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식 칼럼] '추석민심 언론보도'가 더 헷갈리는 까닭

2021-09-23 18:05

[임병식 위원]


우리 언론은 명절 때마다 명절 민심을 전하는 오랜 관행을 갖고 있다. 이번 추석 명절도 예외는 아니다. 대선을 앞두고 여야 경선이 한창인 까닭에, 특히 언론 보도에 눈과 귀가 쏠리는 건 당연지사. 한데 아무리 신문과 방송을 뒤져도 정확한 민심이 무엇인지 가늠하는 게 쉽지 않다. 보수·진보 언론 할 것 없이 “너도 맞고 너도 맞는다”는 닮은꼴 보도가 주를 이뤘다. 정권 재창출과 정권 교체 바람을 절반씩 섞어 보도하는 관행은 여전했다. 기계적 균형을 정론으로 착각하며, 훗날을 대비한 보험 들기에서 비롯된 보도행태가 아닌가 싶다.

예를 들면 이렇다. “여야 정치권은 엇갈린 추석 민심을 전했다. 이들이 전한 민심은 ‘정권 재창출’과 ‘정권 교체'였으며, 방역 대책에 대해서는 ’칭찬‘과 ’비판‘이 대조를 이뤘다.” 현 정부가 잘했다는 건지 그렇지 않다는 건지, 그래서 정권을 바꿔야 할지 아니면 이대로 가야 할지 도통 판단이 서지 않는다. 이 같은 보도행태는 기계적 균형과 함께 정당 대변인 입에만 기대면서 비롯된 게 아닌가 싶다. 연휴 마지막 날인 22일, 민주당과 국민의힘 대변인실은 자당에 유리한 편향된 시각을 추석 민심으로 내놨고, 언론은 여과 없이 전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추석 연휴기간 국민들께서 민주당에 아낌없는 조언과 격려를 해주셨다. 코로나 상황을 극복하고 경제회복과 도약의 계기를 마련하라는 민심을 새기겠다”며 우호적으로 해석했다. 그러면서 “문재인 정부 성과를 이어받아 더욱 담대하고 힘차게 순항할 수 있도록 최고 대통령 후보를 선출하겠다”며 정권 재창출 의지를 다졌다. 반면 국민의힘은 “정부·여당의 위선에 분노한 국민들의 민심을 확인한 ‘분노의 한가위’였다”면서 추석 민심을 정권 교체로 설명했다. 이어 “‘분노의 한가위’ 문을 연 사람은 민주당 이재명 후보다. 추석 연휴 밥상은 ‘화천대유는 누구 겁니까’로 차려졌고, ‘화천대유 하세요’란 조롱 섞인 인사말이 회자됐다”면서 여당 유력 후보인 이재명 지사를 직격했다.

미국 언론은 지지 정당과 후보를 공개적으로 표명한다.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 '시카고트리뷴'은 2012년 대선 당시 민주당 오바마 대통령 지지를 선언했다. 뉴욕타임스는 ‘다시 오바마 대통령 재선을’이란 사설에서 자신들이 민주당 후보를 지지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또 2016년 대선 때도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진보성향 언론 대부분은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 후보를 공개 지지했다. 당시 100개 언론 가운데 절반이 넘는 신문과 방송은 힐러리 클린턴을 지지했지만 개표 결과 공화당 트럼프 후보가 당선됐다.

반면 한국 언론은 겉으로는 불편부당과 정론직필을 앞세우지만 특정 정당과 후보에게 유리한 보도를 반복하고 있다. 보수 성향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동아일보'는 진보정권을 비판하고 보수정당에 힘을 싣는다. 심지어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킹메이커를 자처하며 대통령 만들기에 나서 빈축을 사기도 했다. 조중동 반대편에 있는 '한겨레' 또한 강한 정파적 성향을 띤 매체다. 보수정당에는 비판적이며 진보정당에는 우호적이다. 그래서 언론학자들은 한겨레는 공정한 언론이 아닌 진보언론일 뿐이라며 정파성을 문제 삼고 있다.

