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제처가 바꾼다] 행정법 체계부터 법령 용어까지

2021-10-03 08:00
건국 이래 첫 행정법 분야 기본법 제정
한자어·일본식 법령용어, 우리말로 순화

법제처가 행정법 근간 마련에 열심이다. 올해 3월 '행정기본법' 시행에 이어 최근 그 시행령도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건국 이래 처음으로 행정법 분야 기본법이 만들어졌다는 데 의의가 있다. 행정기본법은 영어(6월)와 중국어·일본어(7월), 독일어·스페인어(9월)로도 서비스된다.

법령용어도 손봤다. 어려운 한자어나 일본식 용어를 쉬운 우리말로 바꾸는 작업으로, 지난 2018년부터 추진해 왔다. 예컨대 의치는 틀니로, 저리는 저금리로 정비했다.

◇학설·판례 탈피···'행정기본법'으로 적극행정 추진
 

이강섭 법제처 처장 [사진=법제처 제공]


법제처는 행정기본법을 통해 4600여개 법령별 인허가·과징금 원칙을 통일했다. 기존에는 과징금 전액 납부를 원칙으로 하고, 개별 법률에서 허용하는 경우에만 납부 연기나 분할납부가 가능했다. 하지만 혼선을 줄이고자 개별 법률에 규정이 없더라도 행정기본법에 따라 과징금 납부 연기나 분할납부가 가능해졌다.

제재처분 가능 기간은 5년으로 제한하고, 개별 법률에 한정적으로 도입된 이의신청 제도의 일반적인 근거를 마련했다. 또 쟁송을 모두 거친 후에도 처분 재심사가 가능토록 했다.

무엇보다 신고의 효력 발생 시점을 명확히 규정하고, 적극행정에 관한 법적 근거를 명시해 촉진될 수 있도록 했다. 이렇듯 그동안 학설과 판례에 의존해온 행정법 주요 원칙(법치행정, 평등, 신뢰 보호의 원칙 등)을 글이나 문서로 남기게 됐다.

행정기본법은 지난 3월 공포와 함께 시행됐지만, 제22조와 제29조 등 5개 조항은 지난달 24일부터 시행됐다. 제23조부터 제26조까지, 제30조부터 제34조까지, 제36조와 제37조는 2023년에 시행될 예정이다.

행정기본법은 5개 외국어(영어·중국어·일본어·독일어·스페인어)로도 서비스되고 있다. 법제처는 최근 독일어·스페인어 번역본을 통해 유럽 법제중심 국가인 독일, 스페인·중남미 등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국가와 원활한 교류를 기대했다.

법제처가 소개한 행정기본법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불문법 영역의 행정의 법 원칙 등 성문법화>

-법치행정·평등·비례의 원칙과 학설·판례로 확립된 신뢰 보호·부당 결부 금지 원칙 등을 행정의 법 원칙으로 성문화했다. (제8조부터 제13조까지)
-일반 규정 없이 운영되던 '행정의 기간 계산에 관한 기준'을 법률에 명시했다. (제6조)
-신청에 따른 처분은 처분 당시 법령을, 제재처분은 위반행위 당시 법령을 따르도록 하는 등 신법·구법의 적용기준을 명확히 규정했다.(제14조)

<행정의 효율성·통일성 제고>

-인허가의제(제24조부터 제26조까지), 과징금(제28조, 제29조), 이행강제금(제31조) 등 개별법에 흩어져 있는 제도의 통일된 기준을 마련했다.
-법률에 수리(受理)가 필요하다고 명시돼 있는 신고는 행정청이 수리해야 효력이 발생하도록 효력 발생시점을 명확화했다. (제34조)

<적극행정 및 규제혁신 촉진>

-행정의 적극적 추진 근거를 명시함으로써 행정의 투명성을 높이고 적극행정을 촉진하는 법적 토대를 마련했다. (제4조)
-미래 과학기술 발전에 행정이 적시에 대응할 수 있도록 자동화된 시스템을 활용해 처분을 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 (제20조)

<국민 권익보호 수단 확대>

-영업소 폐쇄 등 제재처분의 처분 가능 기간(제척기간)을 5년으로 제한해 행정의 신속한 처분을 유도하고, 국민의 법적 안정성과 이에 기반한 신뢰를 보호한다. (제23조)
-개별 법률에 한정적으로 도입돼 있는 이의신청 제도의 일반적 근거를 마련해 국민이 행정심판·소송 전에도 구제절차를 한 번 더 가질 수 있도록 기회를 확대했다. (제36조)
-민·형사상 재심 제도와 유사한 '처분의 재심사' 제도를 행정에 도입해 쟁송을 통해 처분을 다툴 수 없게 된 경우에도 일정한 경우 처분 변경·취소·철회를 신청할 수 있도록 했다. (제37조)

◇'개호→간병', '지불하는→내는'···우리말 법령용어 활성화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지난달에는 어려운 법령용어 정비를 위한 15개 대통령령 일괄개정안이 국무회의에서 의결됐다.

이에 따라 △10·27법난 피해자 명예회복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 △농어촌정비법 시행령 △사립학교교직원 연금법 시행령 △학교안전사고 예방·보상에 관한 법률 시행령 △학교폭력 예방과 대책에 관한 법률 시행령 △고용보험 및 산업재해보상보험의 보험료 징수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 등에서 일부 조항 표현들이 수정된다.

구체적으로 '개호', '작목', '보철구'는 각각 '간병', '재배작물', '보조기구'로 개정된다. 법원 판결문에 자주 등장하는 '구상', '일할계산에 따라' 등의 표현은 각각 '상환청구'와 '일수에 비례하여'로 대체된다. 한자어인 '지불하는'은 순우리말인 '내는'으로 쓰도록 했다.

이번 대통령령 일괄개정은 지난해 국회에 전달된 663개 법률안 중 지금까지 국회를 통과한 88개 법률에 대한 후속조치다. 법제처는 오는 9일 한글날 전에 관련 부령 개정안도 마련해 소관 부처에 송부하기로 했다.

법제처는 지난 2006년부터 알기 쉬운 법령 만들기(알법) 사업을 진행해 왔다. 법령용어 순화 사업은 그보다 20년 전인 1985년부터 시작됐지만, 시행착오가 적지 않았다. 법령 속 전문용어 등을 집중적으로 정비한 게 2018년부터다.

국민과 함께 알기 쉬운 법령을 만든다는 취지로 올해 처음 '올해의 알법 용어' 선정에도 나섰다. 법제처가 정비한 용어 중에 '알기 쉽게 잘 고쳤다'는 호응을 가장 많이 받은 용어가 올해의 알법 용어로 선정된다.

분야별 정비 용어 후보로는 △애로사항→고충사항 △절취선→자르는 선 △고아원→보육원 △전주→전봇대(이상 행정분야) △대차대조표→재무상태표 △명기→명확히 기록 △잔고→잔액(이상 경제분야) △장의비→장례비 △풍치→경관 △추월→앞지르기(이상 사회분야) 등이다.

이강섭 법제처장은 "법령 속 어려운 용어와 일본식 용어 정비를 통해 국민들이 법령을 더 쉽게 읽고 이해하게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