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종 칼럼] 낙하산 공관장님, 외교를 아십니까

2021-09-06 14:58

[이병종 숙명여대 국제관계대학원 교수 ]


필자가 외신 기자 시절 서울 주재 외국 외교관들과 접촉할 기회가 자주 있었다. 그들 국가의 독립기념일 기념식 등 공식적인 자리도 있었지만 비공식 모임 기회도 많았다. 대개 대사가 자신의 관저에 7~8명 내외의 손님을 초대해서 저녁을 대접하는 자리였다. 대부분 한국인 손님들인데 그들의 면면을 보면 상당히 다양했다. 필자 같은 언론인도 있고, 학자, 기업인, 정치인, 시민단체 지도자, 종교인, 예술인 등 사회 각계 각층의 인사들로 구성된다. 이렇게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을 모아 놓고 특정한 주제도 없이 이 얘기 저 얘기 두서없이 대화하는 것에 대해 필자는 자주 의문을 가졌다. 이것이 외교관의 일상 과제인가? 여기서 자국의 국익을 위해 어떤 것을 얻어갈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었다.

오래지 않아 필자는 이러한 비공식 대외 활동이 현지의 사정을 파악하고 현지 여론을 탐지하여 향후 정책과 활동을 계획하는 중요한 수단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공식적인 자리나 언론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정보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이러한 비공식 수단은 더욱 값진 기회를 제공해 주는 것이다. 과거 정부 인사들만을 상대로 하는 전통 외교에 비해 민간 부문과의 교류를 중시하는 현대 공공 외교에서는 특히 중요한 부분이다. 이러한 활동은 경력과 경험이 풍부한 유럽의 전문 직업 외교관들이 특히 애용했다. 실제로 이러한 자리를 통해서 얻은 정보, 지식과 통찰력은 그들 국가나 대사관의 정책으로 나중에 현실화되는 것을 가끔 목격했다.

불행히도 한국의 외교관들이 이런 비공식 외교 활동에 취약하다는 지적이 많다. 특히 전문 직업 외교관이 아닌 특임 공관장들에게서 이런 문제가 발생한다. 야당의 한 국회의원은 최근 한국의 주요 공관 중 여덟 곳에서 비공개 외교 활동이 아주 저조했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는데 그중 다섯 곳의 대사가 이러한 특임 공관장이었다. 중국, 독일, 스위스 등에 파견된 한국 대사로서 전문 외교관이 아니고 이번 정부 탄생이나 정책에 기여한 정치인 등 비외교관이었다. 학생 운동권 출신도 있고 시민단체 출신도 있었다. 이들은 주재국 정,관계 핵심 인사들과 교류하고 고급 정보를 수집하는 비공개 외교 활동이 전임자나, 여타국 대사들에 비해 현저하게 떨어졌다.

물론 야당 국회의원이 정치적인 목적으로 이러한 자료를 배포했을 수 있다. 또 코로나 팬데믹 와중에서 외부 활동이 제약받았다는 점도 고려할 수 있다. 그러나 소위 “낙하산 공관장”의 자질 문제에 대한 지적은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과거 정부에서도 그랬지만 외국 대사직을 정권에 기여한 인사에 대한 “보은 인사”로 사용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대사라는 직책이 한 나라를 대표해서 협상과 조정을 통해 국익을 신장하는 주요한 자리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외국어 능력, 외국 사정에 대한 지식, 전문성, 사교력, 통찰력 등 여러 가지 덕목이다.

안타깝게 이번 정부에서 파견한 특임 공관장 중에서는 이러한 덕목이 결여된 경우가 많다. “외교부 순혈주의”를 타파한다는 명목으로 외교의 경험이 전무하고 외국어 능력이 결여된 인사들이 주요국 대사로 임명되었다. 전임 중국이나 일본 대사가 현지어나 영어를 전혀 구사하지 못하고 현지 사정에 어두워 초라한 외교 성과를 보였다. 비외교적인 언행으로 현지인이나 대사관 직원들과의 미찰로 구설수에 오른 경우도 있었다. 한국을 대표하는 얼굴의 이러한 면면은 우리 국익을 신장하기보다는 오히려 해치게 된다.

이런 문제에도 불구하고 “낙하산 공관장”들을 꾸준히 보내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권에 기여한 보은 인사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자리이기 때문일 것이다. 장관 등 정부의 요직에 기용하기 위해서는 까다로운 국회 청문회를 거쳐야 하지만 대사직은 이것이 필요 없다. 사생활 등 개인 문제로 청문회 통과가 어려운 인사나 국회의원 선거에서 낙선한 정치인에게 줄 수 있는 손쉬운 “선물”이기 때문이다.

‘낙하산 공관장’은 선진국인 미국에서도 많이 발견된다. 직업 외교관(career diplomat) 대신 이들을 정치적인 임명자(political appointee)라고 부르는데 대개 해외 공관장의 30퍼센트가 이에 해당한다. 전임 트럼프 대통령은 특히 자신의 측근을 주요국 대사에 많이 보냈는데 해외 대사직 중 무려 45퍼센트가 정치적으로 임명되어 직업 외교관들의 사기를 크게 저하시켰다. 영국 대사로는 자신에게 45만 달러의 정치 자금을 기부한 우드 존슨(Wood Jonson)을 임명했는데 그는 풋볼 팀 뉴욕 젯스(New York Jets)의 구단주로, 외교와는 전혀 관계가 없었다.

그러나 한국과 달리 미국은 자질이 부족한 낙하산 공관장을 막기 위한 제도가 확립되어 있다. 까다롭기 그지없는 상원 청문회가 그것인데 후보자에게 사소한 문제만 있어도 청문회에서 낙마하거나 임명이 무한정 지체된다. 특히 상원 의석수가 민주당, 공화당 간 50:50으로 양분된 현재 같은 상황에서는 청문회 통과가 바늘 구멍 통과만큼이나 어렵다.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한 지 7개월이 지난 지금도 무려 80여개국의 대사 자리가 아직 공석인데 여기에는 한국, 중국, 러시아가 포함된다. 취임 후 멕시코와 유엔의 단지 두 개 대사직만이 상원을 통과할 수 있었다.

물론 정치적으로 임명된 대사들의 장점도 있다. 정권의 실세로서 임명권자의 의중을 잘 알 수 있고 정책에 힘을 실어줄 수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외교 경험이 부족한 이들에게서 외교 성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외교관에게는 성경과도 같은 <외교(Diplomacy)>라는 저서로 유명한 해럴드 니콜슨(Harold Nicholson)은 외교관에 필요한 자질을 정치인에게서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했는데 그 큰 이유는 외교관이 주재국과 우호 관계를 정립하기 위해 장기 지향적인 데 반해 정치인은 정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단기 지향적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해외에서 근무하고 있는 한국의 낙하산 공관장들이 새겨 들어야 할 말이다.
 

이병종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언론정보학 박사 ▷AP통신 특파원 ▷뉴스위크 한국 지국장 ▷서울외신기자클럽 회장