미국과 한국 언론의 상반된 행태는 세 가지 특성에 기인한다. 첫째, 정치적 환경이다. 미국 정당 정치는 160년 동안 공화당과 민주당에 기반하고 있다. 언론과 국민들은 민주당과 공화당이 지향하는 정책적 차이를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다. 그러니 지지하는 정당을 선택하는 게 쉽고, 이는 자연스럽게 후보 지지로 연결된다. 반면 우리 정당 역사는 이합집산과 합종연횡의 결과물이다. 당명은 수시로 바뀌고 지향하는 정책적 차이도 모호하다. 국민의힘-미래통합당-자유한국당-새누리당-한나라당-신한국당-민주정의당 VS 더불어민주당-대통합신당-새정치국민회의-새천년민주당-통일민주당-평화민주당-신민당까지 당원들조차 헷갈릴 정도다. 또 경제민주화 바람을 타고 양당 간 정책 차이도 모호해졌다.

둘째, 정치적 보복에 대한 우려다. 미국이라고 다르지 않겠지만, 미국은 언론에 대해 비교적 균형감각을 잃지 않는다. 오랜 민주주의 산물이 아닌가 싶다. 이에 비해 한국 정치는 법보다 주먹이 가깝다. 2012년 대선 당시 인터넷매체 '미디어스'는 박근혜 후보가 TV토론에서 아이패드를 사용했다고 보도했다. 커닝했다는 뉘앙스를 담은 보도에 대해 박근혜 후보 캠프는 발끈했다. 당시 이정현 공보단장은 “(당선되면) 없애버리겠다”고 했다. 비록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지만, 권력과 언론의 역학관계를 보여주는 상징적 일화로 회자된다. 권력은 공공기관 광고와 협찬 배제, 사주에 대한 검찰 수사까지 언론을 옥죄는 다양한 수단을 갖고 있다. 이러니 드러내놓고 특정 정당과 후보를 지지하는 건 쉽지 않다. 끝으로, 우리 선거법은 언론의 정치 참여를 금지하고 있다.

추석 밥상머리에서 두 가지 민심은 분명하게 확인했다. ‘화천대유’에 대한 심상치 않은 기류와 국민의힘 본선 후보 교체 가능성이다. 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관련된 ‘화천대유’는 납득하기 어려운 의혹이 계속되고 있다. 추후 사실관계가 드러나겠지만 당장 제기되는 의혹만으로도 폭발력을 지니고 있다. 사업자 선정 공고 직전에 화천대유 설립, 제안서 제출 하루 만에 1조5000억 원대 사업자로 화천대유 선정, 그리고 설립 자본금 3억1000만원으로 1540억원 이익배당, 화천대유가 아파트 용지 5개 필지를 수의계약으로 확보해 직접 사업 시행, 이재명 후보 선거법 위반 사건 당시 무죄 의견을 낸 권순일 전 대법관의 화천대유 법률 고문 위촉까지 한둘이 아니다. 민심은 이재명 후보의 정면 돌파 시도에도 불구하고 쉽게 수긍하지 않고 있다. 이와 함께 국민의힘 홍준표 후보에 대한 긍정적 인식 변화다. 홍준표 후보에 대한 인식 변화는 민주당 지지층에서조차 감지됐다. 이들은 시원시원한 언변과 분명한 정책을 강점으로 꼽았다. 그러면서 역선택으로만 치부할 경우 국민의힘 본선 진출 후보 교체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며 밑바닥 민심 변화에 주목할 것을 주문했다.

민심은 물과 같기에 앞으로도 수없이 출렁일 게 분명하다. 바람이 있다면 언론은 불편부당이라는 허울 뒤에 숨어 여론을 호도하지 않아야 하며, 여야 후보 또한 검증이라는 명분 아래 흑색선전을 멈추고 밑바닥 민심을 수렴하는 것이다.

임병식 필자 주요 이력

▷국회의장실 부대변인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위원 ▷한양대학교 갈등연구소 전문위원 ▷서울시립대학 초빙교수 ▷전북대 특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