의 배임혐의를 뺀 데 대해 “부실수사로 이재명 살리기”라는 비판이 쏟아지는 것 아닌가. 양심선언을 기대할 수도 있겠지만 이 지사가 지사직을 갖고 있는 한 현실적으로 어려울 거라는 관측이 더 많다.

검찰은 이제라도 1, 2, 3축에 대한 유기적이고 총체적인 수사를 통해 게이트의 전모를 밝혀야 한다. 벌써 성남시 백현동 옛 한국식품연구원 부지 개발 사업을 놓고서도 또 특혜시비가 일고 있다. 주택을 지을 수 없는 ‘자연녹지’를 ‘준주거지’로 4단계나 뛰어넘는 용도변경을 해줌으로써 민간업체가 얻은 이익이 3000억원에 달한다고 한다. 성남시가 용도 변경을 거부하다가 이 지사 선거 캠프 출신 인사를 영입한 뒤 변경이 이뤄졌다는 의혹도 무성하다. 여러 면에서 대장동과 닮았다. 이것도 “국민의힘과 토건세력의 비리” 탓인지 궁금하다.

책상 위에 뿌려놓은 압정

필자는 이 지사에 대해 앰비밸런스(ambivalence · 반대 감정의 양립)가 있다. 불우한 환경을 극복한 그의 의지와 집념에는 박수를 보내지만, 기존질서에 대해 지나칠 정도로 강하게 느껴지는 적개심과 투쟁심엔 거부감이 있다. 2017년 그가 민주당 대선 경선에 출마했을 때 펴낸 자서전 <이재명의 굽은 팔>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짠하다.

“… 혼자 대입학력고사를 준비할 때였다. 대학 장학금을 받으려면 전국 2천∽3천등 안에 들어야 했다. 나는 (졸지 않으려고) 책상에 압정을 뿌려놓고 문제집을 풀었다. 압정효과는 채 일주일이 가지 않았다. 공장 일을 끝내고 온 내 몸은 압정 두어 개에 찔린 채 책상 위에 그대로 잠들어있었던 것이다. … (중고교 정규 과정을 안 거쳐) 나는 영어를 읽어봤지 들어본 적은 없었다. 내게 ‘바이블’(bible·성경)은 ‘비블’이었고, ‘아이언’(iron·철)은 ‘아이롱’ 이었다.”

경북 안동 산골 마을에서 9남매 중 일곱째로 태어나 아버지의 노름으로 집안이 거덜 나자, 가족과 함께 경기도 성남시로 이주했고, 여덟 식구가 단칸방에 살면서도 꿈을 이룬 그에게 누군들 감동하지 않으랴. 당시 그가 쓴 시(詩)는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굽은 팔을 펴는 날까지만/살자/부끄러움을 부끄러워하지 말자/거울이 울면서 말했다./굽은 팔로 살아./그날 오후 나는/처음 굽은 팔로 반소매 옷을 입고 거리로 나갔다.”

만독불침(萬毒不侵)

이런 성장 과정이 그를 강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이 지사는 2018년 1월 기자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여배우 스캔들로 한창 시끄러울 때였다. “무협지 화법으로 말하자면 난 만독불침(萬毒不侵)의 경지다. 포지티브가 아닌 네거티브 환경에서 성장했다. 적진에서 날아온 탄환과 포탄을 모아 부자가 되고 이긴 사람이다.” 만독불침은 어떤 독에도 당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는 이런 강인함을 통해 형수 욕설, 조폭 연루설 등과 같은 많은 논란에 맞서 왔다. 보통사람들 같으면 이 중 하나만 터져도 이미 두 손을 들었을 것이다.

이 지사는 성남시장 시절의 3대 무상복지(청년배당, 무상교복, 산후조리비 지원)와 ‘증세 없는 복지의 실현’으로 유명해졌다. 물론 반론도 있다. “재정상황이 좋은 성남시장을 맡은 덕에 무상 시리즈가 가능했을 뿐”이라는 거다.(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인권변호사로서 ‘분당 백궁‧정자지구 용도 변경 특혜의혹’ ‘분당 파크뷰 특혜분양 의혹’ 등을 파헤치기도 했다.

대선 후보로서의 이 지사의 역사인식은 통상 ‘진보 좌파’로 분류되는 인식과 다르지 않다. 그는 2017년 1월 ‘촛불혁명’의 와중에서 펴낸 <대한민국 혁명하라>는 저서에서 “해방 후 70년이 넘도록 청산되지 않은 친일 기득권 세력과 반대자를 종북으로 몰며 분단을 고착화하고 평화와 통일을 방해하는 분단세력을 이번에 반드시 몰아내고, 새로운 대한민국, 진정한 민주공화국을 완성하자”고 했다. 1970년대 식의 기계적, 도식적 운동권 냄새가 물씬 난다.

‘싸움의 기술’, 그 이상을 보여달라

이 지사는 국민의힘 대권주자인 윤석열이 21일 ‘전두환 발언’으로 논란을 빚자 그 다음날 광주 5·18 묘역을 찾아 땅에 박힌 전두환 비석을 구둣발로 밟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는 “올 때마다 꼭 밟고 간다”고 했지만 그 순발력이 놀라웠다. 싸워야 할 때와 싸워야 할 곳을 본능적으로 아는 듯 했다. 누군가에게는 비정하고 야비하게 느껴졌을 법도 하지만.

싸움의 기술은 그만하면 됐고, 굴곡 많은 인생이 주는 감동과 그가 이뤘다는 성취도 인정한다. 그건 미래 세대에게도 자부심의 원천이 될 것이다. 이 지사는 이제 자신을 좀 더 명료하고 투명하게 드러내 보여야 한다. 그는 이번 대선을 “부패 기득권 세력과의 최후의 대첩”으로 규정했다. 그런 ‘대첩’을 앞둔 후보라면 자신부터 한 점 의혹이 없어야 하지 않겠는가.

필자는 이 지사가 ‘대장동 특검’을 자청하지 않는 이유를 모르겠다. 단군 이래 최대의 치적이고, 한 점의 비리도 없다면 특검이 오히려 그의 마지막 꿈을 이룰 기회가 될 수도 있을 텐데 말이다. 그는 “대한민국이 친일파와 미 점령군의 합작으로 인해 깨끗하게 출범하지 못했다”고 했다. ‘깨끗하지 못한 출범’을 한국사회의 70년 적폐의 원인으로 본 것이다. 그렇다면 스스로도 ‘깨끗한 출발’을 위해 특검을 자청하는 게 옳지 않겠는가. 내가 너무 순진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