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영 칼럼] 美·中 관계, 타협과 갈등 격화의 기로에서

2021-10-13 15:32

 

[강준영 한국외대교수, HK+국가전략사업단


미국의 지속되는 전방위적 압박 정책과 중국의 결사 항전 천명으로 갈등의 끝이 보이지 않던 미·중 관계가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의 케서린 타이 대표가 대중 무역정책을 언급하면서 ‘재 동조화’(re-coupling)와 ‘항구적 공존’(durable coexistence)이라는 2개의 신개념을 제시했고,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양제츠 중국 외교담당 정치국원은 6일 스위스 고위급 회담에서 바이든과 시진핑 간의 첫 번째 정상회담을 연내 화상으로 열기로 합의했다. 이는 양국이 상대방의 행동을 기다리는 소강상태인 ‘무선 침묵’(radio silence)을 탈피하려는 시도로 읽히지만 그 파장과 영향은 결코 만만할 리 없다.
미국의 바이든 행정부는 전임 트럼프 대통령의 대중 정책을 계승하면서 ‘자유주의적 국제주의(liberal internationalism)와 공산 중국’이라는 국제 구도를 구축해 ‘민주 대 권위주의’라는 가치 경쟁으로 대중 압박을 형상화했다. 이미 미국은 일본· 인도· 호주와의 4개국 안보 협의체인 ‘쿼드’(Quad)를 정상 협의체로 격상했고, 영국·호주와 안보 동맹 ‘오커스’(AUKUS)도 출범시켰다. 중국 견제를 적시한 '혁신경쟁법안'과 '미국 국제 리더십·관여 보장 법안'(EAGLE act)은 물론 '파이브 아이즈'(Five eyes) 첩보 동맹을 확대하는 방안도 초당적으로 논의 중이다. 특히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에 대항해 G7과 글로벌 인프라 투자계획인 'B3W' (Build Back Better world)도 발족해 중국에 대한 전방위적 포위 압박 전략을 구체화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미국의 공세에 대항하는 중국의 공간은 그리 넓지 않다. 북한이나 러시아와의 관계 강화 및 아세안(ASEAN)·상하이협력기구(SCO) 등 역내 협력체와의 유대 및 영향력 강화에 공을 들이고 있지만 우군(友軍) 만들기가 쉽지 않다. 중국은 미국이 양국 관계를 ‘경쟁’으로 정의하는 것에 반대하면서 미국의 대중 압박은 국제적 영향력 감소와 경제력 약화를 중국을 희생양으로 삼아 보완하려는 것으로 결코 물러서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하고 있다. 여기에는 미국의 공세가 현재까지는 중국에 결정적 타격을 입히지 못했으며 글로벌 공급망을 기반으로 한 중국식 버티기가 유효하다는 자신감도 있다. 대외적으로는 한·중 관계에서처럼 대미 경사를 억제하고 홍콩·대만·신장 위그루 같은 민감 주제에 대해 중립을 요구하는 수준이다.
일단 중국은 케서린 타이 미 무역대표의 대중 무역 정책 발표와 대미 무역 협상을 주도하는 리우허(劉鶴) 부총리간의 전화 통화, 그리고 양국 외교수장 회담 등 일련의 대화 추세를 환영하는 분위기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 시절 대 이란 제제 위반 협의로 캐나다에 억류돼있던 화웨이 그룹의 멍완저우(孟晩舟) 부회장의 송환 요구를 미국이 이례적인 기소 유예 협의(DPA)를 통해 사실상의 무혐의로 석방하자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대미 관계 설정의 청신호로 받아들이는 모양새다. 그러나 미국은 멍 부회장의 석방 당일 백악관에서 '쿼드' 4개국 정상회의를 열었고, 정상들은 남중국해에서 중국의 팽창을 막고, 5G와 반도체 등에 대한 제재에도 합의했다. 9일에는 중국의 안보위협 억제를 중앙정보국(CIA)에 ‘중국 임무 중심’(Mission Center for China)을 설치해 제도적으로 접근하는 치밀함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미 무역대표부 캐서린 타이 대표가 지난 4일 전략과 국제연구센터(CSIS)에서 언급한 바이든 행정부의 첫 번째 공식 대중 무역 정책에는 여러 복선이 깔려있다. 타이는 바이든 행정부가 향후 중국의 불공정 무역에 어떻게 대항할 것인가를 천명한 이 연설에서 중국이 장기간 국제 무역 규범을 준수하지 않아 미국과 전 세계 경제 발전을 저해했으며, 베이징이 국제 규범을 지키려는 유의미한 개혁을 진행하지 않고 있음을 지적했다. 또 중국이 정부 보조금 지원 및 강제 기술 이전 및 지식재산권 절취, 환율 조작과 비관세 장벽의 남용 등 국가 중심의 경제체제를 운영함으로써 글로벌 시장의 혼란을 초래했음을 강조했다. 중국과의 재 동조화와 장기적 협력 도모 강조는 이러한 문제가 해결돼야 가능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여전히 대중 고율 관세를 유지하고 있는 바이든 행정부는 우선, 2019년 1월 올 연말까지 2,000억 달러의 미국산 제품을 구입하기로 한 미·중 1차 무역 합의 이행률이 62%에 불과하다면서 약속 이행을 강조하였다. 중국은 코로나의 영향과 미국의 지나친 대중 규제로 합의 이행이 어려운 것이라고 맞서고 있지만 미국은 중국이 첨단산업, 특히 반도체 산업에만 에 1,500억 달러 투입을 결정하는 등 무역 합의 이행에 적극적이지 않음을 지적하고 있다. 또 1차 무역 합의 사항이 아닌 정부 보조금 문제까지 언급하면서 수퍼 301조 적용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았다. 미국 내부에서 중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 부과가 미국 경제에 어려움을 초래한다는 미국 기업계의 요구가 있지만 국가 안보 규정에 따라 개별적 심사가 가능할 것임을 밝혀 중국의 관세 감면 요구를 수용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제2의 무역 충돌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문제는 현재의 갈등이 무역 관세나 맞보복 차원이 아니라는 데 있다. 미·중 충돌의 근본적 동인은 미래 국제 질서와 패권 확보에 있다. 양국 갈등은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도 초월했고 이제는 제도와 가치 논쟁으로 들어섰다. 결국 양국의 긴장과 갈등은 경제적 현실도 중요하지만 상호 신뢰가 파괴된 상황에서 서로 다른 이념이 이끄는 냉전으로 비화하는 형국이다. 중국은 스위스 회담에서 양국이 갈등을 피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기로 합의했다고 보도했지만, 미국은 양국 관계의 위험 관리 방법 등 협력 관심 분야에 대한 의견 제기와 중국의 일련의 행동에 우려를 표했다고 전했다. 중국은 남중국해와 대만에 대한 무력 시위를 계속하고 있고, 미국 중국 인권 문제와 더불어 전략 산업의 대중 의존도 축소를 계속 추진할 것이다.
지구상에 전능(全能) 국가는 없다. 미국의 대중 압박이 의도한 대로 진행될지도 미지수고, 중국 역시 미국의 지나친 압박이 억울하다는 주장에 앞서 국제사회와 호흡할 수 있는 규범적 질서를 수용할 필요가 있다. 규범적 질서 속에서 공존과 타협에 대한 인식이 우선이다.
강준영 필자 주요 이력

▷대만국립정치대 동아연구소 중국 정치경제학 박사 ▷한중사회과학학회 명예회장 ▷HK+국가전략사업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