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철 칼럼] 한국 경제, ‘컨틴전시 플랜’이 필요하다

2021-10-14 14:36
글로벌 경제 ‘R(Recession)→I(Inflation)→S(Stagflation)’의 W자형 갈지자 지속

김상철 전 KOTRA 베이징·상하이 관장, 동서울대 교수

글로벌 경제가 다시 요동을 친다. 포스트 코로나를 준비하고 있는 경제 주체들을 당황하게 하면서 시계 제로의 상태로 내몬다. 충격의 크기가 국가 혹은 기업이나 개인에게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 딜레마다. 코로나 팬데믹이 본격화된 작년 세계 경제는 ‘R(Recession)의 공포’에 시달렸다. 셧다운으로 공장 가동이 멈추면서 글로벌 공급망이 마비되고, 교역량이 급감했다. 올해 초부터는 백신 접종이 시작되면서 기저효과가 반영된 것이기도 하지만 회복 추세로 반전되었다. 선진국을 중심으로 일상으로의 복귀가 가시화되면서 소비가 증가하고 이에 따라 글로벌 무역도 다시 활기를 띠었다. 오히려 ‘I(Inflation)의 공포’를 우려할 정도였다. 장래의 불확실성에 대한 우려가 점점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셈이다.

2개 분기도 버티지 못하고 글로벌 경제는 다시 ‘S(Stagflation, 스태그플레이션, 저성장·고물가)의 공포’에 휩싸이고 있다. 변이 바이러스 확산에 따른 생산 차질에 물류대란까지 겹쳐 글로벌 공급망의 병목 현상이 증가하고 있다. 유가 등 원자재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는다. 경기는 얼어붙고 있는데 물가상승 요인은 더 늘어난다. 설상가상으로 세계의 공장 중국은 전력난으로 제조업 경기 둔화가 뚜렷하다. 제2 부동산 대기업인 헝다 부도 쇼크로 중국 경제의 숨은 뇌관인 기업 부채가 수면 위로 부상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지난 30여 년 동안 위기를 슬기롭게 모면해 온 중국 경제의 경착륙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미국 연준이 테이퍼링(양적완화 축소)을 연내 실시할 것이라는 예고로 미국 국채금리가 오르고 있다.

이러한 악재의 동시다발적 출현으로 갈 길 바쁜 각국 경제에 먹구름이 도미노처럼 번지는 추세다. 특히 글로벌 금융시장이 출렁거린다. 증시는 연쇄적으로 급락하고 환율은 급등한다. 원인 제공을 하는 진앙지보다 경제 펀드멘탈이 취약한 상대적 약자인 신흥국일수록 치명적인 직격탄을 맞고 있다. 해외 의존도가 높은 한국도 위험에 정면에 노출되어 있으며, 미국이나 중국보다 더 큰 영향력을 받고 있다. 이슈는 현재와 같은 상황이 언제까지 지속할 것인가와 무방비로 당하고 있을 것인가로 초점이 모인다. 주목해야 할 것은 코로나 이후 경기회복 과정에서 국가마다 판이한 격차가 생겨나고 있는 점이다. 이는 기업이나 개인에도 공통으로 적용된다. 누구든 여기서 나가떨어지면 회복이 불가능할 수도 있다.

경제계에서는 벌써 ‘퍼펙트 스톰(총체적 위기)’에 대비해야 한다는 경계감이 확산하고 있는 분위기다. 대외 여건이 나쁘면 약방에 감초처럼 나오는 목소리다. 코로나 상황이 좀처럼 호전되지 않으면서 내수도 거의 초토화된 상태이기 때문에 대내 여건도 최악이다. 내·외부 악재가 중복되면서 위기가 더 커 보인다. 대선 정국으로 치닫고 있어 경제 논리보다 정치 논리가 앞서고 포퓰리즘이 기승을 부린다. 기업에 유리한 환경보다는 불리한 규제가 늘어나고 있는 것도 문제다. 위기 상황에 대비하는 ‘컨틴전시 플랜’이 절실하지만 정권 말기에 제대로 가동될지 의문이 간다. 동전의 양면과 같이 위기의 뒤편에는 반드시 기회도 존재한다. 위기는 최소화하고, 기회는 극대화하는 전략적 접근이 시급한 현실이다.

위드 코로나’에 대응하는 전반적인 경제 정책 수정으로 기업의 짐 덜어줘야

우선 우리 경제의 젖줄이자 버팀목인 수출이 위축되지 않아야 한다. 글로벌 공급사슬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원자재 가격이 올라가면 전반적인 수출 환경은 나빠지지만, 수출 플레이어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다르다. 오히려 기회 요인도 있다. 경쟁국인 중국 제조업의 공급 능력에 차질이 생기면 글로벌 시장에서 우리 상품의 입지는 개선된다. 유가 상승은 석유화학 제품의 수출이 늘어나고, 효자 시장인 중동의 소비 혹은 건설 수요 회복이 우리에게 당근으로 다가온다. 수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적정 환율이 견지되어야 한다. 수출과 수입의 균형적 관점에서 급격한 환율 상승보다 일정 수준의 하락을 유도하는 것이 요구된다. 해외 시장을 전면 재점검하고 우선순위와 포트폴리오를 재설정하는 전술이 필요하다.

내달 시행될 예정인 ‘위드 코로나’에 대한 보다 정교한 대응책이 나와야 한다. 단지 거리두기를 완화하는 ‘백신 패스’에 그치지 않고 포스트 코로나 경제환경에 대비하는 전반적인 정책 수정이 불가피하다. 내수 회복 못지않게 해외 시장 선점에 대한 구체적인 그림을 그려야 한다. 피 말리는 글로벌 경쟁을 하는 기업의 부담과 고통을 줄이는 데에 방향을 맞추어야 한다. 위드 코로나로 빠르게 전환되는 글로벌 경제에서 최대의 이익을 확보해야 한국 경제의 지속 가능성이 보장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기업이 가볍게 움직일 수 있도록 최소 1〜2년 정도는 짐을 덜어주어야 한다. 중대재해처벌법이나 온실가스 감축 목표 등을 유연하게 조정해야 한다. 재정·통화 정책 등 출구 전략 타이밍도 신중할 필요가 있다.

코로나 영향에 따른 세계 경제의 변수를 읽어야 한다. W자형 회복세가 계속되고 있는 추이를 참작해 보면 연말에 경기가 역전될 가능성이 크다. 이 과정에서 우리 기업이 최대의 이익을 확보해야 한국 경제의 지속성이 가능해진다. 글로벌 가치사슬 재편에 선제적으로 동참하면서 미국 혹은 글로벌 기업들과의 합종연횡을 서둘러야 한다. 또한 중국 시장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시장 다변화를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할 시기다. 여러 차례 글로벌 경제 위기를 경험한 한국 기업은 의외로 위기에 강하다. 살아남는 방법을 잘 안다. 대다수의 경제 주체들은 우리 경제의 적(敵)이 해외보다 국내에 더 많다고 불만을 토한다. 한국 경제에 회색 코뿔소(방치하다가 위기를 자초하는 것)가 어슬렁거린다는 경고를 새겨들어야 한다.

 
 
김상철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경제대학원 국제경제학 석사 △Business School Netherlands 경영학박사 △KOTRA(1983~2014) 베이징·도쿄·LA 무역관장 △동서울대학교 중국비즈니스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